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퇴근길 책집 :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책집이 있다면, 마음에 새롭게 기운을 북돋우며 저녁별을 만난다. 하루를 열며 집을 나서는 길에 골목꽃하고 눈을 맞춘 다음 골목나무를 쓰다듬고서 구름송이한테 손을 흔든다면, 마음에 즐겁게 기운을 끌어내며 아침해가 반갑다. 붐비는 버스나 전철이라서 고단하지 않다. 사람 발길 없는 숲이라서 호젓하지 않다. 언제 어디에 있든 어떤 눈빛이 되어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열고 닫느냐에 따라 다르다. 2001.3.5.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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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밥 : ‘좋은 밥’을 잔뜩 먹어도 ‘바람·해·물’을 누리지 못하면 몸이 아프다. ‘바람·해·물’을 누리면 ‘아무 밥덩이’가 없어도 튼튼하다. 서울 한복판에 살면서 ‘좋은 밥’을 아무리 찾아나선들 몸은 아프기 마련이다. 서울 한복판에 살더라도 ‘바람·해·물’을 제대로 누리는 길을 찾고 생각하고 가꾸고 짓고 돌보면서 나눌 적에는 누구나 튼튼하다. 시골에서 살지만 ‘좋은 밥’만 살필 뿐 ‘바람·해·물’을 헤아리지 않으면 여느 서울내기처럼 똑같이 아플 테지. 우리 몸은 밥덩이가 아니라 ‘바람·해·물’을 바란다. 우리 몸은 ‘좋은 밥’이 아닌 ‘바람·해·물’을 받아들이면서 아름다이 피어난다. 구태여 밥을 먹고 싶다면 ‘좋은 밥’이 아니라 ‘사랑으로 지은 밥’을 먹거나 ‘어떤 밥덩이라도 사랑으로 맞아들여’서 누릴 노릇이다. 1994.9.12.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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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진실 또는 사실 : 언론하고 손을 잡고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믿지 않은 지 꽤 된다. 언론에서 제대로 삶결을 헤아리면서 글이나 사진으로 짚은 적이 얼마나 될까? 아리송하다. 사람들은 ‘참·속모습(진실)’을 보려 하지 않더라. ‘수다거리’를 찾아서 헤매더라. 그러나 조금이나마 ‘겉모습(사실)’ 몇 조각이라도 ‘구경’하는 사람이 늘기를 빌 뿐이다. 그동안은 ‘참·속모습(진실)’은커녕 ‘겉모습(사실)’조차 볼 길이 없도록 언론놀이가 판친 셈이니까. 2002.9.26.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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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책꽂이 : 서울 홍제동에서 헌책집지기로 열일곱 해를 일하다가 그만두고서, 아파트 지킴이 일을 했고, 이즈막에는 박물관 지킴이로 자리를 옮긴 분이 있다. 그분이 책집지기를 그만둔 지 여러 해 지났고, 그분 아들은 여섯 살이라고 한다. 하루하루 지난다. 그분이 아버지 헌책집하고 함께 쓰던 이름을 내려놓고 그분 나름대로 새로 지은 책집 이름은 〈기억속의 서가〉이다. 그분이 이 책집 이름을 처음 지어서 사업자등록을 새로하던 날을 떠올린다. 책집지기로 해맑게 웃음지을 줄 아는 숨결이 흐르는 이름 한 줄. 문득 이 이름이 다른 말로는 무엇을 뜻하는가를 느낀다. ‘마음책꽂이’로구나. ‘마음책꽂이’라는 책집 이름이로구나. 2020년에 열세 살인 우리 집 큰아이하고 열 살인 작은아이가 “아버지, ‘기억속의 서가’가 무슨 뜻이야?” 하고 물어본다면 “응, 그 이름은 ‘마음을 담은 책꽂이’인 ‘마음책꽂이’를 가리켜.” 하고 들려주어야지. 2020.9.27. ㅅㄴㄹ





[책숲마실 파는곳]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68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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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러는 글을 안 읽는다 : ‘비평·서평’을 하는 사람도 책을 안 읽는다고 느끼는데, ‘악플’을 붙이는 이는 더더구나 책을 안 읽지 싶다. 그리고 ‘비평·서평·악플’을 다는 이들은 참말로 책을 사지도 읽지도 않다고 느낀다. 나는 늘 책을 사서 읽고 느낌글을 쓰기에 비평도 서평도 악플도 할 까닭이 없다. 책느낌글은 비평이나 서평이 아니다. 느낌글은 스스로 삶에 비추어 느끼는 대로 쓰는 글이다. 느낌글은 스스로 살아오며 느끼는 사랑을 풀어놓는 글인 터라, 때로는 기쁜 빛을 때로는 슬픈 빛을 때로는 아픈 빛을 때로는 신나는 빛을 때로는 짜증스러운 빛을 때로는 놀라는 빛을 때로는 배우는 빛을 때로는 가르치는 빛을 드러낸다.


비평을 하는 이는 밥벌이로 쓰는 터라, 웬만해서는 책을 살 겨를이 없기도 하거니와, 틀에 맞추어 치켜세우느라 바쁘다. 비평을 해서 논문을 쓰고, 논문을 써서 교수나 강사란 자리를 지키려 하다 보니, 비평에는 글쓴이 느낌이 하나도 없으면서 알쏭달쏭한 번역 말씨·일본 말씨에 갖은 바깥말이랑 한자말이 춤추기 일쑤이다.


서평을 쓰는 이는 으레 책을 거저로 받는다. 마음을 살찌우려고 읽기보다는 어느 책을 간직하고 싶어 출판사에서 보내는 책을 받아서 쓰는 서평은 비평 못지않게 어느 책을 치켜세우느라 바쁘다. 서평단이 되고 보면 이 책도 저 책도 간직하고 싶은 터라, 치킴글(주례사 서평)이 넘치고, 이 치킴글도 저 치킴글도 매한가지이다.


그런데 ‘비평·서평’은 그나마 글님이나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거저로 받아보더라도 책을 좀 훑고라도 글을 쓰는데, 악플은 아예 책을 거들떠보지도 않고서 쓴다. ‘비평·서평’은 그나마 “나는 저 책을 놓고 이렇게 읽은 척하면서 글을 보란 듯이 남겼지!” 하고 자랑하려는 마음이라면, 악플은 “너 따위는 나한테 밉보이면 내 손에 아작날 줄 알아!” 하고 윽박지르려는 마음이다.


‘비평·서평·악플’은 모두 텅텅 빈 마음에서 비롯한다. 스스로 제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비평·서평·악플’ 가운데 어느 한 갈래로도 안 간다. 스스로 제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즐겁게 어느 책을 장만하고, 기쁘게 읽으며, 스스로 하루를 짓는 슬기로운 숲빛다운 사랑으로 느낌글을 쓴다. 나는 생각한다. 나부터 느낌글을 쓸 생각이면서, 우리 이웃님 누구나 즐겁게 하루를 노래하면서 ‘오직 느낌글을 쓰기’를 바란다. 2020.9.21.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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