김성근이다 - 감독으로 말할 수 없었던 못다한 인생 이야기
김성근 지음 / 다산라이프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책읽기 2023.3.23.

인문책시렁 299


《김성근이다》

 김성근

 다산라이프

 2011.12.5.



  《김성근이다》(김성근, 다산라이프, 2011)를 읽고 보니, 이처럼 애쓰는 지기도 있으나 이처럼 애쓰지 않는 지기가 꽤 많겠구나 싶더군요. 공놀이(야구)를 하는 지기(감독)하고 일꾼(선수) 사이에서뿐 아니라, 어버이랑 아이 사이에서도 매한가지입니다. 둘은 틀림없이 마음(정)을 나누는 사이입니다만, 틀렸을 적에는 틀린 줄 밝히고 알려줄 뿐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서도록 이끄는 몫을 해야 지기(감독)이자 어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기·일꾼’하고 ‘어버이·아이’ 사이뿐 아닙니다. 모든 곳에서 같아요. 치킴글(주례사비평)을 쓸 까닭이 없습니다. 글을 놓고도, 빛꽃(사진)을 놓고도, 이야기(강의)나 모든 일을 놓고도 다를 까닭이 없어요. 여느 자리에서는 도란도란 어울리거나 지내되, ‘일’을 바라볼 적에는 오직 ‘일’로 마주하면서 다스릴 노릇입니다.


  우리 아이가 쓴 글이나 빚은 그림이어도 틀렸으면 ‘틀렸다’고 짚을 노릇입니다. 어느 때에는 부드럽거나 상냥하게 짚겠지요. 어느 때에는 따갑거나 아프게 짚겠지요. 어느 때에는 매몰차거나 거칠어 보이겠지요. ‘오나오냐(주례사비평)’는 서로 망가지는 지름길입니다.


  《김성근이다》을 여민 글님은 쇳덩이를 안 몰고 자전거를 타거나 걷는 삶을 누린다고 합니다. 오직 스스로 그릴 하루만 바라보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다가도 곧잘 꽃밭으로 뛰어들어 엎어진다지요. 어느 하루만 이러지 않았으리라 느껴요. 걷다가 거리나무나 전봇대에도 부딪혔을 테고, 숱하게 넘어졌겠지요.


  저는 글을 쓰고 낱말책을 여미는 일을 하기에, 쇳덩이(자가용)를 안 몰 뿐더러, 자전거를 달리면서 곧잘 ‘딴생각(낱말을 어떻게 풀이하고 여미느냐 하는 생각)’을 하다가 그만 거리나무에도 박고, 자칫 냇물이나 도랑에 빠질 뻔하기도 했습니다. 걷거나 버스·전철을 타다가 그만 엉뚱한 데에서 내린다든지, 내릴 곳을 지나치기 일쑤예요.


  간추려 보자면, 한길을 오롯이 가고 싶다면 쇳덩이를 버리면 즐겁습니다. 글을 쓰려는 분이라면 제발 쇳덩이부터 버릴 노릇입니다. 쇳덩이를 모느라 글을 못 써요. 책을 읽으려는 분도 부디 쇳덩이부터 치울 노릇입니다. 쇳덩이를 건사하느라 책을 못 사요.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사람은, 버스·전철이 아무리 밀리거나 막혀도 걱정하지 않아요. 밀리거나 막히는 동안 조용히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든요.


  공놀이 지기(야구 감독)뿐 아니라, 길잡이(교사·교수)도 쇳덩이를 버릴 노릇입니다. 아니, 처음부터 종잇조각(면허증)이 없을 노릇입니다. 쇳덩이를 거느리는 바로 그때부터 글이랑 책하고 등지는 셈입니다. 걷지 않으면 마을을 못 보고, 바람을 못 느끼고, 별빛을 못 봅니다. 자전거를 타지 않으면, 길을 못 보고, 둘레를 모르며, 철바뀜을 못 알아챕니다.


