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사랑의 꿈’


 지난 사흘에 걸쳐 바깥마실을 했다. 애 아빠는 서울에서 하루를 묵고 이튿날 아침 일찍 인천에 가서 다섯 시간 남짓 골목마실을 하며 다리가 퉁퉁 부은 채 곧바로 일산으로 넘어가 옆지기 살붙이 살아가는 보금자리로 찾아들었다. 일산 비닐집에서 이틀을 묵고 오늘 아침 열 시 반에 길을 나서 낮 네 시 무렵에 겨우 충주 산골마을 집으로 돌아온다. 이래저래 여섯 시간이 걸리며 집으로 돌아온다. 고속버스에서 잠든 아이를 안고 시골버스를 기다리는데 삼십 분이 넘도록 안 오기에 왜 그런가 했더니 내가 시간표를 잘못 보았다. 충주 시내 쪽 버스 시간을 봤어야 했는데 음성 읍내 쪽 버스 시간을 보고 말았다. 그예 길에서 삼십 분 동안 아이를 안고 있던 셈. 부랴부랴 택시를 불러 타고 삯 만 원을 치러 산골집으로 들어오다. 팔과 다리 힘이 다 풀려 후들후들 떨며 아이를 방바닥에 드러눕히는데, 방바닥에 드러눕히니 비로소 깨어난다. 조금 더 자 주면 안 되련? 참 힘들어 죽겠구나. 아이는 고단하면서 또 일어나서 놀려 하고, 애 아빠는 그만 뻗어 버리고 만다. 뻗어 버렸으나 아이가 어리광에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히유. 잠들지 못하는 잠결에 아이가 배고파 하는구나 싶어 어기적 일어나 생협에서 사 온 우리밀라면 한 봉을 끓인다. 옆지기는 국물을 먹겠다고 하니, 감자 두 알과 애호박 조금과 무 조금에다가 버섯 세 송이하고 곤약 몇 조각을 썰어 넣는다. 버섯은 맨 나중에 넣는다. 새우젓과 액상물로 간을 맞추고 라면양념은 1/4을 넣는다. 생협 라면이더라도 양념은 살짝만 넣고 싶다. 건더기가 훨씬 많은 라면을 먹은 뒤 설거지를 한 다음 이듬날 먹을 쌀과 콩을 씻어 불려놓는다. 아이는 아무래도 잠들 듯하지 않아 애 아빠는 더 버티며 일손이라도 붙잡으려 한다. 인천마실을 하며 찍은 골목 사진 364장을 셈틀로 옮기며 raw파일을 jpeg파일로 바꾼다. 364장 모두 안 흔들리며 빛이 제대로 맞았다면 그지없이 좋았을 테지만, 몸은 몸대로 힘들고 날씨는 날씨대로 궂은 탓에 입맛을 다시는 사진이 자꾸 보인다. 가로로 한 번 찍고 세로로 다시 찍은 사진은 겨우 한 장을 살릴 수 있다. 몇 달 사이에 텅 비고 만 도화2동 142번지 안쪽 골목 사진 가운데, 막다른 골목에 있는 집 담벼락에 돌로 시멘트를 벗겨 글자를 남긴 “사랑의 꿈” 사진이 살짝 흔들렸다. 맞은편 벽에 몸을 기대어 찍었는데 흔들리다니. 이 사진을 찍을 때에 빗방울이 제법 굵어지기는 했지만 이렇게 흔들리니 슬프다. 다시 가서 찍어야 하잖은가. 그러나 내 사진은 딱 한 번 찾아가서 찍는 사진이 아니다. 다만, 이 골목집들이 다음번에 찾아갈 때에 허물리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을까 모르겠다. 누가 “사랑의 집”이라는 글월을 새겼을는지 모를 노릇인데, 텅텅 비고 마는 동네에 해 놓는 낙서란 으레 짓궂거나 얄궂기 마련인데, 이 글월이라면 이 골목에서 살던 사람이 그예 다른 집으로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발자국이 아닐까 싶다. 작고 좁다 하는 골목집에서 오래오래 살았던 사람은 으레 느낄 테지만, 퍽 많은 식구가 올망졸망 복닥이는 집이 아무리 가난할지라도 틀림없이 “사랑어린 집”이요 “사랑스런 집”이며 “사랑하는 집”이다. (4343.10.4.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아프리카에도 곰이 있을까요? - 크레용그림책 23
이치카와 사토미 지음 / 크레용하우스 / 2000년 7월
평점 :
절판




 우리가 하는 말도 몰라요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8] 사토미 이치카와, 《아프리카에도 곰이 있을까요?》(크레용하우스,2000)



