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가는 날 크레용 그림책 30
스즈키 마모루 그림, 야마모토 쇼조 글 / 크레용하우스 / 2001년 9월
평점 :
절판



 살림집 옮기는 고단함과 보람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8] 야마모토 쇼조(글)+스즈키 마모루(그림), 《이사 가는 날》



 하루하루 더 살아갈수록 살림집을 옮길 때마다 살림살이가 늘어납니다. 예나 이제나 살림돈을 넉넉히 쓰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나 가장 마땅하다 싶은 집에서 살아 보지 못합니다. 요모조모 따지어 새 살림집으로 옮기며 살았습니다만, 없는 돈에서 요모조모 따지어 얻는 살림집이란 있는 돈에서 그리 안 따지고도 마련하는 살림집하고 사뭇 다릅니다.

 처음 몇 차례 살림집을 옮기던 때에는 짐차가 들어오지 못하는 안쪽 골목에서 살았습니다. 이때에는 집에서 큰길로 손수 짐을 옮겨야 했습니다. 나중에는 사다리차를 뻗어도 3층 창문에 잘 닿지 않아 무척 애먹는 집에서 살았고, 돈 한 푼 없이 이 집에서 나오던 때에는 3층부터 길가까지 계단을 타고 모든 짐을 혼자서 낑낑대며 내렸습니다.

 도시에 있던 살림살이를 산골마을로 옮긴 때는 2006년입니다. 그런데 이듬해에 산골마을 살림살이를 모조리 도시로 되옮겨야 했습니다. ‘이제 더는 집 옮기기는 안 해도 되겠지’ 하고 생각하던 이무렵, 보름 남짓 밤을 새우며 책짐을 끙끙거리며 묶었습니다. 때도 한겨울이라 손이 꽁꽁 얼어붙으며 책짐을 꾸렸습니다.

 도시로 옮긴 살림살이는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다른 살림집으로 옮겨야 하면서 또다시 옮깁니다. 그리고 도시에 있던 책짐 또한 네 해가 못 되어 다시 도시를 떠나며 산골마을로 옮깁니다. 도시에서 지내며 떨어져 있던 살림살이와 책이 한 해 만에 만나는데, 5톤 짐차로 넉 대치 책을 혼자 싸고 꾸려야 하다 보니 이만저만 몸이 늘어지지 않습니다. 책을 싸서 ‘사다리차가 받을’ 창문 쪽으로 나르는 동안에도 무릎은 몹시 시큰거렸습니다. 도시에서 책을 싸다가 시골 살림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걷기 힘들 만큼 무릎이 아픕니다. 시골집에서 살붙이하고 며칠 함께 지내다가 다시금 도시로 혼자 나와 책짐을 꾸리고, 마침내 짐차와 일꾼을 불러 산골마을로 들어서던 날에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할 일이 많으니까요. 새 살림집으로 옮기는 느낌이란 설렘과 두근거림이라 하지만, 막상 온갖 일을 다 치르는 사람한테는 설렘과 두근거림보다 고단함과 바쁨과 어지러움투성이입니다.

 살림짐이나 책짐 나르기를 거드는 일꾼들은 사다리차가 없으면 이만 한 짐을 나를 수 없다고 혀를 내두릅니다. 요즈음은 어찌할 수 없을 테지요. 책 몇 만 권을 계단으로 헉헉거리며 나르다가는 일꾼들 모두 무릎이 나갈 테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살림살이를 옮길 때에 사다리차를 쓴 지는 고작 열 해 남짓입니다. 어쩌면 열 해가 채 안 되었다 할 만합니다. 돈이 없는 살림살이로는 사다리차 부르기마저 만만하지 않으니까요. 저는 막다른 골목 안쪽 살림집을 자주 얻다 보니 사다리차를 쓰고파도 쓸 수 없어 몇 시간에 걸쳐 책짐이며 살림짐이며 두 다리가 덜덜 떨리도록 들고 날랐습니다.

 일본사람이 엮은 그림책 《이사 가는 날》을 펼칩니다. 일본에서는 1988년에 처음 나왔고 한국에서는 2001년에 옮겨진 《이사 가는 날》은 ‘사다리차 없는’ 지난날 살림집 옮기기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찬찬히 보여줍니다. 도심지 작은 집에서 오글오글 살던 식구들이 ‘도심지에서 살짝 벗어난’ 자리에 있는 ‘조금 더 넓은 살림집’을 얻어 옮기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런데 책겉에는 엄마랑 아빠랑 함께 짐을 나르는 그림으로 나오지만, 정작 속을 들여다보면 ‘살림집 옮기기’를 알아보며 하나하나 살피는 사람은 오로지 어머니입니다. 아버지는 회사로 일을 나갈 뿐, 집살림을 어찌 건사하거나 갈무리하여 옮겨야 할는지를 모릅니다. 그저 당신 자가용에 식구들을 태우고 새 집으로 먼저 날아갈 뿐입니다. 함께 하는 집안일이 아닌 여자만 하는 집안일이요, 살림집을 옮기는 일 또한 온통 여자한테 맡기고 맙니다(그렇다고 이 그림책에서 아빠가 아무 일을 안 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사란 ‘짐 나르기’만이 아닌데, 짐 나르기는 함께 하지만, 다른 대목에서 ‘이사 준비’에 제대로 마음쓰지 못한다는 소리입니다).


.. 엄마는 이사 준비를 하느라 너무 바빠요 ..  (6쪽)


 거짓말이나 농담이 아닌 참말로, 이 나라 남자(또는 아버지)들은 웬만해서는 ‘살림집 옮기기를 할 때에 무엇을 어떡해야 하는가’를 잘 모르기 일쑤입니다. 그렇다고 오늘날 여자(또는 어머니)들은 더 잘 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이제는 남자나 여자나 가리지 않고 집살림에는 젬병으로 바뀌는 우리 터전이거든요.


..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씽씽∼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 ..  (28쪽)


 1988년 일본 여느 살림집을 옮길 때에 일꾼들이 밧줄을 써서 큰짐을 내리는 모습을 그림책에 아주 잘 담았습니다. 제 어릴 적 일을 떠올려 보아도, 지난날 일꾼들은 5층짜리 아파트에서건 10층짜리 아파트에서건 밧줄을 써서 피아노며 옷장이며 내리고 올렸습니다. 집을 옮긴다 할 때에는 일꾼이며 식구이며 가리지 않고 함께 짐을 나르고, 둘레에 아는 이들이 작은 짐 하나라도 거들어 주기 마련입니다.