  글이나 책하고 얽힌 삶길을 나아가고 싶다면, 치킴글(주례사비평)이란 굴레를 버릴 노릇이요, 쇳덩이를 치울 노릇이며, 걸어다닐 노릇입니다. 그리고 어버이로 살아가며 아이를 사랑하려는 보금자리에서도 치킴말을 버리고 사랑말만 들려줄 수 있으면 됩니다. 아이 손을 잡고서 걸어다녀야 아이가 사랑을 물려받습니다. 아이를 쇳덩이에 앉히는 사람이라면, 바로 이때부터 스스로 ‘어버이를 등지는 굴레’에 갇히는 셈입니다.


ㅅㄴㄹ


프로 감독이 되고 나서 선수들과 사적인 정을 끊은 이유는 선수들이 성장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어서다. 선수를 최고로 성장시키려면 힘든 연습을 이겨내야 하는데, 감독과 선수가 사적으로 정을 나누면 정신력이 약해지게 돼 있다. (24쪽)


나는 자동차 운전면허가 없다. 야구에만 빠져 살아서 어느 순간 생각에 몰두하면 잘못 하다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SK에 있을 때 시합에서 진 날,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다가 길가 화단으로 고꾸라진 일이 있었다. 야구 생각하다가 눈앞에 길도 제대로 못 본 것이다. 나이든 남자가 갑자기 화단을 들이받았으니 사람들이 쳐다볼까 봐 얼른 일어나서 뒤도 안 돌아보고 빨리빨리 걸었다. (47쪽)


누가 나한테 휴식 시간에는 뭘 하냐고 하면, 나는 휴식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1년 내내, 365일 야구 한다. 하루도 안 쉰다. 내 머릿속은 분리하는 게 불가능하다. (49쪽)


그 선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생각이 바뀔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선수에게는 아무리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 입만 아플 뿐이다. (98쪽)


내가 캠프 때마다 꼭 챙겨가는 게 책이다. 두세 박스씩 담아간다. 미팅 때 선수들한테 들려주기 위해서다. 내가 읽고 좋은 내용을 다 기록해 놓았다가, 미팅 때 이야기해 준다. (145쪽)


사람은 마음먹기에 따라 사는 게 다르다. 정말 절실하게 원하면 뛰게 돼 있다. 그만큼 달리게 돼 있다.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힘들고 고달퍼도 그렇게 절실한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야지 싶다. (21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도 페미야? - 젠더 갈등과 세대 갈등의 소통을 위하여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책읽기 2023.3.23.

인문책시렁 298


《엄마도 페미야?》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22.8.12.



  《엄마도 페미야?》(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22)를 읽었습니다. 강준만 님은 ‘후벼파기·까기’가 아니라 ‘되새기기·돌아보기·깨닫기’를 하기를 바라면서 ‘이야기’를 펴자는 뜻으로 이 책을 여미었구나 싶습니다. 다만 ‘페미’ 이야기하고 동떨어진 뜬금없는 글 몇 꼭지를 끝자락에 끼워넣은 대목은 아쉽습니다. 책 한 자락을 오롯이 ‘페미’ 이야기로 안 엮은 뜻이 알쏭합니다.


  《엄마도 페미야?》를 읽으면 뒤쪽에 ‘문재인 실패 + 광주 정신’을 짚는 꼭지가 있습니다. 강준만 님은 전북 전주에서 살아가기에 ‘전라도 민낯’을 여러모로 느끼고 지켜보았으며, 이 엇가락(모순)을 고스란히 글로 담아냅니다. 그런데 전라도에서 살아가는 글꾼 가운데 이런 ‘전라도 엇가락 민낯’을 글로 옮기거나 말로 펴는 이는 아예 없다시피 합니다.


