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45분, 나의 그림 산책 - 혼자 있는 시간의 그림 읽기
이동섭 지음 / 홍익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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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야행성이어서 대학교에 간 이후에는 새벽에 깨어 있는 시간이 많았다. 특히 한창때는 

새벽시간에 공부하고 아침부터 자는 소위 올빼미 생활을 많이 했는데 직장에 다니면서 그런 생활과는

점점 멀어졌고 나이가 조금씩 들수록 새벽 1시를 넘을 때까지 깨어 있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

제목에 등장하는 새벽 1시 45분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나의 막막하던 20대 시절 라디오를

들으며 공부하던 모습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사실 이 책을 보게 된 건 제목의 앞부분에 의미를 둔 건

아니고 뒷부분의 그림 산책에 관심이 가서인데 예상 외로 저자의 일상적인 에세이 성격의 책이었다.

 

저자의 신변잡기적인 넋두리와 함께 중간중간에 관련한 그림과 화가들 얘기가 곁들여지는 형식인데

공감이 가는 부분들도 있었고 왠지 자기계발서적인 느낌의 조금은 뜬금없는 부분들도 없진 않았다.

제목에 사용된 새벽 1시 45분은 내 안의 어린이와 만나는 시간이라고 얘기하는데 이 책에서 전반적으로

혼자서 보내는 일상과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는 과정에 방점을 찍고 있는 듯 싶었다. 달력에 평일이

까만색인 건 일하는 날이니까 사람들 마음이 까마져서이고, 일요일이 빨간 색인 건 노는 날이라

마음이 불타서라는 아재 개그식 유머도 있고, 라틴어에서 진실의 반대말이 거짓이 아닌 망각이란

사실에서 늦음의 반대말이 빠름이 아닌 간절이 아닐까 유추하기도 하며, 흔히 하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에 죽도록 하기 싫은 일도 즐길 수 있는 비법을 구체적으로 밝혀주라면서 즐길 수 없다면

재빨리 피하자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대답을 들려주기도 한다. 중간중간에 그림과 관련한 얘기들이

등장하면 그림을 감상하면서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볼 수 있었는데 작년 독일 뮌헨

노이에 피나코테크에서 직접 본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를 비롯해 친숙한 그림들은 물론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나는 그림들도 적지 않았다. 저자 개인적인 얘기들이나 감상이 많이 담겨 있어

마치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얘기를 나누는 듯한 느낌도 들었는데 다양한 그림들을 만나면서 혼자

있는 고요한 새벽 시간에 맛볼 수 있는 진정한 자아와의 대화를 나누는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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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 - 소외된 영혼을 위한 해방의 노래, 라틴아메리카 문학 서가명강 시리즈 7
김현균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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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는 우리와는 거리도 멀고 문화적으로 멀어 여전히 낯선 미지의 대륙이라고 할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축구일 정도로 그들에 대해 잘 모르고 관심도 적은

사실인데 그나마 최근에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가로는 '연금술사' 등의 파울로 코엘료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내가 읽은 작품들을 꼽으라 하면 마술적 사실주의라 불리는 보르헤스의

'픽션들'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정도를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대표작으로 들 수

있겠는데 이 책에선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네 명의 시인을 중심으로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들만의 특유의 정서를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루벤 다리오, 파블로 네루다, 세사르 바예호, 니카노르 파라 중 그나마 파블로

네루다는 이름만은 친숙한데 예전에 봤던 영화 '일 포스티노'가 그의 망명생활의 모습을 그리고

있어 조금은 낯설음을 덜해 주었다. 사실 소설에 비해 시는 잘 와닿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그리

친하게 지내지 않다 보니 서양의 시인들은 이름만 알 뿐 작품을 아는 경우가 드문데 당연히 그들보다도

더 소외된 라틴아메리카 시인들의 존재나 작품을 안다는 건 기대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네 명의 시인은 라틴아메리카 문단에서 모두 앞 세대와 의미 있는 단절을 가져옴으로써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어서 저자가 선정한 것 같은데 모데르니스모에서 출발해

포스모데르니스모, 아방가르드, 포스아방가르드로 이어지는 역사는 결국 끝없는 부정의 역사로 저자는 '존속 살해의 역사'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구분을 쉽게 이해할 순 없지만 말 그대로 당대의

주류와는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함으로써 정체되지 않은 발전적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왔다는

게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끈질길 생명력이 아닌가 싶다. 시와 산문의 차이에 대해 청나라 문인