 어쩌면 이웃 일본이기 때문에 일본사람이 집을 옮길 때에는 ‘이웃집이나 동무나 아는 사람이 일을 거들러 오지 않’고 이삿짐 나르는 일꾼들만 일을 한다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1988년이건 2008년이건 2028년이건 그리 달라지지 않으리라 봅니다. 또한 우리 나라에서도 어느새 ‘살림집 옮길 때에 서로서로 도와주던 삶과 버릇’이 차츰 사라지며 온통 이삿짐 나르는 일꾼한테만 맡기는 쪽으로 바뀐다고 느낍니다. 언제부터더라, ‘포장이사’라고 해서 전화 한 통과 계좌이체로 집 옮기기가 금세 끝나잖아요. 아침에 전화 걸어 열쇠 맡긴 다음 일터에 가서 하루를 보낸 뒤 새 집으로 돌아와 보면 뚝딱 하고 다 옮겨 놓을 뿐 아니라 자리까지 잡혀 있다고 하는데요. 더구나 서울 안쪽이나 바깥쪽 어디어디에서는 집값이 껑충껑충 뛰니까, 집값 따라 살림집 옮기기를 해도 ‘포장이사 값이야 푼돈일 뿐’이기 일쑤라 하는걸요.

 그림책 《이사 가는 날》은 글쓴이나 그린이나 몇날 며칠 낑낑대며 살림짐 꾸리고, 이삿날 맞추어 헉헉거리며 살림짐 옮기다가는, 새 집으로 옮기어 기쁘게 땀흘리며 짐을 끌러 본 삶이 바탕이 되어 태어납니다. 그림책 《이사 가는 날》을 즐기자면, 낑낑대며 살림짐 꾸리고 헉헉거리며 살림집 옮기다가는 땀흘리며 짐을 끌러 본 어른과 아이 삶을 보내야 합니다. 돈있는 집 아이들로서는 재미나게 넘기기 어려운 그림책이요, 돈없는 집 아이들로서는 굳이 장만하여 읽지 않고도 훤히 알 만한 그림책입니다. 돈있는 집 어른과 아이한테는 《이사 가는 날》 같은 그림책을 펼친다 한들 살갗으로 파고들어 뭉클해 하기 힘듭니다. 돈없는 집 어른과 아이라면 《이사 가는 날》 같은 그림책이 없이도 얼마든지 ‘살림집 옮기던 이야기’를 밤새 나눌 수 있어요.


.. 나는 우리 집이 정말 좋아요! ..  (32쪽)


 따지고 보면 살림돈이 얼마 없어 이것저것 새로 갖추거나 장만할 수 없습니다. 없는 살림이 많고 모자란 살림이 가득합니다. 그렇지만 없거나 모자라기 때문에 몸을 훨씬 많이 쓰거나 자주 써야 합니다. 몸으로 움직이며 살아가는 하루하루입니다.

 늘 내 몸을 나 스스로 쓰는 하루를 보내노라면 저녁 무렵에 어느덧 기운이 다 빠져 지칩니다. 잠자리에 들면 곯아떨어집니다. 지난밤에는 ‘잠들 무렵에는 기저귀를 안 차겠다고 하는’ 아이를 다독이며 재워 ‘아이가 깊이 잠든 다음 기저귀를 채워야’ 하는데 미처 기저귀를 못 채우고 깜빡 잠들었습니다. 어쩌면 아이보다 먼저 잠들었다 할 테고, 아이와 똑같이 잠들었다 할 만합니다. 이제 오늘은 아침부터 오줌 이불 빨래로 열어야 합니다. 참으로 쉴 겨를이 없고 다리 뻗을 틈이 없습니다. 마음을 놓을 수 없고 느긋하게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오늘 어제 그제 차근차근 돌아보면서 노상 새로운 이야기를 누리고 느끼며 가슴으로 받아안습니다. (4343.9.16.나무.ㅎㄲㅅㄱ)


― 이사 가는 날 (야마모토 쇼조 글,스즈키 마모루 그림,크레용하우스,2001.9.17./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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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새로 나와서 이주에 책방에 들어간 내 여덟째 책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에 적은 머리말. 머리말이라지만 좀 깁니다. 이 글을 쓸 때에는 머리말로 썼다기보다는 청소년책을 놓고 청소년을 보내는 고운 넋한테 편지를 쓰는 마음이었습니다. 

 


 여는 글 : 푸른책 푸른삶 푸른날


 1.

 우리 말에는 ‘아이’와 ‘어른’이 있고, ‘젊은이’와 ‘늙은이’가 있습니다. 짝을 짓는 우리 말이기 때문에 이밖에 다른 말은 없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방정환 님은 따로 ‘어린이’라는 말을 지었습니다. 우리한테는 ‘아이’라는 말이 있으나, 어린 나날을 보내는 목숨들을 좀더 아끼고 사랑하고픈 마음을 담아 새말 하나를 지었습니다.

 저는 ‘푸름이’라는 말을 곧잘 쓰고 있습니다. 이 낱말은 저뿐 아니라 둘레에서도 익히 쓰고 있으나 국어사전에는 안 올라 있습니다. 저로서는 딱히 누군가 이 낱말을 썼기 때문에 따라서 쓰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분들 또한 누군가 이 낱말을 쓰고 있어서 따라서 쓰지는 않는다고 느낍니다. ‘청소년’이라는 한자말 풀이가 아니더라도, 아이였던 나날을 거쳐 어른으로 자라나는 넋들이 보내는 나날이란 바로 ‘푸른’ 나날이라고 느끼니 저절로 쓰는 ‘푸름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린이들이 즐겨읽도록 마음을 기울이는 책을 일컬어 ‘어린이책’이라 합니다. 지난날에는 ‘아동도서’라 했습니다. 푸른 넋들, 곧 푸름이들이 즐겨읽도록 마음을 바치는 책을 놓고 ‘청소년책’이라 합니다. 그러나 저는 ‘푸름이책’이라 말하고, 한 글자 줄여 ‘푸른책’이라고 곧잘 이야기합니다.