  저는 전남 고흥에서 살아가며 전남·북과 광주 민낯을 요모조모 들여다봅니다. 전남과 광주는 언제나 ‘허수아비(거수기·손뼉부대)’를 바라더군요. 들꽃으로 살아가는 작은이가 말할 틈을 내주지 않습니다. 힘·이름·돈을 거머쥔 이들끼리 잔치판을 벌여 스스로 치켜세울 뿐이고, 이런 자리에 ‘들꽃(시민·농어민)’은 손뼉만 쳐야 합니다. 언제나 90% 안팎으로 ‘한놈밀기’만 하는 이 고장에는 참빛(자유·민주)이 없다고 할 만합니다. 새길(대안)이 없어요. 그저 ‘한놈밀기’일 뿐이고, ‘한놈밀기’만 있다 보니, 그 ‘한놈 무리’에 들어가서 ‘돌라먹기’를 하려는 떼거리가 득실거립니다.


  《엄마도 페미야?》라는 책이 짚으려는 ‘엇가락 민낯’이란, ‘참빛(자유·민주)’을 이루고자 땀흘리던 이들이 어느새 힘꾼(권력자)으로 바뀌면서 외려 참빛을 억누르거나 주리를 트는 굴레요, 이 굴레(엇가락 민낯)를 털어내지 않거나 바로보려 하지 않을 적에는 바로 우리 스스로 엉뚱하거나 뜬금없는 ‘다른 힘꾼’이 싹트는 빌미가 될밖에 없다는 뜻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페미니즘은 ‘순이 혼자 살아야 한다’는 길은 아닐 테지요? 페미니즘은 ‘모든 돌이를 짓밟아 죽이자’는 목청은 아닐 테지요? 꼰대·고린틀(가부장권력)을 걷어내자는 길일 테지요? 총칼(전쟁무기)을 걷어내고, 모든 돌이가 싸움터(군대)에 얽매이지 않도록 아름길(평화)을 바라는 목소리일 테지요?


  이 땅은, 돌이만 살아남을 수도 없고, 순이만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돌이만 있거나 순이만 있으면 그냥 다 죽음길입니다. 순이돌이는 어깨동무를 할 노릇입니다. 높낮이(신분·계급·위계·질서)를 모조리 걷어치우고서, 손을 잡고 노래하면서, 오롯이 사랑으로 살림을 짓는 보금자리를 이룰 노릇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일나눔(가사분담)이 아니라, ‘함께 일하고 함께 놀고 함께 노래하고 함께 쉬고 함께 사랑을 속삭여 함께 빛나는 길’일 적에 비로소 아름답고 즐겁게 마련입니다. 사랑은, 살섞기가 아닙니다. 사랑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좋아함이 아니고, 마음끌림도 아닙니다. 사랑은, 한결같이 햇빛이자 숲빛이자 꽃빛인 마음빛으로 함께 살림을 지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지피는 즐거운 길입니다.


  아이들은 ‘페미니즘’이 아닌 ‘사랑’을 듣고 배우면서 품을 줄 알아야 합니다. 어른들은 ‘페미니즘’이 아닌 ‘사랑’을 속삭이고 보여주고 나누면서 물려줄 줄 알아야 합니다. ‘페미니즘’은 안 나쁩니다. 그리고 좋지도 않습니다. 나쁨과 좋음이 아닌, 모든 꼰대·고린틀을 걷어내려고 땀흘린 길이 페미니즘일 뿐입니다.


