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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서 읽는 책



  인천에서 나고 자란 뒤 서울에서 여러 해 지내면서 마음속에 늘 한 가지가 맴돌았다. 몹시 아쉬운 한 가지였으니, 마당에 걸상을 놓고 나무그늘을 누리면서 읽는 책이었다.


  마당이 예쁘게 있는 시골집에서 아이들이 노는 소리를 귓가로 스치면서 고즈넉하게 책을 읽는다. 아이들 웃음소리와 발소리 사이로 나뭇가지가 흔들리면서 나뭇잎이 살랑이는 노래가 흐른다. 더 많이 읽거나 더 빨리 읽을 일이 없다. 그날그날 마음을 살며시 살찌우면서 생각을 추스른다. 이제껏 품은 생각을 가다듬고, 미처 길어올리지 못한 생각을 보듬는다.


  책을 읽으면서 무엇이 즐거울까. 하루를 아름답게 짓는 길에 새롭게 기운을 낼 수 있으니 즐거우리라 느낀다. 내 이웃들도 나무그늘에서 햇살을 느낄 수 있는 마당을 누리면서 책을 손에 쥐고 풀내음을 맡을 수 있기를 빈다. 4347.9.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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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이 달랜다



  아이들한테 아침을 차려 주고 난 뒤 고단해서 살짝 자리에 눕는다. 설거지는 마쳤고, 빨래는 한숨 돌리고 나서 할 생각이다. 한 시간쯤 눈을 붙였을까, 삼십 분쯤 눈을 붙였을까, 우체국 일꾼 목소리를 듣고 눈을 번쩍 떠서 소포를 받은 뒤 시계를 보았을 때에는 삼십 분쯤 지난 듯하다. 우체국 일꾼은 작은 책꾸러미 하나를 건네준다. 따로 시킨 적이 없는 책인데 누가 보냈을까 궁금하게 여기며 봉투를 뜯는다. 아, ㅊ이라는 곳에서 보낸 책이다. 비노바 바베 님 교육책이 얼마 앞서 새로 나왔다 했는데 ‘서평쓰기 책’으로 보내 주었다.


  졸음을 떨치고 책을 펼친다. 예전에 읽을 적에도 느꼈는데, 비노바 바베 님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슬기로운 숨결이 있다. 이러한 숨결을 만나면 ‘사라진 기운’이 돌아오고 ‘없던 힘’이 천천히 솟는다. 책이란 이러할 때에 책이라고 느낀다.


  아나스타시아 이야기 여덟째 책 《새 문명》과 나란히 놓고 함께 읽어 본다. 따사로운 바람이 살며시 분다. 이윽고 책을 모두 덮고 기지개를 켠다. 신나게 빨래를 한다. 어제와 그제 비가 꽤 많이 내린 터라 이틀 사이에 빨래 몇 점만 했더니, 제법 쌓였다. 슬슬 추위가 다가오니 곧 두꺼운 옷가지를 빨래하느라 등허리가 꽤 결리겠네 싶다.


  빨래를 마무리짓고 마당에 넌다. 한가을에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을 받는다. 눈부신 햇볕을 받는 곡식은 잘 익으리라. 빨래도 잘 마를 테고, 내 마음에도 즐거운 이야기가 샘솟을 테지. 빨래를 다 널었으니 자전거를 몰아 서재도서관에 가서 살짝 아이들과 논 다음, 우체국에 다녀와야겠다. 책 한 권을 선물처럼 받으면서 새롭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4347.9.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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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깃들고 싶은 사람은



  숲에 깃들고 싶은 사람은 늘 숲을 생각한다. 언제 어디에서나 숲을 꿈꾼다. 그래서 그예 숲으로 나아가고, 숲에서 삶을 지으며, 숲에서 노래를 한다.


  숲에 깃들 마음이 없는 사람은 언제라도 숲을 안 생각한다. 언제 어디에서라도 숲을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헤아리지 못한다. 누군가 숲을 망가뜨려도 아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숲을 밀고 고속도로나 발전소나 공장이나 골프장이 들어서더라도 알아채지 못한다.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은 돈을 번다. 돈을 생각하고 돈을 바라며 돈을 바라본다. 이리하여,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은 언제나 돈에 둘러싸인다. 돈에 둘러싸이니 언제 어디에서나 돈하고만 얽히고, 돈에 사로잡히다가, 끝끝내 돈에 갇힌다.


