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54 책값 에누리



  책을 사면서 에누리를 바란 적이 없습니다. 저잣거리에 가서 저자마실을 할 적에 에누리를 한 적이 없습니다. 장사하는 분이 부르는 값에는 그만 한 땀과 품이 있다고 느낍니다. 땀하고 품이 들어간 살림에다가, 가게나 길에 나와서 파는 동안 들일 땀하고 품, 또 이렇게 장사를 하며 삶을 지을 밑돈을 얻는 보람이 ‘값’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름값이 비싸다고 여긴다면 우리 살림새하고 안 맞는다는 뜻입니다. 이때에는 맞춤하거나 싸다고 여길 곳으로 조용히 가면 돼요. 나한테 비싸대서 남한테도 비싸지 않아요. 더 눅어야 좋지 않고, 더 높아야 아름답지 않아요. 살림을 짓고서 나누는 길에 들어간 땀하고 품이 다를 뿐입니다. 새책집에서는 모든 책값이 같으나 헌책집에서는 모든 책값이 달라요. 그 고장에서 그 책을 갖추는 데에 들어간 땀하고 품이 다르거든요. 책집지기가 수월하게 잔뜩 들인 책은 값이 눅어요. 책집지기가 힘겨이 찾아내어 알뜰히 건사한 책은 값이 높아요. 오직 이뿐입니다. 우리가 책을 살 적에는 ‘글님 땀과 품’뿐 아니라 ‘책집지기 땀과 품’이 어우러집니다. 여기에 ‘책을 책집까지 실어나르는 일꾼 땀과 품’이 값으로 붙습니다. 우리가 일한 땀값·품값하고 책값은 같습니다. 책값 에누리를 할 까닭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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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53 안 배우고 논다



  배움터(학교)는 사람을 길들이는 곳입니다. 길을 들여서 똑같이 하도록 내모는 곳입니다. 삶터는 살아갈 생각을 스스로 짓는 곳입니다. 살림터는 사랑할 마음을 스스로 가꾸는 곳입니다. 배움터는 우리가 스스로 안 묻고 남이 시키는 대로 외우도록 내몰아 길들이는 곳입니다. 삶터랑 살림터는 우리가 스스로 묻고 스스로 생각해서 스스로 삶이랑 살림으로 나아가며 노래하고 즐기도록 흘러가는 곳입니다. 어느 쪽이 좋거나 나쁘지 않습니다. 바탕이 이러할 뿐이에요. 어느 곳에서든 우리 스스로 어떻게 바라보고 마주하고 헤아리면서 스스로 오늘 하루를 누리려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요. 배움터가 아무리 길들이는 곳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이 배움터에서 스스로 눈을 반짝이면서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놀고 이야기한다면, “길들여서 시키는 대로 내몰려는 그곳에서 거꾸로 스스로 묻고 생각하며 삶이랑 사랑이 피어나도록 바꿀” 만해요. 삶터나 살림터라 해도 윽박지르거나 시샘하거나 미워하거나 꺼리거나 등돌리거나 따돌리려는 마음이 터럭만큼이라도 있다면, “사랑이 아닌 ‘안 사랑’이 샘솟고 말아, 그만 스스로 바보로 나뒹구는 판”이 되곤 해요. 배움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아요. 다만 스스로 놀고 노래하는 마음일 때에 배우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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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하루, 책과 사귀다 52 힘들게 사네



  웬만한 어른조차 제 등짐을 못 듭니다. 엄청 무겁다고 할 만한 등짐에 사잇짐까지 여럿 겹쳐 들고서 걷거나 자전거를 달립니다. 이런 저를 두고 “힘들게 사네요”나 “고행하시네요” 하고 말하는 분이 있어 “저는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즐겁게 이 길을 걸어요.” 하고 말합니다. 즐기는 하루가 모이고 살림하며 노래하니 삶이 사랑으로 나아가거든요. “자가용 좀 몰면 안 힘들 텐데” 하고 묻는 분한테 “저는 글을 쓰고 읽는 길을 가기로 했기에 손잡이를 안 쥐기로 했습니다. 손잡이를 쥐고서 어떻게 글을 쓰고 읽나요?” 하고 말하지요. “무거운 책을 짊어지느라 책을 못 읽지 않나요?” 하고 되묻기에 “전 이 등짐을 짊어지고 걸어다니면서도 글꾸러미(수첩)를 펴서 글을 쓰고 한 손에 책을 쥐어요. 걸으면서도 얼마든지 쓰고 읽어요.” 하고 보탭니다. 몸소 이고 지고 다니면 힘들다고들 말하지만, 먼먼 옛날부터 얼마 앞서까지 누구나 스스로 이고 지며 살았어요. 아기는 어버이가 폭 감싸안을 적에 사랑스러운 기운을 느껴요. 종이꾸러미인 책도 똑같습니다. 두 손에 쥐고 펼 적에 책은 우리한테서 사랑빛을 받아서 반짝거려요. 손에 쥘 책을 등짐으로 이고 지며 집으로 나릅니다. 제 온사랑을 종이꾸러미한테 살며시 베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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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하루, 책과 사귀다 51 생각보다 젊네