오차오는 밥 짓기와 술 빚기에 비유했는데, 쌀로 밥을 지으면 쌀의 형태가 그대로 남지만 술을 빚으면

쌀은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새로운 맛과 향기가 생겨나니 절묘한 비유라 할 수 있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니카노르 파라는 '움직이는 모든 것은 시고, 변하지 않는 모든 것은 산문'이라고 했는데

같은 취지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첫 테이프를 끊는 루벤 다리오는 스페인어권 문학의 황태자이자 근대시의 선구자, 스페인어의

혁명가라는 화려한 수식어로 등장하는데 니카라과 출신의 그는 오히려 칠레에서 그의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를 발행할 정도로 라틴아메리카를 넘어서 스페인어권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모데

르니스모의 대표 시인이라 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파블로 네루다는 상대적으로 친숙한 작가일 뿐만 아니라 노벨상 수상 등 훨씬 대중적 명성을 가진 인물인 데다 칠레의 정치인이기도

해서 더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잘 나가는 예술가 특유의 여성편력까지 대다수의 가난한

예술가들과는 사뭇 다른 화려한 삶을 살았는데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라는

그의 시집 제목도 들어본 듯해 친숙하지만 스탈린을 지지하는 입장이어서 여러 논란의 중심도 된

것 같다. 다음 주자인 세사르 바예호는 페루 출신의 시인으로 네루다와는 비교되는 불운한 삶을

살았는데 이 책의 저자는 우리나라 시인 중에는 기형도와 비교한다. 대미를 장식하는 니카노르

파라는 '반시'를 주창한 파격적인 인물로 '시인이라면 자신만의 사전을 지녀야 한다'라고 말할 정도로

기존의 시와는 전혀 다른 독창적인 세계를 선보였다. 이 책에서 소개한 네 명의 시인만으로 감히

라틴아메리카 시문학을 이해할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생소하고 낯선 그들의 시가 어떻게

변천해왔는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 서구 중심의 세계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소외되었고

현재도 마찬가지지만 그들의 문학만은 어디와 견주어도 뒤질 게 없음을 잘 알려준 책이었는데

라틴아메리카의 매혹적인 시세계에 입문하기에 적절한 안내서라 할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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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왕세자들 - 왕이 되지 못한
홍미숙 지음 / 글로세움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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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에 대해선 워낙 많은 문화 콘텐츠들이 있어서 왠만한 얘기들은 익숙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대부분 왕을 중심으로 한 얘기들로 권력 다툼의 과정에서 생긴 사건들이 대부분인데 이

책의 제목처럼 왕이 되지 못한 비운의 왕세자들만 따로 다루는 책은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왕이 되지 못한 대표적 인물로는 아버지 영조에게 죽임을 당한 사도세자나 아버지 태조에게 세자

자리에서 쫓겨난 양녕대군 정도가 떠오르는데 이 책에서는 조금은 낯선 인물들도 상당수 등장해

과연 그들에겐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 책에선 왕이 되지 못한 비운의 왕세자를 왕세손까지 포함하여 크게 5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먼저

폐세자가 된 4명, 요절한 6명, 폐세자가 되었다가 복위된 사도세자와 대한제국 최초이자 유일한

황태자 의민황태자 이민, 단명한 왕세손 2명까지 총 14명의 왕세자 내지 왕세손을 다루고 있다.

폐세자가 된 인물 하면 양녕대군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그보다 먼저 최초의 타이틀을 차지한

사람이 있었으니 조선의 첫 번째 왕세자였던 의안대군 이방석이었다. 태조 이성계가 총애한 계비

신덕왕후 강씨와의 사이에 태어난 막내 아들인 이방석은 아버지의 사랑과 신권 중심의 나라를 만들려는

정도전 등 개국공신 세력들의 지지로 첫 왕세자의 영광을 차지하지만 장성한 이복형들이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었다. 결국 왕자의 난으로 최초의 폐세자이자 살해된 세자가 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는데 이때부터 조선왕조의 골육상쟁이 시작된 게 아닌가 싶다. 그와 반대로 폐세자가 되고도

천수를 누린 사람이 바로 양녕대군이다. 그가 세종에게 왕위를 빼앗겼기(?) 때문에 명군이 탄생하게

되었으니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세조의 왕위찬탈을 옹호하는 등 종친 어른으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하진 못했다. 나머지 두 명은 생각도 못했던 연산군과 광해군의 장자들이었다.