  꼰대랑 고린틀을 걷어낸 자리에 사랑을 심지 않으면, 그만 또다른 꼰대랑 고린틀이 들어앉고 맙니다. 우리가 스스로 어진 넋이라면 민낯을 들여다보고 말하고 가다듬고 녹여내고 바로잡을 줄 알겠지요. 외곬은 죽음구렁입니다. 새가 왜 두 날개로 날까요? 나비도 벌도 왜 두 날개로 날까요? 암컷과 수컷이 나란히 있는 까닭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말은 ‘암수·어버이·가시버시’처럼 언제나 순이를 앞에 놓고 돌이를 뒤에 놓습니다. 우리 스스로 먼먼 옛날부터 어질게 일구던 어깨동무와 사랑을 되새기면서, 오늘 이곳부터 참빛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ㅅㄴㄹ


변호사 김재련은 중2 아들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털어놓는다. “엄마 페미니스트야? 페미들은 왜 남자를 조롱하고 미워해? 심지어 길에 쓰러진 여자를 도와줘도 성희롱 했다고 고소한다잖아. 엄마도 남자들 싫어해?” (27쪽)


일부 초등학생들은 자기들 사이에서도 “너 페미야?”라는 말을 자주 쓴다는데, 그들이 생각하는 ‘페미’의 의미는 자기가 좋은 것만 하겠다는 ‘얌체’나 ‘거짓말쟁이’라고 한다. 어쩌다 ‘페미’의 의미가 이렇게까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게 된 걸까? 개탄과 분노만 할 게 아니라 이에 대한 성찰부터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29쪽)


물론 조남주의 선의는 이해한다. 사회적 약자를 옹호하는 글을 쓰는 사람들은 독자들의 공감과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그 약자를 비참하게 보이게 하려고 애를 쓰는 법이니까 말이다. 나 역시도 그런 식의 글을 많이 써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피해 서사’의 한계를 절감하게 되었다. (80쪽)


여성과 페미니즘에 대한 발언도 마찬가지다. 일단 남자는 말하지 않는 게 좋다. 비판도 안 되고 제언도 안 된다. 무슨 말을 하건 몹쓸 ‘맨스플레인’이 되니까 말이다. 그냥 지지의 뜻만 밝히거나 박수만 쳐야 한다. (84쪽)


나는 그분들께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다. “광주에서 성역이 없는 내부 비판의 자유는 보장되고 있나요? 다른 의견에 대한 관용의 문화가 살아 있나요? 지난 대선에서 특정 정당 후보에게 84.4퍼센트의 표를 몰아준 ‘몰표의 전통’을 계속 지켜나가는 게 ‘광주 정신’일까요? 문재인 정권이 어이없는 실정을 저질렀을 때엔 여론조사를 통해서나마 따끔한 회초리를 들어 성찰과 자기 교정을 압박했어야 하지 않나요? 어떤 일이 벌어지건 문재인 정권에 맹목적 지지를 보낸 게 정녕 잘한 일이었을까요?” (16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무의 어두움에 대하여
이난영 지음 / 소동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책읽기 2023.3.23.

인문책시렁 297


《나무의 어두움에 대하여》

 이난영

 소동

 2023.3.8.



  《나무의 어두움에 대하여》(이난영, 소동, 2023)를 읽었습니다. 나무라는 숨결한테 ‘어두움’이 있는지 아리송합니다. 풀이건 꽃이건 나무이건 언제나 풀이나 꽃이나 나무입니다. 사람도 그저 사람으로 있을 뿐, 밝거나 어둡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그저 스스로 마음에 어둠을 심으니 어둠으로 하루를 맞이할 뿐입니다.


  모든 씨앗은 어디에서나 싹틉니다. 다만, 사람들이 죽임물(농약)을 뿌리는 데에서는 타죽습니다. 쇳덩이를 몰아대는 길바닥에서는 깔려죽거나 밟혀죽습니다. 잿더미를 쌓는 데에서는 눌려죽습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아무리 잿더미나 길바닥으로 오래도록 짓뭉갠 터라 하더라도 그곳에서 잿더미를 걷어내면 달포는커녕 며칠만 지나도 싹이 터요. 오래오래 짓눌린 땅이라 하더라도 풀싹이며 나무싹은 고요히 기다립니다.