 푸름이란 이름 그대로 ‘푸른 사람’을 가리킵니다. ‘푸른’ 사람이란 ‘풀과 같은’ 사람입니다. 풀은 아직 꽃이 되지 못한 목숨이요 나무로 자라는 목숨 또한 아닙니다. 우람한 나무 한 그루로 자라자면 어떠한 나무이든 아주 작은 씨앗 하나가 땅에 뿌리내려야 하고, 이 씨앗이 움을 트고 새 잎을 틔워야 합니다. 어떠한 나무라 할지라도 맨 처음에는 씨앗 하나요, 잎사귀 하나이며, 풀포기 하나인 나날을 거칩니다.

 이리하여, 푸름이란 ‘풋내기’하고 닮았습니다. ‘풋능금’이나 ‘풋사랑’처럼 아직 여물지 못한 모습을 담습니다. 그런데, 우리들 푸름이들만 ‘아직 여물지 못한’ 모습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숱한 ‘안 푸름이’인 어른들 가운데 제대로 여물지 못한 사람이 더없이 많습니다.

 저는 딸아이 하나를 옆지기와 함께 돌보며 살아가는 아저씨 삶을 보내고 있습니다. 푸름이하고는 한참 먼, 머잖아 우리 딸아이 또한 푸름이가 될 아저씨 나날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어린이책을 좋아하고 푸름이책을 즐깁니다. 어른이라 해서 어른책만 보지 않습니다. 저는 사진책 그림책 만화책 글책 노래책 모두 기쁘게 맞아들입니다. 제 삶을 일깨우고 제 넋을 북돋우며 제 길을 열어젖히는 책이라면 다 고맙다고 느낍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 책도 좋고 나라밖 사람들 책도 좋습니다. 옛사람 책도 좋으며 오늘날 사람 책도 좋습니다. 헌책방마실을 하며 찾아드는 책 하나가 좋고, 새책방마실을 하며 골라드는 책 하나가 좋습니다. 책다운 책이면 언제나 기쁘고 들뜹니다.

 어린 나날부터 제가 품은 꿈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어른이 되겠다”입니다. 국민학교 4학년 적 실과 시간에 ‘내 꿈 발표하기’를 하는 자리에서 저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하고 제 꿈을 밝혔습니다. 동무와 교사는 킬킬 깔깔 끅끅 푸하하 하며 웃었습니다. 그렇지만 제 꿈은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이 한 가지뿐입니다. 나이만 어른인 사람이 아닌, 밥그릇 비운 숫자만 어른이 아닌, 몸뚱이와 살갗만 어른이 아닌, 참다이 어른인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읽는 책들은 저 스스로 어른이 되어 가도록 길동무가 되고 어깨동무가 되는 책들이라고 여깁니다. 어린이책이라 해서 어린이만 읽는 책이 아니라, 어린이부터 어른 누구나 읽는 책입니다. 푸름이책이라면 마땅히 푸름이부터 어른 모두 읽는 책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푸름이들은 ‘푸름이책’만 읽을 노릇이 아니라 ‘어린이책’을 함께 읽으면서 푸름이 스스로 맑고 고우며 튼튼한 어른이 되도록 이끌고 돕는 좋은 책을 찾아서 만나면 됩니다. 추천도서나 권장도서가 아닌 푸름이로 살아가는 나 스스로한테 가장 착하고 참되며 고운 책을 찾아서 만나야 합니다. 베스트셀러도 아니지만 스테디설레 또한 아닌 나한테 가장 기쁘며 고맙고 반가울 책을 살펴서 쥐어들어야 합니다.

 누가 읽으라고 건네는 책을 읽는다고 나쁠 일이란 없습니다. 그러나 나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면서 찾아내어 읽을 책입니다. 도서관마실을 하든 새책방마실을 하든 헌책방마실을 하든, 나 스스로 내가 읽을 책은 내 눈길대로 살피며 내 손으로 골라서 내 가방에 담아 내 고향동네 내 살림집에서 나 스스로 내 바쁜 겨를을 쪼개어 읽을 책입니다.

 푸른삶을 일구는 우리 푸름이들이 스스로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푸름이들 스스로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으면 푸름이들 스스로 찾아들 좋은 책을 곧바로 그때그때 알아채거나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푸름이들 스스로 살아가는 매무새 그대로 푸름이들이 맞이할 책을 골라듭니다. 푸름이들 스스로 아름다운 삶을 바라며 애쓴다면 아름다움을 담고 아름다움이 녹아든 참된 책을 스스로 느끼며 찾아듭니다. 푸름이들 스스로 더 많은 돈과 이름과 힘을 꿈꾼다면 푸름이들 스스로 돈벌이와 이름높이기와 권력좇기에 가까운 책만 자꾸자꾸 집어들기 마련입니다. 살아가는 대로 읽는 책이지, 살아가지 않는 대로 머리에 지식으로 채울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부디 푸름이들 푸른날을 기쁘게 삭이면서 즐기면 좋겠습니다. 푸른날은 한 번뿐입니다. 어른으로 보내는 오늘 하루도 한 번뿐입니다. 나이들어 허리 구부정한 몸으로 보내는 삶 또한 한 번뿐입니다. 좋은 삶도 궂은 삶도 오로지 한 번만 나한테 찾아듭니다. 이렇게 한 번 받아들여 즐길 푸른삶이기에 우리 푸름이들한테는 가없이 아름다운 하루하루입니다.


 2.

 저는 대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졸자입니다. 대학교를 그만두고 고졸자로 살아가니 이 땅에서는 더없이 고달프고 힘겹습니다. 그러나 저는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바라지 않았기에 언제나 홀가분하며 뿌듯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우리 딸아이를 함께 낳은 옆지기를 지난 2007년 여름에 만나서 살아가고부터는 ‘나는 왜 고등학교 때부터 학교를 떠날 생각을 못했나?’ 하고 뉘우쳤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대학교가 엉망진창인 줄을 깨닫기 앞서, 고등학교에서도 고등학교가 엉망진창이었고, 중학교에서도 중학교가 엉망진창이었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이때에는 학교를 떠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무시무시한 몽둥이를 휘두르고 갖은 욕설과 체벌과 비아냥과 따돌림이 판치는 학교란 껍데기만 학교이지 참다운 학교가 아닙니다. 이런 데에서 내 알뜰하고 애틋한 푸른삶을 버려야 할 까닭이란 없어요. 왜냐하면 저한테는 졸업장이 쓸모있지 않으니까요. 저한테는 제 아름다울 하루하루가 쓸모있으니까요.

