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푸른알 책읽기

 


  거름을 주면 한결 잘 클 테고, 비료를 주면 더욱 잘 크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빗물과 흙과 햇살과 바람으로도 토마토 알은 단단하고 싱그럽게 잘 큰다. 빗물이 오래도록 찾아들지 않아 틈틈이 물을 주지만, 이들 토마토 푸른알은 스스로 들풀처럼 뒷밭에서 씩씩하게 자란다. 따사로운 햇살이 푸른알을 더 푸르게 북돋우고, 싱그러운 바람결에 제비 노랫소리 살포시 안겨 토마토는 여름날 한낮 더위를 식힌다. 곁에 있는 우람한 뽕나무와 감나무는 곧잘 그늘을 베풀고, 때때로 지나가는 흰구름도 더위를 식힌다. 좋은 여름에 좋은 열매를 맺는다. (4345.6.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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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사진을 붙인다 (도서관일기 2012.6.13.)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서재도서관으로 쓰는 옛 흥양초등학교 건물 안쪽 곳곳에는 시멘트못 박힌 데가 있다. 예전에 초등학교로 있을 적, 교사들은 벽에 못을 박아 이것저것 걸어 놓은 듯하다. 이 못을 뽑기도 하지만 군데군데 그대로 두어 내 사진틀을 걸기도 한다. 이제 책꽂이와 책을 얼추 갈무리했다고 여겨, 오늘부터는 책꽂이 벽이나 교실 벽 빈터에 사진과 포스터를 붙이기로 한다. 첫째 아이가 태어난 팔월 무렵에는 손님을 맞이할 수 있게끔 자질구레한 것은 골마루 끝자락에 몰아서 쌓고, 커다란 책꽂이로 가릴까 싶기도 하다. 아직 교실을 통째로 쓰지 못하니 자질구레한 짐이나 종이상자 쌓을 데가 마땅하지는 않다. 그러나, 슬기롭게 생각하면 자질구레한 짐이나 종이상자도 어떤 그림이 되도록 할 수 있겠지.


  골마루 바닥도 걸레로 조금 닦는다. 건물 바깥벽에 알림판을 어떻게 붙이면 좋을까 헤아려 본다. 간판집에 맡겨야 할는지, 내가 손수 만들어 붙이면 좋을는지 생각해 보자.


  바닥에 굴러다니는 짐이 없도록 치운다. 비질을 한다. 햇살이 골고루 들어오니 따로 등불을 안 켜도 된다. 저녁에는 어두워지지만, 시골 저녁은 집으로 돌아가 잠자리에 들 때이니 그닥 걱정스럽지 않다. 모자란 시설은 모자란 시설대로 건사하자. 날마다 조금씩 예쁘게 꾸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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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2-06-14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들을 다 사신 거겠죠. 진짜 대단하십니다. 미래에 좋은 기록물과 자료로 남을 수 있었으면 해요.

된장님이 사시는 마을엔 아이들이 많은가요? 된장님께서 이 폐교를 사용하실 정도면 거의 없을 것 같은데..저 책들이 많은 아이들이 저 도서관에서 읽고 떠들고 웃었으면 좋겠네요.

숲노래 2012-06-14 19:12   좋아요 0 | URL
종이책이 시중에 사라지더라도 우리 집과 마을에는 있으니 좋은 이야기를 오래오래 나눌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아주 마땅한지 모르지만, 우리 시골마을에는 아이가 우리 집에만 있어요. 옆이나 옆옆 마을에도 아이는 없고, 면에 가면 있답니다 ^^;;;;;;

앞으로 좋은 분들이 우리 시골로 귀촌을 하러 찾아오시겠지요~

카스피 2012-06-15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단하시네요.저 많은 책을 다 모으시다니 말이죠.갑자기 예전에 된장님이 서울에 사시면서 숨책등에서 박스로 책을 사시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숲노래 2012-06-15 13:35   좋아요 0 | URL
책이야 시간이 지나면 차츰 늘어나는걸요.
앞으로는 더 늘어날 테고요~
 

사진찍기
― 아이들은 어떤 이웃인가

 


  사진을 찍는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사진감이 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한테는 글감이 있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한테는 그림감이 있듯, 사진을 찍는 사람은 스스로 온 사랑과 믿음과 꿈을 담는 사진감이 있습니다.