  우리는 풀꽃나무 숨결에 흐르는 ‘고요’를 얼핏 ‘어둠·캄캄(암흑)’으로 잘못 바라보곤 합니다. 우리 스스로 어릴 적에 입은 멍울이나 생채기나 고름을 나이가 들어서도 고스란히 짊어지면서 스스로 어둡게 살아가기도 합니다.


  어릴 적에 배부르게 살거나 넉넉한 살림집을 누렸다면 아무런 멍울이나 생채기나 고름이 없을까요? 삶을 좋음·나쁨으로 갈라도 될까요? 어느 풀씨나 나무씨도 ‘좋은터’를 가리지 않습니다. 모든 풀씨나 나무씨는 스스로 깃드는 어느 곳이나 푸르게 가꾸려는 꿈 하나를 그릴 뿐입니다.


  ‘어둠이란 마음’을 품은 씨앗이라면 서울 한복판 길가에 누가 심어 놓으면 “사람을 미워하”겠지요? 그런데 어떤 풀꽃나무도 서울 한복판 길가에서 자라더라도 사람을 안 미워합니다. 그저 피어나고 돋아나고 자라납니다. 사람들이 끔찍하게 가지치기를 해대거나 아예 밑동을 베어내더라도 풀꽃나무는 사람을 싫어하지 않아요. 오직 사람만 서로서로 미워하고 손가락질하고 등돌리고 따돌립니다.


  풀꽃나무는 이런 ‘밉사람’ 기운을 받아들여서 스스로 죽기도 합니다. 풀꽃나무는 ‘죽임사람’ 기운을 달래거나 풀어내려고 이 죽임빛을 모조리 빨아들여서 스스로 죽기도 하지요. 이때에, 풀꽃나무가 우리 마음속 어둠빛을 녹여내거나 풀어내 줄 적에, 사람들은 뒤늦게 알아차립니다. ‘아, 내가 나무한테 몹쓸짓을 했구나!’ 하고 여기는데, 나무는 아무 걱정을 안 해요. 왜 그럴까요? 왜 나무는 사람들 곁에서 죽임빛을 빨아들여서 죽음길로 가더라도 아무 걱정이 없을까요?


  나무는 겉몸으로는 시들어 흙으로 돌아갈 테지만, 씨앗을 남기거든요. 나무씨는 둘레에 문득 드리워 천천히 싹이 트고 어린나무로 자라서 우람나무에 이릅니다.


  어두운 나무는 없고, 나무에 어둠빛이란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배부른 사람도 없습니다. ‘어떤 삶’을 겪을 수는 있되, 어떤 삶을 겪었더라도 이 삶이 ‘우리 이름’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저 나무 곁에 서기를 바랍니다. 나무를 심고 풀꽃을 지켜볼 수 있는 손바닥만 한 땅뙈기여도 좋으니, ‘마당 있는 집’을 누릴 수 있는 자리에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서울은 땅값이 비싸다면, 서울을 기꺼이 떠나는 이웃님이 되기를 바랍니다. 땅을 사서 집을 누릴 수 있는 데에서 나무를 품고 살아간다면, 나무가 왜 나무이고 나무가 어떻게 사람 곁에서 이바지하는가를 ‘나무빛’으로 받아들이고 배울 만합니다.


ㅅㄴㄹ


왜 뭇 생명들은 강제로 이주를 당하고, 뿌리 뽑히는 삶을 살아야만 할까. (24쪽)


작은 풀벌레 하나가 가느다란 풀잎 뒤에 숨어서 비바람을 피한다. (50쪽)


나무 한 그루가 없어졌을 뿐인데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어두워 보이고 동네는 더 삭막하고 멋이랄 게 없어 보입니다. (74쪽)


내년에는 감자꽃 따지 말아야지. 내년에는 남의 말 듣지 말아야지. (130쪽)


나무 한 그루 없는 곳에서 자란 내가, 나무에 대한 일말의 지식도 추억도 없는 내가, 왜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가 생각해 보았다. (20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고향 서울엔 - 82년생 서울내기가 낭만하는 기억과 장소들
황진태 지음 / 돌베개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책읽기 2023.3.18.

