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조정래 박태준 토착왜구 일본유학 호텔밥 : 붓을 쥔 사람은 제 손으로 두 가지 글을 써도 될까? 지난날 쓴 글이 부끄럽거나 어리숙했다고 여긴다면, 지난날을 돌아보거나 뉘우치거나 되새기면서 고개숙이는 붓질을 할 만하니, 이때에는 한 손으로 두 글을 쓰는 셈이다. 그러나 돌아봄도 뉘우침도 되새김도 고개숙임도 아닌, 핑계로 가득한 두 가지 글을 쓴다면, 이녁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꼴이라고 본다.


나는 고등학교를 다니던 1991년에 마을책집에서 《태백산맥》을 하나씩 사서 읽었다. 한 자락을 다 읽으면 마을책집에 다시 가서 뒷걸음을 챙겨서 읽었다. 이러다가 대여섯걸음 무렵부터 잘 안 읽히더라. 그래도 끝까지 다 사 두자 생각했으나, 어쩐지 줄거리가 뒤엉키는구나 싶어 그만두기로 했다.


우리 형은 《태백산맥》뿐 아니라 《한강》까지 모두 장만해서 읽더라. “형, 나는 이 사람 책 도무지 안 읽히던데, 형은 어떻게 읽었어?” “뭐야? 넌 아직도 안 읽었냐? 다른 쓰잘데기없는 책은 읽지 말고 이 책들부터 읽어라. 아니면 내가 사 주랴?”


나는 ‘조정래 읽기’를 ‘태백산맥 대여섯 자락’에서 멈추고 더는 안 읽기로 했는데, 나중에 이녁 책을 새로 읽어야 한다면 형한테서 빌리자고 생각했고, 아직 형한테서 빌리지 않는다. 아니, 빌릴 마음을 깨끗이 접었다. 조정래 이분이 ‘박태준 위인전’을 펴낸 때에 ‘조정래는 앞말하고 뒷말이 다른 사람, 또는 한 손으로 두 가지를 말하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2020년 10월 어느 날, 조정래 이분이 어디에 나와서 ‘토착왜구·일본유학·친일파’ 이야기를 들추었다. 이분은 그대 아버지만큼은 ‘일본유학’을 했어도 토착왜구도 친일파도 아니라고 한다지. 다른 사람은 모조리 토착왜구나 친일파가 된다지.


자, 그러면 대통령 딸은? 윤동주 시인은? 일제강점기에 이 나라를 떠나 일본으로 배우러 간 사람을 얼마나 헤아리면서 그런 말을 읊으실까? 일본경찰에 쫓겨 숨듯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조용히 배운 사람이 수두룩하다. 일본경찰 아닌 친일경찰에 쫓겨 달아나듯이 일본으로 넘어가서 숨죽이며 배운 사람도 많다. 이 나라 벼슬아치나 우두머리는 도무지 믿을 수 없고, 그렇다고 일본제국주의에 빌붙기 싫지만, 앞선 배움길을 우리보다 일찌감치 연 일본한테서 눈물로 배워서 새롭게 일어서려는 다짐으로 일본으로 찾아가서 배운 사람도 참으로 많다.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은 일본으로 안 건너갔어도 팔아먹었다. 스스로 삶을 사랑하며 이 나라가 푸른숲이 되도록 마음을 기울인 사람은 일본이건 미국이건 중국을 넘나들어도 언제나 고요히 아름길을 걸었다.


손에 붓을 쥔 그대여, 사람들을 둘로 쪼개지 마라. 부끄럽지 않은가? 붓잡이 사이에는 ‘선배·대선배’가 없다. 얼마나 낡아빠진 생각으로 붓을 쥐기에, 그대는 그대보다 스무 살이 젊은, 그렇지만 쉰 줄 나이를 훌쩍 넘고 예순에 가까운 사람더러 ‘대선배를 존경할 줄 모르는 불경죄’ 같은 말을 들먹이는가?