  생각이 삶을 짓는다. 생각이 삶으로 드러난다. 생각이 삶으로 피어난다. 생각하는 만큼 살아간다. 생각하는 대로 살아간다. 이는 바로 참말이다. 참으로 그렇다. 생각하지 않으니 할 수 없다. 생각하니 할 수 있다. 생각하지 못하기에 알지 못할 뿐 아니라, 느끼거나 바라볼 수조차 없다. 숲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시골로 나들이를 가더라도 어디에 숲이 있는지 모르고, 숲 어귀에 서더라도 이곳이 숲인지 못 깨닫는다. 이를테면, 이런 일도 있다. 스스로 어떤 책을 바라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은, 또 스스로 책방이 어떤 곳인지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이녁 손에 쥔 쪽글에 이녁이 사려고 하는 책을 적었으나, 막상 이녘 눈높이에 있는 책꽂이에 이녁이 바라는 책이 꽂혔어도 알아내지 못한다. 생각이 없고 생각을 심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해야 한다. 생각을 지어야 한다. 어떤 사랑을 꽃피우면서 어떤 노래를 부르고 싶은지 생각을 지어야 한다.


  남이 시키는 대로 하면 생각을 잃는다. 사회라는 굴레에 갇힌 채 종살이를 하는 쳇바퀴에서 스스로 벗어날 생각을 품지 않으면, 늘 언제 어디에서나 고단한 나날을 되풀이할 뿐, 어떤 삶도 이루지 못한다. 우리는 날마다 ‘삶’이 아닌 ‘지겨운 반복작업 컨베이어벨트’에 갇힌 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날마다 ‘삶’을 새롭게 누리면서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이야기하는 숨결이 될 수 있다. 4347.9.2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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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책



  걷는 길이 가장 멀거나 오래 걸릴 듯이 여긴다. 그러나 걷는 길은 차근차근 이루는 길이요, 오래 걸리는 길이 아니라 밑바탕부터 튼튼하게 제대로 이루는 길이다. 걷는 길이기에,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삶이 있으며, 이 삶을 이야기로 엮을 수 있다. 이 이야기가 마음을 살찌우는 밥이 된다. 스스로 걷고 마음밥을 먹으면서, 사랑 짓는 노래와 글과 그림과 사진이 태어난다. 걷는 사람이 책을 내고, 걷는 사람이 생각을 가꾼다. 걷는 사람이 빙그레 웃고 어깨동무를 한다. 4347.9.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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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책을 꾸준히



  새롭게 산 책은 앞으로 언제이든 같이 즐길 수 있어요. 이제부터 내 곁에 있으니까요. 오늘 바로 읽을 수 있고, 이튿날 읽을 수 있으며, 보름이나 달포쯤 묵힌 뒤 읽을 수 있어요. 즐겁게 장만한 만큼, 내 마음에 스며들 때를 즐겁게 기다린 뒤 한 장씩 넘길 수 있어요.


  책 한 권을 오늘 새롭게 사서 오늘 읽어도 즐겁습니다. 책 한 권을 오늘 새롭게 사서 다음달에 읽어도 즐겁습니다. 책 한 권을 다음달에 사서 그날 바로 읽어도 즐겁습니다. 언제 어떻게 읽든 내 마음으로 흘러들 이야기요 노래이며 숨결입니다.


  무엇인가 느낀 그날부터 느긋하게 천천히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책을 사는 일을 그저 즐겁게 받아들이면서 누리면 되지요. 새로운 책을 읽는 하루를 언제나 기쁘게 꿈꾸면서 밝히면 돼요.


  책을 새롭게 살 수 있는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아무래도 ‘늘 새롭게 배우고 싶다는 뜻’이 있기에 책을 새롭게 살 수 있구나 싶어요. ‘언제나 새롭게 느끼며 사랑하고 싶다는 뜻’이 있기에, 두 손에 책을 쥐고 생각을 가꿀 수 있구나 싶어요. 4347.9.1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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