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자전거여행 : 달림이(자전거)는 빨리 가려고 만든 살림이 아닌데, 이 대목을 잊거나 안 쳐다보거나 등돌리는 사람이 대단히 많다. 틀림없이 ‘더 빨리 가도록 이끄는 가볍고 값나가며 좋은 달림이’가 많다. 그렇지만 달림이는 ‘달리는 발’이지만, 마구 달리는 발이 아니요, 서둘러 달리는 발이 아니며, 무턱대고 달리는 발이 아니다. 걸을 적에는 차분하게 흐르는 바람을 맞이한다. 달릴 적에는 두 발이 가볍게 이 땅을 박차면서 바람을 타려는 몸짓이 된다. “바람을 흠뻑 마시면서 날아오르는 내”가 되려고 달린다. 달림이란, “바람맛을 새롭게 누리도록 북돋우는 살림”이다. ‘달림마실(자전거여행)’을 꾀하는 분들은 으레 빡빡하게 틀을 세워서 날마다 얼마쯤을 달리려고 애쓰곤 하는데, 굳이 그러지 않으면 좋겠다. 여기에서 저기를 구태여 달림이로 가야 하지 않다. 여기에서 저기로 가려면 그냥 씽씽이(자동차)를 타자. 두 다리로 걷거나 두 바퀴인 달림이로 갈 적에는 느긋하면서 즐겁게 이 길로도 가고, 저곳에서도 쉬고, 그곳 풀밭에 드러누워 하늘바라기를 하다가 낮잠도 자는, 어느 틀에도 안 얽매이고서 마음껏 바람을 쐬는 하루를 누려서 기쁘다. 빨리 가려면 빨리 죽으면 된다. 꼭 해야겠다면 꼭 죽으면 된다. 무엇을 해내거나 어디로 가도 나쁘지 않지만, 우리가 이 별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뜻은 ‘빨리·꼭’이 아니라, 무엇을 하면서 거치는 길(삶)을 돌아보면서 하루를 스스로 아름답게 짓는 뜻(사랑)이지 싶다. 다리가 힘들도록 탄다면 달림이가 아니다. 다리가 아프도록 걷는다면 걷기가 아니다. 쉬어야 한다. 바람을 들이쉬어야 한다. 바람에 묻은 풀꽃나무 내음을 들숨날숨으로 쉬어야 한다. 2004.11.1.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살림말


몇 사람만 : 몇 사람만 듣더라도, 몇 사람이 들은 이야기는 씨앗으로 깃들어, 두루두루 퍼지리라 생각한다. 숱한 사람이 듣더라도, 숱한 사람들마다 반드시 이야기가 씨앗으로 깃들어서 두루 퍼지지는 않는다. “더 많이 들으면 좋을 텐데” 하면서 아쉬워한다면, 이 아쉬운 기운을 씨앗으로 심는다. “다른 사람이 많이 와서 듣기”를 바라지 말고, 오늘 이곳에 있는 ‘내’가 즐겁게 듣고서 이 즐거우면서 아름다운 씨앗을 차곡차곡 심어서 둘레에 고루 흩뿌려 주면 된다. 아직 몇 사람만 알아보고 읽어서 아쉽게 여길 책이 틀림없이 많다고 할 만하다. 그러나 “아직 몇 사람만 알아보고 읽은 아름다운 책”이라는 생각이 아닌, “오늘 내가 즐겁게 알아보고 읽으며 아름다운 삶이라는 씨앗을 마음에 심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둘레에 기쁘게 알려주면 된다. 더 많이 읽어 주어야 할 책이 아니다. 더 적게 읽어도 될 책이 아니다. 마음자리에 생각을 새롭게 지필 씨앗을 심도록 북돋우는 책이면 즐겁다. 우리는 ‘빨리읽기·깊이읽기·두루읽기·많이읽기’ 모두 아닌 “즐겁게 읽기”를 하고서 “즐겁게 나누기”를 하면 된다. 이 책길이라면 아름답다. 2001.10.31.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살림말


