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일이 5 - 불꽃이 되어
최호철 그림, 박태옥 글, 고래가그랬어 편집부 / 돌베개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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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62



평화시장에서 바라던 평화

― 태일이 5

 박태옥 글

 최호철 그림

 돌베개 펴냄, 2009.2.23.



  1970년에 노동자 한 사람이 몸에 불을 붙여서 스스로 죽었습니다. 그런데. 스물두 살 앳된 젊은이가 불길에 휩싸여 죽기 앞서 훨씬 앳된 노동자가 수없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역사책에는 이들 이름이나 숫자가 적혔을까요. 통계청 자료에는 이들 이름이나 숫자가 남았을까요.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이들 이름이나 숫자를 다룬 적이 있을까요.


  1970년대에 사회부 기자를 하던 어느 기자는 1970년에 ‘터진’ 일을 취재하면서 ‘특종’을 노린 이야기를 이녁이 쓴 책에서 밝힌 적이 있습니다. 이이는 그무렵에 ‘전태일 분신자살 후속보도 특종’을 내려고 온갖 짓을 일삼습니다. 신문사 부장이라는 사람은 ‘죽은 노동자가 남긴 일기장’을 찾아서 가져오라며 큰소리를 쳤다 하고, 사회부 기자는 병원과 전태일 식구가 살던 집 언저리를 빙글빙글 돌다가 드디어 찾아내고는 몰래 빼돌려서 신문사로 가져와서 특종으로 신문에 실었다고 합니다. 그 뒤, 전태일 일기장을 이소선 님한테 돌려주었을까요? 아무렴, 돌려주었으니, 만화책 《태일이》도 나오고, 이에 앞서 여러 가지 책도 나왔겠지요(그러나 전태일 님이 남긴 일기를 몰래 빼돌린 조선일보 기자는 일기장을 곱게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이 일기장은 노동청으로 넘어갔고, 이소선 님이 노동청하고 싸운 끝에 겨우 돌려받았지만, 열 장 남짓 찢긴 채 돌려받았다고 합니다).


  이 얘기는 1977년에 나온 《사회부 기자》(이상현 글,문리사 펴냄)라는 책에 38∼81쪽에 걸쳐 나옵니다. 전태일 님 일기를 빼돌린 기자는 조선일보 기자였고, 이를 기사로 내어 크게 터뜨립니다. 그런데,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였던 이상현 님은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그에게 일기 같은 게 있을 것인가 말이다(41쪽).” 하고 생각합니다. 이이는 이런 말을 서슴지 않고 씁니다. 아무래도 1970년대라는 흐름이라면, ‘배운 이’가 ‘못 배운 이’를 깔보는 마음이 아주 마땅하다는듯이 퍼졌을 테며, ‘신문기자라는 권력자’와 ‘노동자라는 기계 부속품’ 사이는 하늘과 땅처럼 벌어졌을 테니, 이런 말이 나올 만하겠구나(?) 싶습니다. 참으로 배짱이 두둑한(?) 조선일보 기자라고 할까요.



- ‘그때 장사광주리를 이고 떠나는 만원버스를 타려고 안간힘을 쓰는 아주머니를 보았어. 결국 놓쳤지만! 그 모습을 보고 다들 웃는데 난 웃을 수가 없었어. 삶에 정직하고 충실한 사람이 생존경쟁에 나서는 그 모습을 보고 어떻게 웃을 수 있겠어? 어머니가 떠올랐지.’ (17쪽)





  박태옥 님이 글을 엮고 최호철 님이 그림을 빚은 《태일이》(돌베개,2009) 다섯째 권을 천천히 읽으며 생각합니다. 만화책이 아닌 영화에서도, 또 전태일 평전에서도, 이소선 님이 들려주는 이녁 아이 이야기에서도, 전태일 님은 늘 한 가지를 바랐습니다. ‘평화시장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랐어요. 널리 알려졌다시피, 전태일 님은 ‘대학생 동무 한 사람’만이라도 있기를 바라기도 했어요. 혼자서 근로기준법을 살펴서 배우자니 너무 힘들었고, 막히는 대목에서 물어 볼 사람이 없었습니다. 1960∼70년대라고 해서 대학생이 없었겠느냐 싶지만, 평화시장 노동자한테 동무가 되어 준 대학생은 그야말로 없었지 싶어요.


