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구나 글 한 조각

 


  시를 쓰는 박노해 님이 내놓은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느린걸음,2010)를 읽는다. 날마다 예닐곱 꼭지씩, 때로는 열다섯 꼭지나 스무 꼭지씩 읽는다. 아침에 〈무엇이 남는가〉를 읽다가 오래도록 생각에 잠긴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공 하나씩 쥐며 뛰논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로 접어들려는 따사롭고 시원스러운 나날, 좋은 숨결 느끼며 좋은 풀벌레 노랫소리를 듣는다. 나도 아이들도 모두 싱그럽다. 박노해 님은 시를 쓰며 노래한다. “정치가에게 권력을 빼 보라 / 무엇이 남는가” 하고 노래한다. 이윽고 “나에게 사랑을 빼 보라 / 나에게 정의를 빼 보라 // 그래도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면” 하고 노래한다.


  나한테 책을 뺀다면, 나한테 집안일을 뺀다면, 또 나한테 사랑을 빼고 꿈을 뺀다면, 나는 무엇이 될까. 나한테 뺄 만한 권력이나 돈이나 직위나 이름이 있을까 헤아려 본다. 나한테 연필을 빼거나 사진기를 뺀다면, 또 나한테 자전거를 빼고 기저귀를 빠는 손을 뺀다면, 나한테 무엇이 남을까. 아니, 이것저것 모두 빼더라도 나는 오롯한 나로서 남을 수 있을까. 나한테서 모든 것을 송두리째 뺀다 하더라도 나는 참다운 알맹이로서 남을 수 있을까.


  나를 느끼는 글을 쓰며 내가 아름답다고 느낀다. 나를 느끼도록 이끄는 글을 읽으며 나와 이웃과 삶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아이들은 놀고 놀며 또 논다. 이것을 만지고 저것을 줍는다. 여기에서 땀을 내고 저기에서 땀을 쏟는다. 바람은 아이들 이마를 간질인다. 아이들은 땀을 흠뻑 쏟다가 바람이 산들산들 어루만지는 손길을 누리며 땀을 말끔히 씻는다.


  이제 밥을 안쳐야지. 이제 국을 끓여야지. 이제 풀물을 짜서 식구들 다 함께 마셔야지. 이제 짐을 꾸려 충청도 음성에서 살아가는 할아버지한테 생일 축하한다는 인사를 하러 길을 나서야지. 이제 마알간 햇살 곱게 누리며 숲길을 달리는 군내버스를 타야지. (4345.9.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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