 대학 졸업장을 내밀어 공무원 7급이 되든 5급이 되든, 또는 대학 강사나 교수가 되든 무엇 합니까. 교사가 되는 길은 교대를 나와 초중고등학교에서 교사가 되는 길만 있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농사를 짓든 신문딸배를 하든 일하면서 대안학교 교사가 될 수 있어요. 아닌 게 아니라, 저는 ‘고졸 주제’에 대안학교 특강 교사로 때때로 불려 가서 일을 거들곤 합니다. 저한테는 졸업장이란 없지만, 저한테는 제 삶이 있기 때문에 대안학교에서 대안학교 멋진 동무들하고 멋진 삶과 생각을 나눌 수 있습니다.

 저는 1992년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헌책방을 다녔습니다. 이때까지는 ‘헌책’이 있는 줄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제 둘레에서 ‘책을 읽으려면 헌책방에 가 보렴’ 하고 알려준 어른이나 교사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저 어쩌다가, 참 우연하게 헌책방에 발을 디뎠고, 처음 디딘 발걸음이 제 삶을 아주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어떤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 목록뿐 아니라 권장도서와 추천도서와 교양도서와 명작도서 목록에 어느 한 번조차 들지 않았는데, 그토록 아름다우며 훌륭한 책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파묻히거나 잠든 채 헌책방 책시렁에 꽂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름난 분 책이라고 다 훌륭하겠습니까. 이름 안 난 사람들 책이라고 다 허접하겠습니까. 우리가 책을 읽을 때에는 ‘글쓴이 이름’이나 ‘출판사 이름’이나 ‘펴낸 날짜’를 읽지 않습니다. 종이에 찍힌 글월에 서린 ‘글쓴이 삶’과 ‘책을 엮은 사람 땀방울’을 읽습니다.

 저는 제가 이 길을 걸었기 때문에 푸름이들한테 ‘중학교를 집어치우라’라든지 ‘고등학교를 때려치우라’라든지 ‘초등학교를 걷어차라’라든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습니다. 다만, 학교는 굳이 안 다녀도 나 스스로 내 삶을 얼마든지 아름답고 알차며 사랑스레 돌볼 수 있음을 제 삶 그대로 보여줄 수 있습니다. 저한테는 푸름이들한테 들려주거나 쑤셔넣을 지식조각은 아무것도 없지만, 제 모습 그대로 푸름이들 앞에 씩씩하고 즐겁게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책을 읽을 때에는 속을 읽으면 돼요. 책을 읽으면서 내 삶을 어루만지며 다독여 주면 돼요. 책을 읽고 난 다음에 내 몸과 마음을 어여쁘고 튼튼하게 일굴 수 있으면 돼요.


 3.

 우리 딸아이를 바라보면서 우리 푸름이들을 생각합니다. 우리 딸아이가 착하고 참되며 고운 사람으로 자라는 가운데 사랑스럽고 따스하며 넉넉한 믿음을 두루 나눌 수 있기를 바라듯, 우리 푸름이들한테 착함과 참됨과 고움이 깃들면서 사랑과 따스함과 넉넉함과 믿음이 무럭무럭 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만화책 《노다메 칸타빌레》가 드디어 23권으로 마무리되었어요. 《GREEN》이라는 재미난 만화를 그리기도 한 니노미야 토모코 님은 이제 한동안 푹 쉰 다음, 그동안 그린 만화와는 사뭇 다른 살가우며 아름다운 새 만화를 우리한테 선물해 줄 테지요. 사람은 누구나 무럭무럭 자라니까요. 열여섯에도 자라고 스물여섯에도 자라며 서른여섯이나 마흔여섯이나 쉰여섯에도 자라니까요. 자라지 않는 사람이라면 죽은 사람이고, 자라려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죽으려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푸름이들한테 이 책 《푸른책과 함께 살기》가 다문 거름 한 줌이 되어 푸름이들 스스로한테 좋은 길동무가 되어 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습니다. 모든 분들이 말할 수 없도록 고맙습니다.


2010년 6월 9일.
ㅎㄲㅅㄱ
 

 

-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 '우리글방'에 찾아온 고운 책손.

- 사진 하나 찍어 달라 해서 찍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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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덟째 낱권책이 나왔다. 금요일에 부산마실을 가서 보수동책방골목잔치에서 지내다가 이제야 밤에 충주 산골마을로 돌아와서 책을 들여다본다. 힘들다. 어서 자야지.

 

   
 

- 책이름 :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 글 : 최종규 

- 펴낸곳 : 양철북 (2010.9.10.) 

- 책값 : 13000원

 
   

 

8 :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7 :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 

6 : 사진책과 함께 살기 

5 : 생각하는 글쓰기 

4 : 책 홀림길에서 

3 : 자전거와 함께 살기 

2 : 헌책방에서 보낸 1년 

1 : 모든 책과 헌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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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림짐과 책짐을 옮기고


 어제, 인천에서 충주로 5톤 짐차 석 대치 책과 책꽂이를 옮겼다. 앞서 옮긴 책짐을 헤아리면, 이번 옮기기에서 5톤 짐차를 모두 넉 대 쓴 셈이다. 2007년 4월에 충주에서 인천으로 올 때에 3.5톤 짐차 석 대를 썼으니까, 이제는 이런 옮기기를 더는 다시는 하고픈 마음이 없다. 아니, 내 몸이 버티어 내지 못할 테며 책들도 몹시 싫어하리라.

