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백사정기담 1
키미즈카 쇼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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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시렁 123


《상해백사정기담 1》

 키미즈카 쇼

 이지혜 옮김

 대원씨아이

 2017.6.15.



  눈을 뜨고서 앞을 볼 적에 무엇을 보았다고 할 만할까 잘 모르겠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모습이 참인지, 마음으로 보는 모습이 참인지 헷갈리곤 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믿어야 할는지, 속으로 살피는 모습을 받아들여야 할는지 곰곰이 따지기도 합니다. 두 눈을 뜨고 보는 모습이 거짓이라고는 여기지 않습니다만, 마음으로 보는 모습을 옆으로 젖힐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몸뚱이만 입은 목숨이 아니라, 몸뚱이를 마음으로 움직이는 넋일 테니까요. 《상해백사정기담》 첫걸음을 읽으며 두 가지 눈이랑 마음을 헤아립니다. 이 만화에 나오는 숨결은 겉모습만 사람일 수 있고, 겉으로는 사람으로 보이나 사람이 아닌 다른 숨결일 수 있습니다. 숱한 사람들은 그이 스스로 ‘그냥 사람’이라 여기기 일쑤이지만, 정작 그이 스스로 ‘그냥 사람’이 아닌, ‘몸이라는 껍데기만 사람’인데 이런 모습을 하나도 못 느끼거나 도무지 모를 수 있어요. 이리하여, 참말로 우리한테는 몸눈하고 마음눈 둘이 있고, 몸을 움직이는 마음에다가 몸에 따라 바뀌는 마음이 있는가를 곱씹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일까요? 우리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떤 참모습일가요? 우리는 어떤 참삶을 짓는 참넋이자 참마음일까요? ㅅㄴㄹ



“넌 네 엄마가 준 이름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인식할 수 있어. 요괴들도 똑같아. 애매한 모양새에 사람이 이름을 붙이면서 다시 태어나지.” (95쪽)


“전하고 싶은 마음, 이미지를 지닐 수 있는 건 인간뿐이야. 우리 같은 존재는 인간에게 기술을 주는 일밖에 못 해.” (143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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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르와 아스마르의 이슬람 박물관 - Azur & Asmar, 초등용 정보책
미셸 오슬로.상드린느 미르자 지음, 조성천 옮김 / 웅진주니어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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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시렁 33


《아주르와 아스마르의 이슬람 박물관》

 미셸 오슬로 기획

 상드린느 미르자 글

 조성천 옮김

 웅진주니어

 2007.9.10.



  만화책뿐 아니라 만화영화에는 숱한 이야기가 곳곳에 흐릅니다. 만화책이나 만화영화를 꼭 한벌쯤 보고서 덮는다면 거의 모든 이야기를 놓치거나 흘리는 셈이지 싶습니다. 적어도 열벌쯤 보고 새겨야 비로소 여러 이야기를 살피거나 맛볼 만할 테고, 서른벌이나 쉰벌쯤 다시 보고 새길 무렵 구석구석에 깃든 온갖 이야기를 누리지 싶어요. 《아주르와 아스마르의 이슬람 박물관》은 만화영화 〈아주르와 아스마르〉 이야기를 한결 깊으면서 푸근하게 짚어 줍니다. 만화영화에 나오는 사람들 이름에 얽힌 삶을 알려주고, 이 사람들이 입는 옷이나 눈빛이나 몸짓에 얽힌 살림을 들려줍니다. 저잣거리나 마을이나 예배당이나 말씨나 글씨를 놓고도, 집 바깥벽에 새긴 글월이 품은 뜻을 놓고도, 갖가지 이야기가 숨었다고 합니다. 먼먼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를 오늘에 새롭게 마주하는 이야기도 있다 하고, 사람하고 요정 사이에 흐르는 마음을 둘러싼 따사로운 사랑하고 손길이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도 있대요. 책이름 그대로 ‘만화영화 박물관’ 구실을 하는 그림책을 읽으면서 만화영화를 앞으로 다시 볼 적에 얼마나 새로울까 하고 설렙니다. 만화영화를 새로 보고, 이 그림책을 다시 본다면 그때에도 또 새로 배우고 느끼는 숨결이 있을 테지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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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아의 미소
비람마 외 지음, 박정석 옮김 / 달팽이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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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20


《파리아의 미소》

 비람마·조시안·장 뤽 라신느

 박정석 옮김

 달팽이

 2004.12.15.



