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종이나라 : ‘그림책심리코칭지도사’란 자격증이 있는 줄 처음으로 알고 깜짝 놀랐지만, 이내 마음을 다스린다. 빵을 굽고 밥을 짓는 살림마저 자격증으로 따지는 판이니, ‘그림책읽기’를 놓고도 자격증을 따질 만하겠지. 빨래하고 아이를 돌보는 자격증도 있겠지. 빨래집(세탁소)을 차리거나 돌봄집(유치원)을 열자면 이런 자격증이 있어야 하리라. 가만 보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빛꽃(사진)을 다룰 적에도 자격증(또는 졸업장이나 등단 경력)을 따진다. 뭐, 어디에서든 이모저모 따질 수 있을 테지만, 어떤 일을 할 적에 자격증이나 졸업장이나 경력을 내밀어야 한다면, 미친나라이지 싶다. 마음으로 읽고 사랑으로 나누며 살림으로 녹이면 될 그림책이요, 아이돌봄이요, 빨래요, 빵굽기에 밥짓기요, 글쓰기에 그림그리기에 빛꽃담기라고 생각한다. 자격을 매기고 졸업을 시키는 자리에는 어김없이 돈이 오갈 텐데, ‘자격·졸업은 어떤 돈으로도 주거나 받을 수 없’어야 아름나라에 사랑나라가 될 테지. 왜냐고? 마음에 무슨 자격을 매기는가? 사랑에 무슨 졸업이 있는가? 누구나 읽고 즐기며 나눌 그림책이자 글이자 빛꽃이자 살림이자 빵이자 밥이자 빨래이자 오늘이다. 자격증이나 졸업장이 있어야 사랑짝을 만나 아이를 낳지 않는다. 오직 사랑하는 마음이기에 사랑짝을 만나 아이를 낳고 돌본다. 오직 사랑하는 마음이기에 두 손에 그림책을 쥐고서 아이랑 나긋나긋 읽고 누린다. 미친 종이나라가 아름다이 사랑나라로 탈바꿈하기를 빈다. 2021.3.18.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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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규항 : 어린이 인문만화잡지 《고래가 그랬어》를 펴내는 김규항 님이 〈중앙일보〉에 글을 쓴 지 여러 달 된다. 이분이 ‘왜 중앙일보에 글을?’이라는 궁금한 대목에 시원스레 글을 남겼는지는 잘 모르겠다. 얼추 스무 해쯤에 걸쳐 이분 글을 모조리 읽기는 했으나, ‘왜?’를 풀지 못했고, 이제 이분 글은 읽지 않는다. 지난해에 《혁명노트》란 책을 사서 읽으면서도 생각했다. ‘혁명을 말하는 분이 혁명을 할 가장 나즈막한 사람들 말씨가 아닌 가장 웃자리에 있는 이(기득권·권력가·자본가·작가) 말씨로 책을 새로 썼구나 하고.


나는 《고래가 그랬어》를 처음에 정기구독으로 보았지만, 끊은 지 오래된다. 만화나 글이 ‘삶을 숲으로 짓는 놀이로 나아갈 어린이’하고 도무지 안 맞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외치는 목소리로는 ‘진보 좌파’일는지 모르나, 진보나 보수 가운데 누가 옳다고 느끼지 않는다. 좌파나 우파 가운데 누가 옳을 수도 없다. 옳다면 ‘옳게’ 사는 사람이 옳지 않을까? 바르다면 ‘바르게’ 사는 사람이 바르지 않을까? 왼쪽을 찍기에 바를 수 없고, 오른쪽을 찍기에 틀릴 수 없다. 생각도 넋도 말도 삶도 사랑도 바르거나 옳다면 그이가 바르거나 옳을 뿐이다.