 6월 30일에 인천 살림짐을 충주 산골마을로 옮겼다. 9월 4일에 인천 책짐을 충주 새 도서관 자리로 옮겼다. 살림집을 옮기고 두 달이나 더 있어야 했기에 두 달치 도서관 달삯을 더 내야 했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짐을 충주 산골집으로 가져왔기에 몹시 홀가분하다. 짐을 꾸리느라 잠은 거의 자지 못했고 밥 또한 제대로 먹지 못하며 지냈는데, 더구나 책짐을 옮기느라 힘을 많이 쏟아 팔다리 비롯한 온몸이 쑤시고 아픈데, 새로 맞이하는 아침은 더없이 기쁘다. 1995년부터 해 온 열두 차례인가 되는 살림집 옮기기는 이제 마감하고 싶다. 아니, 마감해야겠지. 호젓하면서 차분하게 내 삶 우리 살붙이 이 산마을을 사랑하며 지내고 싶다. (4343.9.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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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진이다 - 김홍희의 사진 노트
김홍희 글.사진 / 다빈치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별을 둘이나 셋쯤 줄 수도 있으나, 김홍희 님이 당신 사진길과 사진삶을 좀더 고개숙이며 가다듬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별은 딱 하나만 달아 놓는다. 스스로를 옳게 들여다보아야 사진이든 만화이든 그림이든 글이든 아름답게 펼친다.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하면, 사진은 사랑이다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26] 김홍희, 《나는 사진이다》


- 책이름 : 나는 사진이다
- 글·사진 : 김홍희
- 펴낸곳 : 다빈치 (2005.1.20.)
- 책값 : 15000원



 (1) ‘만듦사진’은 사진이 아니다


 책방에 들러 사진책이나 그림책을 둘러보면, 으레 나라밖 사진책이나 그림책을 손에 쥡니다. 다 둘러보고 값을 치러 장만하고 싶은 책을 추릴 때, 노상 나라밖 사진책이나 그림책을 잔뜩 쌓아 놓고 있습니다. 나라밖 책을 살피고 장만할 때에는, 사진책으로서 얼마나 아름답고 그림책으로서 얼마나 고운가를 헤아립니다.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나라밖 사진책은 장만하지 않습니다. 썩 곱지 않은 나라밖 그림책은 사들이지 않습니다.

 나라안 사진책이나 그림책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습니다. 눈길부터 잘 안 갑니다. 두 눈을 사로잡거나 내 가슴을 울렁이도록 이끄는 나라안 사진책이나 그림책이 퍽 드뭅니다.

 나라안 글책을 살필 때에는 속이 답답합니다. 틀림없이 한국사람이 한국 이웃한테 읽히려고 한국글로 써서 한글로 적힌 한국 글책이지만, 이 글책을 놓고 참말 한국 글책이라 해야 할는지 알쏭달쏭합니다. 낱말이고 말투이고 우리 낱말이거나 우리 말투인 책이 아주 드뭅니다. 띄어쓰기하고 맞춤법을 제대로 맞추었는가는 일찌감치 접어둡니다. 바른 말 고운 말이라는 테두리로 살펴볼 수조차 없습니다. 흔한 말로 ‘알아들을 수는 있는 글(의사소통은 되는 글)’이지만, 한국사람이 한국사람다이 한국넋으로 한국글로 풀어내 보이는 문학이라고는 느끼기 어려운 책이 넘칩니다.

 오늘 이 나라 학교에서는 우리 말글을 옳고 바르며 알맞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늘 이 나라 학생은 우리 말글을 옳고 바르며 알맞게 배우고자 마음먹지 않습니다. 제도권 학교는 입시만을 바라보고, 제도권 교사는 입시만을 집어넣습니다. 제도권 학생은 입시만을 생각합니다. 교과서만 탓할 수 없고, 제도권만 탓할 수 없으며, 월급쟁이 쇠밥그릇 교사만 나무랄 수 없을 뿐더러, 제도권 울타리에서 허덕이는 학생을 꾸짖을 수 없습니다. 참말 아무도 탓할 수 없고, 누구도 꾸짖을 수 없는 한국 삶터입니다.

 창작책이 아닌 번역책을 본다고 해서 썩 나을 구석이 없습니다. 그나마 번역하는 사람은 창작하는 사람처럼 ‘시적 허용’이라는 터무니없는 말재주를 덜 피웁니다. 우리 나라 책마을에서는 번역쟁이가 우리 말로 옮긴 글을 출판사 편집 일꾼이 거듭거듭 손질하고 매만집니다.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글을 고르고 짜맞춥니다. 더구나, 어린이책 번역은 훨씬 엉터리입니다. 번역쟁이로 이름이 높든 낮든, 어린이문학은 어른문학하고 견주어 급수가 낮다고 여겨 버릇하거든요. 어린이문학을 하찮게 여기면서 어린이문학 번역을 참으로 하찮게 해치우고 맙니다. 어린이 눈높이라든지 어린이 삶이라든지 어린이 넋을 제대로 어루만지는 어린이문학 번역이란 손가락으로 꼽기 힘들 만큼 드뭅니다.

 나라안 글책과 그림책과 사진책을 들여다볼 때마다 절로 한숨이 나옵니다. 노벨상을 바랄 까닭은 없고, 구태여 한국문학 가운데 세계명작이 나와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줄 우리 문학과 문화와 예술이란 어떠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주기 앞서 우리 어른들이 신나게 즐기고 기쁘게 어깨동무할 문학과 문화와 예술이란 어떻게 일구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왜 우리는 우리 문학과 문화와 예술을 사랑스러우며 따스하게 일구지 못하는가요. 어이하여 우리는 우리 문학과 문화와 예술을 믿음직하며 넉넉하게 돌보지 않는가요.

 ‘판타지’는 문학을 이루는 수많은 갈래 가운데 아주 작은 한 가지입니다. ‘판타지 = 문학’일 수 없습니다. 판타지여야 잘 빚은 문학이 되지 않습니다.

 새로운 그림이어야 새로운 예술이지 않습니다. 이제까지 없던 남다른 모습을 만들어 내어 사진이라는 틀로 담아야 문화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또렷이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조각은 그림이 아닙니다. 조각은 조각입니다. 판화는 그림이 아닙니다. 판화는 판화입니다. 건축은 그림이 아닙니다. 건축은 건축입니다. 그림과 조각과 판화와 건축은 한자말로 하자면 ‘미술’이라는 테두리로 함께 묶을 수 있을 뿐입니다.

