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조각에 벤 생채기

 


  재활용 쓰레기를 치우다가 그만 유리 조각에 손가락이 찔리다. 피가 퐁 하고 솟는다. 왜 재활용 쓰레기 사이에 유리 조각이 있었나 하고 생각하다가, 어떻게 여기에 유리 조각이 들었나 하고 따지기보다, 그릇이나 잔이 깨졌을 때에 곧장 말끔히 안 치웠으니 손이 벨 만하겠다고 느낀다.


  피가 솟는 손가락으로 일을 조금 더 하다가 물로 헹군다. 피 솟는 생채기를 솜으로 꾹 누른 다음 밴드를 붙인다.


  다시 일을 한다.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한다. 빨래를 하고 아이들을 씻긴다. 어느새 밴드가 떨어진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물을 만진다. 날카로운 조각에 벤 생채기가 다시 벌어지거나 아플 만하지만, 다시 벌어지지 않고 더 아프지 않다. 그렇구나 하고 여기며 늘 하던 대로 집일을 마저 한다.


  늦은 밤에 마지막 빨래를 하고 내 몸을 씻으며 곰곰이 돌아본다. 내 손가락이며 손은 퍽 예쁘장하다고 느낀다. 이런저런 궂은 일을 곧잘 하고 이런저런 구지레한 것을 꽤 만진다 하지만, 내 손가락이며 손은 퍽 하얀 살결이고 말짱하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두껍게 박힌 모습을 빼고는 딱히 남달라 보이지 않는다. 궂은 일 쉬지 않는 이들 손가락이 두껍고 투박한 모습을 헤아린다면, 내 손가락은 참 가늘고 예쁘장하다고까지 할 수 있다. 그래서 막일을 하거나 짐을 나를 때에 내 손가락과 손만 보고는 ‘저이가 무슨 일을 하겠어?’ 하는 사람들이 놀란다. 나는 내 가녀리고 가는 손가락과 손으로 훨씬 더 오래 많이 일을 하고 짐을 나르니까.


  모든 앎은 밑앎이기에 온누리를 살피는 앎은 바로 내 가슴속에 있다. 나 스스로 내 가슴속을 들여다본다면 온누리를 환하게 꿰뚫거나 읽을 수 있다. 나 스스로 내 가슴속을 들여다보지 못하면 온누리는커녕 코앞에서 벌어지는 일조차 훑지 못한다.


  다시금 내 손가락과 손을 살핀다. 아주 예쁘거나 가냘프거나 곱상하지 않은 손가락이요 손이지만, 꼭 내 삶과 같이 예쁘고 투박하며 가냘프고 고운 손가락이요 손이라고 느낀다. 나는 내 삶을 읽으면서 내 사랑을 살피면 된다. 나는 내 몸을 돌아보면서 내 마음이 깃든 자리를 읽으면 된다. 나는 내 마음을 아끼면서 내 이웃과 동무를 아끼면 된다. 나는 내 살붙이를 사랑하면서 내 꿈과 길을 사랑하면 된다.


  아이들과 옆지기가 아프거나 다치기보다 내가 아프거나 다치기를 바라니까 내 손가락에 베었겠지. 나는 손가락이 베거나 말거나 집일을 도맡으면서 살림을 꾸리겠다고 생각하니까 벤 손가락이 스스로 말짱하게 아물겠지. (4345.7.1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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