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6.8.26. 택시 부르기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도서박물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서울은 참으로 사람이 많고 넓고 큽니다. 서울곁도 사람이 무척 많고 넓고 큽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은 조그마한 고을 하나입니다. 이웃나라를 아우르면 서울은 더없이 작디작은 마을 한켠입니다. 푸른별에서 바라보면 서울은 티끌과 같다고 할 만하며, 그저 작은씨앗 한 톨입니다.


  하룻밤을 서울에서 보내면서 바깥일을 보며 숱한 사람을 스칩니다. 먼저 마을앞에서 시골버스를 타고서 고흥읍으로 나가는 길에 옆마을 사람들에다가 읍내 사람들을 스쳐요. 살뜰하고 아름다운 분이 있고, 안 살뜰하고 안 아름다운 분이 있습니다. 아침나절에 고흥읍 버스나루에서 담배를 태우며 침을 뱉는 젊은 이웃일꾼(이주노동자)이 있습니다. 한마디 나무랄까 하다가 그만둡니다. 이미 고흥군 젊은사내와 늙은사내 모두 똑같은 짓을 일삼는걸요.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를 탑니다. 건너건너 옆에 앉은 아재는 앞걸상에 발을 올립니다. 아재 발냄새가 널리 퍼집니다. 아니, 이보다 앞자리에 앉은 아가씨는 하나도 못 알아봅니다. 서울일을 마치고서 고흥으로 돌아오는 시외버스에서는 큰소리로 손전화를 내도록 읊조리는 아재가 있더군요. 모든 사내가 사납거나 멍청하거나 엉터리이지 않습니다만, 숱한 사내가 사납거나 멍청하거나 엉터리입니다. 가시내라고 해서 안 사납거나 안 멍청하거나 안 엉터리이지 않습니다. 어느 쪽이 더 사납거나 멍청하거나 엉터리인지 모르겠고, 따지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 스스로 ‘어른’으로 서야 하지 않을까요? ‘누구나어른’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모두어른’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몇몇 사람만 우러러야 하지 않습니다. 몇몇 사람만 ‘어른’이어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예 새말로 못박아야 합니다. ‘누구나어른’과 ‘모두어른’으로 나아갈 길을 그리고 얘기하고 생각하고 찾고 배우고 익히고 함께할 노릇입니다.


  서울을 다녀오는 하룻밤길에 새삼스레 “외국인이 잘 하네?”라든지 “외국사람이 한국말 잘 하네?” 같은 말을 듣습니다. 저는 언제나 책짐을 등과 어깨와 팔과 손에 걸치고 다닙니다만, 제가 짊어지는 살림을 ‘마실짐(여행자 배낭)’으로 잘못 보는 분이 수두룩합니다. 아니, 여태(서른 해 남짓) 제 책짐을 ‘책짐’으로 알아본 사람을 하나도 못 봤습니다.


  이 땅에서 나고자랐기에 다들 ‘한말글(한국어)’을 잘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나고자랐어도 마음을 기울이지 않으면 한말글이 그냥 사납고 멍청하고 엉터리입니다. 이웃나라에서 나고자랐어도 마음을 기울이기에 한말글이 살갑고 사랑스럽고 살뜰할 뿐 아니라 반짝반짝 빛납니다.


  이 땅에서 나고자라서 한말글로 글꽃(문학)을 짓기에 아름답거나 알차거나 읽을 만하지 않습니다. 말글이 삶과 살림과 사랑과 사람과 사이와 숲을 바탕으로 태어나는 줄 읽지 않고서 붓부터 쥘 적에는 ‘한말글꽃’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먼저 삶부터 가꿀 노릇이고, 살림부터 지을 일이며, 사랑부터 찾아서 펼 하루이고, 사람으로서 눈뜰 길에다가, 사이를 잇는 어깨동무를 하면서, 숲을 품는 씨앗으로 마음을 돌볼 적에 비로소 ‘붓꾼(작가)’으로 지낼 만합니다. 그냥그냥 이 나라에서 태어나서 자라서 한글로 적은 글이라서 한말글꽃(한국문학)이지 않아요. 삶·살림·사랑·사람·사이·숲부터 어질게 보듬고 슬기롭게 일굴 줄 아는 어른으로 서는 길에 붓을 쥐어서 이야기를 지피는 나날일 적에 바야흐로 한말글꽃을 낳습니다.


  이러구러 서울에서 고흥으로 돌아온 뒤에는 가볍게 저잣마실을 합니다. 저잣마실을 할 적에도 사납거나 상냥한 사람을 스칩니다. 걸어다니지만 사나운 사람이 있고, 달구지를 몰지만 상냥한 사람이 있습니다. 스스로 어느 길로 삶을 잇는지 헤아릴 적에 하루를 연다면, 스스로 아무 길이나 닥치는 대로 들쑤신다면 하루를 망가뜨린다고 느낍니다. 저물녘에 택시를 불러서 다리를 쉽니다. 풀벌레노래를 들으면서 잠듭니다.

