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수다쟁이


  나무가 수다쟁이라고 여기거나 느끼지 않으면서 살아왔습니다. 나무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줄 알았지만, 나무가 얼마나 조잘조잘 수다를 잘 떠는지는 여태 몰랐습니다. 나무가 들려주는 수다를 마음으로 듣고는, 아하 나무란 이렇구나, 나무는 우리 곁에서 수다를 떨고 싶어서 사람을 몹시 기다리는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나무가 저한테 들려준 이야기가 꽤 많습니다. 고작 삼십 분 즈음이었는데, 사람들이 딱딱한 신으로 숲에 마구 들어오느라 뿌리가 밟혀 얼마나 아픈 줄 아느냐고, 제발 사람들이 숲에는 맨발로 들어오기를 바란다고 거듭 말하더군요. 나무 곁에 서거나 풀밭에서 으레 개미가 몸을 타고 오르기 마련인데, 개미는 가려운 곳을 긁어 주려고 오르내리다가 가끔 콕 문대요. 우리 몸에서 씻어 주어야 할 아픈 곳을 물어 주는데,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지켜보다가 슬며시 털어내면 된답니다. 숲에 이는 바람이 얼마나 시원한지 느껴 보라고 쏴아쏴아 바람을 불러 주기도 했고, “눈을 감고도 또 보아야 하니? 둘쨋눈(제2의 눈)으로도 보려고 하지 마. 왜 너희 사람은 눈(뜬눈·감은눈)으로만 알려고 하니? ‘없는눈’으로 알려고 해 봐. 훨씬 깊고 커.” 같은 말은 두고두고 가슴에 새기기로 했습니다. 마음으로 보는 눈, 곧 ‘마음눈’으로 나무를 바라보려고 했더니 이 마음눈마저 감으라고, 아무 눈을 뜨지 말고 그저 맞아들여서 느끼고 누리라고 조잘조잘조잘조잘 …… 쉼없이 떠들어대는 나무였어요. 2018.8.6.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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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에 잠기다



  참 오래 한 가지 생각을 하면서 물에 몸을 맡겼어요. ‘나는 헤엄을 못 쳐’ 같은. 이제 이 생각을 더는 안 합니다. 요새는 ‘나는 물하고 사귀면서 놀고 싶어’ 하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물에서 헤엄질을 하지는 않아요. 숨을 크게 들이마시든, 아니면 숨을 다 내뱉은 빈몸으로든, 물속 깊이 잠기며 놀기를 즐깁니다. 헤엄질도 재미있을 텐데, 자맥질도 매우 재미있어요. 더구나 제법 깊은 물속에 가라앉아서 얌전히 바닥에 앉아 본다든지, 엎드리거나 눕는 자맥질이 매우 재미나요. 자맥질을 할 적마다 조금씩 길게 해 보는데, 제가 물속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지낼 수 있나 놀라곤 합니다. 그렇다고 아직 10분이나 20분쯤 물속에 잠기지는 못하는데, 우리 살갗이 뭍에서는 바람에 깃든 숨을 걸러서 마시듯이 물에서는 물에 깃든 숨을 걸러서 마시지 않나 하고 문득 느껴 보았어요. 굳이 코나 입으로 숨을 가득 담아서 물속에 잠기지 않아도 된다고, 우리 살갗은 물이 몸속으로 못 들어오게 막는 구실도 하지만, 이러면서 물에 깃든 숨을 알맞게 걸러서 받아들이는 줄 느낀다면, 물속에서 얼마든지 길게 자맥질놀이를 할 만하구나 싶습니다. 이렇게 자맥질을 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다 보면, 물고기가 물속에서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함께 느낄 만해요. 뭍에서는 뭍대로 느끼고 보는 눈이요, 물에서는 물대로 느끼고 보는 눈이로군요. 우리가 뭍에서 으레 적외선 테두리로만 바라보는데, 자외선이나 감마선이나 알파선이나 베타선이나 엑스선을 볼 줄 안다면, 이러한 빛줄기를 보는 눈으로 마음을 활짝 열 줄 안다면, 더욱 재미나겠구나 싶습니다. 뭍하고 물을 거쳐 하늘을 날며 볼 수 있다면, 그때에는 새가 온누리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배우겠지요? 종이책을 한동안 덮고서 골짝물에 잠기니, 갖가지 새로운 책이 저를 이끌면서 새롭게 가르쳐 줍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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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가 숨쉬다



