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대기 냄새

 


  장마철이 되니 집안이 눅눅하다. 옷도 이불도 눅눅하다. 가끔 볕이 반짝 하고 날 때에 보송보송 마르지 않은 옷가지하고 이불을 들고 마당으로 나온다. 한두 시간이 되더라도 햇볕을 쬐면서 따순 기운을 곱게 품기를 빈다. 고작 한 시간 볕을 쬔다 하더라도 이불을 덮거나 깔 때에 냄새가 다르다. 눅눅한 채 있어야 하는 이불에서는 눅눅한 내음이 흘러나오고, 햇볕을 조금이라도 쬔 이불은 햇볕을 쬔 만큼 햇볕 내음이 퍼져나온다.


  포대기를 빨래한다. 장마철이 이어지면서 포대기도 눅눅해진다. 그렇지만 장마철에 이불을 빨래할 엄두를 못 내듯 포대기를 빨래할 엄두를 못 낸다. 여러 날 포대기 빨래를 미루다가 비가 내리지 않는 날 저녁 씩씩하게 빨래하자고 생각한다. 어찌 되었든 눅눅하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포대기로 둘째를 업을 수 없는 노릇이다. 더디 마르더라도 빨아 놓고 보자고 생각한다. 더디 마르는 바람에 외려 꿉꿉한 냄새가 배고 말더라도 빨지 않고서야 쓸 수 없다고 여긴다.


  포대기는 이틀 만에 보송보송 마른다. 포대기를 빨고 나서 ‘이불도 이렇게 잘 마르면 참 좋겠네’ 하고 생각한다. 둘째는 날마다 다리힘을 키우니, 이 포대기도 앞으로 몇 차례 쓰고 나면 옷장에서 오래도록 잠을 잘 테지. 마지막까지 둘째 아이랑 사이좋게 어울리면서 네 좋은 내음을 나누어 주렴. (4345.7.1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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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사진기

 


  살아온 오늘 하루를 글로 적바림하고 사진으로 찍어 책으로 묶는다. 그러나, 책으로 담기는 글이나 사진이 되지 않더라도 이야기는 내 마음속에 아로새긴다. 맨 먼저 내 마음속에 아로새기기 때문에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내 마음속에 아로새기는 이야기가 없다면, 글도 사진도 그림도 태어나지 않는다.


  이야기를 읽으려고 책을 읽는다. 이야기를 갈무리하려고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는다. 내 마음을 읽기에 종이로 묶은 책을 애써 손에 쥐지 않아도 된다. 내 마음을 착하게 아로새기면서 참다이 보살필 때에는 글을 안 쓰고 사진을 안 찍어도 언제나 환하고 또렷하게 내 오늘 하루 이야기를 그릴 수 있다. (4345.7.1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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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2.7.18.
 : 범나비와 자전거

 


- 잘 듯 말 듯하면서 안 자는 둘째 아이를 달래려고 자전거수레에 태운다. 첫째 아이더러 함께 타자고 하는데, 첫째 아이는 마을 이웃집에 놀러온 또래 동무한테 놀러 간다고 자전거를 안 탄다 한다. 첫째 아이는 마냥 또래 동무한테 달라붙는다. 집에 들어올 생각을 안 한다. 그러면 네 마음대로 놀라 이르고는, 둘째 아이만 수레에 태우고 달린다. 아직 거센 비바람이 찾아들지 않는다. 아마 저녁나절 해가 뉘엿뉘엿 기울 무렵 비바람이 몰아치겠지.

 

- 시원스레 부는 바람을 쐬며 달린다. 면에 닿아 파리채를 둘 장만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시골길 한복판에 범나비 한 마리 팔랑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자동차에 치여 길 한복판에서 바람에 팔랑거리나? 달리던 자전거를 스르르 멈추며 빙글 돌아 범나비 옆에 선다. 둘째 아이는 수레에 앉아 꾸벅꾸벅 존다. 범나비 가까이 선다. 아직 살았다. 첫째손가락이랑 둘째손가락으로 살며시 집는다. 두 손가락으로 범나비 떨리는 숨결이 파르르 스며든다. 둘째 아이를 불러 “자, 봐 봐. 범나비야.” 졸린 눈으로 가만히 바라본다. 이윽고 범나비를 풀숲에 살며시 내려놓는다. 범나비는 풀잎을 붙잡고 선다.