  내 사진감은 ‘헌책방’입니다. 나는 1999년부터 헌책방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헌책방을 처음 다닌 때는 1992년인데, 1998년 봄과 여름에 비로소 사진을 배우고서는 가끔 헌책방 언저리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다가, 1999년이 되어 내 삶을 들일 내 사진감은 헌책방으로 삼을 때에 가장 즐겁다고 깨달았습니다. 여섯 달 즈음 이곳도 찍고 저것도 찍으며 어느 사진감을 붙잡아야 할까 하고 살폈는데, 막상 나한테 가장 즐거운데다가 사랑스러운 사진감은 가장 가까이 있는 줄 뒤늦게 알아차렸어요.


  네 식구 살아가는 시골마을에서도 내 사진감은 늘 헌책방입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헌책방을 찾아갈 일은 아주 드물어, 몇 달에 한 번 나들이를 할까 말까 싶습니다. 그래도 나로서는 내 사진감이 헌책방이라 말합니다. 어제 모처럼 헌책방마실을 하며 사진기 두 대를 기쁘게 챙깁니다. 헌책방에 닿아 홀가분하게 책을 살피며 사진을 찍습니다. 오랜만에 왔으니 신나게 찍자고 생각하려는데, 사진기 단추를 얼마 안 누릅니다. 자주 다니며 자주 찍으면 나로서도 내 사진감을 한껏 북돋운다 할 텐데, 뜸하게 다니며 몇 장 못 찍으면 내 사진감을 이래저래 북돋우기 어렵다 할 텐데, 이 모습 저 모습 닥치는 대로 찍고 싶지는 않습니다.


  시외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달려 시골집으로 돌아옵니다. 시골집에서는 언제나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아이들과 마을 곳곳을 걸어다니며 사진을 찍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부터는 어느 결에 ‘아이들’이 내 새 사진감이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던 지난날에는 아주 저절로 ‘골목길’이 내 새삼스러운 사진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을 때를 돌이키고, 골목길을 사진으로 옮길 적을 헤아립니다. 나는 언제나 내가 가장 사랑하는 모습을 내 가장 좋은 사랑을 기울여 사진으로 빚습니다. 아이들 사진을 함부로 찍지 못합니다. 우리 집 아이라 하더라도 아무렇게나 찍을 수 없습니다. 더 살피고 더 헤아리며 더 아끼는 손길로 사진을 찍습니다. 내 보금자리 깃들던 골목동네 또한 이 삶터를 사랑하며 좋아하는 눈길로 사진을 찍습니다. 골목길을 추억이나 개발이나 소외나 변두리 같은 이름표를 붙이며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내 꿈을 즐겁게 이루는 좋은 벗으로 여기는 사진감입니다.


  문득 아이를 바라봅니다. 시골마을 어디에나 흔하게 피고 지는 들꽃을 한손 가득 꺾어 손에 쥐고 놉니다. 다섯 살 아이는 묻습니다. “나는 왜 꽃을 좋아해요?” 이 아이가 여섯 살이 될 때에는 어떤 말을 물을까 궁금합니다. 열다섯 살이 되고 스물다섯 살이 되면 또 어떤 말을 물을까 궁금합니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나는 늘 아이 곁에서 아이를 사랑스레 바라보며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나 스스로 사랑하는 마음이 한결같다면, 걱정할 일도 근심할 까닭도 없겠지요. 나는 늘 내 가장 빛나는 사랑으로 우리 집 빛나는 아이 삶빛을 사진으로 옮길 테고, 드문드문 헌책방마실을 하더라도 내 가장 반가운 웃음으로 내 더없이 아름다운 헌책방 책시렁을 사진으로 아로새길 테지요. (4345.6.1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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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urquoi28 2012-06-13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어여쁩니다~
맑고 밝고 따스한 기운이 저에게로 스며듭니다..^^

숲노래 2012-06-13 23:23   좋아요 0 | URL
모든 아이들은 모두 어여쁜데,
너무 많은 어버이들은
이녁 아이들이 얼마나 어여쁜 줄을 잘 모르는 듯해요.
가만히 바라보면
날마다 얼마나 놀라운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는데요...
 