  그러면, 오늘날에는 어떤 대학생 동무가 있을까 궁금합니다. 가난하거나 여린 사람들 곁에 대학생이 동무가 되어 있을까요? 늙은 할매와 할배만 가득한 시골마을에 젊은 대학생이 동무가 되어 함께 땀을 흘리거나 흙밥을 먹을까요?


  요새는 ‘농촌봉사활동’조차 거의 안 보이지 싶습니다. 우리 식구가 전남 고흥에서 네 해째 지내는데, 이동안 ‘서울에서건 전라도에서건 대학생이 농활을 온 모습’을 아직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고흥에서 나고 자란 뒤 서울로 대학생이 되어 떠난 젊은이 가운데, 봄가을이나 여름겨울에 시골로 돌아와서 일손을 거드는 젊은이는 얼마나 되는지도 궁금합니다. 도시에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된 뒤에, 아이를 낳은 뒤에, 시골로 돌아와서 들일을 함께하는 젊은이는 얼마나 되는지도 궁금합니다.



- ‘함께 일하지만 서로에게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인 거야. 인간이라기보다는 일만 하는 기계 같은 존재 아닌가? 기계, 기계에는 영혼이 없어. 그러면 우린 뭐지? 영혼이 없는 인간? 인간의 탈을 쓴 기계? 그러다 고장이라도 나면 아주 쉽게 내다 버리겠지. 고장 난 기계처럼 말이야.’ (23쪽)

- “태일 군이 약자를 생각하는 마음은 뭐라 하지 않겠지만 너무 세상을 비판적이고 삐딱하게 보는 것 같네.” “삐딱한 게 아니라 전 세상이 적어도 법대로, 상식대로 굴러가길 원할 뿐입니다. 근로기준법을 모든 공장에서 지키는 것처럼 말이죠.” … “세상은 때론 어쩔 수 없이 큰일을 위해 작은 것은 희생될 때가 있다네.” “희생이요? 작은 것들이요? 자신이 원하는 희생이야 그럴 수도 있지만 강요된 희생이 싫을 땐 어쩝니까? 전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제겐 신앙은 평화시장 어린 여공들의 행복입니다.” (68∼69쪽)






  늦여름에 비가 내립니다. 늦여름에 여러 날 비가 그치지 않습니다. 일찌감치 이삭이 패어 고개를 숙인 나락이 있지만, 아직 꽃대가 오르지 않은 나락이 많고, 이제 막 꽃대가 올라 이삭이 패려는 나락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요즈음은 비가 와서는 안 되는 날씨라고 할 수 있어요. 해가 쨍쨍 내리쬐어 나락이 고소하게 영글도록 보듬어야 하는 날씨입니다.


  비가 오는 날, 도시사람은 무엇을 생각할까요. 늦여름에 내리는 비를 놓고, 도시사람은 무엇을 생각할까요. 이삭이 팰 즈음에 내리는 비가 벼한테 얼마나 나쁠는지 헤아리는 도시사람은, 그러니까 ‘도시에서 살며 시골을 이웃으로 여기는 사람’은 얼마쯤 될까요.