 ‘만듦사진’은 사진이 아닙니다. ‘만듦사진’은 다른 낱말을 새롭게 지어서 다른 문화매체이거나 예술매체임을 당차게 외쳐야 합니다. 사진이 아닌 만듦사진을 섣불러 얼토당토않게 내세우면서 ‘만듦사진 또한 사진이다’ 하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어쩌면 ‘만듦사진’은 ‘미술’이라는 테두리에 넣어야 알맞을 수 있습니다. 사진기라는 장비를 썼든 사진매체를 빌었든, 나타내고자 하는 뜻과 길이 사진이 아닌데 함부로 ‘만듦사진도 사진이다’ 하고 말해서는 올바르지 않아요. 똑같이 붓이나 연필을 써서 종이에 그린다고 해서 모두 그림이 되지 않습니다. 건축설계를 놓고 ‘그림’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그림을 닮’거나 ‘그림보다 더 그림다운’ 건축설계가 태어날 수 있습니다만, 이 모두는 건축이지 그림이 아닙니다. ‘만듦사진’ 가운데에는 ‘사진을 닮’거나 ‘사진보다 더 사진다운’ 만듦사진이 태어날 수 있을 텐데, 이 모두는 새 이름을 붙일 만듦사진이지 사진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만듦사진을 깎아내리려고 만듦사진은 사진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만듦사진은 새로운 문화예술 갈래인데 억지로 사진이라는 갈래에 쑤셔넣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새로운 문화예술 갈래이면 새로운 이름을 붙이며 새롭게 문화예술을 즐겨야 할 노릇입니다. 괜스레 ‘사진’ 갈래에 짜맞추려 하면서 사진밭을 헝클어뜨리거나 쑤석거려서는 안 됩니다. 괜한 쑤석거림질이란 만듦사진을 하는 분들 스스로 당신 문화예술밭을 제대로 갈고닦지 못하는 뻘 짓이 되고야 맙니다. ‘사진’을 하는 사람들 또한 사진 아닌 만듦사진에 ‘사진 아닌 매체인데 사진으로 잘못 알고 다가서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든지 그림을 즐길 수 있듯, 사진을 좋아하면서 ‘만듦사진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판화를 하며 조각을 하는 가운데 건축을 한다고 해서 손가락질할 사람은 없습니다. 사진을 찍고 만듦사진을 한다고 해서 나무랄 사람이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길을 똑똑히 깨달으며 올바로 걸어가야 할 뿐입니다. 벼를 심어야 논농사이지 보리를 심는다고 논농사가 되지 않아요. 보리는 밭농사입니다. 벼일 때에 논농사입니다. 감자와 고구마 또한 논농사가 아닌 밭농사입니다. 수수이든 밀이든 옥수수이든 밭농사입니다. ‘수수밭’과 ‘밀밭’과 ‘옥수수밭’이라 말하지, ‘수수논’이나 ‘밀논’이나 ‘옥수수논’이라 말하지 않아요. 오로지 ‘벼논’이라 말합니다. 사진과 만듦사진이란 벼논과 보리밭 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모두 곡식을 짓는 농사이지만 갈래가 다릅니다. 사진과 만듦사진 모두 사진기나 필름이나 인화지를 써서 펼치는 문화요 예술이라 하지만, 서로 갈래가 다릅니다. 아주 다른 갈래인 두 문화예술을 엉뚱하게 한동아리로 뭉뚱그리며 다루어서는 갈팡질팡 헤매기만 하지, 아름다우며 훌륭하고 좋은 길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2) 김홍희 님은 ‘사진이 아닙’니다


 사진을 찍는 김홍희 님은 《나는 사진이다》라는 이름을 내걸고 사진책을 하나 내놓았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당차고 다부진 이름인 《나는 사진이다》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당찬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대목이 다부진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나는 사진이다》 하고 외친다고 해서 김홍희 님이 사진이 될 수 없습니다. 김홍희 님은 사진이 아니라 김홍희입니다.


.. 그럼 자신의 생각과 주장은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 첫째, 우선은 셔터를 눌러야 한다. 생각하고 셔터를 누르기보다 셔터를 누르고 나서 생각하는 것이 좋다. 나는 이것을 ‘손가락으로 생각하기’라고 부른다. 그게 익숙해지면 사물을 대하는 순간 핵심을 꿰뚫어보는 직관이 생기고, 자연스레 셔터를 누른 것이 ‘물건’이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셔터는 누르지 않고 생각만 한다고 사진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  (35쪽)


 김홍희 님은 《나는 사진이다》에서 “언제까지고 남의 사진론으로 자신의 사진을 찍을 수는 없다. 남의 이론을 업고 사진을 찍는 것을 아류라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작가들이 남의 사진론을 업고 자신을 반증하려 한다(32쪽).”고 밝힙니다. 그러면서 김홍희 님은 당신 ‘김홍희 사진론’을 사람들한테 집어넣으려 합니다. 왜 ‘생각하기 앞서 사진기 단추를 누르라’고 말하지요? 이런 사진찍기란 ‘한낱 김홍희 당신이 즐기는 사진찍기’가 아닐는지요.

 사진은 찍고픈 사람 마음대로 찍어야 합니다. 생각을 하고 난 다음 찍어도 좋고, 생각을 하며 찍어도 좋으며, 생각하는 가운데 찍어도 좋습니다. 생각이 아직 없이 찍은 다음 생각해도 좋고, 생각을 안 한 채 찍고 나서도 생각이 아예 없어도 좋습니다. 어느 쪽이 가장 나은 사진길이라 말할 수 없고 따질 수 없으며 못박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김홍희 님은 어느 한 가지만을 제대로 된 사진찍기인 양 못박으면서 그 길로만 가라고 외칩니다. 바로 ‘김홍희 사진론’을 만들면서.

 곰곰이 따지고 살핀다면, 김홍희 님은 스스로 억지를 부리며 사진론을 펼칩니다만, 김홍희 님 사진론은 밑바탕부터 잘못되었습니다. 생각이 서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사진기를 ‘처음 장만해서 가지고 있을’ 수조차 없습니다. 마음이 안 되었는데, 생각이 아예 없는데, 사진기부터 장만해서야 사진을 찍을 수 있나요. 김홍희 님 스스로 ‘장비병에 걸려 FM2라는 사진기를 창피하게 여겼다’고 말하는데, 장비병에 걸린 김홍희 님은 제아무리 사진기 단추를 바지런히 눌렀어도 사진을 한 장도 못 찍은 셈입니다. 그저 단추만 눌렀을 뿐이에요. 김홍희 님이 사귄 유대인 여자친구가 김홍희 님이 얼마나 엉터리 짓을 하고 있는가를 아주 넌지시 일깨워 주고서야 김홍희 님은 비로소 ‘사진찍기 길 가운데 가장 작은 한 가지’에 눈을 뜹니다.