열한 살에 접어든 작은아이가 엊저녁에 “어머니, 아침에 일어나면 있잖아, 우리 집 후박나무로 해가 막 비추려고 할 때, 그때 해를 봐. 그 아침에 솟는 해를 보면 좋아.” 하고 이야기하더라. 《고래가 그랬어》가 ‘나쁜’ 잡지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다만 ‘알맹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알맹이’란 뭔가? ‘알맹이 = 씨알’이다. ‘씨알 = 열매에 깃든 숨결’이다. ‘열매에 깃든 숨결 = 숲을 이루려는 사랑’이다. 《고래가 그랬어》는 ‘제도권학교를 다니며 입시지옥에 멍이 들려는 어린이를 달래려는 글이나 만화’는 있지만, 정작 ‘어린이 스스로 삶을 지어 푸르게 노래하는 꿈을 품고서 사랑으로 나아가는 길’은 아직 없다고 느낀다.


김규항 님이 〈중앙일보〉에 꾸준히 글을 실을 수 있는 바탕도 이러하지 않을까? 뭐, 한두 꼭지쯤은 쓸 수 있을는지 모른다. 아니, 〈중앙일보〉만이 아니라 ㅈㅈㄷ에 글을 써도 좋다.


다만, 글을 쓰려면, 적어도 톨스토이나 시튼이나 로라 잉걸스 와일더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나 이와사키 치히로나 윌리엄 스타이그나 엘사 베스코브나 완다 가그처럼 글을 쓸 노릇 아닐까? 이런 분들처럼 글을 쓰지 않겠다면, 한낱 돈과 이름을 팔려고 〈중앙일보〉에 글을 쓰는구나 하고 느낄밖에. 20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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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적어 놓고서 한 달을 보냈는데, 그사이(2021.2.26.)에 〈신동아〉하고 만나 90분 동안 이야기했다고 한다. 김규항 님은 ‘마르크스 + 페미니즘 + 생태주의’를 좋아한다고 밝힌다. 그렇구나. 스스로 좋아하는 길이 있으니 그 길에 맞추어 걸어갈 뿐이로구나. 그러면 그 길은 어디로 나아갈까? ‘마르크스·페미니즘·생태주의’가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으나, 이쪽하고 저쪽을 가르는 울타리나 담벼락이 되기에 좋을 뿐 아니라, 이러한 이름을 허울처럼 내세워서 장사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굳이 세 가지를 살피는 길을 헤아린다면, 나는 ‘숲·살림·사랑’ 이렇게 세 가지를 꼽는다. ‘마르크스·계급·인민’이란 이름으로 사람을 바라볼 수도 있을 텐데, 이제는 좀 ‘사람을 사람으로’ 바라보면 좋겠다. ‘페미니즘이 아닌 살림하는 사람을’ 마주하면 좋겠다. ‘생태주의가 아닌 오롯이 숲을 숲으로’ 품으면 좋겠다. 살림을 하지 않고 숲을 품지 않는 곳에는 아무런 사랑이 없으니, ‘마르크스·계급·인민’한테서도 사랑을 찾아볼 수 없다고 느낀다. 아무튼, 잘 가시라, 그 길을. 202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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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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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해 : 서른 해를 묵은 주먹질(학교폭력)을 이제서야 들추는 까닭이 뭐냐고 따지는 사람이 있기에, 어떤 잘못이든 마감(시효)이란 있을 수 없다는 말을 들려주고 싶다. 