 

ㅍㄹㄴ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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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겹말 손질 2709 : 다음 세대 아이


그다음 세대 아이들도 같을 것이다

→ 그다음 아이들도 같다

→ 그다음도 같다

→ 아이들도 같다

《히로시마, 사라진 가족》(사시다 가즈·스즈키 로쿠로/김보나 옮김, 청어람아이, 2022) 34쪽


  나이가 비슷한 사람을 묶을 적에 한자말로 ‘세대’를 쓰곤 하는데, 우리말로는 ‘또래’로 손볼 만합니다. 앞으로 자라나거나 태어날 사람은 ‘아이’로 여기지요. “그다음 세대 아이들”이라면 “그다음 아이들”로 고쳐씁니다. ‘그다음’이나 ‘아이들’로만 손보아도 됩니다. ㅍㄹㄴ


다음 : 1. 어떤 차례의 바로 뒤 2. 이번 차례의 바로 뒤 3. 나란히 있는 사물의 바로 인접한 것 4. 어떤 일이나 과정이 끝난 뒤 5. 어떤 시일이나 시간이 지난 뒤 6. 그 아닌 사실을 힘주어 나타냄 7. 한 층 낮은 자리 8. 주로 바둑 따위에서, 뒤의 수단 9. 뒤따르는 것 10. 뒤따르는 결과

세대(世代) : 1. 어린아이가 성장하여 부모 일을 계승할 때까지의 30년 정도 되는 기간 ≒ 대 2. 같은 시대에 살면서 공통의 의식을 가지는 비슷한 연령층의 사람 전체 3. 한 생물이 생겨나서 생존을 끝마칠 때까지의 기간 4. 그때에 당면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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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겹말 손질 2712 : 기억 속 편린으로 남는다


그림에 흩뿌려진 물감처럼 지울 수 없는 하나의 무늬가 되어 기억 속 편린으로 남는다

→ 그림에 흩뿌린 물감처럼 지울 수 없는 무늬로 남는다

→ 그림에 흩뿌린 물감처럼 지울 수 없는 비늘로 남는다

→ 그림에 흩뿌린 물감처럼 지울 수 없는 조각으로 남는다

→ 그림에 흩뿌린 물감처럼 무늬가 되어 마음에 남는다

《우리라도 인류애를 나눠야지》(천둥, 초록비책공방, 2023) 5쪽


  마음이 ‘남는’ 모습이나 일이나 무늬나 말이라서 ‘기억’이라 합니다. “기억 속 편린으로 남는다”라 하면 겹말인데, 남을 적에는 어느 곳이나 쪽이나 조각일 테니 겹겹말이기도 합니다. 이 보기글에 나오는 “하나의 무늬가 되어 기억 속 편린으로 남는다”는 “무늬로 남는다”나 “조각으로 남는다”처럼 단출히 손볼 만합니다. ㅍㄹㄴ


기억(記憶) : 1.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 2. [심리] 사물이나 사상(事象)에 대한 정보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정신 기능 3. [정보·통신] 계산에 필요한 정보를 필요한 시간만큼 수용하여 두는 기능

편린(片鱗) : 한 조각의 비늘이라는 뜻으로, 사물의 극히 작은 한 부분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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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겹말 손질 2594 : 사이 공간 비다


이곳과 저곳 사이에 공간이 있다. 공간은 빈 사이이니

→ 이곳과 저곳에 사이가 있다. 둘 사이가 있으니

→ 이곳과 저곳에 틈이 있다. 두 곳은 틈이 있으니

《사이에서, 그림책 읽기》(김장성, 이야기꽃, 2022) 22쪽


  한자말 ‘공간’은 ‘곳’이나 ‘자리’도 가리키고, ‘틈’이나 ‘사이’도 가리킵니다. “사이에 공간이 있다”는 겹말입니다. 더구나 한자말 ‘공간’은 ‘비다’나 ‘빈곳’도 가리키니, “공간은 빈 사이”라 하면 겹겹말입니다. ㅍㄹㄴ


사이 : 1. 한곳에서 다른 곳까지, 또는 한 물체에서 다른 물체까지의 거리나 공간 2. 한때로부터 다른 때까지의 동안 3. 어떤 일에 들이는 시간적인 여유나 겨를 4. 서로 맺은 관계

공간(空間) : 1. 아무것도 없는 빈 곳 2.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범위 3. 영역이나 세계를 이르는 말

비다 : 1. 일정한 공간에 사람, 사물 따위가 들어 있지 아니하게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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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읽는 나 + 읽는 바보

읽는 닳는



  이웃을 만날 적마다 눈망울을 마주하며 생각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나이·차림새·쌈지·얼굴·몸·노리개는 아예 볼 일이 없다. 서로 눈과 눈을 거쳐서 속마음이 맞닿을 적에 반짝반짝 별빛을 잇는다. 서로 별 한 톨로 이곳에 있으니 가만히 본다. 눈으로 보면서 별빛을 잇기에, 입을 열면서 말을 틔운다. 귀를 쫑긋하면서 빛소리를 담는다.