인문책시렁 293


《내 고향 서울엔》

 황진태

 돌베개

 2020.4.20.



  《내 고향 서울엔》(황진태, 돌베개, 2020)을 사 놓고서 한 해 남짓 지나고서야 비로서 다 읽었습니다. 어쩐지 읽기가 까다롭기도 했고, 글쓴이가 너무 어렵게 꾸민다고 느꼈습니다. 나고자란 곳이라면 ‘나고자란’ 이야기를 들려주면 될 텐데, 자꾸 ‘문화적·역사적’ 같은 꾸밈말을 붙이려 하니 뒤죽박죽이었고, 어쩌다가 들르거나 지나간 서울 한켠을 ‘역사·문화 해석’이라든지 ‘대중문화 분석’을 하려고 들기에, 뭔가 참 삶하고 동떨어진 줄거리로구나 싶더군요.


  서울은 너무 넓고 크며 사람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그래서 서울을 섣불리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 없습니다. 서울이라는 곳을 말하자면, 즈믄 사람쯤이 예순 해쯤은 살아낸 나날을 즈믄 가지로 듣고 새겨서 아주 두툼한 책으로 꾸리더라도 ‘서울을 제대로 못 짚었다’고 여길 만합니다.


  서울을 짚거나 다루고 싶다면, ‘온 서울’을 다 짚거나 다루려는 마음부터 지울 노릇입니다. 스스로 겪고 보고 살아낸 ‘서울 한켠’만 짚거나 다루려 해야, 비로소 ‘이런 눈길로 서울을 보기도 한다’는 꾸러미 하나가 나올 만합니다.


  《내 고향 서울엔》이라는 이름이지만, 정작 글쓴이로서 ‘나고자란 서울’ 이야기가 너무 짧고 얕고 몇 줄 안 됩니다. 어설프게 종로를 건드리려 하지 말고, 엉성하게 신촌을 다루려 하지 말고, 어정쩡하게 영등포를 쓰려 하지 말고, 섣불리 강남을 말하려 하지 않았으면, 이 책은 꽤 읽을 만하고 돌아볼 만했다고 느낍니다.


  차라리 이웃나라 사람이 서울에 나들이를 와서 쓴 글이 훨씬 나았으리라고도 느껴요. 왜 그러냐 하면, 서울마실을 하는 사람은 온몸으로 부대끼고 온마음으로 사랑하는 하루를 되새기면서 서울을 이야기하게 마련입니다. 이와 달리, 이 책을 쓴 분은 자꾸 ‘어디선가 듣고 본’이라고 하는 굴레를 스스로 뒤집어씁니다. ‘서울에 있는 새뜸(언론)이라지만, 정작 서울이라고 여기지 않아 아예 안 다루다시피 했다’는 월계동하고 장위동 이야기를 쓰면 될 뿐입니다. 스스로 겪은 마을 이야기를 쓰고, 글쓴이 어머니 아버지가 겪고 보고 살아낸 마을 이야기를 담으면 돼요.


  저한테 서울 월계동이나 장위동은 1994∼95년하고 1998∼99년에 서울 이문동에서 살며 짐자전거를 몰며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돌아다닌 곳이면서, 새롭게 만나고 싶은 마을책집을 찾으려고 골목골목 걸어다니던 곳입니다. 지난날 그 골목이며 마을을 짐자전거로 누비거나 두 다리로 걸으면서 “여기는 서울이면서도 바람이 제법 깨끗하고 길바닥이 퍽 정갈하구나. 서울이면서 꽤 고즈넉하기에 서울에서 뿌리를 내린다면 여기에서 살 만하겠네.” 하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서울빛’도 ‘살림빛’도 거의 다 스러졌겠지요.