잘못을 저질렀으나 스스로 잊거나 뉘우친 적이 없다면 이이한테는 언제까지나 마감이 없지. 잘못을 환하게 밝히고서 고개숙이거나 눈물로 씻고서 거듭난 삶길이 아니라면, 잘못값을 치러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서른 해 앞서는 어른들 주먹질이 흔했고 군대에서도 버젓이 두들겨팼을 뿐 아니라 여느 어버이도 숱하게 때렸다고들 말하는데, ‘서른 해 앞서라 해서 모든 사람이 다 때리지 않았다’는 말을 보태고 싶다. 서른 해를 지났으니 잊거나 넘어가도 좋을까? 그때에는 으레 두들겨패는 주먹나라에 총칼나라였으니 ‘잘못이 잘못이 아니라’고 눙쳐도 될까? 생각해 보라. ‘다들 때리고 맞는 판’이었기에 ‘가벼운 주먹다짐이나 얼차려는 아무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일본이 총칼을 앞세워 이웃나라를 집어삼키고 괴롭힐 뿐 아니라 죽인 짓도 더는 말하지 말아야 할 노릇이리라. 모든 주먹질이나 총칼질은 주먹을 휘두르거나 총칼로 찔러댄 이들이 주먹이며 총칼을 몽땅 치워버리고서 참사람으로 거듭나지 않는다면 안 사라진다. 서른 해가 아닌 삼백 해가 흘러도 멍울이나 티끌은 가시지 않는다. 2021.3.16.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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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추천도서를 또 : 사람들이 맛있다고 손뼉치면서 좋다고 하는 밥집에 갔으나, 막상 너무 맛없을 뿐 아니라 짜고 달기만 해서 한숨이 푹 나오다 못해, 그곳에 나를 데려가서 비싼밥을 사준 분한테 “너무 안된 말이지만, 도무지 더 먹을 수 없어요. 이렇게 간을 엉터리로 한 짜장국수는 처음이네요.” 하고 말한 적이 있다. 나를 맛밥집에 데려다준 분은 그 중국집을 자주 찾는다면서 부엌지기(주방장)를 불러 주었다. 얼결에 부엌지기를 마주했는데, “저기, 애써서 해주신 줄은 알지만, 양념이 너무 짤 뿐 아니라 소금을 들이부은 듯해요. 그리고 짜장국수에 양념이 너무 적어 비빌 수가 없는걸요. 한 젓가락 드셔 보셨나요? 드셔 보시고서 손님한테 먹으라고 내놓으셨는지요? 차마 더 먹을 수 없어서 남깁니다.” 하고 말한 적이 있다. 나중에 다른 분한테서 듣고 알았는데, 부엌지기 가운데 손수 지은 밥을 그때그때 먹거나 맛보면서 내놓는 사람은 뜻밖에 적단다. 틈틈이 간이며 맛을 보아야 ‘잘되었는지 아닌지’를 알 텐데, 그저 기계에서 뽑아내듯 척척 내놓기만 하느라 그때그때 무엇이 어긋나는가를 모르기 일쑤라더라. 비추천도서 이야기를 또 쓰고 자꾸 쓴다. 아름책(추천도서)만 해도 멧더미만큼 있는데 굳이 몹쓸책(비추천도서) 이야기를 쓰는 까닭이라면, 우리 스스로 좀 느긋이, 천천히, 차분히, 삶을 사랑하면서, 오늘을 즐기면서, 우리 살림을 노래하면서, 서로 이웃이 되어 이야기꽃을 지피면서 가자는 뜻이라고 할 만하다. 나는 늘 나한테 물어보면서 글을 쓴다. “얘야, 넌 너희 아이들이 읽을 만한 글을 쓰니?” 하고. 나는 책을 읽고서 글쓴이한테 마음으로 물어본다. “저기여, 글님이시여, 그대 아이들한테 읽히거나 물려주려고 이 글을 쓰셨나요?” 하고. 2021.2.21.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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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이재영·이다영 자매)


