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가까이 없는
시골로 깃드는 사람만큼 시골을 등지는 사람이 있다. 안 살던 사람은 그리워한다. 살던 사람은 괴로워한다. 서울을 벗어나고 싶던 사람은 또다른 담벼락에 쓸쓸해서 떠난다. 꿋꿋이 맞서다가 더 두메로 숨어드는 분이 있다.
시골에도 책읽는 사람이 있되 매우 드물다. 어느 모로 보면 “시골은 책 안 읽는 곳”이요, “이웃과 동무가 새로 일군 열매”를 받아들여서 배우려는 마음이 터무니없도록 얕다고 할 만하다. 서울이라서 책을 더 읽지는 않는다만, 서울과 부산과 제주와 경기는 마을책집이 꾸준히 싹튼다. 시골에 매우 드물게 책집이 싹트지만, 시골사람이 아닌 먼먼 서울사람이 찾아간다.
책읽기는 안 해도 ‘테레비’에 기대던 시골사람인데, 이제는 ‘유튜브’에 기댄다. 그런데 이분들은 테레비도 유튜브도 여태껏 보던 대로만 본다. ‘다른 목소리’는커녕 ‘새로운 목소리’에 아주 귀를 닫는다. ‘살림소리’나 ‘들숲소리’나 ‘사람소리’나 ‘사랑소리’에는 오히려 귀를 안 열고 눈을 안 뜨는 시골사람 매무새를 숱하게 지켜본다.
오른쪽에 선다면 왼목소리를 들을 노릇이다. 왼쪽에 선다면 오른목소리를 들을 노릇이다. 그동안 책은 왼오른을 아우르거나 넘어서면서 “우리별에서 우리가 우리집을 일구는 울력”을 베풀고 선보였다. 여태까지 온갖 책은 “이 파란별(푸른별)에서 다 다른 너와 나를 느끼고 만나고 어울리면서 짓는 살림과 사랑”을 풀어놓고 그려냈다. 그러니까 책읽기란, ‘온목소리’를 듣고 새기고 나누면서, 서로 ‘온사람’으로 서는 즐거운 마실길이다. 다 다르기에 다같이 ‘파란길’과 ‘푸른숲’을 가꾸려는 노래길이면서 놀이길에 일꽃길이라고 느낀다.
시골에는 가까이 없는 책집이니까, 시골에서 살림짓는 사람으로서 “시골하고 먼 서울·큰고장”으로 책집을 찾아간다. 서울·큰고장에 다다르면, 마을에 살포시 깃드는 작은책집으로 걸어간다. 새벽길부터 나선다. 논둑길을 지나서 옆마을에 닿는다. 첫 시골버스를 타고서 읍내로 간다. 시골은 버스나루도 가까이에 없다. 그래서 사뿐사뿐 논둑길을 거닐며 하늘바라기를 하는 두다리는 ‘다리꽃’을 이룬다.
가까이에 있는 들녘 모시꽃을 쓰다듬는다. 가까이를 날아가는 멧비둘기와 물까치를 바라본다. 아직 논에는 흰새가 날아앉는다. 부들꽃도 피었다. 차조기도 나란히 꽃을 피운다. 달개비 파란꽃에 돌콩꽃도 줄줄이 오른다. 가까이 있는 파란바람을 온몸에 안는다. 가까이 없는 마을책집과 골목책숲을 헤아린다. 가까이 있는 빗방울과 이슬방울과 눈물방울을 돌아본다. 가까이 없는 꽃씨와 숲씨와 풀씨를 곱씹으면서 말씨를 품는다. 2025.9.19.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