.. 처음 보는 사람들이 와서 인사를 했어요. 얼굴색이 다르고, 옷도 이상했어요. 아주아주 먼 나라에서 여행 온 가족인가 봐요. 근데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지 뭐예요. 우리가 하는 말을 모르는 것 같았어요. 우리보고 자꾸 ‘카메라 카메라’ 하면서 신기하게 생긴 물건을 쳐다보래요 ..  (6쪽)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는 누구나 통역자가 됩니다. 아이와 이웃 어른 사이에서 말을 이어 주는 사람 노릇을 합니다. 아주 어린 당신 아이가 옹알거리는 말을 둘레 어린이나 푸름이나 어른한테 알리는 몫을 맡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이 살아가는 일산집에 아이랑 아이 엄마랑 함께 마실을 왔습니다. 아이는 시골집에서는 찾을 길이 없는 ‘아쪼끄림’ 맛을 보고는 자꾸자꾸 ‘아쪼끄림’을 달라고 칭얼댑니다. 밥을 먹어야 준대도, 밥 한 술을 뜨고 먹으래도 그저 ‘아쪼끄림’ 타령입니다. 도시에서 살아가자면 아이를 옳게 이끌기 참 힘듭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이모와 삼촌이 칭얼거림을 받아들이는 줄 환히 알며 더 멋대로 칭얼거립니다. 아쪼크림이란 얼음과자입니다.

 ‘할아버지’를 ‘아지’라 줄여 일컫는 아이가 “할모니 할모니 할모니” 하는 소리를 잇달아 욉니다. 마치 노래를 부르는 듯합니다. 아침 여덟 시가 안 되어 일어나 낮잠을 건너뛰며 투정대던 아이는 제발 한숨 자고 다시 일어나 놀라 해도 듣지 않더니 밤 열한 시 무렵에서야 할머니 품에서 잠이 듭니다. 일산집에 오면 할머니가 제 투정을 모조리 받아들여 주는 줄 뻔히 알기 때문일 테지요. 할머니는 아이 말마디를 모두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말마디를 못 알아들어도 몸과 마음으로 잘 챙겨 줍니다. 생각해 보면, 말귀를 잘 알아듣는 아이 아빠나 아이 엄마라 해서 아이가 하고픈 대로 늘 찬찬히 받아들여 주지는 않습니다.

 둘레에서 우리 딸아이를 곧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넣어야 하지 않느냐고 걱정해 줍니다. 집에서 엄마 아빠하고만 있으면 심심할 테고 다른 아이와 견주어 ‘못 배우며 뒤처질’ 수 있다고 근심해 줍니다. 아이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닐 무렵이면 돈이 어마어마하게 들 테니 이제라도 제대로 된 돈벌이를 하며 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끌탕해 줍니다.

 그림책 《아프리카에도 곰이 있을까요?》를 펼치며 생각합니다. 아프리카 작은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메토’라는 아이는 늘 염소를 보듬거나 돌보면서 식구들하고 살아갑니다. 메토네가 지내는 작은 시골마을에는 아주 마땅히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없습니다. 학교는 있을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글을 가르칠는지 모르고, 책을 읽힐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메토네 어머니나 아버지, 또 어머니나 아버지를 낳아 기른 어머니나 아버지 …… 들은 따로 배움집에 다니지 않았습니다. 굳이 배움집을 드나들어야 할 까닭이 없었습니다. 작은 시골마을 둘레 숲이며 들판에서 살아가는 들짐승인 키보코(물뚱뚱이), 심바(사자), 템보(코끼리), 트위가(기린) 들이 바로 좋은 벗이면서 스승이거든요. 맨발로 밟는 흙이 벗이면서 스승입니다. 땅에서 얻은 풀에서 자아내는 실로 지은 천이 옷이 되는데, 이렇게 옷이 되어 주고 밥이 되어 주며 집이 되어 주는 모든 자연이 벗이면서 스승이에요. 물뚱뚱이한테 말을 걸 줄 알고, 사자와 말을 섞을 줄 알며, 코끼리하고 말을 나눌 줄 안다면 아프리카 시골 삶자락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한국땅이라는 데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한답니다. 대학교 가방끈을 더 길고 단단히 붙잡아야 한답니다. 크고 빠르며 비싼 자가용에다가 돈 되는 아파트를 마련하며 노상 양복 차림으로 지내야 한답니다. 집에 텔레비전 들여놓아 갖가지 연속극과 운동경기와 연예인 풀그림에 빠삭해야 하는데다가, 돈이 좀 모이면 땅을 사든 주식을 사든 펀드를 사든 뭐를 하든 해야 한답니다.


.. 아, 어쩌면 좋아! 여자 아이가 작은 동물을 두고 갔어요. 얼마나 슬퍼하고 있을까요? ..  (12쪽)


 시골서 살던 사람은 웬만하면 도시로 몰려나왔습니다. 벌써 예전부터 시골에는 아이 울음소리가 멎었다고들 했습니다. 시골 초·중·고등학교는 읍에 한 군데씩 남기 일쑤이고, 이곳마저 얼마나 오래 버틸는지 모릅니다. 시골마을이나 작은 도시에 깃든 대학교에 다녀서는 일자리 얻기 힘드니까 서울 안쪽에 있는 대학교를 다녀야 한다고 온 나라가 들끓습니다.