그렇게 하면 : 그렇게 하면 나쁘다고 여기기에, 그렇게 하는 동안 내내 나쁘게 될 일을 그리고, 이 그림대로 받아들이거나 바꿔서 스스로 이룬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어떤 일놀이도 우리 스스로 그리거나 생각하는 대로 간다. 아프고 싶기에 아프고, 튼튼하고 싶기에 튼튼하다. 일하고 싶으니 일하는 사람이 되고, 놀이하고 싶으니 놀이하는 아이로 웃는다. ‘뭘’ 먹어서 나쁘지 않고, 또 좋지도 않다. ‘뭘 먹는 마음이며 생각’에 따라서 나쁘거나 좋다. ‘뭘’ 읽어서 나쁘지 않고 또 좋지도 않다. ‘뭘 읽으려는 마음이며 생각’에 따라서 나쁘거나 좋다. 이리하여 내가 보기에 참 허접한 책이라 하더라도, 누구는 ‘내가 보기에 허접한 책’을 쥐었어도 그이 마음에는 ‘난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달래고 오늘 하루를 기쁘게 살겠어!’ 하는 생각이 흐르기에 그이한테는 아름책이 된다. 거꾸로 ‘남들이 보기에 허접한 책’을 내가 쥘 적에도 매한가지이니, “아니, 그런 허접한 책은 왜 읽어요?” 하고 묻는 이웃님한테 “이 책이 아무리 허접하더라도 배울 대목이 있어서 배워요. 그리고 이런 허접한 이야기를 쓰면서도 즐겁게 웃는 마음이 보여서, 이렇게 즐겁게 웃는 마음을 배우려고 읽어요.” 하고 대꾸한다. 2005.10.2.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살림말 


어떻게 그렇게 다 알아요? : 둘레에서 으레 “어떻게 그런 데까지 다 알아요?” 하고 묻는다. “저기요, 저는 제가 아는 만큼만 알 뿐이에요. 제가 모르는 만큼은 모르지요.” “네? 무슨 소리예요?” “저는 제가 찾아보고 살펴보고 헤아리고 생각하고 견주고 따지고 짚고 …… 이렇게 하여 알아내어 받아들인 만큼 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저는 제가 아는 만큼만 말할 뿐인데, 둘레에서는 제가 ‘다 안다’고 여기기도 하더군요. 그러나 저는 ‘아는 것은 알고, 모르는 것은 모르기’ 때문에 늘 새롭게 배워요. 저는 제가 모르는 것을 배워서 제가 아는 것으로 삼고, 제가 알아내어 즐거이 누리는 살림은 누구한테나 스스럼없이 털어놓아 함께 나눠요. 그리고 아직 모르는 것은 앞으로 언제라도 알아내고 만나리라 여기면서 그 ‘모르는 앎’이 저한테 찾아올 때까지 기쁘게 기다린답니다.”2010.10.25.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살림말


뜻이랑 소리는 하나 : 소리만 알거나 뜻만 짚을 수 없다. ‘말’을 할 적에 ‘교과서 읽듯’ 안 하기에 서로 이야기가 흐른다. 생각해 보라. 아무리 가볍게 수다를 떨더라도 ‘교과서 읽듯’ 수다를 떠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가볍구나 싶은 말을 종알종알하는 아이들을 보라. 어떤 아이도 ‘교과서 읽듯’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참말 아이도 어른도 배움책(교과서)을 손에 쥐면 ‘교과서 읽듯’ 하고 만다. 배움책 아닌 노래책(시집)이나 그림책이나 만화책조차 “읽어 보셔요” 하고 여쭈면 하나같이 ‘교과서 읽듯’ 말한다. 왜 ‘읊’지 못할까? 왜 ‘수다’나 ‘얘기’를 하지 못할까? 그래서는 뜻도 알 길이 없고, 뜻을 담은 소리인 말이 어떻게 흐르는가도 종잡지 못한다. 이른바 ‘의사소통’이란, 그러니까 ‘이야기’란 소리만으로는 못 한다. 소리에 뜻을 담기에 이야기를 한다. 글은 어떨까? 글씨만 적는대서 글이 될까? 아니다. 얼핏 보기에는 그저 종이에 새긴 무늬인 글이라 하더라도, 글쓴이 스스로 이 무늬에다가 이녁 마음이며 사랑이며 꿈을 함께 새겨야 비로소 싱그러이 살아숨쉬는 이야기인 글이 된다. 2020.10.30.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