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엇을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헤아리면 됩니다. 네가 읽을 책 아닌 내가 읽을 책을 고르는 만큼, 네 마음 아닌 내 마음을 헤아리면 됩니다. 남들이 어떤 책을 읽거나 말거나 쳐다볼 일이란 없습니다. 다만 남들이 읽는 책에 문득 눈길이 간다면 왜 그 책에 눈길이 갔는지, 또는 남들이 좋아하는 책에 왜 얼결에 눈길이 가는가를 헤아리면 됩니다. 우리가 읽을 책이란 우리 스스로 배울 길을 즐겁게 걸어가도록 북돋우는 책입니다. 남이 먹을 밥 아닌 내가 먹을 밥을 챙겨서 먹습니다. 남이 만날 사람이 아닌 내가 만날 사람을 사랑하면서 하루를 누립니다. 남이 배울 책이 아닌 내가 배울 책을 두 손에 쥐어 가만히 마음을 열고 생각을 키웁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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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외버스 책꽂이



  일본 오사카로 배움마실을 다녀오고 부산에서 내립니다. 기차를 타고 순천을 거쳐 고흥으로 돌아갈는지, 시외버스를 타고 고흥까지 네 시간을 내처 달릴는지 어림하다가 시외버스를 타기로 합니다. 시외버스 일꾼은 언제나 그러했다는 듯이 텔레비전을 켭니다. 이 시외버스는 우리 집 아이들이 함께 탔는데, 버스 일꾼은 ‘아이가 탔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아무 방송이나 틀어 놓습니다. 곁님은 이를 보고 얼른 앞으로 걸어가서 버스지기님한테 말을 여쭙니다. 아이들이 타서 저 방송에서 나오는 얘기나 소리가 안 좋으니 소리를 끄거나 화면을 꺼 주십사 하고. 버스지기님은 처음에는 안 끄겠다고 하셨는데 조금 뒤에 갑자기 꺼 줍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때 불쑥 한 가지 생각이 들어요. 시외버스에 놓은 텔레비전을 몽땅 치우고, 그 자리에 ‘책꽂이’를 두면 좋겠구나 싶은. 시외버스에는 아이를 이끄는 어버이가 으레 타곤 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타고, 젊은이라든지 군인이라든지 길손이라든지 나라밖 마실벗이 타기도 해요. 이주노동자도 타고 푸름이나 중·고등학생이나 대학생도 타지요. 시골지기도 타고 여느 회사원이나 공무원도 탑니다. 이렇게 온갖 자리 갖은 사람이 드나드는 시외버스이니, 그냥그냥 맞춰서 갖추는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가 아닌, 책을 잘 알거나 사랑하는 책지기가 찬찬히 가려서 뽑은 책을 두면 좋겠구나 싶어요. 그림책, 어린이책, 시집, 만화책, 사진책, 문학책, 인문책, 과학책, 때로는 국어사전까지도. 시외버스 텔레비전 크기를 헤아리면 적어도 예순 권쯤은 꽂을 만한 책꽂이를 둘 만해요. 이렇게 시외버스에 책꽂이를 둔다면, 사람들 눈길이나 손길이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요? 멍하니 화면을 좇는 눈길이 아닌, 스스로 생각을 살찌우는 길로 시나브로 바뀔 만하지 않을까요? 아마 한동안 책을 아무도 안 빌려 읽을는지 모르고, 때로는 책을 훔치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래도 ‘시외버스 책꽂이’를 문화부와 지자체와 버스회사와 출판사가 서로 손을 잡고서 알차고 알뜰히 건사하고 다룰 수 있다면, 버스지기님도 일을 쉬면서 책을 틈틈이 펼 수 있다면, 우리 삶자리는 차근차근 새로워질 만하지 싶습니다. 2018.7.26.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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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려고 하면



  하려고 하면 하기 마련이지만, 하려고 안 하면 안 하기 마련입니다. 읽으려고 하면 읽기 마련이지만, 읽으려고 하지 않으면 안 읽기 마련입니다. 배우려고 하면 배우기 마련이지만,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 안 배우기 마련입니다. 어떤 일이 왜 누구한테는 일어나고 누구한테는 안 일어나는가를 굳이 생각하지 않고 살았기에 “하려고 하면 한다”는 말을 깊이 안 살폈습니다. 되는 까닭하고 안 되는 까닭은 아주 쉽습니다. 하려고 하기에 어떤 일이든 되고, 하려고 안 하기에 어떤 일이든 안 됩니다. 보려고 하기에 두 눈을 감고도 마음속을 환히 바라볼 수 있고, 보려고 하지 않으니 두 눈을 빤히 뜨더라도 마음속은커녕 겉모습조차 못 알아보기 일쑤입니다. 훌륭하다는 책을 곁에 두기에 훌륭하지 않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다가서고, 어떤 눈길로 바라보며, 어떤 손길로 어루만지면서 짓느냐 같은 대목이 대수롭습니다. 밥 한 술로도 배부르고, 바람 한 줄기로도 배부르며, 이슬 한 방울로도 배부릅니다. 2018.7.25.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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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하마 책집 앞에서



  일본 오사카시 스미노에구 코하마역에 자그맣게 책집이 있습니다. 이 책집 앞을 지나가면서 사진을 몇 장 찍습니다. 3분이나 5분 즈음 틈을 낸다면 책을 여러 권 장만해서 가슴에 품을 테지만, 1분이나마 틈을 낼 수 없기에 책집 둘레를 천천히 거닐다가 사진을 품자고 생각합니다. 사진을 품으면서, 사진에 남은 책등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 책이 걸어온 긴긴 나날을 어림하면서, 앞으로 이 책이 새로 만날 책벗 손길을 헤아리면서, 오늘 제가 걸어갈 살림길을 되새깁니다. 우리 집 책꽂이에 두어도 책이요, 눈맛으로 살펴서 담을 적에도 책입니다. 2018.7.25.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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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든 안 하든



  나한테 손쉬운 일이 그대한테 어려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대한테 수월한 일이 나한테 빠듯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쉽게 읽어내어 헤아리는 책이 그대한테는 골이 아플 수 있습니다. 그대가 재미나게 읽으며 웃거나 우는 책이 나한테 따분하거나 밍밍할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구보다 잘하다 보니 언제나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일이 있습니다. 그대가 누구보다 훌륭히 하다 보니 늘 고스란히 이루어내는 일이 있습니다. 내가 누구보다 즐기면서 곁에 잔뜩 쌓아 두는 책이 있습니다. 그대가 더없이 아끼면서 둘레에 한가득 쟁여 두는 책이 있습니다. 한다면 할 뿐이고, 안 하거나 못 한다면 안 하거나 못 할 뿐이겠지요. 하기에 더 뛰어나지 않고, 못 하거나 안 하기에 덜 떨어지지 않아요. 이 책을 읽어내거나 장만했거나 거듭 새긴대서 더 훌륭하지 않습니다. 다만, 어느 책을 손에 쥐든, 어떤 살림길을 걷든, 스스로 즐겁게 하면서 이웃 곁에서 너그럽고 푸진 마음이 되도록 하루를 다스릴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2018.7.25.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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