 그래, 이 책 《나는 사진이다》는 아직 사진을 모를 뿐더러, 사진을 알아 간다기보다 사진을 알아 가지 않으며, 둘레에서 몇 가지 고맙게 일깨워 준 가르침에 힘입어 사진찍기로 돈벌이를 하고 있는 김홍희 님이 ‘2005년 어느 날 테두리에서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진 이야기’를 쏟아부은 책입니다. 다시금 말씀드리지만, 이 책 《나는 사진이다》는 말이 될 수 없습니다. 김홍희 님은 “나는 김홍희다”라는 이름쯤 붙일 수 있을 터이나, 김홍희 님이 섣부르게 “나는 사진이다” 하고 당돌히 말해서는 안 돼요. 김홍희 님은 사진을 모를 뿐더러 사진을 배울 마음이 없잖아요.


.. 얼마 전에 아주 잘 나가는 프로 사진가 모씨가 TV 방송에 나온 적이 있다. 그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 기자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이렇게 잘 나가시는데, 혹시 하고 싶은 사진 없으세요?” 기자의 질문에 그가 대답했다. “언젠가는 다큐멘터리를 하고 싶습니다.” 나는 그때 내심 코웃음을 쳤다. ‘당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다큐멘터리는 안 돼. 잘 나가는 연예인들의 젖가슴이나 찍으며 희희낙락 하루하루 밥벌이에 연연하는 그 배짱으로, 삶의 진실을 캐기 위해 배를 곯며 카메라 한 대로 지구촌을 돌아다닐 수 있겠어?’ 다큐멘터리를 찍는 사람은 행동하는 철학이다. 철학하는 행동이고, 이미 독자나 관객의 입맛을 의식한 사진 작업을 오랫동안 해 오고 거기에 젖은 사람은 자신의 굴레를 벗어나 진정한 삶의 질문을 던지는 게 쉽지 않다 ..  (14∼15쪽)


 예부터 익은 벼는 고개를 숙인다 했고, 익지 않은 벼는 뻣뻣하게 서 있다가 쭉정이가 됩니다. 김홍희 님은 쭉정이 아닌 익은 벼가 되어야 할 분입니다. 섣불리 괜스러운 주의와 주장을 책 하나에 빼곡하게 실으려고 채근대지 말아야 합니다. 즐거이 살아가는 마음으로 당신 하루하루를 일구는 가운데 사진기를 쥐어들어야 비로서 즐겁게 사진을 맞아들입니다. 즐겁지 않은 삶이면서 사진기만 쥔다고 갑자기 즐거워지겠습니까. 삶은 하나도 즐겁지 않은데, 사진기만 쥐면 난데없이 즐거움투성이가 될 수 있는가요.

 김홍희 님은 연예인 젖가슴 사진을 찍는 이들을 나무라지만, 눈빛 파란 스님 까까머리 사진을 찍는 일하고 연예인 젖가슴 사진을 찍는 일하고 다르지 않습니다. 연예인 젖가슴을 찍는다 하여도 ‘훌륭한 넋으로 훌륭히 찍으’면 아름답습니다. 눈빛 파란 스님 까까머리 사진을 찍으면서 ‘다른 갈래 다른 사진 찍는 이를 깎아내리거나 비아냥거린다’면 김홍희 님으로서 눈빛 파란 스님 까까머리 사진을 찍으며 무엇을 얻거나 배운 셈인지요.


.. 옥상마을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왠지 너절하고 삶에 지친 오래 전 우리의 삶을 상상했었다. 그러나 실제 옥상마을을 방문하는 순간, 입이 딱 벌어졌다. 시장 옥상에 지어진 집들이 얼마나 깨끗하고 단정한지. 좁은 골목길이지만 담배꽁초 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다. 나의 너절한 상상을 단번에 깬 것이다. 이런 경우, 사진을 찍는 나의 행위는 존재 증명도 아니고 관념 증명도 아닌 무위로 끝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카메라를 들고 배회하고 있는 것이다 ..  (40쪽)


 김홍희 님은 가난하게 살아 본 적이 없는 분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 아주 잘 알 수 있습니다. 김홍희 님 스스로 ‘너절하고 삶에 지친’ 동네에서 살아 본 적이 있다면 부산 옥상마을이라는 이름만 들으면서 그곳이 어떠하다고 지레 짚을 수 없습니다. 너절한 삶이란 무엇인가요? 당신이 생각한 너절한 삶이란 어떤 모습이지요? 골목동네, 그러니까 가장 가난한 사람이 모여서 게딱지 집을 이루어 지내는 곳에서 태어나 살아 본 사람은, 이 골목동네에 ‘담배꽁초 하나 떨어져 있지’ 않음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가난한 골목사람들은 당신 삶터에 담배꽁초를 버릴 일이 없을 뿐더러, 철없는 사람들이 버린 담배꽁초를 주워 당신 집 쓰레기통에 버려 버릇 하니까요. 골목동네에서 태어나지도 않고 살아 보지도 않으며 찾아가 보지조차 않은 이들이나 이러한 골목동네 터전을 하나도 모를 뿐입니다. 골목동네에 담배꽁초나 빈 병을 버리는 사람은 골목사람이 아닙니다. 골목동네를 스쳐 지나가는 건달이나 아파트내기입니다.

 사진이란 ‘편견을 품은’ 사람이 찍을 수 없는 예술입니다. 편견을 품은 사람은 오직 편견 담긴 사진만 쏟아냅니다. 편견을 품은 사람은 오로지 편견 깃든 글만 써 냅니다. 편견을 품은 사람이기에 그예 편견 가득한 그림만 그려댑니다.


.. 아, 생각난 김에 한 마디만 더 하자. “프로는 사진을 자랑하고, 아마추어는 카메라를 자랑한다.”는 말이 있다. 당신은 무엇을 자랑할 것인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카메라는 지금 당신의 수중에 있는 카메라다. 당신과 함께 들로 산으로 돌아다니며 거침없이 일을 해 주고 즐거움을 주는 카메라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카메라라는 것을 지금 이 순간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만 ‘사진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다 ..  (83쪽)


 비아냥거리려고 이런 말씀을 올리지 않습니다. 슬프고 갑갑해서 이런 말씀을 올립니다. 제발, 김홍희 님부터 ‘사진에 마음을 쏟아’ 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바보 멍청이가 ‘프로는 사진을 자랑하고, 아마추어는 카메라를 자랑한다’ 따위 흰소리를 주워섬기는지 궁금합니다. 프로이든 아마추어이든 사진이나 카메라를 자랑할 때에 이이는 쓸개빠진 떨거지이지, 사진쟁이가 아닙니다. 프로 사진쟁이라면 당신 사진을 자랑할 까닭이 없고, 아마추어 사진쟁이라면 기계를 자랑할 턱이 없습니다. 프로 사진쟁이라면 당신이 사진을 찍으며 흘리는 땀방울을 기쁘게 즐깁니다. 아마추어 사진쟁이라면 당신이 사진으로 담는 사람과 어우러지는 삶을 반갑게 즐깁니다. 미쳤습니까. 프로 사진쟁이가 사진을 자랑하게. 돌았습니까. 아마추어 사진쟁이가 기계를 자랑하게.


