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같은 영화 100판 : “영화평을 쓸 만한 영화라고 여기면, 적어도 100판을 느긋이 다시금 보면서 생각을 가다듬습니다. 몇 판쯤 슥 보기만 해서는 놓치는 대목이 많아요. 그렇다고 영화평이란 글을 책 한 자락으로 써낼 수는 없습니다만, 다섯 줄이나 열 줄로 영화평을 쓰더라도, 그 영화를 제대로 말할 수 있으려면 100판쯤 다시보기를 해야겠지요. 그러니까, 오늘날 누리그물(인터넷)에 넘치는 온갖 영화평은 다 허울스럽거나 겉훑기이지 싶어요. 영화평 한 자락을 쓰려고 그 영화를 적어도 다섯 판이나 열 판쯤 곰곰이 다시보기를 한 분은 몇이나 될까요? 거의 다 한 판만 보고서 쓰지 않나요? 책느낌글도 매한가지예요. 책을 한 판만 읽고서 쓴다면 그런 느낌글은 엉터리일 테지요. 책느낌글을 쓰려고 한다면, 적어도 대여섯 벌을 되읽을 노릇이고, 보름이나 달포쯤은 곁에 두고서 곰곰이 새길 노릇입니다. 그러나 영화평도 책느낌글도 다들 후다닥 써갈겨요. ‘쓴다’조차 아닌 ‘써갈긴다’입니다. 생각해 봐요. 100판을 다시보기를 할 만한 영화가 아니라면, 1판조차 안 볼 만한 영화이지 않을까요? 100판을 다시보기를 하고서 영화평을 쓸 만한 영화가 아니라면, 처음부터 아예 영화평을 쓸 값어치조차 없는 영화가 아닐까요?” 영화평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으레 이렇게 말한다. 적어도 100판을 볼 수 없는 영화라면, 굳이 1판조차 안 보아도 된다고 느낀다. 같은 영화를 왜 다시 보고 또 보느냐 묻는 분들이 있지만, 아름다운 영화는 다시 볼 적마다 새롭게 느끼고 배우는 대목이 늘 있어서, 100판 아닌 1000판 넘게 보게 마련이다. 언제 1000판을 보느냐고? 스무 해나 마흔 해에 걸쳐서 틈틈이 보면 그만큼 볼 수 있다. 책도 매한가지이다. ‘알라딘중고샵’에 되팔 책이 아닌, ‘우리 집 책시렁에 고이 건사할’ 책을 사서 읽고 새기고 누리는 이웃님이 늘기를 바랄 뿐이다. 2019.12.25.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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