높은 계급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운명은 바로 그랬다. 그 애들의 부모들은 장난감과 비싼 물건으로 애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애들은 거기에 별로 관심이 없다. (39쪽)


나는 ‘당신도 나처럼 옷을 입지 않았습니까? 나는 열심히 일하고 지금은 여유를 즐기고 있습니다. 내 돈 주고 옷을 샀는데도 그것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면 안 됩니까? 왜 나를 꾸짖습니까, 어르신?’ 하고 응수했다. (291쪽)


송아지를 낳고 나면, 일주일 동안 쌀을 씻었던 따뜻한 물로 암소를 씻기고, 젖통과 발굽에도 그 물을 뿌려 준다. 먼저 나는 노란 초유를 받아 과자를 만드는 데 사용한다. (346쪽)


“이 정당은 좋은 이념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먹여살려야 할 애들이 있다. 나는 일거리가 필요하고 내 아들도 마찬가지이다. 내 가족 모두는 레디아르 댁의 머슴이어서 우리는 그가 주는 쿠지를 먹고살아야 한다.” (400쪽)



  위하고 아래란 있습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니까요. 그런데 이 위아래란, 어쩌면 우리가 삶을 한쪽으로만 바라보면서 생긴 흐름이지 싶습니다. 물흐름이 위에서 아래라기보다는, 물은 저 흐르고 싶은 결에 맞추어 흐른다고 여겨야 알맞지 싶어요. 저쪽이 위고 이쪽이 아래가 아니라, 거꾸로 저쪽이 아래이고 이쪽이 위가 아니라, 그저 물은 저 흐르는 결대로 흐를 뿐이요, 비도 저 바라는 결대로 갈 뿐이지 싶어요.


  자, 지구라는 별로 본다면 북반구란 데에서 ‘내리는’ 비는 남반구로 본다면 참말로 ‘내린다’고 할 수 있을까요? 남반구에서 ‘내리는’ 눈은 어떨까요? 지구라는 별 한복판에 중력이 있어서 이 힘을 따라 물흐름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이 힘이 지구라는 별 한복판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면, 이를테면 해나 뭇별한테 있다면, 이때에는 ‘위아래’가 어떤 흐름이나 결이 될까요?


  《파리아의 미소》(비람마·조시안·장 뤽 라신느/박정석 옮김, 달팽이, 2004)는 인도에서 불가촉천민이란 아랫자리에서 태어나 살림을 꾸려야 한 아주머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주머니한테서 이야기를 듣고 갈무리한 분은 이 아주머니가 살아온 나날이며 발자국이며 살림이며 생각을 낱낱이 받아적으려 합니다. 어느 하루나 이틀쯤 듣고 마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서로서로 생각을 주고받으면서 이야기로 꽃을 피웁니다. 학자로서 다가가서 적바림하는 논문이 아닌, 비람마란 인도 아주머니가 위아래란 계급을 떠나 오롯이 선 사람으로서 이 삶을 어떻게 지었고 앞으로 어떻게 짓기를 바라는가 하는 꿈하고 사랑까지 알뜰히 귀여겨듣고서 차곡차곡 담아내 줍니다.


  인도 아줌마 한 사람이 삶을 지어 온 길은 불가촉천민이란 자리였기에 이룬 삶길이 아닙니다. 어느 자리 어느 살림길이었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사랑하고 아이를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온사랑이 가득한 숨결로 이룬 삶길이자 살림길이자 노래길이었구나 싶습니다. 참으로 알뜰히 영근 ‘사람노래(민중자서전)’를 만났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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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야와 함께 3
타니카와 후미코 지음, 문기업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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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시렁 122


《사야와 함께 3》

 타니카와 후미코

 문기업 옮김

 AK comics

 2017.9.25.