  너랑 나랑 나란히 별 한 톨이지 않다면 굳이 한자리에 있을 까닭이 없다고 느낀다. 너이든 나이든 별빛이 없이 어둡게 잠긴 눈이라면 수렁과 늪에 빠져드는 덫일 테지. 바다에 잠겨서 깊이 헤아리는 눈이 아니라면, 바람에 잠겨서 널리 살피는 눈이 아니라면, 너하고 나는 이곳에서 마주할 일이 없지.


  지난해에 문득 만난 이웃님 한 분이 다른 이웃님을 알려주었다. 이 이웃님과 저 이웃님이 함께 어울리는 배움자리를 지난해에 길고 느슨하면서 꾸준하게 이었다. 이렇게 한 해가 흐르고서 어느 달책에 글을 싣기로 했다. 달책에 이야기 한 자락이 실린 뒤에는 새롭게 또다른 이웃님을 만난다. 새롭게 만나는 또다른 이웃님은 다시금 다른다른 이웃님으로 잇고, 이제껏 어림도 하지 못 하던 숱한 이웃이 이곳에서 발걸음을 내딛는 하루를 지켜볼 수 있다.


  늘 하듯 책과 노래를 띄웠다. 새로 마주하는 이웃님은 내가 띄운 책과 노래를 반갑게 맞이했다고 알려준다. 날마다 되읽으면서 더없이 기쁘게 배운다고 알려준다. 나는 덩달아 이웃님하고 쪽글을 주고받는다. 날마다 주거니받거니 쪽글 한두 자락씩 날아가고 날아온다. 나한테 작은아버지 또래일 ‘할아버지 이웃님’은 책 한 자락을 마르고 닳도록 읽어 주신다.


  닳고 낡는 책을 살며시 쓰다듬는다. 나도 책이 닳도록 읽기는 하지만, 이웃님이 손빛으로 넘기며 닳는 책을 보니 새삼스럽다. 씨앗 한 톨을 고이 심었나 하고 돌아본다. 슥 스치는 글이나 책이 아니라, 서로 하나인 하늘마음으로 마주할 글과 책일 적에 별 한 톨이 밤마다 가만히 돋을 테지.


  손끝은 빚고 짓고 일구는 사이에 굳은살이 밴다. 책끝은 읽고 새기고 나누는 사이에 보드랍게 부푼다. 손길을 담고 펼치는 동안에 솜씨가 무르익는다. 책길을 여미고 여는 동안에 책밭이 푸르게 피어난다.


  모처럼 서울로 이야기마실을 나온 김에 책집 세 곳을 바람처럼 돌아본다. 거의 나아가던 왼뒤꿈치는 다시 절뚝절뚝. 왼발 앞꿈치에 제대로 힘주어 걷지 못 한다. 절뚝절뚝 기우뚱기우뚱 몸짓으로 이럭저럭 걸어다닌다. 저절로길(에스컬레이터)이 보이면 디딤돌로 오르내린다. 천천히 걸어서 신촌 〈홍익문고〉에 닿는다. 아침에 열자마자 들어간다. 책 한꾸러미를 느긋이 장만한다. 이윽고 〈알라딘중고샵 신촌가게〉에 들른다. 여기에서는 판끊긴 만화책을 한꾸러미 고른다. 마지막으로 〈숨어있는책〉 쪽으로 걸어간다. 건널목을 건너고서 골목으로 들어설 즈음 과일집을 본다. 길가 과일집에서 파는 복숭아는 고흥보다 알이 굵고 값마저 착하다. 들고 갈까?


  끙 망설이다가 지나간다. 〈숨어있는책〉에서는 책짐을 두 꾸러미 더 장만한다. 이제 뒤뚱뒤뚱 걷는다. 등에 가슴에 어깨에 팔뚝에 손에 쥔 책짐이 수북수북하다. 버스나루까지 씩씩하게 온다. 땀으로 흥건히 젖은 등짐과 앞짐과 손짐을 다 풀어서 내려놓는다. 낯을 씻는다. 밑칸에 책을 실으려다가 모두 안고서 자리에 앉는다. 오늘은 오롯이 읽으면서 돌아가자. 어제는 바삐 움직이느라 책읽기를 누릴 틈이 밭았다. 밤조차 등허리를 펴며 일찍 누웠다. 오늘 아침도 여러 곳에 보낼 글을 가다듬느라 책을 못 폈다.


  손과 눈과 마음과 몸이 하나로 닿으며 함께 일어나는 오솔길을 달리면서 집으로 간다. 읽다가 자고, 다시 읽다가 자면 어느새 고흥읍일 테지. 고흥읍에 닿으먼 시골버스를 탈 수 있고, 택시를 부를 수 있다. 다 즐거운 길이다. 2026.8.26.물.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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