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89 옮김책



  일본 어린이한테 일본말을 맛깔스럽게 들려주는 책을 우리말로 옮긴다면, 우리는 무슨 말맛을 우리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셈일까요. 미국 어린이한테 미국말(영어)을 재미나게 알려주는 책을 우리말로 옮기면, 우리는 무슨 말빛을 우리 아이들한테 알려주는 노릇일까요. 모든 나라하고 겨레가 다 다르게 말을 합니다. 우리나라만 보아도 고장마다 말결이 달라요. 경상사람한테 전라말을 쓰라 할 수 없고, 전라사람한테 경상말을 모른다고 타박할 수 없어요. 말마다 이 말을 지어서 쓰는 사람들 숨결하고 살림이 흐르기에, 다 다른 말을 듣고 새기고 익히고 마주하면서 저마다 다르게 짓는 하루를 돌아보고 어깨동무하는 실마리를 찾지요. 이웃나라 책을 우리말로 옮길 적에는 ‘우리하고 다른 이웃 살림결’을 ‘우리 살림결에 걸맞게 추스르고 다독이고 매만지는 눈썰미’를 펴야 합니다. 우리말을 바깥말(외국말)로 옮길 적에도 같아요. 서로 다른 삶결을 안 살피기에 “번역은 반역이다” 하고, “엉터리로 옮긴다” 하고 말합니다. 우리말로 둘이 이야기를 할 적에도 그동안 서로 달리 살아온 나날을 돌아보고 마음을 읽어야 비로소 속내를 알아채요. 하물며 이웃말을 옮긴다면, 어린이책을 옮긴다면, 우리말부터 더더욱 깊고 넓게 익힐 일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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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87 공무원



  작은아이가 열한 살일 적에 인천으로 책집마실을 함께가는 길에 우체국하고 글붓집(문방구)을 찾다가 실컷 헤맸습니다. 도무지 못 찾겠을 뿐 아니라, 길알림판을 볼 수 없습니다. 우체국이나 글붓집을 알려주는 판이 없어 아쉽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부릉이(자동차)를 모는 사람한테 알려주는 판은 찻길 복판에 있고, 다리로 걷는 사람한테 알려주는 판은 아무 데도 없어요. 저는 아기수레를 안 썼어요. 아기를 등에 업거나 품에 안으며 걸었습니다. 아기가 어버이 품을 포근히 여기는 줄 알아서 업거나 안기도 했으나, 거님길이 워낙 엉망이라 수레에 아기를 태울 엄두는 아예 안 냈습니다. 나라지기(대통령)나 벼슬꾼(공무원·국회의원)이나 고을지기(지자체장) 가운데 거님길을 스스로 걸으며 살림(행정)을 살피는 이는 몇이 될까요. 부릉이조차 남(심부름꾼)이 몰아 주곤 합니다. ‘공무원시험’부터 책상물림인데, 막상 벼슬꾼이 되고 나서도 책상물림에다가 안 걸어요. 마을도 살림도 아이 눈높이도 모르는 채 벼슬을 쥐고 달삯을 받습니다. 누구를 탓할 마음은 없어요. 걷지 않으면 하늘을 못 보고 풀꽃나무를 못 사귑니다. 안 걸으면 아이랑 놀 틈이 없고, 마을하고 등져요. 이런 삶길은 그분들 스스로 고단할 텐데 그 삶을 그냥 가는 듯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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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2022.2.9.

책하루, 책과 사귀다 86 믿음



  숱한 사람들이 ‘듣고 싶지 않은 말’에 귀를 닫습니다.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합니다. 이러한 매무새는 틀리지도 나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옳지도 맞지도 않습니다. ‘듣고 싶지 않은 말’을 생각할수록 ‘듣고 싶지 않은 말’은 자꾸 우리한테 찾아듭니다.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 할수록 언제나 ‘듣고 싶지 않은 말’이 나란히 찾아들어요. 이 삶은 장난꾸러기이기 때문일까요? 아마 삶은 장난꾸러기에 개구쟁이에 말괄량이이 놀이꾸러기라고 할 만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들을 말’을 생각할 노릇입니다. ‘듣고 싶지 않은 말·듣고 싶은 말’이라는 굴레에 갇혀 쳇바퀴처럼 맴도는 길을 끝내고, ‘들을 말’을 헤아려서 ‘들려줄 말’을 지을 노릇입니다. 어떠한 말을 스스로 듣고서 어떠한 말을 새롭게 스스로 지어서 들려줄 적에 ‘사랑’으로 나아가는가를 살피면 돼요. 느긋이 가야지요. 서두를 일이 없어요. 우리 하루는 짧거나 빠듯하지 않아요. 나라(정부)가 시키는 대로 하지 말고, 남(사회)이 하는 틀을 따라가려고 용쓰지 마요. 오직 스스로 보금자리를 사랑으로 가꾸어 곁짝하고 아이들하고 즐겁게 살림을 노래하는 이곳을 펼쳐 봐요. ‘나부터’예요. ‘남부터’가 아닙니다. 믿음 아닌 사랑으로 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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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85 아름책



