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다리

 


  어릴 적 배운 옛말 가운데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가 있다. 이 옛말을 배우던 어린 날,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 살았다. 아마 국민학생이었을 텐데, 국어 수업을 하는 담임교사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번쩍 손을 들고는, “선생님, 우리 동네에는 돌다리가 없는데 어떻게 돌다리를 두들기지요?” 하고 여쭈었다. 참말 도시에는 돌로 지은 다리가 없다. 돌다리가 남아날 수 없으리라.


  담임교사는 나한테 꿀밤을 베풀어 준다. 썰렁하게 웃자고 하는 소리를 뜬금없이 터뜨리니 꿀밤을 주셨으리라. 그 뒤, ‘다리’를 보면 ‘돌다리’가 생각나고, 이 나라 어디에서 돌다리를 구경할 수 있는지 찾아보곤 한다. 그러나, 막상 돌다리는 거의 못 본다. 나무를 가로질러 건너도록 하는 나무다리는 곧잘 보지만, 또 징검다리도 드물게 보지만, 돌다리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에서 성수다리 무너진 적 있다. 서울에서 무슨 백화점 무너진 적 있다. 참으로 알쏭달쏭한 일들이 쉽게 일어나곤 한다. 그러고 보면,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 아닌 ‘시멘트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로 고쳐서 얘기해야 할 오늘날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나라 어디에 돌다리가 있단 말인가.


  고흥 해창 들판을 자전거로 한참 헤매며 달리는 동안 ‘시멘트다리’를 곳곳에서 본다. 1960년대에 뻘밭을 메꿔 들판으로 바꾼 이곳에 있는 ‘시멘트다리’라면 1960년대에 놓은 다리일까? 뼈대도 몸통도 난간도 모두 시멘트로 이루어진 해창만 ‘시멘트다리’는 햇볕과 빗물에 삭아 바스라진다. 이 시멘트다리는 머잖아 무너질 듯하다. 자전거로 해창 들판 시멘트다리를 건너다가 문득 생각한다. 이 시멘트다리야말로, 건널 적마다 잘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하지 않을까. 아니, 자칫 이 시멘트다리 두들겼다가 와르르 무너져 오도 가도 못하지 않을까. 살몃살몃 아무 일 없는 듯이 조용히 지나다녀야 하지 않을까.


  돌을 쌓아 놓는 다리는 백 해 이백 해뿐 아니라 천 해까지 갈 수 있다고도 들었다. 그러면 시멘트로 놓는 다리는 몇 해쯤 갈 수 있을까. 오늘날 이 나라 곳곳에 쇠붙이와 시멘트를 써서 놓은 다리는 앞으로 몇 해쯤 버틸 수 있을까. 백 해가 지나도 시멘트다리는 튼튼할까? 이백 해가 지나도 시멘트다리는 멀쩡할까? 설마 백 해 되는 해마다 옛 다리를 허물고 새 다리를 놓아야 하지는 않겠지? 4346.9.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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