  글을 써서 제 눈빛·삶길을 나타내려 한 때는 열일곱 살부터요, 마을책집과 우리말 이야기는 열여덟 살인 1992년부터 씁니다. 이즈음부터 제 글을 읽은 ‘나이든 분’은 저랑 얼굴을 마주할 적에 으레 “생각보다 어리네?”나 “생각보다 젊네?” 하고 말합니다. 이런 말에, 스무 살까지는 “아저씨(아줌마)는 생각보다 늙었네?” 하고 대꾸했고, 서른 살까지는 “일할 사람이 일할 뿐인데, 마음을 안 보고 겉모습만 보네?” 하고 대꾸했고, 마흔 살까지는 “마음을 보세요.” 하고 대꾸했고, 요새는 그저 빙그레 웃습니다. 우리말꽃지기(국어사전 편집장)를 스물여섯 살부터 했어요. 바깥(사회)에서 보면 이 나이가 어릴 테고, 속으로 보면 배움터를 집어치우고 오롯이 이 길을 팠기에 이 일을 할 뿐입니다. 우리는 나이로 일하거나 생각하거나 삶을 가꾸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일하고 생각하며 삶을 가꿉니다. 겉모습을 따지기에 사람을 속빛(마음빛) 아닌 몸나이(겉모습)로 따져서 위아래(계급)로 가르려 듭니다. 속살(마음결)을 바라보는 눈빛이라면 어린이나 젊은이한테 눈길을 맞추며 이야기를 하려고 다가서겠지요. 이야기에는 위아래나 높낮이가 없어요. 가르치려 들기에 겉나이나 겉모습을 따집니다. 글님 이름값 아닌 마음을 읽을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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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하루, 책과 사귀다 50 느낌글 말씨



  아직 말에 눈을 뜨지 않던 무렵에는 “어느 말이든 받아들이면서 제 생각을 나타내는 실마리”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조금씩 말에 눈을 뜰 즈음부터 “아무 말이나 받아들이면 제 생각을 제대로 나타내는 실마리가 아니라 엉킨 실타래가 된다”고 느꼈습니다. 얼핏 본다면 저는 ‘우리글 바로쓰기·우리말 살려쓰기’를 하는 셈이지만, 곰곰이 본다면 제 말글은 “생각을 푸르게 가다듬어 숲을 노래하려는 이야기가 될 씨앗”이라고 할 만합니다. 어떤 말이든 귀담아듣되 아무 말이나 입에서 흘러나오지 않도록 추스릅니다. 어떤 말이든 곱씹어 보고서 스스로 펼 새말을 손수 짓고 엮고 여미어서 옮깁니다. 그림책 느낌글을 쓰든 삶책(인문책) 느낌글을 쓰든, 우리는 부드럽고 쉽게 가다듬으면 됩니다. 문학평론·사회비평을 하는 전문지식인 말씨로 그림책 느낌글을 적는다면 어쩐지 어린이하고 동떨어지는구나 싶습니다. 그림책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놀이’가 바탕입니다. 이 놀이를 ‘사랑’으로 그리고 나누지요. 놀면서 사랑을 배우는 아이들이 ‘어떤 말’을 쓸까 하고 헤아리면, 그림책 느낌글로 담아낼 말결, 그림책을 바라보는 눈빛, 아이들하고 하루를 신나게 노는 살림, 아이들이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을 사랑, 이 모두 확 피어나겠지요.



* 덧 : 《펠레의 새 옷》이라든지 《닭들이 이상해》라든지 《날아라 꼬마지빠귀야》나 《닉 아저씨의 뜨개질》 같은 그림책, 《영리한 공주》와 《내 친구 튼튼 제인》과 《하이디》와 《플란다스의 개》와 《북풍의 등에서》와 《모래요정과 다섯 아이들》 같은 동화책을 찬찬히 누려 보면 “말씨(말이라는 씨앗)”가 어떤 힘이 있는지 새록새록 들여다볼 만하지 싶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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