.. 처음 사진 공부를 하러 온 사람에게 나는 이렇게 주문한다. “무엇이라도 좋으니 아무거나 우선 찍어 오십시오.” 그러면 학생들은 대개 당황한다. 아마 정해진 숙제를 하는 데만 길들여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  (98쪽)


 뭘 찍어야 좋을지를 하나도 모르는 사람한테 아무것이나 찍으라 한다고 아무것이나 찍지 못합니다. 뭘 찍어야 좋을지를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진을 찍고픈 사람 가장 가까운 곳에 아주 흔하게 보이는 무언가(사람이든 건물이든 자연이든 짐승이든)를 눈여겨보며 차근차근 찍으라고 이끌어야 합니다. 세 살박이 어린이한테 “네 마음대로 놀아 봐.” 해서야 되겠습니까. 일곱 살박이 어린이한테 돈 만 원 쥐어 주고 “네 마음대로 아무 데나 가서 알아서 밥 사 먹어.” 해서야 되겠습니까.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아무것이나 막 하라고 하면 ‘사진을 가르치는’ 일이 아닙니다. 김홍희 님 스스로 김홍희 님한테 사진을 배우겠다고 하는 사람 삶을 들여다보고 이야기 나누며 어깨동무해야 합니다. 당신 스스로 제자한테 다가서며 말을 건네고 손을 내밀며 사진밭에 신나게 뛰어들어 즐기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당신이 할 몫을 당신 스스로 안 하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제자 앞에서 낄낄대’는 매무새는 아닐까 걱정스럽습니다.


.. 이런 준비가 없다면 좋은 사진이 나올 수 없다. 좋은 사진에는 일반인들이 쉽게 눈치채지 못하는 치밀한 구성이 있다. 그저 지나가는 아름다운 몸놀림에 눈을 빼앗겨 셔터를 누른 사진과 축제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셔터를 누른 사진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 노출을 잘 맞춘다거나 수동으로 노출을 맞추어 사진 찍는 것을 자랑으로 늘어놓는 아마와 프로를 보면 나는 속으로 웃는다. 그 시간에 책이나 한 줄 더 읽고 다른 선수들의 사진이나 한 장 더 감상하는 것이 자신의 사진을 위해 훨씬 나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카메라를 믿어라 ..  (103, 166∼169쪽)


 우리는 사진을 찍을 때에 꼭 한 가지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입니다. 내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 한 가지만 ‘미리 갖출(준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미리 갖춘 내 마음이라 할지라도 정작 사진기를 어깨에 걸치고 살아가노라면 언제나 조금씩 달라집니다. 늘 같은 내 마음은 아니에요. 골목에 피어난 꽃을 보며 마음이 흔들리고, 짓궂게 빵빵거리는 자동차 때문에 마음이 들쑤석거리며, 좋은 벗님한테서 오랜만에 전화가 걸려 와 한참 기쁜 얘기를 주고받으며 마음이 들뜹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음을 어느 자리에 놓느냐에 따라 우리 사진을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도록 이끌어 냅니다. 내 마음을 사랑으로 채우고 있다면, 내가 미놀타 엑스300을 쓰든 니콘 에프3을 쓰든 사랑을 담은 사진을 얻습니다. 내 마음을 미움으로 채우고 있다면, 캐논에프1을 쓰든 핫셀블라드를 쓰든 내 사진에는 미움이 기어듭니다.

 사진기 초점이나 빛(조리개)이나 셔터빠르기를 그때그때 맞추며 사진을 찍는 사람은 이런저런 초점·빛·빠르기를 바꾸는 데에 1초가 걸리지 않습니다. 0.1초조차 안 걸리곤 합니다. 사진기를 손에 들고 사진기를 쳐다보지 않는 가운데 아주 부드러이 손가락 두엇 날렵하게 움직이며 다 맞추어 놓습니다. 사진기가 눈에 닿을 무렵 아주 스스럼없이 찰칵 하고 한 장을 찍습니다. 자동노출과 자동초점으로 사진을 찍는다고 수동노출과 수동초점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보다 더 잽싸거나 매끄럽지 않습니다. 어느 쪽이 더 잘 나오는 사진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어느 쪽이 ‘좋은 사진’이라거나 ‘나쁜 사진’이라 말해서도 안 돼요. 우리는 우리 사랑을 사진에 싣고자 할 뿐, 사진찍기 솜씨자랑을 하는 바보나 얼간이는 아니잖아요.


.. 사진의 진정한 목표는 생명의 공생에 있다. 생명의 공생은 공생 대 생며의 교감이다. 거기에 감동이 있는 것이다. 남을 감동시키기 위해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모는 것을 알게 됐다면, 우리가 느낀 감동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거짓 위에 서 있는 진실의 허상일 뿐이다. 그 사진을 보고 감동한 우리가 패악을 함께 저지른 것이다 ..  (261쪽)


 내 마음을 먼저 사랑으로 가득 채우며 글을 쓰는 한국 글쟁이가 하나둘 새로 태어나면 좋겠습니다. 내 마음부터 기쁘게 사랑으로 빛내면서 그림을 그리는 한국 그림쟁이가 둘씩 셋씩 새로 우뚝 서면 반갑겠습니다. 내 마음바탕에 사랑이 언제나 감돌도록 하루하루 삶을 알뜰히 일구는 사진쟁이 네 사람 다섯 사람 우리 누리 곳곳에서 조용히 땀흘리면 고맙겠습니다. 김홍희 님, 부산이라는 터전은 아주 넓습니다. 이 넓은 부산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면 아무쪼록 부산땅 모든 골목길을 철 따라 백 번씩은 누벼 보고 나서 힘차게 말하시기를 빕니다. 아무쪼록, 김홍희 님 사진에 참다우며 착하고 고운 사랑이 깃들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4343.9.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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