 가뭄 책읽기

 


  순천에 있는 헌책방으로 책마실을 다녀오는 길, 시골마을로 들어가는 저녁버스는 벌써 끊겼기 때문에 택시를 불러서 탄다. 택시 일꾼이 튼 라디오에서는 요즈음 가뭄이 대단하다는 이야기가 흐른다. 보령과 홍성 언저리 어디메에서는 사천 억원이나 들여 농업용수 댈 시설을 짓는다 하더니 몇 해가 지나도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보령에 지은 화력발전소가 물을 얼마나 쓰고, 이 화력발전소가 보령뿐 아니라 둘레 충청남도를 얼마나 망가뜨리는가 하는 이야기는 한 마디도 벙긋하지 못한다. 충청도에 숱하게 많은 공장과 골프장이 이 가뭄에도 물을 얼마나 펑펑 쓰는가 하는 이야기는 조금도 읊지 않는다.


  시골택시는 금세 우리 마을에 닿는다. 나는 내린다. 책으로 꽉 차 무거운 가방을 어기적어기적 메고 논 사잇길을 지나 대문을 연다. 고즈넉한 우리 마을에는 개구리 노랫소리만 가득하다. 논 사이사이 도랑을 흐르는 물줄기를 내려다본다. 지난가을부터 올여름까지 이 도랑 물줄기가 끊긴 일을 본 적 없다. 우리 마을도 이웃 마을도 이웃에 이웃한 마을도 논물이나 밭물이 모자라다고 한 적이 없다고 느낀다. 지난겨울에 비나 눈이 하도 안 와서 마늘이 걱정스러웠다는 말이 몇 차례 있기는 했으나, 이렇게 걱정할 무렵에는 으레 비가 내려 주었다. 외려 비가 너무 잦아 마늘이 걱정스럽다는 말까지 나왔다.


  전남 고흥에는 크고작은 못이 매우 많다. 마을마다 못이 어김없이 있다. 이렇게 못이 많은 시골도 드물지 않을까 생각한다. 식구들 다 함께 고흥으로 들어오고 나서 헌책방에서 ‘고흥을 이야기하는 묵은 책’을 틈틈이 찾아서 살피는데, 고흥은 먼먼 옛날에는 물이 모자라고 드문 고장이라고들 말하곤 한다. 그러나 이제 고흥에서 물이 모자라다는 말은 아무도 안 한다.


  깊은 밤을 지나고 하얗게 밝는 새벽녘, 어린 제비들 날갯짓 익히느라 마당에서 부산을 떨며 노래하는 소리를 듣는다.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1980년대까지 고흥은 20만 안팎 살았다. 모두 흙을 일구거나 고기를 잡았다. 1970년대에도 이만 한 숫자였고, 1950∼60년대에는 이보다 좀 적기는 하더라도 얼추 이럭저럭 되었다. 1990년대로 접어들고 2000년대로 접어들며 10만으로 줄더니, 2010년대에는 7만조차 안 된다. 앞으로는 훨씬 더 줄어들리라.


  고흥처럼 외진 시골마을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마치기 무섭게 도시로 떠난다. 도시로 한 번 떠난 아이들은 좀처럼 시골로 돌아올 생각을 않는다. 대학교를 다닌다는 핑계와 일자리를 찾았다는 까닭을 들며 모두 도시에서 문명과 물질을 누리느라 바쁘다. 돈을 벌어 돈을 쓰느라 바지런을 떤다.


