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으로 이룬 골목
책방으로 이룬 골목에 들어서면 여기를 보아도 책방이고 저기를 보아도 책방입니다. 책방골목에 책물결이 흐릅니다. 어느 책방에 깃들어도 책내음이 가득 번집니다. 이곳에서는 책 한 권을 만날 수 있고, 저곳에서는 책 열 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읽을 책을 손에 쥘 수 있고, 앞으로 보름이나 한 달쯤 넉넉히 즐길 만한 책을 가슴 가득 안을 수 있습니다. 날마다 책방골목으로 찾아가서 바지런히 온갖 책을 그러모을 수 있습니다. 책은 바로 오늘 이곳에서 읽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꾸준히 읽을 테니까요. 오늘 읽을 책과 함께 먼 모레에 느긋하게 읽을 책을 알뜰살뜰 장만합니다. 새로 나오는 책도 장만하고, 판이 끊어져서 새책방에서는 자취를 감춘 책도 장만합니다.
작은 책방에서는 책꽂이 앞에 서서 가만히 책을 바라봅니다. 큰 책방에서는 골마루를 천천히 거닐면서 책을 바라봅니다. 작은 책방에서 작은 책꽂이에 알차게 간추려서 꽂은 책을 바라봅니다. 큰 책장에서 너른 책꽂이에 넉넉하게 건사한 책을 바라봅니다. 어느 책이든 내 눈길을 사로잡으면서 내 마음길을 따사로이 비추어 줍니다. 4348.3.29.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헌책방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