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페미야? - 젠더 갈등과 세대 갈등의 소통을 위하여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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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3.3.23.

인문책시렁 298


《엄마도 페미야?》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22.8.12.



  《엄마도 페미야?》(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22)를 읽었습니다. 강준만 님은 ‘후벼파기·까기’가 아니라 ‘되새기기·돌아보기·깨닫기’를 하기를 바라면서 ‘이야기’를 펴자는 뜻으로 이 책을 여미었구나 싶습니다. 다만 ‘페미’ 이야기하고 동떨어진 뜬금없는 글 몇 꼭지를 끝자락에 끼워넣은 대목은 아쉽습니다. 책 한 자락을 오롯이 ‘페미’ 이야기로 안 엮은 뜻이 알쏭합니다.


  《엄마도 페미야?》를 읽으면 뒤쪽에 ‘문재인 실패 + 광주 정신’을 짚는 꼭지가 있습니다. 강준만 님은 전북 전주에서 살아가기에 ‘전라도 민낯’을 여러모로 느끼고 지켜보았으며, 이 엇가락(모순)을 고스란히 글로 담아냅니다. 그런데 전라도에서 살아가는 글꾼 가운데 이런 ‘전라도 엇가락 민낯’을 글로 옮기거나 말로 펴는 이는 아예 없다시피 합니다.


  저는 전남 고흥에서 살아가며 전남·북과 광주 민낯을 요모조모 들여다봅니다. 전남과 광주는 언제나 ‘허수아비(거수기·손뼉부대)’를 바라더군요. 들꽃으로 살아가는 작은이가 말할 틈을 내주지 않습니다. 힘·이름·돈을 거머쥔 이들끼리 잔치판을 벌여 스스로 치켜세울 뿐이고, 이런 자리에 ‘들꽃(시민·농어민)’은 손뼉만 쳐야 합니다. 언제나 90% 안팎으로 ‘한놈밀기’만 하는 이 고장에는 참빛(자유·민주)이 없다고 할 만합니다. 새길(대안)이 없어요. 그저 ‘한놈밀기’일 뿐이고, ‘한놈밀기’만 있다 보니, 그 ‘한놈 무리’에 들어가서 ‘돌라먹기’를 하려는 떼거리가 득실거립니다.


  《엄마도 페미야?》라는 책이 짚으려는 ‘엇가락 민낯’이란, ‘참빛(자유·민주)’을 이루고자 땀흘리던 이들이 어느새 힘꾼(권력자)으로 바뀌면서 외려 참빛을 억누르거나 주리를 트는 굴레요, 이 굴레(엇가락 민낯)를 털어내지 않거나 바로보려 하지 않을 적에는 바로 우리 스스로 엉뚱하거나 뜬금없는 ‘다른 힘꾼’이 싹트는 빌미가 될밖에 없다는 뜻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페미니즘은 ‘순이 혼자 살아야 한다’는 길은 아닐 테지요? 페미니즘은 ‘모든 돌이를 짓밟아 죽이자’는 목청은 아닐 테지요? 꼰대·고린틀(가부장권력)을 걷어내자는 길일 테지요? 총칼(전쟁무기)을 걷어내고, 모든 돌이가 싸움터(군대)에 얽매이지 않도록 아름길(평화)을 바라는 목소리일 테지요?


  이 땅은, 돌이만 살아남을 수도 없고, 순이만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돌이만 있거나 순이만 있으면 그냥 다 죽음길입니다. 순이돌이는 어깨동무를 할 노릇입니다. 높낮이(신분·계급·위계·질서)를 모조리 걷어치우고서, 손을 잡고 노래하면서, 오롯이 사랑으로 살림을 짓는 보금자리를 이룰 노릇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일나눔(가사분담)이 아니라, ‘함께 일하고 함께 놀고 함께 노래하고 함께 쉬고 함께 사랑을 속삭여 함께 빛나는 길’일 적에 비로소 아름답고 즐겁게 마련입니다. 사랑은, 살섞기가 아닙니다. 사랑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좋아함이 아니고, 마음끌림도 아닙니다. 사랑은, 한결같이 햇빛이자 숲빛이자 꽃빛인 마음빛으로 함께 살림을 지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지피는 즐거운 길입니다.


