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83 더위 추위



  제 입에서 “아, 덥다!”나 “아, 추워!” 같은 말이 얼결에라도 터져나온 적은 아예 없다시피 하다고 느낍니다. 어릴 적에 어머니가 “춥니?” 하고 물으시면 “음, 아니요. 그런데 손이 좀 어네요.”처럼 말하고, “덥니?” 하고 물으면 “글쎄, 딱히 덥지는 않은데 땀은 좀 나네요.”처럼 말했어요. 다치면 ‘아, 다치는 일이란 이렇구나’ 하고, 곁에서 그러면 힘들다고 알려주면 ‘아, 힘들다고 하는 느낌이란 이렇네’ 하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해, 저는 여름에 덥거나 겨울에 춥다고 느끼지 않아요. 더위와 추위란 이렇구나 하고 배웁니다. 땡볕에서는 땀이 이렇게 쏟아지는구나 하고 느낄 뿐입니다. 자전거를 오래 많이 타서 이튿날 아침에 팔다리가 뻑적지근하면 이처럼 자전거를 타니 몸이 뻑적지근하네 하고 느끼지요. 이리하여 이럴 때에는 어떻게 마음을 가다듬어 새롭게 기운을 내어야 오늘 하루를 새몸으로 신나게 누릴 만한가 하고 생각합니다. 누가 아름다운 책이라고 말하면 “저분은 저분이 걸은 삶에서 이런 줄거리를 아름답게 여기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글 한 줄이어도, 우리는 모두 다르게 보고 살며 하루를 짓기에 다 다르게 읽기 마련입니다. 보고 느끼고 겪으며 배우고, 배우며 삶이 되어 사랑으로 갑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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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82 봄



  무엇을 보는가요? 보는 동안 무엇을 느끼거나 배우나요? 모든 길은 보면서 엽니다. 안 보았다면 길을 못 엽니다. 보았기에 길을 열어요. 이 길은 좋을는지 모르고, 나쁠는지 모르지요. 어느 길이든 우리가 스스로 본 대로 열어요. 좋기에 즐겁게 간다면 좋은 길을 열 테고, 나쁘지만 길미나 돈이 된다고 여기면서 자꾸 본다면 나쁜 길을 열어요. 볼 적에는 눈으로도 보고, 손으로도 봅니다. 발이며 몸이며 살갗이며 혀나 귀로도 봐요. 우리는 숲도 보고 서울도 봅니다. 매캐한 바람도 보고 싱그러운 구름도 봐요. 어디에서 무엇을 보면서 마음을 채우나요? 무엇을 볼 적마다 어떻게 받아들이면서 생각을 가꾸나요? 머리나 마음이나 가슴으로도 보는데, 볼 적에는 ‘몸눈’으로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보는 사이에 모든 길이며 갈래가 태어나요. 어떤 눈짓으로 책을 보는가요? 어떤 눈길로 새뜸(신문)을 보는지요? 어떤 눈빛으로 하루를 보는지 곰곰이 헤아릴 일입니다. 보는 마음을 씨앗으로 심기에 비로소 싹이 트고, 우리 몸짓을 이루는 생각으로 피어납니다. 길들이려는 꿍꿍이로 보여주는 그림에 속는가요? 겉치레나 눈가림을 못 알아보나요? 스스로 풀꽃이 되고 나무가 되며 숲이 되어 사랑스레 걸어갈 길을 즐겁게 노래하면서 보는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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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81 군대라는 곳