 

- 이제 둘째 아이는 까무룩 잠든다. 자전거를 달리면서 생각한다. 두 손가락에 스며든 나비 숨결을 떠올린다. 내 어릴 적 들판이나 골목을 누비며 나비를 잡을 때에도 이런 숨결 이런 느낌이었을까. 우리 아이들도 곧 나비를 손가락으로 잡으면서 이러한 숨결과 이러한 느낌을 찬찬히 받아들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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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괭이밥꽃 책읽기

 


  들에 밭에 아주 조그마한 풀이 돋는다. 아주 조그마한 풀에는 아주 조그마한 꽃이 핀다. 꽃을 한참 바라보며 생각에 젖는다. 이 조그마한 꽃이 피지 않았을 때에도 이 조그마한 풀포기를 가만히 바라볼 수 있을까. 이 조그마한 꽃이 아직 안 피었을 적에 이 조그마한 풀포기가 어떤 풀포기인지 헤아릴 수 있을가. 이 조그마한 꽃을 알아보면서 풀이름을 깨달은 뒤, 꽃이 피도록 힘쓴 줄기와 잎과 뿌리가 어떠한 얼굴이요 빛이며 그림인가를 살필 수 있을까.


  높다랗게 줄기를 올리는 굵다란 풀포기에 가리기 마련인 괭이밥풀에 핀 괭이밥꽃을 읽는다. (4345.7.1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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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 조각에 벤 생채기

 


  재활용 쓰레기를 치우다가 그만 유리 조각에 손가락이 찔리다. 피가 퐁 하고 솟는다. 왜 재활용 쓰레기 사이에 유리 조각이 있었나 하고 생각하다가, 어떻게 여기에 유리 조각이 들었나 하고 따지기보다, 그릇이나 잔이 깨졌을 때에 곧장 말끔히 안 치웠으니 손이 벨 만하겠다고 느낀다.


  피가 솟는 손가락으로 일을 조금 더 하다가 물로 헹군다. 피 솟는 생채기를 솜으로 꾹 누른 다음 밴드를 붙인다.


  다시 일을 한다.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한다. 빨래를 하고 아이들을 씻긴다. 어느새 밴드가 떨어진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물을 만진다. 날카로운 조각에 벤 생채기가 다시 벌어지거나 아플 만하지만, 다시 벌어지지 않고 더 아프지 않다. 그렇구나 하고 여기며 늘 하던 대로 집일을 마저 한다.


  늦은 밤에 마지막 빨래를 하고 내 몸을 씻으며 곰곰이 돌아본다. 내 손가락이며 손은 퍽 예쁘장하다고 느낀다. 이런저런 궂은 일을 곧잘 하고 이런저런 구지레한 것을 꽤 만진다 하지만, 내 손가락이며 손은 퍽 하얀 살결이고 말짱하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두껍게 박힌 모습을 빼고는 딱히 남달라 보이지 않는다. 궂은 일 쉬지 않는 이들 손가락이 두껍고 투박한 모습을 헤아린다면, 내 손가락은 참 가늘고 예쁘장하다고까지 할 수 있다. 그래서 막일을 하거나 짐을 나를 때에 내 손가락과 손만 보고는 ‘저이가 무슨 일을 하겠어?’ 하는 사람들이 놀란다. 나는 내 가녀리고 가는 손가락과 손으로 훨씬 더 오래 많이 일을 하고 짐을 나르니까.


  모든 앎은 밑앎이기에 온누리를 살피는 앎은 바로 내 가슴속에 있다. 나 스스로 내 가슴속을 들여다본다면 온누리를 환하게 꿰뚫거나 읽을 수 있다. 나 스스로 내 가슴속을 들여다보지 못하면 온누리는커녕 코앞에서 벌어지는 일조차 훑지 못한다.


  다시금 내 손가락과 손을 살핀다. 아주 예쁘거나 가냘프거나 곱상하지 않은 손가락이요 손이지만, 꼭 내 삶과 같이 예쁘고 투박하며 가냘프고 고운 손가락이요 손이라고 느낀다. 나는 내 삶을 읽으면서 내 사랑을 살피면 된다. 나는 내 몸을 돌아보면서 내 마음이 깃든 자리를 읽으면 된다. 나는 내 마음을 아끼면서 내 이웃과 동무를 아끼면 된다. 나는 내 살붙이를 사랑하면서 내 꿈과 길을 사랑하면 된다.


  아이들과 옆지기가 아프거나 다치기보다 내가 아프거나 다치기를 바라니까 내 손가락에 베었겠지. 나는 손가락이 베거나 말거나 집일을 도맡으면서 살림을 꾸리겠다고 생각하니까 벤 손가락이 스스로 말짱하게 아물겠지. (4345.7.1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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