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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쁜 꽃과 나무와 풀을 읽어요

 


  마당 한켠 후박나무에 꽃봉우리가 활짝 터진 첫날부터 후박꽃 사진을 찍습니다. 날마다 찍은 사진 가운데 어제 찍은 사진이 가장 어여쁘다고 느낍니다. 바람이 한 점조차 없이 아주 고요한 날 아침, 후박꽃이며 후박잎이며 그예 멈춘 듯 꽃내음과 풀내음을 나누어 줍니다. 둘째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죽을 먹이다가 사진기를 들어 한손으로 찍습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첫째 아이가 막 태어나 우리하고 함께 살아가던 때, 나는 첫째 아이가 아직 걸음을 못 떼던 무렵이든 한창 잘 걷던 무렵이든 제법 자란 무렵이든 날마다 안거나 업거나 걸리거나 하면서 골목마실을 여러 시간 다녔습니다. 이때에 늘 한손으로 아이를 안고 다른 한손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내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내 어버이 집을 떠나 혼자 살며 신문배달을 하던 때를 곰곰이 돌이킵니다. 그무렵 나는 자전거를 몰며 신문을 돌렸습니다. 왼손으로 자전거 손잡이를 붙들고 오른손으로 바구니에서 신문을 한 장씩 꺼내어 손가락 두엇을 재게 놀리며 반으로 접은 뒤, 오른손으로 반 접은 신문을 허벅지에 탁 퉁기고는 다시 첫째손가락이랑 둘째손가락을 놀려 반을 더 접고는 손아귀로 신문을 집어들고는 손목힘으로만 휙 던져 골목집 대문 위쪽 틈을 지나 안쪽 문간에 톡 떨어지도록 했습니다. 마땅한 노릇인데, 자전거를 달리며 이렇게 신문을 꺼내고 접고 던지고 했습니다. 때로는 어깨힘을 쓰기도 하는데, 2층이나 3층에 넣어야 할 때입니다. 웬만한 2층집은 자전거를 달리며 그냥 넣을 수 있고, 3층집이라면 자전거를 멈추어 올려 던집니다. 모르는 노릇인데, 아이 안고 한손 사진찍기를 할 수 있던 밑힘이라면, 한손으로 자전거 몰며 한손으로 신문 접어 넣기를 여러 해 하며 차근차근 쌓였을 수 있겠다 싶어요.


  살아가는 나날이 생각하는 나날입니다. 생각하는 나날이 사랑하는 나날입니다. 사랑하는 나날이 꿈꾸는 나날입니다.


  날마다 후박꽃 사진을 새롭게 찍으며 생각합니다. 이 어여쁜 후박꽃을 날마다 보는 동안 내 마음 또한 흐드러지게 활짝 피는구나 싶습니다. 내 눈이 어여쁜 후박꽃 아닌 얄궂은 사건사고 신문글에 얽매인다면 내 마음 또한 얄궂은 생각과 정보와 지식으로 가득 차겠구나 싶습니다.


  어여쁜 아이들 어여쁜 웃음꽃을 늘 바라보는 사람한테는 어여쁜 웃음꽃이 시나브로 피어나기 마련이라고 느낍니다. 제아무리 정치부 기자라고 하더라도, 언제나 정치꾼하고 가까이 지내며 취재를 하고 글을 쓰며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 한다면, 이녁 눈길과 머리와 가슴에는 정치꾼하고 엇비슷한 생각이나 지식이나 정보가 쌓이겠지요.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면서 자동차하고 가까이 사귈밖에 없습니다. 아파트에서 살아가며 아파트하고 가까이 지낼밖에 없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텔레비전에 익숙해질밖에 없습니다.


  꼭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보아야만 알지 않아요. 푸른 숲 우거진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던 사람은 으레 도시살이를 힘들어 합니다. 노상 푸른 숲을 그리고 정갈한 시골을 바랍니다. 이때에도 참 마땅한 노릇인데, 숲삶이 몸에 깊이 밴 사람한테는 도시살이가 어울리거나 즐거울 수 없어요.


  자가용을 늘 타는 사람은 두 다리로 걷는 일이 낯설거나 새삼스럽거나 새롭겠지요. 그러나 다시 자가용으로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자가용이 익숙하거든요. 언제나 전철을 타던 사람은 자가용을 타면 좀 낯설거나 새삼스럽거나 새롭기 마련입니다. 택시만 타더라도 낯설거나 새삼스럽거나 새롭습니다. 다시 전철을 타면 익숙한 냄새와 느낌이 새록새록 피어나겠지요.