그들은 아버지가 왕이어서 왕이 되는 게 누워서 떡 먹기였지만 운명은 그들을 결코 왕이 아닌

처참한 죽음으로 내몰았다. 다음으로 요절한 왕세자 중엔 역시 소현세자가 단연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 인조의 독살설이 유력한 소현세자는 못난 아버지가 왕이 되면서 세자의 자리에 올랐지만 못난 아버지 때문에 본인은 물론 처자식이 몰살당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그 외에 부모

등의 죄를 대신 일찍 갚은 듯한 인물들로 세조의 장자였던 의경세자(성종의 아버지로 덕종으로

추존)나 할머니 문정왕후의 죄를 대신한 듯한 명종의 아들이자 마지막 적통이었던 순회세자, 역시

아버지 영조 대신 일찍 간 듯한 효장세자, 정조의 아들 문효세자,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까지 조선

왕실은 유독 요절한 왕세자들이 많은 것 같았다. 그것도 대부분 피를 보고 왕이 된 자들의 자식들이어서

인과응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듯 했다. 폐세자가 되었지만 유일하게 복위된 인물은 친숙한

사도세자였고, 영친왕으로 더 잘 알려진 의민황태자가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라 할 수 있었다.

단명한 왕세손까지 저자는 조선 왕실의 능, 원, 묘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생생한 사진까지 싣고

있어 새롭게 알게 된 부분들이 많았는데 특히 마지막에 등장한 영친왕의 약혼녀 민갑완의 사연은

정말 비극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었다. 영친왕과 딱 한 번 만나고 정식 약혼녀가 되었지만 일제에

의해 영친왕이 일본 왕실의 이방자와 결혼하게 되면서 졸지에 파혼녀 신세가 되어 평생 외롭게

혼자 살다 쓸쓸하게 죽어가야 했던 그녀의 한 많은 인생에 저절로 마음이 짠해졌다. 이 책을 보니

조선왕실의 왕릉 투어를 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는데 그동안 잘 다루지 않았던 주제를 잘 정리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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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 미술관 - 그림으로 보는 8가지 사회문제
이만열(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고산 지음 / 앤길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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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들을 감상할 때마다 예술작품 그 자체로서의 매력도 있지만 거기에 담겨 있는 여러 의미를

찾아 보는 재미도 나름 솔솔하다. 어떤 작품을 이해할 때 그 작품에 얽힌 사연까지 함께 알게 되면

이해도가 훨씬 높아지곤 하는데 이 책은 그림을 통해 8가지 사회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게 해주어서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저자가 명화들에서 끌어낸 8가지 사회문제는 차별, 혐오, 불평등, 위선, 탐욕, 반지성, 중독, 환경

오염인데 각각의 주제에 걸맞는 작품들을 소개하며 문제제기를 한다. 먼저 차별에선 그리스 신화 속

메두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뱀을 머리카락으로 가진 메두사는 페르세우스에 의해 처단을 당하는데

원래 메두사는 아테나 신전의 미모의 사제로 포세이돈과 아테나 신전에서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면서

아테나 여신의 분노를 사서 우리가 알고 있는 신세가 되고 만다. 이 책에선 메두사와 관련된 다른

버전의 얘기를 들려주는데 메두사가 포세이돈의 사랑 고백을 거절하자 포세이돈이 메두사를 아테나

신전에서 성폭행했다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야 원래 강간 신화라 할 정도로 최고신 제우스를 비롯해

많은 남신들의 성폭력으로 점철되어 있는데 가해자라 할 수 있는 포세이돈은 아무 처벌을 받지

않고 메두사만 일종의 희생양이었다는 주장이다. 여성 피해자가 꽃뱀 취급받고 관음증 대상이 되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지적하는데 차별은 인종, 국적, 빈부 등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음을

여러 작품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과 여러 가지 점에서 다른 사람들에 대한 혐오도 점점

확산일로에 있고, 소위 금수저와 흙수저로 대변되는 불평등의 심화도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문제로

다루고 있다. 위선과 관련해선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와 '올랭피아'가 이를 대변하는

작품이었는데 신화 속 여성의 누드는 되고 현실 여성의 누드에 대해선 대놓고는 비난하면서 몰래

훔쳐보는 이중성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 할 수 있었다. 탐욕과 관련해선 작년에 브뤼셀에 있는 왕립

미술관에서 직접 본 피터 브뤼겔의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이 소개되어 반가웠는데 그때는