  끝으로, 글쓴이는 어느 골목집이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집 안은 깨끗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315쪽)”처럼 말하는데, 얼마나 골목집을 모르거나 겉으로만 훑었는가 하고 느낄 만합니다. 껍데기로만 슥 훑으면 속빛도 참빛도 모릅니다. ‘살아낸 이야기’가 아닌 ‘구경한 이야기’로 ‘대학교에서 학문·연구를 할’는지 모르나, 글이나 책이나 살림하고는 그저 멀 뿐입니다.


ㅅㄴㄹ


‘서울 같지 않은 서울(강북)’ vs ‘진짜 서울(강북 도심인 광화문, 종로 등과 강남)’이라는 이분화된 공간 인식에 따라 내가 사는 동네는 미디어에서 재현될 가치가 없고, 서울의 공식적인 역사의 일부가 될 수 없으며, 서울 시민들에게 기억될 만한 공간이 아니라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다. (21쪽)


지금이야 편의점이 뭐가 대수냐고 하겠지만, 당시에는 드라마 주인공들이나 가는 곳을 내가 가도 되나 싶어 괜히 쭈뼛쭈뼛했다. 지금은 흔한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이지만 그때는 식당도 아닌 가게에 그런 게 비치되었다는 게 낯설고 심지어 고급스럽다고 생각해 편의점에 들어가는 걸 부담스럽게 여겼다. (61쪽)


1982년생에게 1980년대의 서울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역사’였다면, 1990년대의 서울은 실제 가 보진 못했더라도 뉴스나 드라마를 통해 익숙한 ‘현재’로 인식되었다. (193쪽)


물론 외재적 핑계만 있지는 않았다. 교사직이 내 적성에 맞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내재적 요인이 여전히 집중을 방해했다. (267쪽)


다무라와 알고 지내던 아주머니의 집을 방문한 우리는 냉커피를 얻어 마시고, 그 집 반려견의 환대를 받았다.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집 안은 깨끗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31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문학책 2023.3.2.

인문책시렁 290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이성과힘

 2000.7.10.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이성과힘, 2000)은 1978년에 ‘문학과지성사’에서 처음 펴내었고, 나중에 조세희 님 아들이 연 펴냄터에서 새롭게 나옵니다. 이 책은 처음 태어나던 무렵부터 늘 꾸준히 사랑받고 읽혔으나, 나라(정부)에서는 되도록 읽히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제가 푸른배움터를 다니던 1989∼1993년에는 빨간책(불온도서)으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배움터(학교)에서 빨간책으로 찍고서 빼앗기까지 했으나, 1993년 가을부터 치르는 새틀(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배움터에서 이 책을 안 읽힐 수가 없으니, 배움터 길잡이가 눈살을 찌푸려도 버젓이 읽고서 동무하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이른바 ‘대학입시를 바라보는 고등학생’이 배워서 외워야 하는 줄거리는 “1970년대 산업화에서 밀려난 도시 빈민의 참상을 우화적으로 그린 조세희의 연작소설”입니다만, 저나 동무들은 이 책에 흐르는 말씨(책에 나오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씨)가 매우 낯설고 ‘잘사는 서울사람스럽다’고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인천 도화동에서 태어나 주안동·신흥동에서 자랐고, 제 동무들은 숭의동·율목동·송림동·송현동·송월동·만석동·화수동·화평동·선린동·신포동·인현동·도원동에 많이 살았는데, 이 책에 나오는 말씨를 아무도 안 썼어요. 줄거리를 헤아리며 “이웃집 누나를 그린 듯하다”고 느끼면서도 어쩐지 많이 낯설었습니다. “이웃집 방직공장 누나”가 아니라 “서울 대학생 누나” 같았달까요.