  둘레에서 ‘추천도서·비추천도서’를 말할 적에 처음에는 이 이름을 그대로 썼어요. 그런데 책을 늘 읽는 사람이라면 이런 이름이 익숙할 테지만, 책을 잘 안 읽는 사람이나 어린이한테는 낯설거나 어렵습니다. 이 대목을 느낀 때부터 새말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쓰면 어울릴까? 어떤 이름을 붙이면 어린이도 쉽게 받아들일까? 어떤 이름일 적에 책하고 먼 이웃을 사로잡을 만할까?” 한 해 닷 해 열 해를 지나던 어느 날 동무가 “네가 좋아하는 책을 알려줘.” 하고 묻습니다. “난 좋아하는 책 없어.” “넌 책을 많이 읽는데 좋아하는 책이 없다고?” “응. 난 책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아. 삶이란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을 뿐이야. 책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 “헐. 그렇게 말하면 나 같은 사람은 무슨 책을 읽으라고?” “다만, 난 좋아하는 책은 없지만, 아름답다고 여기는 책이나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책은 있어.” “그래, 그런 책을 알려줘 봐.”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책 = 아름책”으로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책 = 사랑책”으로 이름을 붙이자고 생각했습니다. ‘추천도서’도 ‘자기계발서’도 ‘인생의 책’도 아닌 ‘아름책’이면 넉넉하고, ‘사랑책’을 곁에 둔다면 즐겁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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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84 티끌


아주 작은 먼지요, 이보다 작은 티끌입니다. 티끌이 있어 손사래치기도 하지만, 티끌은 매우 작은데 굳이 흉을 잡지 말고서 봐주어야 한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두 길은 틀리지 않습니다. 티끌 탓에 얼마든지 손사래칠 만합니다. 머잖아 스스로 티끌을 털고서 거듭나리라 믿으면서 품을 만합니다. 다만, 우리는 생각해야지요. 티끌이 왜 티끌일까요? 그렇게도 조그마한데 티끌은 왜 보일까요? 바로 ‘아주 조금이라도’ 흐트러지거나 물들거나 찌들거나 더럽기 때문에 티끌이 생겨요. 티끌이 생기기에 나쁘지 않아요. 티끌이 생기는 까닭을 읽어내어 차분히 마음을 다스리거나 갈고닦으면서 새롭게 나아가는 길을 열 노릇입니다. 티끌을 느끼거나 보기에 한결 단단하면서 아름답게 피어날 만합니다. 풀벌레가 갉은 일이 없이 꽃을 피우는 푸나무는 없습니다. 바람에 안 흔들린 푸나무도 없습니다. 안 넘어지거나 안 다치고서 자라나는 어린이는 없습니다. 티끌은 누구한테나 낄 만합니다. 티끌이 생기는 까닭이란, 우리 스스로 아주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꿈이나 사랑하고 멀어지는 줄 보여주려는 뜻이라고 느껴요. 티끌을 사랑해 봐요. 티끌한테 “고마워. 사랑해. 이제 넌 네 나들이를 떠나 보렴. 여기 말고 저 하늘로 날아가 봐.” 하고 속삭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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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 2022.1.28.


사람들을 옭아맨 틀을 내려놓은 덴마크, 입가리개를 씌우는 일을 이제 안 하겠다는 영국, 우두머리(대통령) 뜻이 참길(헌법·인권)에 어긋나기에 막짓(백신강제접종)하고 입가리개는 틀렸다(위헌 판결)고 밝히는 미국이 제대로 가는 길일 테지요. 이러한 모습 사이로 지난 몇 해 동안 뒷놈(백신커넥션·백신재벌 빌게이츠)이 큰붓(빅테크)과 손잡고 벌인 두려움 북돋우는 새뜸(언론보도), 새로운 전자신분증 감시제도인 큐알코드·백신패스는 히틀러가 했던 짓을 고스란히 따라하는 굴레일 테고요. 나라(정부)는 사람들을 지킬 뜻이 없다고 느낍니다. 그들(정부·지식인)한테 사람들은 종(노예)일 뿐이니까요. 나라 없는 푸른별이어야 비로소 사람들 누구나 아늑하다(평화·평등)고 생각합니다. 이명박은 새만금 22조를 했다지만, 박근혜를 끌어내린 이들은 ‘남해안 관광벨트 20조 원’으로 전라도 경상도 글바치(지식인·문인·교수)한테 돈(홍보비)으로 재갈을 물려 놓았고, ‘해상태양광풍력발전’으로 서해 남해 동해를 쓰레기 판·바람개비로 220조가 넘는 돈을 퍼부었는데, 누구 주머니로 갔는가요. 오늘날 이 나라 뒷모습입니다. 해상태양광풍력발전은 다도해국립공원에 벌써 버젓이 때려박았으니, 아는 분은 진작에 꼬막이나 굴을 안 먹습니다.


ㅅㄴㄹ


마땅하지만, 

전남 고흥에서 살며

바닷고기를

날살(회)로도 구이로도

안 먹은 지 오래됩니다.


이 나라(정부)가 

바다에 무슨 짓을 했는지

지난 몇 해 동안

뻔히 보았으니까요.


민낯을 안 보려고 

눈을 돌리는 분이 많더라도

민낯은 안 사라집니다.

그저 민낯이기 때문에.


전남 광주에서 왜 

멀쩡한 '공사중 아파트'가

무너질까요?


전라도 '글바치(지식인)'는

다들 무슨 뒷돈을 잔뜩 먹었기에

입을 꾹 다물까요?


전라남도 지자체는 

벌써 열 몇 해째

'공무원청렴도'가 하나같이

밑바닥인데

열 몇 해째뿐 아니라

스물 서른 마흔 해 넘게

내내 '공무원청렴도 최하위'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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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을 앞둔 글 한 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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