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고른 책 : 책집에 있는 책은 그 책집지기가 고른 책이다. 펴냄터에서 찍어낸 책은 펴낸이랑 엮은이가 고른 책이다. 우리가 손에 쥐는 책은, 우리 마음을 이어서 앞으로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한가 아닌가 하고 헤아리는 책이다. 돈을 벌거나 이름을 얻거나 힘을 펴려는 뜻으로 ‘고른 책’이 있다. 마음을 나누거나 사랑을 짓거나 살림을 일구려는 길에 ‘고른 책’이 있다. 고르는 손길은, 고르는 삶길이다. 골라서 읽는 눈길은, 골라서 나아가려는 꿈길이다. 좋거나 나쁘다고 할 책은 없다. 돈바라기를 하려 책은 돈을 바랄 뿐이고, 이름바라기를 하려는 책은 이름을 바랄 뿐이다. 겉으로 번드레하게 보이면서 돈을 잘 벌고 싶기에 풀죽임물(농약)을 잔뜩 뿌릴 뿐 아니라, 갖은 덧죽임물(화학첨가물)을 바르는 우리 민낯이다. 우리가 껍데기 아닌 알맹이를 바라보려 한다면, 글바치나 책바치가 ‘돈·이름·힘’에 휘둘릴까? 글바치나 책바치부터 엉큼하기에 엉큼책을 내놓곤 하지만, 누구보다 우리 스스로 엉큼길을 슬금슬금 나아가니까 글바치나 책바치가 엉큼책을 써내고 팔아치울 수 있다. 책을 고르려 할 적에는, 우리 마음을 먼저 들여다볼 노릇이다. 무슨 뜻이고, 무슨 하루이고, 무슨 꿈인지, 이 셋을 찬찬히 짚고서 책을 고른다면 엉큼질도 엉터리도 엉망진창도 이 땅에서 말끔히 사라지리라. 2000.7.8.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