  그들(지식인·작가·평론가)은 ‘도시 빈민’이란 말을 참 흔하게 쓰지만, 그들 스스로 ‘도시 빈민’인 적이 없었을 테니 그런 말에 스스로 갇힌 채 ‘도시 빈민’을 이웃으로도 동무로도 안 사귀면서 ‘글만 썼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적어도 ‘작은이웃’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그저 수수하게 ‘이웃’이나 ‘마을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산업화에서 밀려난 참상” 같은 말도 너무 허울스러워요. 그곳 그 마을 그 골목에 깃들지 않을 뿐 아니라, 그곳 그 마을 그 골목을 이웃이며 동무로 여기지 않으니 먼발치에서 뜬구름을 잡는 팔짱질로 구경만 하겠지요.


  밖(사회)에서는 하염없이 가난하다(빈민)고 여기며 딱하게 바라볼는지 모르나, 안(마을)에서는 오순도순 도란도란 웃음꽃으로 이야기합니다. 다들 집이 워낙 작으니 이불 한 채를 같이 뒤집어쓰고 등은 좁은 칸에 척 대고서 깔깔깔 하하하 밤을 잊은 채 떠들다가 슬슬 눈을 감고서 뒤엉켜 꿈나라로 갑니다.


  돈이 좀 적거나 없다고 해서, 잘사는 분들이 보기에 한겨울에도 굴을 까며 손가락이 퉁퉁 붓고 얼어붙는다고 해서, 극장도 다방도 갈 일이 없이 문화생활 하나 없이 그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수다를 떠는 저녁일 뿐이라고 해서, 가난한 살림을 불쌍하게 여기면 ‘삶·살림·사랑’을 못 느끼고 못 보지 않을까요?


  가난뱅이를 그리는 글을 쓰는 글바치가 아니라, 인천처럼 쓸쓸한 고장 한켠 골목마을이건, 전남이나 경북이나 충북 같은 자그마한 시골마을 작은집이건, 돈하고도 이름값하고도 힘하고도 아주 머나먼 곳에서 조용히 보금자리를 일구면서 아이랑 나무를 심고 들꽃을 쓰다듬고 별빛을 노래하는 ‘작은이웃’하고 ‘작은동무’로 먼저 오래오래 살고 나서야 붓을 손에 쥐려는 사람이 늘어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ㅅㄴㄹ


학생들이 놀람의 소리를 냈다. 그들은 교단 위에 서 있는 교사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14쪽/뫼비우스의 띠)


그 집 큰딸은 약을 먹었었다. 다행히 빨리 발견해서 살려낼 수 있었다. 의사가 와서 고무줄을 넣어 독약을 씻어내었다. 세무서 조사과 직원과 그의 부인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37쪽/칼날)


난장이와 그의 식구들은 조각마루에 앉아서 저녁식사를 했다. 그들은 말 한마디 없었다. 윤호는 지난 이 년 동안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79쪽/우주 여행)


“할아버지도 난장이였어?” 언젠가 영호가 물었다. 나는 영호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좀 큰 영호는 말했다. “왜 지난일처럼 쉬쉬하는 거야? 변한 것이 없는데 우습지도 않아?” 나는 가만있었다. (88쪽/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어머니는 꼼짝도 않고 앉아 있었다. 먼저 영이에 대해 묻고 영희를 물었다. 어머니는 영희에게 했던 것처럼 영이에에 여자가 가져야 할 가족과 가정에 대한 전통적 의무가 어떤 것인지 이야기하고 싶어했다. 영이가 얼마 동안 고생을 하게 될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영이의 흰 원피스는 그날로 더러워졌다. 영희는 하룻밤 두 낮의 단식과 구호, 그리고 노동자의 노래만 부르면 되었다. (233쪽/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어머니가 웃었다. “그런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아. 아무리 좋은 공장에서 일해도 그렇지.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똑같이 행복해질 수 있겠니?” “약을 쓰면 돼요.” “약이라니?” (299쪽/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고등학교 다니던 무렵(1991-93)부터 

느낌글을 쓰고 싶었으나

막상 2023년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느낌글을

처음으로 썼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