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일 내가 차리는 책읽기
두 아이를 함께 낳은 옆지기랑 살아오고 난 다음부터 내 생일을 챙긴다. 나는 예전에 내 생일을 챙기며 살지 않았다. 오랜 술동무들하고 날마다 만나 술을 마시던 퍽 먼 옛날이나, 이 술동무하고 한 주에 한두 차례 만나 술을 마시던 모두들 짝꿍 없이 혼자 살던 조금 먼 옛날이나, 내가 서울과 충청도를 오가며 일하던 살짝 가까운 옛날이나, 내 생일이라 해서 딱히 슬프게 보낸다든지 외롭게 지낸 적은 없다. 언제나처럼 내 할 일을 하면서 바쁘게 지내며 한 해 마무리를 했다.
좋은 살림을 이루어 옆지기하고 지낸 다음, 비로소 서로서로 어머니와 아버지 생일을 챙겨야 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돌이키면, 나는 내 어머니와 아버지 태어나신 날 제대로 전화라도 한 적이 많지 않았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는 속으로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나중에 옆지기와 아이하고 아버지 생일 때에 찾아가며 ‘아버지가 그동안 얼마나 마음으로 섭섭해 했는가’를 아주 잘 느꼈다. 겉으로 드러내어 말씀하지는 않으셨으나, 마음으로는 오래도록 기다리며 바라신 줄을 느즈막하게 깨우쳤다.
나도 내 아버지 나이쯤 된다면, 내 아이들이 이 시골마을에서 함께 살아가지 않고 모두 제금나서 살아간다면, 그때에 나는 내가 태어난 날 아이들이 “아버지, 귀빠진 날 축하해요, 사랑해요.” 하고 전화라도 걸어 주기를 바라려나. 미리 못박으면 안 될 노릇이지만, 나는 굳이 내 생일이라서 전화로 이야기꽃 건네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애써 전화하지 않더라도 마음으로 따사로운 넋을 건네는 줄 잘 느끼며 살아가니까. 다만, 아이들 태어난 날이나 옆지기 태어난 날에 내가 미역국부터 밥상을 새삼스레 차렸듯(나는 날마다 식구들 밥상을 차리니까, 생일날에는 조금 새삼스레 차리는 밥상이 된다), 우리 아이들이 한창 큰 나이가 되어 제금나서 살더라도 아이들 태어난 날 기쁘게 찾아가서 미역국 끓여 주고 싶다.
내 생일이라고 내 손으로 미역국을 끓이지는 않는다. 다만, 내 생일을 기리는 뜻이 아니라, 집에서 밥을 하며 미역국을 퍽 자주 끓이니까, 옆지기랑 아이들 몸을 살찌우는 밥으로 미역국을 끓인다. 오늘 내 생일 12월 7일, 모처럼 서울 볼일을 마치고 고흥읍을 거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라 ‘음, 그럼 오늘은 케익을 한번 사 볼까?’ 하고 생각한다. 옆지기는 요즈음 마음껏 푸른 멧골을 밟으면서 몸을 북돋우지 못하는 터라, 몸이 힘들고 처져서 케익을 굽지 못한다. 나는 빵집 케익보다 옆지기 케익이 아주 맛나다. 옆지기가 집에서 스텐냄비로 굽는 케익을 먹으면, 바깥에서 사먹는 빵집 케익을 먹을 수 없다. 맛이 얼마나 크게 다른데. 만화책 《맛있는 빵을 드세요!》에 나오는 아줌마가 집에서 ‘제빵기’로 빵을 처음 구워 먹을 때에 ‘참말 이토록 빵이 맛있던가!’ 하고 놀라듯, 오븐 없어 스텐냄비에 불 작게 넣어 굽는 케익을 먹으면, 냄새부터 다르고 맛이 참으로 좋다. 오븐으로 굽는다면 집빵 맛은 얼마나 훌륭할까. 더구나, 케익에 쓰는 설탕은 ‘오키나와 사탕수수 졸인 물’이 아닌가. 케익 반죽을 하며 쓰는 물은 맑고 정갈한 시골물이잖은가.
옆지기 어머님은 당신 생일날 누가 미역국을 끓이거나 밥을 차려 줄까. 옆지기 어머님하고 일산에서 아직 함께 사는 둘째 딸이 끓여 줄까. 아직 퍽 어린 중학생 아들이 끓여 줄까. 장인 어른이 끓여 줄까.
내 어머니는 당신 생일날 누가 미역국을 끓이거나 밥을 차려 줄까. 내 아버지가 끓여 줄까. 그러고 보면, 내 어머니와 아버지 태어나신 날에 내가 기쁘게 찾아가 미역국 끓여서 차린 일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언제쯤 내 어머니와 아버지 태어나신 날에 미역국을 끓여서 밥 한 그릇 모실 수 있을까. 둘째가 무럭무럭 자라 네 식구 함께 마실을 할 수 있는 때가 되면, 고흥 바다에서 건진 미역을 챙겨 찾아가서 미역국 끓여 올리고 싶다. 내가 이렇게 네 식구 살림을 이루어 시골마을에서 좋은 꿈을 꾸며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랑씨앗 베푼 어머니와 아버지가 참으로 고맙다고 새삼스레 마음글월을 띄운다. 따뜻한 남녘 시골 밤이다. (4344.12.7.물.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