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고 아껴두었다가 이 책을 읽었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는 무라카미 라디오 3부작 중 두번째 작품이다. 3권을 모두 이미 읽었지만 재독하고 있다. 세번째 작품도 어서 읽고 싶다. 긴장을 풀고 즐겁게 읽었다. 간만에 즐거운 독서였다.
재밌었던 글, 감동적이었던 글, 읽고 싶은 책, 보고싶은 영화를 소개하겠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즐거운 파티에 참석했던 적이 있나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유감스럽게도 한 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대신이랄까, 즐겁지 않았던 파티라면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다. 특히 문단관계 파티는 대부분 고문이었다. 거길 가느니 차라리 어둡고 눅눅한 동굴 속에서 거대 투구벌레와 맨손으로 격투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적조차 있다." -p26
역시 하루키씨답게 비유도 굉장히 초현실적이고 소설적이다. 그리고 귀엽다. 어둡고 눅눅한 동굴 속에서 거대 투구벌레와 맨손으로 격투하는 하루키씨를 떠올리며 웃음지었다.
조지 마틴의 회고록 <귀야말로 모든 것>을 읽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번역본이 없다. 조지 마틴은 비틀스의 프로듀서이자 전설적인 존재다.
아래는 하루키씨가 가장 기억에 남았던 사인회에 관한 이야기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인회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한 것으로, 두 시간 가까이 했는데도 사람이 많아서 부족했다. 게다가 여자아이들이 책에 사인을 받은 뒤 "무라카미 씨, 키스해주세요" 라고 하는 바람에 나는 어쩔 수 없이(거짓말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뺨에 키스를 했다. 계속 그렇게 하니 시간이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출판사 사람은 "시간 없으니 키스까지는 하지 마세요" 라고 했지만, 그런 기회는 흔치 않으므로 "아뇨, 작가로서 마지막까지 의무를 다하겠습니다" 라고 주장하며 원하는 대로 키스해주었다.
사인하고 악수를 청하는 일은 흔히 있지만, 키스를 원한 것은 스페인뿐이다. 게다가 멋진 아가씨들이 많아서...... 아, 이 얘기는 이제 그만해야지. 세상의 미움을 한몸에 살 것 같다." -p110
전 지금까지 하루키씨를 미워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농담이고요) 아무튼 굉장히 부럽습니다, 하루키씨!
폴 뉴먼 주연의 <명탐정 하퍼>입니다. 하루키씨가 몇 번이나 본 영화라고 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폴 뉴먼과는 거리가 멀지만, 나도 그가 느끼는 바를 안다. '자유로워지다' 라는 것은 설령 그것이 잠깐 동안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역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멋진 것이다." -175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미스틱 리버>입니다. 하루키씨는 엄청나게 재미있는 영화였다고 하네요. 저도 보고싶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제가 좋아하는 감독이기도 하고 스릴러영화입니다. 오랜만에 스릴러 영화보고 싶네요.
푸슈킨의 소설 중 <발사>라는 단편 재미있을 것 같더군요. 어떤 책에 수록되어있는지 모르겠네요.
마지막은 책에서 가장 좋았던 구절입니다.
지금까지 인생에서 정말로 슬펐던 적이 몇 번 있다. 겪으면서 여기저기 몸의 구조가 변할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상처 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때마다 거기에 뭔가 특별한 음악이 있었다, 라고 할까, 그때마다 그 장소에서 나는 뭔가 특별한 음악을 필요로 했다.
어느 때는 그것이 마일스 데이비스의 앨범이었고, 어느 때는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이었다. 또 어느 때는 고이즈미 교코의 카세트테이프였다. 음악은 그때 어쩌다보니 그곳에 있었다. 나는 그걸 무심히 집어들어 보이지 않는 옷으로 몸에 걸쳤다.
사람은 때로 안고 있는 슬픔과 고통을 음악에 실어 그것의 무게로 제 자신이 낱낱이 흩어지는 것을 막으려 한다. 음악에는 그런 실용적인 기능이 있다.
소설에도 역시 같은 기능이 있다. 마음속 고통이나 슬픔은 개인적이고 고립된 것이긴 하지만 동시에 더욱 깊은 곳에서 누군가와 서로 공유할 수도 있고, 공통의 넓은 풍경 속에 슬며시 끼워넣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소설은 가르쳐준다.
내가 쓴 글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그런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p218~219
하루키씨의 진심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소설이나 음악을 통해서 자신의 아픔을 다른 누군가와 공유하고 공통의 넓은 풍경 속에 슬며시 끼워넣나 봅니다. 그것은 분명 매우 실용적인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