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만한 책은 언젠가 읽는다

 


  책을 잔뜩 사들이기만 하고 제대로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달리 생각한다. 책은 언제나 사야 할 때가 있다. 예나 이제나 모든 책이 언제나 새책방 책시렁에 놓이지는 않는다. 또한, 모든 책은 헌책이 되어 헌책방으로 들어오지만, 헌책방에 들어오는 책이 오랫동안 책시렁에서 조용히 잠들기만 하지 않는다. 새책이든 헌책이든 바로 오늘 아니라면 장만할 수 없다. ‘책을 읽을 때’처럼 ‘책을 살 때’가 있다. 새책방에서 사라진 뒤 땅을 치면 무엇하겠는가. 새책방에서 사라진 책이 헌책방에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오래 기다리고 싶은가.


  ‘책을 읽어야 할 때’는 어느 책 하나에 마음이 꽂힐 때이다. 그리고, 어느 책 하나를 손에 쥐어 읽으면서 ‘줄거리 훑기’가 아닌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를 할 수 있는 때이다.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줄거리만 훑으려 하면, 책이 얼마나 서운해 할까.


  읽어치운다고 해서 책읽기가 되지 않는다. 책읽기는 ‘빨리 읽기’도 ‘천천히 읽기’도 아니다. 책읽기는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삶을 스스로 헤아리면서 ‘마음으로 읽기’이다. 그러니까, 책을 잔뜩 사들이기만 하고 정작 제대로 못 읽는다고 한다면, ‘책을 사야 할 때’는 잘 알아채거나 느껴서 이럭저럭 갖추지만, ‘책을 읽어야 할 때’는 아직 멀었다는 뜻이다. 책을 읽을 만한 눈높이와 마음가짐이 될 때까지 이 책들을 알뜰살뜰 모시면서 흐뭇하게 바라보면 된다.


  애써 목돈 들여 사들인 책을 제때 못 읽는다고 뉘우칠 까닭은 없다. ‘제때’가 아직 오지 않았을 뿐이다. ‘제때’, 그러니까 ‘책을 가장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받아들여서 읽을 마한 때’가 오기까지 찬찬히 내 마음을 갈고닦으면 된다. 날마다 내 삶을 새롭게 일구면서 언제나 즐겁게 웃으면 된다. 스스로 삶을 다스리는 동안 어느 날 어느 곳 어느 때에 어느 책을 손에 쥐면서 고운 빛이 가슴속으로 스며드는가를 시나브로 깨달을 수 있다. 4346.12.3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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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3-12-31 10:03   좋아요 0 | URL
장만한 책은 언젠간 읽는다. 저의 신조예요. ^^
그러니 아깝지 않아요.

숲노래 2013-12-31 11:05   좋아요 0 | URL
새해에도 즐겁게
책을 장만하고 읽으면서
아름답게 누리셔요~~~

transient-guest 2013-12-31 10:32   좋아요 0 | URL
저 역시 자주 경험하곤 하는 일입니다. 어느 날, 그 책과 딱 맞아떨어지는 날이 있고, 그 날과 책이 만나면 사놓고 읽지 못한 책을 읽게 되는 것 같아요. 어느 한 때 잠깐 읽다가 흥미가 떨어져서 꽂아놓은 책이 다른 날 우연히 보았을때 너무 재미있게 보이는 때가 종종 있더라구요.ㅎ

숲노래 2013-12-31 11:05   좋아요 0 | URL
누구나 언제나 스스로 새롭게 거듭나요.
그러니 예전에는 잘 몰랐던 책을
나중에 깊이 깨닫곤 하는구나 싶어요.
참 재미나다고 할까요. 즐겁다고 할까요~~

appletreeje 2013-12-31 10:52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정작 제대로 못 읽는다고 한다면, '책을 사야 할 때'는 잘 알아채거나 느껴서 이럭저럭 갖추지만, '책을 읽어야 할 때'는 아직 멀었다는 뜻이다. 책을 읽을만한 눈높이와 마음가짐이 될 때까지 이 책들을 알뜰살뜰 모시면서 흐믓하게 바라보면 된다.'-
무척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정말 책은, 저마다의 책마다 다 읽어야 '제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곱게 기다리다..오늘 아침, 제게 찾아온 책을
기쁜 마음으로 읽습니다~*^^*


숲노래 2013-12-31 11:06   좋아요 0 | URL
언제나 제때를 즐겁게 누리면서
오늘 하루를 신나게 보내면
책도 사람도 이야기도 햇볕도 바람도
모두 아름답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희망찬샘 2014-01-01 06:37   좋아요 0 | URL
좋네요. 이 말.
앞으로는 언제 읽노, 언제 읽노... 라는 말 조금 줄여 보렵니다.
책과의 인연~ 그런 거 있더라고요.
지금은 어려웠지만, 또 언젠가는 쉽게 와 닿는 책도 있고요. ^^

숲노래 2014-01-01 08:31   좋아요 0 | URL
이 글에는 따로 안 썼지만,
내가 못 읽는 책은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읽어 주면 되기도 해요.

아이들이 큰 뒤에는
책방이나 도서관에 없을 책이
아주 많을 테니까요 ^^

saint236 2014-01-01 19:04   좋아요 0 | URL
예전에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느낀 것은 사고 싶은 책은 빚을 내서라도 사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책이 절판되기도 하고, 표지만 바뀌어서 가격을 올려받기도 하고요. 이런 일을 겪다보니 책을 사모으게 되고, 그렇게 사모은 책들은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꾸준히 읽어나가고 있지요. 다만 책 사는 속도를 읽는 속도가 못따라가는 것이 아쉬움이지만요...

숲노래 2014-01-01 20:19   좋아요 0 | URL
나중에는 '읽을 책'이 모자랄 날을 맞이하시리라 생각해요.
지구별 모든 책을 다 읽을 일은 없거든요.

아무튼, 아름다운 책들을 우리들이 즐겁게 알아보면
그 책들 숨결이 한결 오래도록 퍼지면서
우리 이웃들도 기쁘게 누리리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