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어두움에 대하여
이난영 지음 / 소동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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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3.3.23.

인문책시렁 297


《나무의 어두움에 대하여》

 이난영

 소동

 2023.3.8.



  《나무의 어두움에 대하여》(이난영, 소동, 2023)를 읽었습니다. 나무라는 숨결한테 ‘어두움’이 있는지 아리송합니다. 풀이건 꽃이건 나무이건 언제나 풀이나 꽃이나 나무입니다. 사람도 그저 사람으로 있을 뿐, 밝거나 어둡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그저 스스로 마음에 어둠을 심으니 어둠으로 하루를 맞이할 뿐입니다.


  모든 씨앗은 어디에서나 싹틉니다. 다만, 사람들이 죽임물(농약)을 뿌리는 데에서는 타죽습니다. 쇳덩이를 몰아대는 길바닥에서는 깔려죽거나 밟혀죽습니다. 잿더미를 쌓는 데에서는 눌려죽습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아무리 잿더미나 길바닥으로 오래도록 짓뭉갠 터라 하더라도 그곳에서 잿더미를 걷어내면 달포는커녕 며칠만 지나도 싹이 터요. 오래오래 짓눌린 땅이라 하더라도 풀싹이며 나무싹은 고요히 기다립니다.


  우리는 풀꽃나무 숨결에 흐르는 ‘고요’를 얼핏 ‘어둠·캄캄(암흑)’으로 잘못 바라보곤 합니다. 우리 스스로 어릴 적에 입은 멍울이나 생채기나 고름을 나이가 들어서도 고스란히 짊어지면서 스스로 어둡게 살아가기도 합니다.


  어릴 적에 배부르게 살거나 넉넉한 살림집을 누렸다면 아무런 멍울이나 생채기나 고름이 없을까요? 삶을 좋음·나쁨으로 갈라도 될까요? 어느 풀씨나 나무씨도 ‘좋은터’를 가리지 않습니다. 모든 풀씨나 나무씨는 스스로 깃드는 어느 곳이나 푸르게 가꾸려는 꿈 하나를 그릴 뿐입니다.


  ‘어둠이란 마음’을 품은 씨앗이라면 서울 한복판 길가에 누가 심어 놓으면 “사람을 미워하”겠지요? 그런데 어떤 풀꽃나무도 서울 한복판 길가에서 자라더라도 사람을 안 미워합니다. 그저 피어나고 돋아나고 자라납니다. 사람들이 끔찍하게 가지치기를 해대거나 아예 밑동을 베어내더라도 풀꽃나무는 사람을 싫어하지 않아요. 오직 사람만 서로서로 미워하고 손가락질하고 등돌리고 따돌립니다.


  풀꽃나무는 이런 ‘밉사람’ 기운을 받아들여서 스스로 죽기도 합니다. 풀꽃나무는 ‘죽임사람’ 기운을 달래거나 풀어내려고 이 죽임빛을 모조리 빨아들여서 스스로 죽기도 하지요. 이때에, 풀꽃나무가 우리 마음속 어둠빛을 녹여내거나 풀어내 줄 적에, 사람들은 뒤늦게 알아차립니다. ‘아, 내가 나무한테 몹쓸짓을 했구나!’ 하고 여기는데, 나무는 아무 걱정을 안 해요. 왜 그럴까요? 왜 나무는 사람들 곁에서 죽임빛을 빨아들여서 죽음길로 가더라도 아무 걱정이 없을까요?


  나무는 겉몸으로는 시들어 흙으로 돌아갈 테지만, 씨앗을 남기거든요. 나무씨는 둘레에 문득 드리워 천천히 싹이 트고 어린나무로 자라서 우람나무에 이릅니다.


  어두운 나무는 없고, 나무에 어둠빛이란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배부른 사람도 없습니다. ‘어떤 삶’을 겪을 수는 있되, 어떤 삶을 겪었더라도 이 삶이 ‘우리 이름’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저 나무 곁에 서기를 바랍니다. 나무를 심고 풀꽃을 지켜볼 수 있는 손바닥만 한 땅뙈기여도 좋으니, ‘마당 있는 집’을 누릴 수 있는 자리에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서울은 땅값이 비싸다면, 서울을 기꺼이 떠나는 이웃님이 되기를 바랍니다. 땅을 사서 집을 누릴 수 있는 데에서 나무를 품고 살아간다면, 나무가 왜 나무이고 나무가 어떻게 사람 곁에서 이바지하는가를 ‘나무빛’으로 받아들이고 배울 만합니다.


ㅅㄴㄹ


왜 뭇 생명들은 강제로 이주를 당하고, 뿌리 뽑히는 삶을 살아야만 할까. (24쪽)


작은 풀벌레 하나가 가느다란 풀잎 뒤에 숨어서 비바람을 피한다. (50쪽)


나무 한 그루가 없어졌을 뿐인데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어두워 보이고 동네는 더 삭막하고 멋이랄 게 없어 보입니다. (74쪽)


내년에는 감자꽃 따지 말아야지. 내년에는 남의 말 듣지 말아야지. (130쪽)


나무 한 그루 없는 곳에서 자란 내가, 나무에 대한 일말의 지식도 추억도 없는 내가, 왜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가 생각해 보았다. (20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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