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아의 미소
비람마 외 지음, 박정석 옮김 / 달팽이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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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20


《파리아의 미소》

 비람마·조시안·장 뤽 라신느

 박정석 옮김

 달팽이

 2004.12.15.



높은 계급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운명은 바로 그랬다. 그 애들의 부모들은 장난감과 비싼 물건으로 애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애들은 거기에 별로 관심이 없다. (39쪽)


나는 ‘당신도 나처럼 옷을 입지 않았습니까? 나는 열심히 일하고 지금은 여유를 즐기고 있습니다. 내 돈 주고 옷을 샀는데도 그것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면 안 됩니까? 왜 나를 꾸짖습니까, 어르신?’ 하고 응수했다. (291쪽)


송아지를 낳고 나면, 일주일 동안 쌀을 씻었던 따뜻한 물로 암소를 씻기고, 젖통과 발굽에도 그 물을 뿌려 준다. 먼저 나는 노란 초유를 받아 과자를 만드는 데 사용한다. (346쪽)


“이 정당은 좋은 이념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먹여살려야 할 애들이 있다. 나는 일거리가 필요하고 내 아들도 마찬가지이다. 내 가족 모두는 레디아르 댁의 머슴이어서 우리는 그가 주는 쿠지를 먹고살아야 한다.” (400쪽)



  위하고 아래란 있습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니까요. 그런데 이 위아래란, 어쩌면 우리가 삶을 한쪽으로만 바라보면서 생긴 흐름이지 싶습니다. 물흐름이 위에서 아래라기보다는, 물은 저 흐르고 싶은 결에 맞추어 흐른다고 여겨야 알맞지 싶어요. 저쪽이 위고 이쪽이 아래가 아니라, 거꾸로 저쪽이 아래이고 이쪽이 위가 아니라, 그저 물은 저 흐르는 결대로 흐를 뿐이요, 비도 저 바라는 결대로 갈 뿐이지 싶어요.


  자, 지구라는 별로 본다면 북반구란 데에서 ‘내리는’ 비는 남반구로 본다면 참말로 ‘내린다’고 할 수 있을까요? 남반구에서 ‘내리는’ 눈은 어떨까요? 지구라는 별 한복판에 중력이 있어서 이 힘을 따라 물흐름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이 힘이 지구라는 별 한복판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면, 이를테면 해나 뭇별한테 있다면, 이때에는 ‘위아래’가 어떤 흐름이나 결이 될까요?


  《파리아의 미소》(비람마·조시안·장 뤽 라신느/박정석 옮김, 달팽이, 2004)는 인도에서 불가촉천민이란 아랫자리에서 태어나 살림을 꾸려야 한 아주머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주머니한테서 이야기를 듣고 갈무리한 분은 이 아주머니가 살아온 나날이며 발자국이며 살림이며 생각을 낱낱이 받아적으려 합니다. 어느 하루나 이틀쯤 듣고 마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서로서로 생각을 주고받으면서 이야기로 꽃을 피웁니다. 학자로서 다가가서 적바림하는 논문이 아닌, 비람마란 인도 아주머니가 위아래란 계급을 떠나 오롯이 선 사람으로서 이 삶을 어떻게 지었고 앞으로 어떻게 짓기를 바라는가 하는 꿈하고 사랑까지 알뜰히 귀여겨듣고서 차곡차곡 담아내 줍니다.


  인도 아줌마 한 사람이 삶을 지어 온 길은 불가촉천민이란 자리였기에 이룬 삶길이 아닙니다. 어느 자리 어느 살림길이었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사랑하고 아이를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온사랑이 가득한 숨결로 이룬 삶길이자 살림길이자 노래길이었구나 싶습니다. 참으로 알뜰히 영근 ‘사람노래(민중자서전)’를 만났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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