  나 스스로 가장 좋아할 만한 가장 어여쁜 꽃과 나무와 풀을 바라보며 즐겁게 읽고 사랑스레 사귀어 봅니다. 나는 내 마음을 온통 어여쁜 꿈과 이야기로 채우고 싶습니다. 나 스스로 가장 아낄 만한 살붙이하고 가장 포근한 보금자리에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나는 내 생각과 가슴과 머리에 가장 빛나며 맑은 꿈과 이야기를 누비고 싶습니다. 예쁜 후박꽃을 예쁜 손길로 담고 싶습니다. 예쁜 후박꽃 사진을 예쁜 이웃한테 보여주고 싶습니다. (4345.4.3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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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지기 뜨개 책읽기

 


  여러 날을 들여 옷가지 한 벌 뜨는 마음은 어떠할까 헤아립니다. 곰곰이 헤아리기보다는 나 스스로 실과 바늘을 놀려 한 가지라도 뜰 때에 온몸으로 잘 알 수 있겠지요. 밭에서 돌을 고르고 이랑이랑 고랑을 낸 다음 씨앗을 심는 일 또한, 나 스스로 땀을 흘리고 품을 팔며 겨를을 기울일 때에 온몸으로 잘 알 수 있습니다. 곁에서 지켜보거나 책으로 읽는다 한들 하나도 알 수 없어요.


  설거지를 하든 빨래를 하든 무엇을 하든, 어떤 일이거나 스스로 할 줄 아는 사람은 즐겁습니다. 이런 일 저런 일을 하기 힘든 아픈 사람은 그저 마음속으로 헤아릴 뿐입니다. 누군가한테는 길을 걷는 일이 아무렇지 않습니다. 그냥 걸을 뿐입니다. 누군가한테는 두 다리로 서는 일조차 꿈만 같습니다. 마음속으로 서고 마음속으로 걷는 사람이 있어요. 누군가한테는 앉는 일마저 꿈이요, 언제쯤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자리 털고 일어날 꿈마저 없는 채 지내기도 하겠지요.


  졸린 아이를 무릎에 누여 재우다 보면 이윽고 팔다리 등허리 모두 저립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리에 예쁘게 누워 잠들면 얼마나 좋으랴 싶지만, 이런 생각 저런 마음이란 퍽 배부른 소리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무릎에 누일 수 있는 나날이란 더없이 좋으며 즐거운 삶이거든요. (4345.4.2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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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5-01 10:41   좋아요 0 | URL
옆지기님이 뜨게질 고수시군요 와우 근사합니다

숲노래 2012-05-01 10:51   좋아요 0 | URL
고수는 아니에요.
이것 뜨는 데에 이레쯤 걸렸거든요... @.@

그냥 즐겁게 뜰 뿐이랍니다~~
 


 지도 책읽기

 


  길을 그린 길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길을 둘러싼 마을과 숲과 들과 내를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길그림을 들여다본대서 길을 둘러싼 마을과 숲과 들과 내가 얼마나 푸르거나 빛나거나 아름다운가까지 환하게 깨우치지는 못합니다. 몸으로 느낄 때하고 마음으로 느낄 때는 다르니까요. 그렇지만,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면, 몸으로 느끼기 앞서 얼마나 아름답거나 좋거나 즐거운가를 한껏 받아들입니다.


  길을 그린 길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흐뭇하지 못하다면, 막상 내 몸으로 부대끼며 바라보더라도 그닥 흐뭇하지 못하기 일쑤라고 느낍니다. 먼저 마음으로 즐겁게 사귀거나 만나지 못했기에, 몸으로 부대낄 때에도 썩 내키지 않거나 그리 반갑지 못해요.


  왜 그러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어느 날 문득 깨닫습니다. 아하, 나는 길그림으로 척 볼 때에 몹시 서늘하거나 메마르거나 차갑다 싶은 도시라 할 때에는, 마음부터 내키지 않아요. 온통 딱딱하게 수평 수직으로 금을 긋거나 갈라 아파트를 세운 동네 길그림을 보면 무시무시하거나 무섭기까지 해요. 구불구불 온갖 골목집 흐드러진 동네 길그림을 보면 아기자기 앙증맞으며 재미나요. 한들산들 여러 시골집 하나둘 깃든 마을 길그림을 보면 슬며시 웃음이 나며 꼭 찾아가서 한갓지게 지내며 천천히 들길이나 고샅을 거닐고 싶어요.


  몸으로 찾아가기 앞서 마음으로 찾아갑니다.


  아, 불현듯 한 가지 옛일 떠오릅니다. 당신 아이들한테 따숩게 말 걸기를 거의 못하던 내 아버지가 들려준 말이었는지, 아니면 가난한 학교 가난한 아이들한테 꿈만큼은 크게 부풀려 꾸라고 하던 가난한 교사가 들려준 말이었는지, 내 열 살 안팎이던 어린 날, 누군가 ‘지도 여행’을 들려주었습니다.  지도를 펼치고는 마음속으로 이 나라 이 마을에 내가 있다고 그리면서 내가 이 나라 이 마을을 걷는다고 꿈을 꾸라 했어요.


  나는 우리 나라 골골샅샅 구비구비 걸어다녔습니다. 다만, 마음속으로. 나는 지구별 숱한 나라 골골샅샅 구비구비 돌아다녔습니다. 그저, 마음속으로.