  바위나 돌이 숨을 쉬는 줄 예전부터 알았습니다. 어릴 적에 크고작은 돌을 귀나 볼에 가져다 대면 돌이 얼마나 따뜻하면서 반기는지 몰라요. 돌은 우리가 저희를 가만히 집어서 손바닥에 올려놓을 적에 대단히 기뻐합니다. 커다란 바위는 우리가 저희한테 다가가서 몸을 맡겨 기대면 아주 좋아합니다. 돌이나 바위는 매우 단단하면서 무거운 몸으로 이 별에 있어요. 그래서 돌이나 바위는 저희 몸으로 나들이를 다니지는 않습니다. 돌이나 바위는 무거운 몸에서 숨결로 빠져나와서 홀가분하게 온누리를 날아다녀요. 우리가 작은 돌을 손바닥에 얹으면, 돌이 그동안 넋으로 온누리를 날아다닌 이야기를 우리한테 마음으로 들려줍니다. 우리가 커다란 바위에 몸을 기대거나 안기면, 돌이 여태 넋으로 온누리를 두루 누빈 이야기를 우리한테 마음으로 알려주고요. 퍽 오랫동안 돌이나 바위하고 안 놀았다고 느낍니다. 아마 아이에서 어른이 되면서 여러모로 할 일이 늘어서 바쁘다는 핑계를 댈 만할 테고, 어른이란 몸을 입으면서 돌이나 바위보다는 다른 동무나 놀잇감이 생겼다고 할 만할 테지요. 참으로 오랜만에 아주 느긋하게 바위 품에 안겨 엎드려 보았습니다. 커다란 바위는 처음에는 시큰둥해 하는 듯했지만, 어느새 아주 기쁨이 차올라서 출렁출렁 너울처럼 큰숨을 몰아쉬었습니다. 이러다가 곧장 저를 꿈나라로 이끌었고, 저는 바위한테 녹아들어서 긴긴 나날 바위가 지구라는 별에서, 또 지구 바깥 뭇별에서 어떤 삶과 이야기를 엮었는지 하나하나 듣고 볼 수 있었습니다. 바위는 단단하면서 묵직한 덩어리로 이룬 새롭고 놀라운 책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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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귀가 앉다



  사마귀가 제 오른손등에 앉았습니다. 한참 이렇게 앉아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저는 커다란 바위에 몸을 맡겨 오른귀를 대고 엎드리다가 깜빡 잠들었는데, 사마귀가 저를 잠에서 깨우더군요. 이러면서 저한테 물어요.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봐.” “‘하고 싶은 말’이라니, 무슨 말?” “네가 바라는 것, ‘소원’ 같은 말.” “그래? 그러면 내가 돈을 바라면 돈을 줄 수 있니?” “돈? 그게 뭔데? 나(사마귀)는 돈이 뭔지 모르지만 네가 바라면 줄게.” 사마귀가 마음으로 하는 말을 듣다가 슬쩍 웃었습니다. 사마귀는 저한테 제가 바라는 돈이 있으면 주겠다고 하기에 어떤 숫자를 가만히 마음에 띄운 다음 다른 말을 합니다. “그런데 네가 모른다는 돈을 바라고 싶지는 않고, 나는 ‘보금자리숲’이면 좋아.” “알았어.” 사마귀하고 말을 섞다가 생각했습니다. 저는 여태 사마귀를 늘 가까이에서 마주하고, 우리 집에서 함께 살기도 하지만, 정작 사마귀가 제 손등이나 팔뚝이나 어깨나 머리에 올라앉도록 내주지는 않았더군요. 어제(2018.8.4.) 처음으로 제 몸을 맡겼습니다. 사마귀는 아주 부드러우면서 날렵하게, 또 바람 따라 한들한들 춤을 추면서 오랫동안 저하고 놀다가 숲으로 돌아갑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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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이랑 믿음



  어린이로 살다가 어른이라는 몸으로 자라면서 둘레 어른한테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습 하나는 ‘믿음’이었습니다. 둘레 어른들이 ‘참을 참대로 느끼지 못하’기도 하고, ‘참이라고 느끼면서 정작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하며, ‘참을 굳이 알지 않으려 하’거나, ‘참인 줄 알아차리면 몹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았어요. 왜 이래야 하는지 참으로 수수께끼였습니다. 이제 저는 둘레에 있는 사람들한테 으레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가 믿기는 쉽지 않겠지만 참입니다. 그대가 믿지 않는다고 해서 참이 사라지거나, 참이 거짓이 될까요? 참은 늘 참 그대로 있습니다.” 참이란 삶입니다. 믿음이란 삶이 아닙니다. 참이란 삶에서 비롯합니다. 믿음이란 삶 아닌 곳에서 비롯하여 우리 마음에 깊이 또아리를 뜬 채 모두 가로막는 높다란 담벼락입니다. 참을 다룬 책을 멀리한다고 해서 참이 사라질 수 없습니다. 참이 아닌 믿음을 다룬 책을 가까이한다고 해서 ‘믿음이 참으로 바뀔’ 수 없습니다. 믿음을 버려야 참을 볼 수 있고, 믿음을 깨야 참을 배울 수 있습니다. 2018.8.4.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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