  싸움판(군대)에서 벌어지는 주먹질(폭력) 이야기가 곧잘 불거집니다. 이제는 싸울아비(군인)로 끌려가는 젊은이가 손전화를 쥘 수 있기에 크고작은 주먹질을 바깥으로 알리기 쉽다고 할 만합니다. 지난날에는 손전화는커녕 공중전화조차 드물고, 대대쯤 가야 겨우 하나 있는 공중전화는 늘 몰래듣기(도청)를 합니다. 싸움판에서 쓰는 모든 글월은 몰래읽기(검열)를 해요. 저는 1995년에 논산훈련소에 들어갔는데, 증명사진을 찍힐 적에 모두 얼굴을 실컷 두들겨맞았습니다. “군인이라면 실실 웃지 말고 눈이 매서워야 한다”면서 “눈에 불길이 타오를” 때까지 패더군요. 훈련소를 마치고 강원도 양구 멧골짝으로 깃드는데, ‘훈련소 주먹질’은 매우 가벼웠네 싶어요. 스물넉 달을 용케 “안 맞아죽고 살아남았다”고, “동성 성폭력을 끝까지 견디며 빠져나왔다”고 돌아봅니다. 싸움판은 모든 주먹질을 물려줍니다. “맞고 시달렸으니 너도 똑같이 때리고 들볶으라”고 시킵니다. “맞은이(피해자)가 때린이(가해자)가 되도록 내몰아 군대폭력이 밖으로 새지 않게 입막음”을 하는 셈입니다. 맞았지만 안 때리고 살아남기란 얻어맞기보다 훨씬 힘들지만, 총칼 아닌 사람빛을 품으면 겨우 버틸 만하더군요. 그곳은 죽음터요 사슬터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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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하루, 책과 사귀다 80 남편과 아내 사이



  《남편이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다》나 《아내를 위한 식탁》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누가 누구한테 해주는 밥보다는 “함께 짓는 즐거운 밥자리”가 가장 맛나면서 사랑스럽고 빛나리라 생각합니다. 남한테 이런 말을 하기보다 스스로 할 노릇이기에, 지난 2017년에 ‘아버지 육아일기·전업주부일기’를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이란 이름을 붙여서 내놓았습니다. ‘사내(돌이)’가 도맡아서 ‘해주는’ 집안일이 아닌, “함께 살림을 즐겁게 짓자”는 마음이 되도록 씨앗을 심는 길이 즐거우며 아름답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남편’이 아니고, 저랑 사는 사람은 ‘아내’가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 ‘곁님’입니다. 아이들은 저한테 ‘부양가족’이 아닙니다. ‘집님’입니다. 우리 보금자리에서 네 사람은 서로 ‘곁님·집님’이면서 ‘살림님·사랑님’입니다. 이러면서 ‘별님·숲님·꽃님·이야기님’으로 나아가자고 생각해요. 어깨동무하는 곳에서 놀이가 태어나거든요. 손잡는 데에서 사랑이 싹트고요. 노래하는 곳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춤추는 곳에서 손을 잡습니다. 순이돌이(여남)를 가르기보다는 돌이순이(남녀)가 보금자리를 즐겁게 사랑으로 짓는 슬기롭고 푸른 눈빛이 되어 함께 노래하는 꽃둥지로 가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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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2021.12.22.

책하루, 책과 사귀다 78 제비



  지난날에는 우리나라 우체국 그림이 ‘제비’였습니다. 어느 돈터(은행)는 ‘까치’를 얼굴(상징)로 삼았습니다. 제비나 까치는 우리나라에서 널리 사랑받던 새입니다만, 시골이 줄고 서울이 자라는 사이에 차츰 잊히거나 미움받는 숨결로 바뀝니다. 이러던 어느 날 우체국도 돈터도 제비 그림하고 까치 그림을 슬그머니 치웠고, 이를 눈치채지 못하는 분이 무척 많습니다. 봄이 되면 찾아오는 반가운 새인 제비처럼, 우리한테 반가이 글월이 찾아든다는 이야기를 제비 그림으로 나타냈는데, 제비보다 빠른 누리길(인터넷)에 밀린 셈입니다. 묵은 우편번호부를 들추다가 ‘우편 도령’이라는 이름을 보았어요. ‘도령’은 ‘도련님’처럼 오랜 우리말입니다. 우체국에서 제비 그림을 치우는 동안 ‘우편 도령’뿐 아니라 ‘도령’ 같은 이름도 이 삶자리에서 스러지거나 잊힙니다. 더 빠르고 더 크고 더 많이 쌓아올려야 한다는 오늘날이기에 ‘도령’은 시골스럽거나 예스러워서 느리고 작고 적다고 여길 테지요. 책은 더 빨리 더 많이 읽어야 할까요? 더 훌륭하거나 더 좋거나 더 이름난 책을 읽어야 할까요? 마음을 담아 차근차근 손글씨로 글월을 나누는 길은 낡았을까요? 마음을 담아 찬찬히 여민 책은 ‘이름이 안 났’으면 읽을 값이 없을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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