  나는 우리 네 식구 보금자리를 찾을 때에도 길그림을 쫙 펼치고는 이 나라 골골샅샅 구비구비 걸어다니고, 자전거를 몰았습니다. 마을을 둘러싼 숲을 생각하고, 마을을 이루는 시골집을 헤아리며, 마을과 하나되는 들판과 멧자락을 그렸습니다. (4345.4.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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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구리에 책을 끼고 달팽이 바라보다

 


  달팽이를 바라본다. 물기가 있는 곳에서 살아가는 달팽이를 바라본다. 달팽이는 아주 느리게 긴다. 아무래도 내 눈길로 바라보니까 느리게 기는 셈일 테지만, 내 넋이 달팽이 되어 달팽이 몸으로 헤아리자면 느리거나 빠른 기어가기가 아닌, 내 삶에 걸맞게 움직이는 나날이 될 테지.


  아이가 옆구리에 책을 끼고는 가만히 고개를 숙인다. 무얼 할까. 아이가 한참 이러더니 나한테 묻는다. “이게 뭐야?” “어디?” “이거.” “이게 뭔데?” “여기.” 나도 한참 찾는다. 아이가 무얼 가리키는가 알 수 없다 싶을 무렵, 비로소 자그마한 달팽이를 알아본다. 나도 아이처럼 허리를 폭 숙이고 바라보았으면 금세 알아보았을까. 먼저 허리를 폭 숙이지 않고 선 채로 어른 키높이로 두리번두리번 할 때에는 알아볼 수 없을까.


  달팽이는 몸을 옹크린다. 누군가 저를 쳐다보는 줄 아는구나 싶다. 땡볕을 고스란히 받는 자리에 있네. 이 길을 가로지르다가 그만 아이 눈에 걸린 듯하다. 우리가 두 다리로 천천히 걸아다니기에 달팽이를 알아본달 수 있지만, 두 다리로 걸어다니더라도 앞만 바라본다면 달팽이를 픽 밟아 죽였어도 못 느낄 수 있겠지. 자동차를 탄 사람은 달팽이를 볼 일도 없지만, 자전거로 찻길만 싱싱 내달릴 때에도 달팽이를 볼 일이 없다. 몸을 낮출 뿐 아니라, 삶을 자연하고 맞출 때에, 비로소 달팽이가 제 몸뚱이를 우리한테 드러내어 ‘이보라구, 나도 좀 바라보라구, 나하고 동무하며 천천히 삶을 즐기자구.’ 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라 느낀다.


  아이는 이제 달린다. 책을 옆구리에 낀 채 달린다. 마치, 내가 신문배달 일을 하며 먹고살던 때 모습과 같다. 내가 중학생 때에 신문배달을 하던 모습이 이와 같았을까. 내가 신문배달 일을 하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준 사람은 없으나, 우리 아이를 바라보다가 이 아이가 살아가는 모습이 온통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하나하나 아로새겨지듯 드러나 보인다고 깨닫는다. 착하고 옳으며 예쁘게 살아가며, 아이도 착하고 옳으며 예쁜 꿈을 꾸도록 보듬자고 새삼스레 생각한다. (4345.4.2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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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4-27 13:23   좋아요 0 | URL
걷기의 좋은 점을 저는 체험으로 알고 있어요. 요즘 매일 한 시간씩 걸어요. 일주일에 여섯 번 정도로요. 차를 탔다면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되고, 차를 탔다면 느끼지 못한 것을 느끼게 되지요. 계절의 날씨와도 직접적으로 만나는 시간이 걷는 시간이 아닌가 생각해요. 사색의 시간으로도 좋아요.

걷는 운동을 한 지가 7년 넘었는데, 이젠 중독의 수준이에요. 안 걸으면 걷고 싶어지지요. 운동을 따로 하더라도 걷기는 필수인 것 같아요. 건강에 제일 좋대요. 걸으면서 집집마다 어떻게 생겼는지 살펴보는 것도 재밌어요. ㅋ

숲노래 2012-04-27 15:06   좋아요 0 | URL
오오, 요즈음 걸어다니며 마음을 살찌우기 아주 좋겠어요.
좋은 날은 좋은 바람을 느끼고,
궂은 날은 궂은 비바람을 느끼며
걷는 아름다움을 마음껏 누리시는군요!
 


 책들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2.4.26.

 


  책을 장만한다. 책을 읽는다. 책꽂이를 장만한다. 책을 꽂는다. 글을 쓴다. 책을 묶는다. 책을 내놓는다. 사람들은 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헤아려 본다.


  도서관 들머리 자리에 내 책들을 꽂아 본다. 내가 읽던 책을 먼저 꽂고, 내가 쓴 책은 나중에 상자에서 끌른다. 어쩌면, 나는 내 책을 살짝 푸대접한 셈이었을까. 나부터 내 책을 아껴야 할 노릇일까.
  튼튼하고 커다란 책꽂이 넷을 들이니 퍽 보기 좋으며 야무지구나 싶다. 즐겁다. 책을 만지는 손이 즐겁고, 책내음이 배는 손이 즐겁다. 이 손으로 낮에는 흙을 만지고, 저녁에는 책을 만지며, 온 하루 살붙이들 살결을 만질 때에 더없이 즐거우리라 생각한다.


  좋은 삶을 생각하자. 아니, 내가 즐길 삶을 생각하자. 아이들과 즐겁게 누릴 삶을 생각하자. 옆지기와 아름다이 이룰 보금자리를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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