정작 이 작품의 진가를 제대로 몰라 사진으로 남기지도 않았다. 반지성에선 부끄러움을 잊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지적을, 중독에선 술, 약물 문제를, 환경오염은 고야의 '거인' 등을 소개하며 심각성을

일깨운다. 사실 이 책에서 그림은 여러 사회문제들을 부각시키는 소재로 사용되면서 무관심하게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이런 게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이 책에서 다루는 여러 사회문제들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도 있고 논쟁의 여지도 있지만 미술로 풀어내니 한결 부드러우면서도 더 심각하게 와닿는 느낌이 들었다. 명화들을 감상하면서도 여러 사회문제들에 대한 인식을 각성시키기에 딱 알맞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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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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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잘나갔던 로맨스 소설 작가 프랜시스는 새로 쓴 원고에 대해 출판사들의 반응이 냉담하자

기분도 전환할 겸 지인에게 추천받은 이름난 건강휴양지 '평온의 집'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평온의 집을 운영하는 마샤의 힐링(?) 프로그램에 따라 속세에서 벗어난 열흘 간의

잊지 못할 특별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리안 모리어티의 작품은 이전에 '허즈번드 시크릿'을 필두로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당신이 내게

최면을 걸었나요'를 읽어봤는데 여성작가라 그런지 주로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그들 사이에

생기는 미묘한 갈등과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들을 엮어 흥미진진한 스릴러로 만들어냈다. 이 책은

제목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데 왠지 전에 본 한국영화 '완벽한 타인'의

느낌도 났다. 프랜시스 등 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이 모인 '평온의 집'은 우리로 말하면 템플

스테이처럼 문명 세계와는 잠시 떨어져 치유의 시간을 갖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이에 대해 호평도

있지만 그곳에서 끔찍한 경험을 했다는 평도 있어 직접 겪어보기 전엔 무슨 일이 있을지 호기심을

자아냈다. 이 책이 본격 미스터리라면 클로즈드 서클이 되어 외딴 곳에서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겠지만

리안 모리어티의 전작들을 볼 때 그 정도의 사건이 벌어지진 않을 것 같아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했다. 먼저 이곳에 온 9명의 면면이 흥미로웠다. 람보르기니를 몰고 온 젊은 부부 벤과 제시카,

일가족이 함께 온 나폴레옹, 헤더, 조이, 잘 생긴 변호사 라스, '평온의 집'에 오기 전 프랜시스가

미리 만나 연쇄살인범으로 오해한 토니, 남편을 젊은 여자에게 뺏기고 딸들과도 떨어져 지내며

살을 빼러 온 카멜까지 각자 이곳에 오기까지 나름의 사연들을 갖고 있었다. 당연히 처음부터 자기

얘기를 늘어놓진 않는데 마샤의 독특한(?) 프로그램에 따르게 되면서 자기도 모르게 완벽한 타인이었던 

사람들 사이에 조금씩 유대감이 생기기 시작한다. 마샤가 점점 수위를 높이며 폭주를 하기 시작하자

저절로 하나로 뭉치게 된 9명은 결국 힐링이 아닌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를 시작해야 했는데... 

 

완벽한 아홉 명의 타인들에게 과연 무슨 일이 생길까 기대를 했는데 '평온의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조금은 예상을 벗어난 방향으로 향했다. 아홉 명 사이에 엄청난 갈등이 벌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오히려 갈등의 국면은 엉뚱한 곳에 있었고 아홉 명들은 완벽한 타인에서 서서히 친해진 사이가

되고 만다. 역시 고난을 같이 겪게 되면 특별한 사이로 발전하기 마련인데 이 책에선 힐링을 위해

일부러 찾아간 곳에서 벌어지는 황당한 일들이 결국에는 사람들 사이에 잠복해 있던 문제들을 수면

위로 드러내어 뜻하지 않게 해소되는 방향으로 이끌어냈으니 방법은 좀 달랐지만 목적은 달성을

한 것 같았다. '평온의 집'을 찾은 9명은 물론 이곳을 운영하는 마샤와 야오까지 여러 사람들의 시선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끌고가는 리안 모리아티의 능수능란한 솜씨는 여전했는데 어떻게 보면 단순한

소재와 설정들로 쉽게 600페이지에 육박하는 얘기로 만들어내는 그녀의 능력은 이 책에서도 역시

빛을 발했다. 각자의 사연들이 얽히고 설켜 일어나는 얘기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리안 모리아티표

스릴러의 재미를 다시 한 번 맛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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