  고흥에는 골프장이 없다. 고흥에는 변변한 공장 하나 없다. 포스코에서 포항제철과 광양제철 전기를 댈 발전소를 짓는다며 고흥을 들쑤시기는 하나, 고흥은 온통 흙과 바다에 기대는 시골인 터라 발전소하고도 동떨어지고, 어떤 개발이나 관광하고도 멀찍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고흥에서 먹는샘물 파겠다며 땅속에다가 구멍을 크게 뚫는 일도 없다.


  도시사람은 제주섬에다 구멍을 큼직하게 뚫고는 ‘제주 삼다수’를 아주 싼값으로 사다 마신다. 도시사람은 제주섬 곳곳에 골프장을 만들고는 농약과 물을 아주 어마어마하게 쓴다. 도시사람은 제주섬으로 나들이를 다니며 호텔이나 여관에서 물을 아주 펑펑 쓴다. 제주섬은 예부터 물이 드물며 물을 몹시 아끼는 곳이라 했지만, 오늘날 제주섬에서 물을 아끼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오랜 붙박이 흙일꾼 말고 제주섬에서 물을 누가 아낄까.


  깊은 밤이 되어도 깜깜하기만 한 시골 고흥에서는 전기 쓸 일이 매우 드물다.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는 ‘냉각기’를 써야 하기에 물을 엄청나게 써댄다. 물건을 만들어 도시로 보내는 공장은 물을 어마어마하게 써댄다. 도시사람이 운동 삼아 다닌다는 골프장은 물을 억수로 써댄다. 숲과 멧자락을 밀어 마련하는 고속도로와 고속철도와 아파트는 이 둘레를 메마른 벌판으로 바꾼다.


  곧, 가뭄이 든다 하면, 온통 도시 때문이다. 도시사람이 쓸 물건을 만드느라, 도시사람이 쉰다는 골프장을 건사하느라, 도시사람이 ‘깨끗한 물을 값싸게 사다 마시’도록 시골 한복판에 구멍을 뚫어 물을 퍼내느라, 도시사람이 자가용과 버스와 전철을 타고 돌아다니느라, 여기에 시골로 관광 다니는 사람들이 호텔이나 여관에서 물을 펑펑 써대느라, 시골에 가뭄이 들밖에 없다. 또 하나, 도시사람은 시골사람이 흙에서 거둔 곡식이나 ‘시골에서 키우는 고기짐승’을 돈을 치러 사다 먹는다. 곡식이든 짐승이든 물을 먹어야 자란다. 도시사람이 여느 살림집에서 수도꼭지를 더 튼다 해서 물을 더 흘리지 않는다. 도시라는 얼거리가 온 나라를 가뭄이 들게 할 뿐 아니라, 어느 시골마을은 아주 끔찍하게 메마른 땅이 되도록 내몰고 만다.


  가뭄이라 한다. 그러면, 도시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지?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가뭄을 그으려면 도시사람은 어떤 일을 해야 하지? 신문에 글을 싣고 방송에서 말을 보태면 가뭄을 적실 수 있을까? 바보스러운 공무원을 탓하고,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면 가뭄이 사라질 수 있을까? (4345.6.1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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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urquoi28 2012-06-13 19:21   좋아요 0 | URL
도시사람으로
무지해서 저지른 악행들을 뉘우칩니다.
생각없고 어리석고 부끄럽고 뻔뻔했음을...

숲노래 2012-06-13 19:49   좋아요 0 | URL
에구... '나쁜 짓'을 뉘우칠 까닭은 아무한테도 없어요.
무엇이냐 하면요,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즐거운가'를 생각해야 해요.
내가 참말 즐겁게 살아가면서
내 이웃도 즐거이 어깨동무하며 웃는 삶인가를
찬찬히 돌아볼 수 있으면 돼요.