  어릴 적에 저는 사랑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사랑이란 무엇인지 참 궁금했어요. 그런데 그때 어른들은 학교에서 성교육만 시키더군요. 더욱이 고작 하루 한 시간뿐이었습니다. 사랑을 가르치거나 이야기하지 않고서 성교육 비디오테이프 한 시간 틀어 주고서 마친 학교라는 곳은 우리한테 무엇을 보여준 셈일까요? 오늘날 우리 학교나 마을이나 집에서는 사랑을 가르치거나 이야기할까요? 오늘날 이 나라 대통령이나 정치일꾼이나 벼슬아치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면서 이녁 자리를 건사하거나 지킬까요? 《사야와 함께》 세걸음을 읽으면, 스스로 풋풋할 뿐 아니라 스스로 새롭게 사랑을 꽃피우고 싶은 푸름이가 어떤 걸음으로 하루를 맞이하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이 아이는 첫사랑도 풋사랑도 짝사랑도 따지고 싶지 않습니다. 언제나 오롯이 사랑 하나만 헤아릴 뿐입니다. 둘레에서 이 아이한테 사랑을 가르친 어른이 있었을까요? 딱히 사랑이란 이름을 쓰면서 사랑을 가르쳤다기보다, 사랑이라는 마음을 우리가 스스로 마음에서 지어서 길어올리는 삶결이 무엇인가를 몸소 보여주고, 이러한 결대로 살아갔지 싶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저는 어릴 적에 둘레에서 ‘몸소 사랑을 짓는 삶길’을 보여준 어른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뜻입니다. ㅅㄴㄹ



‘나란히 벤치에 앉아 바람을 느꼈다.’ (30쪽)


‘선생님은 아주 자연스럽게 내 앞에 앉았다. 나는 심장 소리가 선생님에게 들리지나 않을까 안절부절못했다.’ (61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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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여자회 방황 5
츠바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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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시렁 121


《제7여자회 방황 5》

 츠바나

 이형진 옮김

 대원씨아이

 2017.4.30.



  저는 치마바지란 옷을 입습니다. 그런데 겉보기로는 그냥 치마로 느끼나 봅니다. 교칙에 맞추어 머리카락을 짧게 치고 똑같은 학교옷을 맞춰 입은 고등학교 아이들이, 중학교 아이들이 제 차림새를 보고 “남자가 치마 입었어?” 하는 말을 큰소리로 지껄입니다. ‘떠들다’가 아닌 ‘지껄이다’입니다. 요새도 초등학교 어린이가 제 머리카락을 보면서 “남자가 머리가 길어!” 하며 큰소리로 지껄입니다. ‘말하다’가 아닌 ‘지껄이다’입니다. 왜냐하면 중·고등학생이든 초등학생이든 스스로 삶이 없어서 내뱉는 말이거든요. 틀에 박히고 길들고 만 몸뚱이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에는 사랑도 삶도 살림도 생각도 슬기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제7여자회 방황》 다섯걸음을 읽는데 꽤 재미있습니다. 오늘로 치면 꽤 앞날이 될 즈음, ‘동무’가 아예 사라졌기에 학교에서 억지로 번호에 맞추어 짝을 맺어 ‘동무 되는 놀이’를 시킵니다. 더 먼 앞날에는 아예 ‘동무’란 말조차 없어서 어떤 먼 앞날 아이가 시간을 가로질러 ‘동무놀이’를 시키는 옛날(?)로 슬쩍 찾아와 ‘동무 되기’를 겪으며 눈물을 흘립니다. 우리가 서로 동무라면, 이웃이라면, 참말로 어떤 말을 입에 얹을까요? 우리가 서로 ‘사람’이라면 어떤 목소리로 말을 터뜨릴까요?



“처음 눈을 뜨면 이미 어른이고 이미 누군가이고 거기에서 시작하는 거야. 주위 사람들의 기억도 맥락을 맞추게끔 재구성되어 아무도 그가 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물론 본인도 깨닫지 못해. 나도, 실은 어제 갑자기 만들어진 인간 아닐까라고 계속 생각했거든.” (17쪽)


“갖고 싶은 것이라, 만약에 살아 있었다면 있었을지도 모르겠네.” (101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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