: ‘학교폭력’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앞으로 없앨 길이 있을까? ‘사회폭력’이 있으니 ‘학교폭력’이 있다. 이 나라를 보자. 어느 대학교를 마쳤는가, 얼굴·몸매가 얼마나 예쁘냐, 돈이 얼마나 있느냐, 어떤 자가용을 굴리느냐, 어떤 옷을 입었느냐, 어떤 집에서 사느냐처럼 갖가지를 내세워 위아래를 그을 뿐 아니라, 시험성적으로도 줄을 세운다. 국회의원이나 시장·도지사·군수가 되어서 벼슬힘을 휘두르는 이가 한둘이 아니다. 수두룩하다.


힘있는 자리가 생기는 터전이라면, 마땅히 힘없는 자리가 생기고, 힘없는 자리에 선 이들이 주먹질에 시달린다. 힘없는 자리에 있더라도 힘있는 이한테 빌붙어서 고물을 얻어먹거나 힘있는 자리로 가고 싶어서 이웃이나 동무를 괴롭히기 일쑤이다. ‘학교폭력·사회폭력’은 이런 얼개이다. 이들은 끼리질을 한다. 이들이 벌이는 끼리질은 언제나 눈속임이다. 걸리거나 들통이 날 듯하면 그렇게 꾸밈질을 잘한다. ‘학교폭력·사회폭력’을 일삼은 이들이 꽤 오래도록 ‘착하고 예쁜 척’을 해오기 마련이라, 이들은 ‘들러리(팬·지지자·옹호자)’를 늘 이끌고 다닌다. 들러리 곁에서는 늘 ‘착하고 예쁜 척’하니, ‘학교폭력·사회폭력’을 저지르는 이들이 무슨 짓을 일삼는가를 못 보거나 모를 뿐 아니라, 안 믿기까지 한다.


배구선수 이재영·이다영 자매가 초등·중학교를 다니며 저지른 무시무시한 괴롭힘질(학교폭력)이 드러났다. 이들한테서 시달린 사람들은 열 몇 해를 숨죽이면서 속으로 멍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이재영·이다영 자매는 김연경이라는 윗내기이자 우리나라 배구판뿐 아니라 온누리 배구판을 끌어올린 사람까지 ‘사회폭력’으로 파묻으려고 했다. 이재영·이다영 자매는 열 몇 해란 나날을 ‘학교폭력’을 숨긴 채 돈을 벌고 이름을 얻었다. 더구나 이런 마음이자 몸짓으로 ‘사회폭력’까지 일삼았다.


끔찍짓을 일삼고도 여태 쉬쉬한 셈이다. 아니, 여태 착하고 예쁜 척하면서 사람들을 속인 셈이다. 이제 이 두 사람 이재영·이다영 자매는 경찰서와 검찰에 가야겠지. 이재영·이다영 자매는 ‘자필사과문’이라고 달랑 써서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덧글막기를 한다. 잘못투성이인 사람들이 장관이나 국회의원이나 시장·군수·도지사가 되는 이 나라도 어처구니없지만, 버젓이 드러난 ‘학교폭력·사회폭력’을 놓고도 법에 비추어 사슬살이(감옥살이)를 하지 않고 값(벌금)을 치르지 않는다면, 이 또한 터무니없는 노릇이다.


이재영·이다영 자매는 ‘철없는 때’에 저지른 짓이라고 자필사과문에 밝히지만, 오늘은 ‘철있는 스물여섯 살’일까? 이재영·이다영 자매는 경찰서부터 스스로 찾아가기 바란다. 이제 ‘철들었다’면 말이다. ‘자숙’하지 마라. 경찰서에 가라. 이 나라는 ‘학교폭력·사회폭력’에 마감(시효)을 두지 마라. 열 해 앞서 아닌 스무 해나 마흔 해 앞서 저지른 ‘학교폭력·사회폭력’도 마감이 없이 언제라도 값을 치르도록 하라. 그래야 바른나라(민주국가)이지 않을까? 그래야 ‘학교폭력·사회폭력’을 뿌리뽑지 않을까? ‘학폭 방지 캠페인·프로그램’ 따위로는 하나도 안 바뀐다. 값을 치르도록 하고, 눈물을 닦아 주어야지.


피멍이 든 채 살아온 사람한테 ‘피멍값(피해배상비)’을 두고두고 물려야지 싶다. 열 해를 감추고 살았으면 열 해 동안, 스무 해를 숨기고 살았으면 스무 해 동안 피멍값을 치르도록 해야 아름누리(평등사회)로 나아가리라. 이재영·이다영 자매는 사슬터(감옥)에 들어가서 이바지일(공공근로)을 해서 돈을 벌고, 이 돈으로 피멍값을 대라. 이재영·이다영 자매가 숨긴 ‘학교폭력’이 열 몇 해이니, 열 몇 해 동안 사슬살이를 하고 이바지일로 돈을 벌면서 피멍값을 대는 ‘자숙·사과·반성’을 한다면, 그때에는 다시 배구선수로 뛰어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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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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