막글을 퍼붓지 말고 글을 쓰기를 빈다. 그대가 참으로 붓잡이라면, 모든 돈·이름·힘·나이를 집어치우고서, 오직 언제나 첫발을 떼는 풋풋한 글꾼이라는 마음이 되어 가장 수수하면서 더없이 들꽃같은 글을 쓰시라. 조정래 이분은 호텔밥을 오랫동안 잡수시다 보니, 이제 시골 흙지기 밥차림이 무엇인지 하나도 안 보이시나 보다. 2020.10.16.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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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받다(선물을 받다) : 어제 깜짝 놀랐습니다. 하늘을 날아 노래가 날아왔어요. 노래가 하나, 둘, 셋, 넷, ……. 이 노래를 차근차근 누리려고 해요. 고맙습니다! 2020.10.15. ㅅㄴㄹ


昨日びっくりしました。 空を飛んで歌が飛んできました。 歌が1、2、3、4 ……。 この歌を一つ一つ享受しようと思います。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


쉽게 ‘선물’이라고 하지만, ‘마음’이나 ‘노래’나 ‘사랑’이나 ‘빛’이라는 낱말로 새롭게 나타낼 만하지 싶습니다.


簡單に「贈り物」と言いますが、「心」や「歌」や「愛」や「光」という單語で新しく表すに値すると思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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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추천도서 이야기를 쓴다 : 추천도서 이야기뿐 아니라 비추천도서 이야기를 쓴다. 추천도서 이야기만 쓰기에도 온누리에 아름다운 책이 그득그득하다지만, 구태여 비추천도서 이야기를 쓰려고 더 품을 들이고 마음을 쏟는다. 주례사 서평이 넘실대면서, 아이가 아이답게 자라는 꿈길에 이슬방울로 삼을 책이 묻힌다. 서평단 서평이 물결치면서, 어른이 어른답게 살림하는 사랑길에 빗방울로 삼을 책이 밀린다. 아이를 생각하기에 추천도서 이야기뿐 아니라 비추천도서 이야기를 쓴다. 어른을 헤아리기에 추천도서만이 아닌 왜 비추천도서인가 하는 이야기를 쓴다. 나 스스로 사랑하기에 이 보금자리숲에 건사할 추천도서뿐 아니라, 이 보금자리숲에 놓지 않을 비추천도서 이야기를 쓴다. 네가 너로서 너를 사랑하는 길에 동무가 되고 싶기에, 우리가 함께 읽을 추천도서뿐 아니라 우리가 구태여 들여다볼 까닭이 없는 비추천도서 이야기를 쓴다. 1995.10.14.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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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자인보다 어려울는지 모를 어도비 체험판 결제취소 : 열세 살 큰아이가 꾸준히 선보이는 더없이 아름다운 그림꾸러미를 그림책으로 엮어내려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스스로 목돈을 여미어서 스스로 꾸며서 책으로 내는 길이 가장 낫겠다고 느낀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림하면서, 여태 미루고 미룬 ‘인디자인’을 익혀 볼까 싶어, 어도비 체험판을 이레쯤 써 보기로 한다. 그런데 하루를 써 보고는 도무지 나랑 안 맞더라. 차라리 아래한글을 써서 피디에프로 바꾸자는 생각이 들더라. 이러고서 바깥일로 부산·파주·서울을 오가다가 ‘체험판 취소’를 잊었고, 어느새 ‘한 해치 결제’를 한다는 글월이 날아든다. “뭐야?” 하고 갸우뚱하고 보니, 꽤 많은 분들이 ‘어도비 체험판’을 써 보려고 하다가 ‘체험판 취소’가 너무 어렵거나 잘 안 되어 24000원이나 48000원을 쉽게 날린다는 누리글을 잔뜩 본다. 파파고 힘을 빌려서 가까스로 ‘미국 어도비 일꾼’하고 쪽글을 주고받은 끝에 돈을 돌려받은 분도 있던데, ‘체험판 신청’은 그렇게 쉽게 알아보면서 들어가도록 꾸민 이곳 어도비는, ‘체험판 취소’는 그렇게 어렵게 꽁꽁 숨겨 놓았더라. 더구나 ‘체험판 취소’를 하는 누리집으로 들어갔어도 막상 ‘취소 알림글 길잡이’와는 다른 모습이 뜨기 일쑤이네. 그러나 틀림없이 ‘미국 전화번호’ 아닌 ‘한국 전화번호’가 있으리라 여겨, ‘한국 전화번호’를 찾아내려고 한참 뒤졌다. 한국 전화번호인 듯한 곳에 전화를 거니 다시 ‘한국 상담원 있는 번호(080-950-0880)’를 알려준다. ‘상담원 대기’를 1시간 30분을 했다. ‘상담원 통화’로 체험판을 그만 쓰겠노라 밝히고 결제취소에 이르기까지 12분이 걸렸다. 다해서 1시간 42분이지만, 이모저모 알아보고 살펴보고 따지고 한 품을 어림하면 이틀쯤 썼다고 봐야지 싶다. ‘체험판 신청’하고는 다르게 ‘체험판 취소’를 하기 까다롭도록 숨겨 놓아서 사람들 눈치를 못 채게 24000원을 받아먹으려는 마음보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굳이 이렇게 해야 할 어도비일까?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그곳을 좋아할까? 나중에 어도비 풀그림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할까? 눈가림장사는 머잖아 무너진다. 눈속임장사는 머잖아 민낯이 환히 드러난다. 2020.10.12.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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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죽, 나들꽃 : ‘덮밥’이란 이름이 처음 태어나서 차츰 퍼지다가 확 자리잡을 무렵을 떠올린다. 그때 적잖은 분들은 ‘덮밥’은 도무지 말이 안 되는 말짓기라고, ‘밥덮’처럼 써야 올바르다고, 이런 말짓기 때문에 우리말이 망가지리라 여겼다. 여러 어르신이나 학자나 전문가나 지식인이 말하는 ‘밥덮’이 옳고 ‘덮밥’은 틀리다는 이야기를 곰곰이 들으면서, 난 좀 다르게 생각했다.


