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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잔인한 달 ㅣ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신예용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4년 6월
평점 :
부활절을 맞이한 스리 파인스에 다시 한 번 살인의 기운이 넘친다.
옛 해들리 저택에서 열린 교령회 도중에 죽은 자를 소환하는 의식을 하던 중
공포에 휩싸인 마들렌이 겁에 질려 사망한다.
사건을 맡게 된 가마슈 경감은 단순한 사고가 아닌 살인사건임을 직감하고 수사를 시작하지만
아르노 사건으로 경찰청에서 공공의 적으로 취급당하던 가마슈 경감은
여러 가지로 곤혹스런 상황에 처하는데...
루이즈 페니의 가마슈 경감시리즈는 '스틸 라이프'와 '치명적인 은총'으로
애거서 크리스티식의 고전 미스터리의 묘미를 제대로 보여줬는데,
이번엔 T. S. 엘리엇의 유명한 시와 동명의 제목으로 봄의 미스터리를 선보인다.
'스틸 라이프'가 가을, '치명적인 은총'이 겨울을 배경으로 한 것에 이어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배경으로 제목 그대로 '가장 잔인한 달'을 만들어낸다.
작은 마을 스리 파인스에서 이렇게 계속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건 터가 안 좋아선지 모르겠지만
작은 마을일수록 그 속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 미묘한 갈등이
살인이라는 끔찍한 결과를 낳는 게 아닌가 싶다.
검시 결과 에페드라가 사용되었음이 밝혀지는데 그 날 교령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을 하나씩
조사해나가면서 마들렌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감정이 조금씩 드러난다.
한편 가마슈 경감의 발목을 잡고 있던 아르노 사건은 급기야 가마슈 경감 가족들에 대한 음해로 그를 곤란한 상황으로 몰고 간다.
전편에 이어 가마슈 경감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사람들의 음모에
무작정 당하기만 하는 그의 모습은 보기가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왜 자신에 대한 부당한 공격에 맞서 싸우지 않고 가만히 있는지 정말 답답했는데
가족의 대한 공격의 수위가 도를 넘자 가마슈 경감은 결국 사표를 던지지만
그를 음해한 자들에 의해 죽음의 위기에 처하는데...
스리 파인스에서 벌어진 마들렌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는 것과 동시에
아르노 사건으로 인해 곤경에 처한 가마슈 경감의 분투가 그려지는데
조직 내부의 비리를 고발한 내부고발자에 대한 조직의 반응은 어디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르노가 저지른 끔찍한 범죄들을 고발한 죄로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가마슈를 향한 온갖 음해는 정말 도를 넘었다.
그 와중에 마들렌을 둘러싼 비밀들이 하나씩 밝혀지는데,
사랑받지 못하고 관심을 빼앗긴 사람의 질투와 원망이 살인이란 비극을 낳았다.
가마슈 경감에 대한 공격도 마찬가지로 가장 가깝게 생각한 사람의 질투심에 의해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모든 걸 이겨내고 사건을 해결해낸 가마슈 경감의 뚝심과 지혜가 돋보였다.
겨우 그런 이유로 사건들을 벌인다는 게 잘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당사자에겐 정말 심각한 일일지도 모른다.
비밀은 우리를 다른 사람들과 갈라놓고 혼자 내버려 두며, 다른 사람들은 물론 자신에게마저 등을
돌리게 만들어 살인이란 극단적이고 참담한 결과를 얼마든지 낳을 수 있음을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루이즈 페니의 가마슈 경감 시리즈는 스리 파인스란 마을을 배경으로 다양한 성격의 인물들과
아기자기한 전개를 보여줘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미스터리의 진수를 맛볼 수 있었다.
사건 자체는 좀 빈약한 느낌도 없지 않지만 그 사건을 둘러싼 여러 사람들의 비밀과 갈등,
그리고 가마슈 경감을 내쫓기 위한 음모까지 소소한 재미들이 가득 담긴 작품이었다.
아마도 다음 작품은 여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지 않을까 싶은데
스리 파인스의 여름엔 또 어떤 사건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된다.
우리가 내면에 감춰 둔 수많은 것들 중 가장 위험한 것은 비밀이다. 우리는 그 비밀을 너무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한 나머지 자신에게도 감추려 한다. 비밀은 착각을 부르고, 착각은 거짓을 부른다. 그리고 거짓은 벽을 만든다. 우리의 비밀이 우리를 병들게 하는 이유는 비밀이 우리를 다른 사람들과 갈라놓기 때문이다. 우리를 혼자 내버려 두기 때문이다. 두렵고 성나고 비참한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급기야 자신에게마저 등을 돌리게 하기 때문이다. 살인은 거의 언제나 비밀에서 출발한다. 살인은 시간이 지나 밖으로 퍼져 나온 비밀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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