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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에서 내는 《우리말 우리얼》에 실으려고 썼지만, 누리집에도 걸쳐놓는다. 우리말이 왜 우리말인지 생각을 하고, 마음부터 가만히 쓰는 이웃님이, 오직 오롯이 사랑이라는 눈빛으로 말을 살피는 이웃님을 기다리면서 글을 여미어서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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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우리말밑(우리말 어원)


벙어리


말소리를 내지 않거나 못 하는 사람을 두고 ‘벙어리’라 한다. ‘버우 + 어리’인 얼개인데, ‘버우’란 ‘바우(바위)’요, 듬직하게 가만히 선 커다란 숨결을 나타내는 낱말이다. 말소리를 내지 않거나 못 하면서 가만히 있다고 여기기에 ‘벙어리·바위’로 바라보는 셈인데, ‘벙·방’이 맞물리고, ‘버우·바위’가 맞물린다. ‘벙긋·방긋’은 소리를 내지 않고서 가만히 웃거나 움직이는 모습을 나타낸다. ‘방그레·벙그레·빙그레’도 매한가지요, ‘방실·벙실’도 마찬가지이다. ‘빙그르르’라는 말씨에서도 아직 소리가 깃들지는 않는다. 이러한 말씨를 곰곰이 짚으면 ‘벙어리·버우·바위·방긋·벙긋’은 “듬직하고 크고 넓게 소리가 없이 가만히 있는 결”을 빗대면서 ‘봉긋’으로 잇는다. ‘봉긋’은 ‘봉오리’로 잇는다. 아직 피어나지 않은, 또는 곧 피어나려고 하는 망울인 ‘봉오리’이다. 아직 피어나지 않았기에 곧 피어날 꽃망울이라면 ‘꽃봉오리’이다. ‘봉긋’은 ‘붕긋’하고 만나며, ‘봉우리’로 새롭게 잇는다. ‘붕긋’은 꽤 높게 솟거나 돋았다고 여기는 모습이요, ‘봉우리’는 ‘멧봉우리’라는 낱말처럼 땅에서 하늘 쪽으로 높이 솟거나 돋은 자리를 나타낸다. ‘봉우리·멧봉우리’는 으레 “바위가 가득하면서 높이 솟거나 돋은 자리”로 여긴다. 그러니까 ‘벙어리’는 ‘바위’를 비롯해서 ‘방긋·벙긋·봉긋·붕긋’에 ‘봉오리·봉우리’가 나란히 깃든 낱말이다. ‘봉’이라는 말씨는 ‘보다·봄’하고 잇는다. ‘보다(본다)’는 눈으로 느끼거나 마주하는 몸짓이다. 소리를 내는 느낌이나 결이 아닌 ‘보다·봄·봉’이니, ‘벙어리’인 사람은 눈으로 보고 몸짓으로 보면서 이야기를 펴고 생각을 나누며 마음을 잇는다. 봄에 피어나는 봉오리처럼, 봄부터 푸르게 물드는 봉우리처럼, 둥글둥글 살갑고 살뜰하여 사랑스레 돌아가며 돌보는 빙글빙글 방긋웃음처럼, ‘벙어리’라는 낱말 한 마디에는 예부터 이웃을 어떤 숨빛으로 만나면서 품고 어우러지려 했느냐 하는 수수께끼와 살림과 꿈이 녹아들었다고 여길 만하다. 그리고, ‘방그레 웃고 봉긋 돋는 봉오리에 푸르게 붕긋하는 봉우리’는 ‘밝’고 ‘반짝반짝·번쩍번쩍’한다. ‘버·바·밝·반짝·번쩍’으로 잇는 말씨인 ‘빛’에는 소리가 흐르거나 깃들지 않는다. 오직 ‘보다·봄’으로 잇는 결이다. 그래서 ‘벼락’이나 ‘별’도 소리가 아닌 눈으로 마주하고 느끼고 보게 마련이다. 빛나는 숨결을 ‘버·바·보·부·비’라는 말씨에 담은 셈이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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