- “돈이 있으면서도 줄 돈을 안 주는 심보는 또 뭐야? 부려 먹을 땐 언제고.” “밀린 돈 못 받고 그만두면 돈 떼이는 게 여기 전통인가 했는데 오늘 정말 통쾌하다.” … “역시 뭉치면 안 되는 일이 없어. 전태일 회장의 밀린 임금도 받아 내고!” “사장들도 그걸 무서워하는 거라고. 우리가 똑똑해지고 뭉치는 거.” (108쪽)

- ‘기침 소리는 언제나 내 가슴을 찌른다. 지금도 많은 여공들이 병들어 죽어 가고 있는데. 이런 현실을 세상에 알려야 바꿀 수 있을 텐데. 그게 내가 할 일이야. 세상에 평화시장의 현실을 알리고 고치는 일! 내가 해야 할 일!’ (163쪽)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알지 못합니다. 알지 못하니 느끼지 못합니다. 느끼지 못하니 어깨동무를 하지 못합니다. 어깨동무를 하지 못하니, 참다우면서 착하고 아름다운 길로 함께 나아가지 못합니다. 참다우면서 착하고 아름다운 길로 함께 나아가지 못하니, 이 땅에 사랑이나 평화가 깃들지 못합니다.


  슬기롭게 생각할 일입니다. 따사롭게 바라볼 일입니다. 즐겁게 노래할 일입니다. 서로 손을 맞잡으면서 함께 춤추고 노래할 신나는 삶터를 꿈꿀 일입니다.


  평화시장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란 전태일 님은 평화시장만 잘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재단사로 일하면서 평화시장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랄 뿐 아니라, 막일을 하면서 막일판에서 몸을 쓰는 이웃들한테도 평화가 깃들기를 바랍니다. 돈을 놓고 돈을 먹는 사람들한테도 돈에만 얽매여 스스로 이녁 삶을 놓치거나 모르쇠하는 슬픈 굴레에 갇히지 않기를 바랍니다. 평화시장에서 봉제공장을 꾸리는 사장이 노동자 일삯을 떼먹거나 마구 부려먹는다면, 노동자만 고단하지 않아요. 사람을 마구 부리면서 괴롭히는 사람 스스로 마음이 낡습니다. 낡은 마음으로는 삶을 아름답게 가꾸지 못합니다. 낡은 마음으로는 이웃과 사랑을 나누지 못해요.



- 태일은 경쟁보다는 우애를, 가지는 것보다는 나누는 것을, 남들이 원하는 것보다 자신이 되고자 하는 무엇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우리 모두의 친구였다! (198쪽)





  1970년 11월 13일까지, 독재권력인 대통령을 비롯해서 경찰과 군대 모두 노동자 삶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신문사 기자와 방송국 피디도 노동자 삶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러면, 글을 쓰는 사람이나 사진을 찍는 사람이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노동자 삶을 얼마나 돌아보았을까요. 예배당 목사와 신부는 노동자 삶을 얼마나 살폈을까요.


  1970년에서 마흔 해가 훌쩍 지나간 오늘날에는 대통령을 비롯해 이곳과 저곳에 있는 사람들이 노동자 삶을 얼마나 살필까요. 그리고,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들 삶을 얼마쯤 헤아릴까요. 덧붙여, 아이들이 입시지옥에서 골골거리는데, 이러한 틀을 깨부수려고 하는 사람은 얼마쯤 있을까요. 멈추지 않는 핵발전소와 물질문명을 멈추도록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요.


  예전처럼, 그러니까 1970년처럼, 오늘 우리는 서로 외롭지는 않다고 느낍니다. 다만, 외롭지는 않을 뿐입니다. 외롭지 않은 데에서 끝나지 않기를 바라요. 어깨동무를 하기를 바라요. 공장은 사장한테 남기고, 정치권력은 대통령한테 넘기고, 대학교는 교수들한테 남기고, 모든 발전소와 물질문명은 부자들한테 넘긴 뒤, 다 같이 도시를 떠날 수 있기를 바라요. 우리 스스로 삶을 스스로 짓고,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마련할 때에, 비로소 이 땅에 평화가 찾아올 수 있다고 느낍니다. 4347.8.2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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