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잠자리놀이 : 으레 틈이 없어서 이런 놀이를 하기 어렵다고 여기지만, 서울 한복판에서도 마음으로 잠자리라든지 새를 부르면 어느새 곁으로 찾아와서 어깨에 내려앉는다든지 손바닥에 앉힐 수 있다. 다만 ‘놀이’로만 불러야지, ‘시험’을 한다든지 ‘자랑’을 한다든지 하려는 생각이 아주 터럭만큼이라도 있으면 이 아이들은 찾아오지 않는다. 손바닥에 잠자리나 나비나 벌이나 풀벌레나 새를 앉히는 놀이란 무엇일까. 마치 흙물이 가라앉듯 몸이며 마음을 고요하게 두면, 어느새 어느 아이라도 우리 머리에 어깨에 팔에 손가락에, 때로는 마당에 가만히 엎드린 발가락에 내려앉는다. 이때에 마음으로 이야기를 한다. “오늘은 무엇을 보았니?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니?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니?” 2019.9.20.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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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듬쟁이였어 : 말을 더듬는 어린 나날을 보냈다. 그래서 나한테 나빴을까? 잘 모르겠다. 하나는 알 수 있으니, 말더듬이로 살아온 터라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마을 할아버지가 천자문을 가르쳐 주고 난 뒤에, 내가 더듬는 말씨는 거의 한자말인 줄 알았고, 쉬운 한국말은 말더듬이도 소리를 내기 쉬운 줄 깨달았다. 고등학교를 다닐 적에는 버스도 사람도 차도 거의 없는 새로 세우는 아파트마을로 집을 옮긴 바람에 날마다 네 시간 남짓 이 호젓한 길을 걸으면서 말더듬이로도 소리가 새지 않고 말할 수 있도록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살았다. 짧은 혀에 더듬는 내 나름대로 소리를 알맞게 내거나 조곤조곤 말하는 길을 스스로 지었다. 내가 혀도 안 짧고 더듬쟁이가 아니었으면 어떤 길이었을까? 아마 나는 말 한 마디나 글 한 줄을 대수로이 여기지 않는 어린 나날을 살았을 테고, 말더듬으로 따돌림질이나 괴롭힘질을 받지 않았을 테며, 이렇게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동무나 어른들이 얼마나 한 아이를 들볶을 수 있는지 몰랐을 테며, 그 가시밭길을 견디거나 떨치는 길을 스스로 찾거나 알아내지 않았을 터인데다가, 한국말하고 얽힌 수수께끼를 풀 실마리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을 만하지 싶다. 나쁘거나 좋은 일은 없지 싶다. 그저 바람처럼 흐르고 물결처럼 지나간다. 2019.10.11.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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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이란 그렇다 : 빚이란 ‘갚아야 할 돈’일까. 어느 모로 보면 그렇다. 그렇지만 빚이란 ‘갚아야 할 돈’이기 앞서 ‘우리가 즐겁게 쓰려고 고맙게 받는 돈’이요, 빚을 내주는 쪽도 ‘즐겁게 쓰이도록 기꺼이 내놓는 돈’이었지 싶다. 그러지 않고서야 ‘빚·빛’ 두 마디가 이렇게 닮은꼴로 다른 낱말일 수 없겠지. 빛이 되는 빚이었는데, 그만 우리 스스로 이 결을 잊는 바람에 이 마음까지 잃었지 싶다. 주는 쪽도 받는 쪽도 스스럼없이 누리며 나누고, 앞으로 새롭게 돌려주도록 하는 돈이나 손길이기에 빚이요 빛일 테지. 그래서 빚은 다그쳐서 받지 않는다고 했다. 빚을 줄 적에는 아낌없이 내준다고 했다. 주는 쪽도 빛이 되고 받는 쪽도 빛이 되기에 빚이라고 하는 것을 서로 짊어져 왔으리라. 2019.10.14.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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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 2017년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이란 책을 쓴 적 있다. 이 책에 붙인 이름 “살림 짓는 즐거움”이 무엇인가 하면 “성평등으로 가는 즐거움”이요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즐거움”이란 뜻. 굳이 딱딱한 한자말이나 영어를 쓰고 싶지는 않았기에 “살림 짓는”이란 말을 살며시 넣었다. 그렇지 않은가? 이름이란 우리가 사랑으로 살아가며 붙일 적에 싱그러이 살아나잖은가? “아기 똥기저귀를 손빨래하는 아저씨”라 해도 넉넉히 ‘페미니즘’을 나타낼 만하다. “가시내는 바지, 사내는 치마 누리는 즐거움”이라 해도 재미나게 ‘페미니즘’을 드러낼 만하다. 틀을 깨면 새말이 깨어난다. 틀을 그대로 품으면 새말이 깨어나지 않기도 하지만, 우리 마음에는 ‘죽은말’만 감돌아 시커멓게 타들어 간다. 왜, 김국환 아저씨도 노래하지 않았는가, “우리도 접시를 깨자” 하고. 깨야 깨어난다. 깨지 않고서 깨달을 수 없다. 깨뜨리기에 비로소 깨친다. 참사랑을 가리는 모든 낡은 말씨를 와장창 깨부수고 아름답게 피어날 사랑으로 새말을 짓자. 2019.10.14.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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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 내가 쓰는 사전에 ‘페미니즘’이란 낱말을 어떻게 풀이해서 실으면 좋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실마리가 매우 쉽게 나온다. 이 영어를 쓰네 마네 하고 가를 까닭은 없다. 길을 보여주면 된다. 새로운 길을 즐겁게 나아가며 스스로 꽃이 되는 생각을 북돋울 말씨를 보여주면 넉넉하다. 2019.10.14. ㅅㄴㄹ


[숲노래 사전] 페미니즘 → 어깨동무. 어깨사랑. 어깨살림. 참사랑. 참살림. 꽃사랑. 꽃살림. 함께 일하기. 함께 애쓰기. 같이 놀기. 같이 힘내기. 서로 손잡기. 곱게 하나되기. 즐겁게 하나되기. 마음동무. 사랑동무. 살림. 같이 짓는 살림. 같이 짓는 삶. 다같이 가꾸는 삶. 다함께 가꾸는 살림. 서로 아끼는 하루. 서로서로 돌보는 길. 서로사랑. 참다운 사랑. 사랑. 페미니즘이란, 가시내랑 사내가 참다이 살림을 사랑하는 슬기로운 사이가 되기를 바라는 뜻을 나타내기에, 이 결 그대로 ‘참사랑’이나 ‘참살림’ 같은 말로 담아낼 수 있다. (femi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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