이런 삶은 '뉘우침'도 '자아비판'도 아니에요.
좋은 꿈과 사랑을 나눌 길을
스스로 내 삶에서 빛내자는 소리예요 ....

pourquoi28 2012-06-13 20:21   좋아요 0 | URL
그래도 저는 먼저 뉘우쳐야 해요.
된장 님의 글과 사진을 읽거나 보고 있으면
저의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가짜를 벗겨내고
진짜만을 내 안에 담아내는 모습에서 느낌이 많아요
 


 송림공부방 소식지와 둘째 아이 (도서관일기 2012.6.10.)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서재도서관 넷째 교실을 갈무리하면서 내 오래된 물건과 예전 신문글과 여러 가지 물건을 들여다본다. 다른 세 교실은 내 책들로 꾸미고, 넷째 교실은 내 물건과 묵은 신문과 온갖 자질구레하다 싶은 물건으로 꾸민다. 어찌 보면 참 자질구레하달 수 있는데, 이 자질구레한 짐을 이제껏 끌어안고 용케 살았다. 짧으면 서너 해짜리 자질구레한 물건이요, 길면 스무 해가 넘는 자질구레한 물건이다. 어느 물건은 내 국민학생 때 것이니까 서른 해를 묵었고, 어느 물건은 내 아버지 것이니까 마흔 해를 묵기도 한다. 우리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스무 살 즈음 된다면, 이즈막에 건사한 자질구레한 물건조차 그무렵에는 스무 해나 묵은 어떤 이야기가 되겠지. 스무 해 뒤에는 내 아버지 물건은 우리 아이들한테 예순 해 묵은 할아버지 이야기가 될 테고.


  그런데 이런저런 자질구레하다는 물건은 쓰레기통에 넣으면 그냥 쓰레기이다. 따로 건사해서 상자에 담아, 살림집 옮길 때마다 낑낑대며 지고 날랐으니 쓰레기 아닌 어떤 삶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된다.


  오늘은 어느 해묵은 상자에서 인천 송림동에 있던(또는 아직 있는) ‘송림공부방’ 소식지 하나 나온다. 〈솔밭아이들〉이라 이름붙은 이 소식지를 낸 공부방은 2012년에도 그대로 살았을까. 1988년이나 1989년에 공부방 교사가 등사판으로 만들어 나누던 소식지였을 텐데, 어떻게 이 소식지가 내 자질구레한 물건 사이에 깃들 수 있었을까. 일손을 멈추고 한참 들여다본다. ‘4332.4.18.해.창영동 아벨서점’이라 적은 글월이 있다. 곧, 내가 이 소식지를 4332년, 이른바 1999년에 인천 배다리 헌책방 〈아벨서점〉에서 장만했다는 소리인데, 아마 이 공부방에 아이를 보낸 어느 집에서 이런저런 책과 함께 이 소식지를 묶어 밖에 내놓아 헌 물건으로 버렸다가 이래저래 흐르고 흘러 헌책방까지 들어왔겠지. 신문이나 잡지와 함께 묶여 폐휴지로 버려졌을 작은 소식지인데, 이런 작은 소식지 하나 알뜰히 건사해 헌책방 책시렁 한쪽에 얌전히 꽂아 주었기에, 나는 이 작은 소식지를 고마우면서 즐겁게 돈 몇 푼 치러 장만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소식지는 앞으로도 오래오래 이어지면서 인천과 인천 송림동과 인천 송림동 송림공부방을 떠올릴 누군가한테 좋으면서 애틋하고 그리우면서 반가운 이야기 한 자락으로 스밀 수 있겠지.


  한참 소식지를 들여다보다가 아이들 웃음소리가 나기에 골마루를 바라본다. 둘째 아이가 뚜벅뚜벅 어설피 걸음을 옮긴다. “아버지, 보라가 걸어요.” 하고 첫째 아이가 말한다. 돌날에는 그토록 걸어 보라 해더 안 걷더니, 돌을 지나고부터 제법 씩씩하게 여러 걸음 뗀다. 그래, 신나게 걸으렴. 씩씩하게 걸으렴. 머잖아 뛰고 달리면서 네 누나하고 훨훨 하늘도 날아다니면서 온누리를 사랑으로 보살펴 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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