여러 어르신이나 학자나 전문가나 지식인하고 함께 그 낱말을 놓고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저기요, 말얼개나 우리 말씨로 헤아리자면 틀림없이 어처구니없는 말짓기인데 말예요, ‘밥덮’보다 ‘덮밥’이 소리내기에 더 좋구나 싶어요. 제가 혀짤배기에 말을 좀 더듬기도 해서, 조금이라도 소리내기 어려우면 혀에 안 붙더라구요. 그리고 ‘덮밥’처럼 새롭게 말을 지어서 쓸 수 있다는 재미난 얼거리를 젊은 사람들이 엮어냈다고 보아도 되지 않을까요?” 하고 말씀을 여쭈었다.


스물 세 살 즈음 된 젊은이(나)가 이렇게 말하니 그 자리는 한동안 얼어붙었다. 이러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밥덮·덮밥’ 이야기는 안 하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2020년 10월, ‘포항 덮죽’을 놓고 이 이름을 훔쳐쓴 무리 이야기가 불거진다. 쓸쓸하다. 그러나 우리 삶터가 그렇잖은가? 조금이라도 돈이 되겠구나 싶으면 슬쩍해 버린다. 제 앞주머니를 챙기려고 이웃이고 동무이고 없는 판이 오늘날 이 나라이다. 대학입시를 보라. 고등학교를 다니는 푸름이는 대학입시를 앞두고 ‘동무 아닌 경쟁자’만 생각해야 한다. 온나라가 서로돕기나 어깨동무 아닌 ‘나 혼자 살아남기’로 흐른다. ‘덮밥’을 넘어 ‘덮죽’으로 나아가고자 땀흘린 포항 그 밥님은 얼마나 고달팠으면서도 기쁜 나날이었을까. ‘덮죽’이란 이름도 상큼하면서 멋스럽다.


2020년 10월 9일 저녁, ‘나들꽃’이란 이름을 문득 지어 보았다. 숲에서 어린이·푸름이하고 마음밭 살찌우는 길을 나누려고 하는 분들한테 ‘숲나들꽃·숲노래뜰’ 같은 이름을 지어서 건네었다. ‘나들꽃’이란 이름을 문득 지어 보고 나니, 매우 마음에 들어, ‘힐링투어’라든지 ‘치유여행’ 같은 말씨를 ‘나들꽃’으로 담아내어도 좋겠구나 싶고, ‘여행’이란 말부터 ‘나들꽃’으로 담아내면 어울리겠네 싶더라.


이 나라는 틀림없이 아귀다툼판이라고 느끼지만, 이 아귀다툼판에 ‘사랑잔치’를 열면 좋겠다. 이웃이 지은 멋스럽고 알차며 땀내음 물씬 밴 이름을 훔치지 말고, 이웃이 이름을 짓기까지 애쓴 눈빛을 헤아려 우리 나름대로 새 이름을 즐겁게 지어서 말꽃이며 삶꽃이며 생각꽃을 지피기를 빈다. 2020.10.11.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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