  아이들은 ‘페미니즘’이 아닌 ‘사랑’을 듣고 배우면서 품을 줄 알아야 합니다. 어른들은 ‘페미니즘’이 아닌 ‘사랑’을 속삭이고 보여주고 나누면서 물려줄 줄 알아야 합니다. ‘페미니즘’은 안 나쁩니다. 그리고 좋지도 않습니다. 나쁨과 좋음이 아닌, 모든 꼰대·고린틀을 걷어내려고 땀흘린 길이 페미니즘일 뿐입니다.


  꼰대랑 고린틀을 걷어낸 자리에 사랑을 심지 않으면, 그만 또다른 꼰대랑 고린틀이 들어앉고 맙니다. 우리가 스스로 어진 넋이라면 민낯을 들여다보고 말하고 가다듬고 녹여내고 바로잡을 줄 알겠지요. 외곬은 죽음구렁입니다. 새가 왜 두 날개로 날까요? 나비도 벌도 왜 두 날개로 날까요? 암컷과 수컷이 나란히 있는 까닭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말은 ‘암수·어버이·가시버시’처럼 언제나 순이를 앞에 놓고 돌이를 뒤에 놓습니다. 우리 스스로 먼먼 옛날부터 어질게 일구던 어깨동무와 사랑을 되새기면서, 오늘 이곳부터 참빛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ㅅㄴㄹ


변호사 김재련은 중2 아들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털어놓는다. “엄마 페미니스트야? 페미들은 왜 남자를 조롱하고 미워해? 심지어 길에 쓰러진 여자를 도와줘도 성희롱 했다고 고소한다잖아. 엄마도 남자들 싫어해?” (27쪽)


일부 초등학생들은 자기들 사이에서도 “너 페미야?”라는 말을 자주 쓴다는데, 그들이 생각하는 ‘페미’의 의미는 자기가 좋은 것만 하겠다는 ‘얌체’나 ‘거짓말쟁이’라고 한다. 어쩌다 ‘페미’의 의미가 이렇게까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게 된 걸까? 개탄과 분노만 할 게 아니라 이에 대한 성찰부터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29쪽)


물론 조남주의 선의는 이해한다. 사회적 약자를 옹호하는 글을 쓰는 사람들은 독자들의 공감과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그 약자를 비참하게 보이게 하려고 애를 쓰는 법이니까 말이다. 나 역시도 그런 식의 글을 많이 써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피해 서사’의 한계를 절감하게 되었다. (80쪽)


여성과 페미니즘에 대한 발언도 마찬가지다. 일단 남자는 말하지 않는 게 좋다. 비판도 안 되고 제언도 안 된다. 무슨 말을 하건 몹쓸 ‘맨스플레인’이 되니까 말이다. 그냥 지지의 뜻만 밝히거나 박수만 쳐야 한다. (84쪽)


나는 그분들께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다. “광주에서 성역이 없는 내부 비판의 자유는 보장되고 있나요? 다른 의견에 대한 관용의 문화가 살아 있나요? 지난 대선에서 특정 정당 후보에게 84.4퍼센트의 표를 몰아준 ‘몰표의 전통’을 계속 지켜나가는 게 ‘광주 정신’일까요? 문재인 정권이 어이없는 실정을 저질렀을 때엔 여론조사를 통해서나마 따끔한 회초리를 들어 성찰과 자기 교정을 압박했어야 하지 않나요? 어떤 일이 벌어지건 문재인 정권에 맹목적 지지를 보낸 게 정녕 잘한 일이었을까요?” (16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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