 우리 세 식구는 서울과 맞닿은 인천 골목동네에서 지내다가 시골로 살림을 옮겼습니다. 시골 가운데에서 가까운 이웃집하고도 제법 떨어져 있어 십 분 넘게 걸어가야 겨우 몇 집 보이는 멧기슭에 살림집이 있습니다. 충청북도 충주시와 음성군 사이에 살짝 붙은 우리 살림집에서 서울로 마실하러 나오자면 대여섯 시간은 넉넉히 듭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세 시간이 안 되어 기차가 다닌다지만, 우리는 서울로 가자면 대여섯 시간, 부산으로 가자면 예닐곱 시간을 써야 합니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 《아프리카에도 곰이 있을까요?》를 펼칩니다. 책에 적힌 글을 읽고 그림으로 나오는 모습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하나하나 새 이야기를 붙입니다. “물에 사는 뚱뚱이라서 물뚱뚱이네. 사자들은 코 자고 있네. 우리 벼리도 코 자면 좋을 텐데. 얘네들은 엉덩이가 빨간 원숭이네.” 아이가 흙바닥에 떨어져 있는 곰인형 그림을 보며 “넘어졌어.” 하고 또박또박 말합니다. “그래, 곰인형이 넘어졌어.” 유럽나라에서 아프리카 여행이나 취재로 찾아왔을 사람들네 아이가 떨어뜨리고 간 곰인형을 아프리카 작은 마을 아이가 알아보고는 부리나케 달려가며 돌려줍니다. 책 겉하고 속에 까만 살결 아이가 곰인형을 두 팔로 번쩍 들고 보여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까만 살결 아이는 사내인지 계집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로서는 아프리카 사람들 말을 모르고 생김새 또한 잘 모르니까요. 아프리카 사람들이 하얀 살결 사람들을 볼 때에도 비슷할 테지요. 서로서로 얼마나 잘 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아이한테 이 그림을 짚으며 “오빠네.” 하다가는 “언니네.” 하다가는 “오빠인지 모르고 언니인지 모르겠네.” 하고 말합니다. 아이는 아빠가 들려주는 말과 손짓을 따르며 책을 두 번 함께 넘깁니다. 두 번씩 함께 보고 나서는 아이한테 혼자 스스로 넘겨서 보라며 책을 건넵니다. 이제 스물여섯 달을 지나는 아이는 혼자 스스로 책을 넘길 줄 알며, 퍽 잘 해 냅니다. 저녁을 먹을 때에 둘레 어른들이 다 젓가락질을 하니 저도 젓가락질을 하겠다기에 일부러 왼손은 쓰지 말고 젓가락 쥔 오른손만 쓰도록 하며 차근차근 밥거리를 잡아내어 스스로 먹도록 해 줍니다. 꼭 네 번 잘 따라 주며 밥거리를 집어먹습니다. 네 번 집어먹고는 또 뛰어다니며 놀겠다고 아빠 무릎에서 내려옵니다.


.. 엉엉 울고 있던 여자 아이가 달려왔어요. 난 작은 동물을 여자 아이한테 쭈욱 내밀었지요. “와! 내 곰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곰이야! 정말 고마워.” 여자 아이는 머리에 매고 있던 빨간 끈을 풀어서 나한테 주며 “매애애애! 매애애애!” 했어요. 아하! 빨간 끈을 내 염소한테 매 주라는 말인가 봐요 ..  (27쪽)


 일산집에서 사흘을 묵었고, 나흘째 아침에 슬슬 짐을 꾸려 우리 시골집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이렇게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하고 어울린 다음 집으로 돌아가면 한동안 투정 어리광 칭얼로 시달립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아이로서는 제 마음대로 신나게 뛰고 놀며 클 수 있는지 모릅니다. 아이 옆에 꼬박꼬박 붙어 지내며 통역자 노릇하고 심부름꾼 구실을 하다가는 너무 고단하여 애 아빠는 방에 들어가 한동안 쉽니다. 이제 아이는 스스로 제 두 다리로 얼마든지 돌아다닐 수 있고, 오줌이 마려우면 “쉬!”라고 말해서 곁에 있는 어른이 오줌그릇에 앉히면 되며, 모처럼 어울리는 살붙이들하고 더 붙어 있고픕니다. 앞으로 한 달 두 달 한 살 두 살 더 나이를 먹고 몸이 자라면 제 엄마 아빠하고 붙어 있는 때보다 떨어져 있는 때가 한결 늘 테지요.

 아이는 집에서 제 엄마 아빠가 하는 말을 고스란히 따라합니다. 제 엄마 아빠가 하는 양을 고스란히 따라합니다. 틀림없이 오늘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다가 초등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잘 짜여 있는 배움집입니다. 이 나라 거의 모든 아이들이 이러한 배움집을 다니니까 우리 아이가 이러한 배움집을 다니지 않는다면 따돌려지거나 동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이가 이러한 배움집들을 다닐 때에 아이로서는 무엇을 배우거나 따라하거나 물려받거나 이어받으며 아이 삶을 북돋울 수 있는지요.

 우리 아이한테는 우리 아이 삶이 있어요. 우리 아이 스스로 살아내고 살아갈 나날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는 아이 스스로 제 말을 찾고 제 넋을 키우며 제 삶을 보듬을 때 가없이 아름다우며 착하고 참되리라 생각합니다. 어버이 된 두 사람은 아이가 더 많은 지식을 더 일찍 머리에 집어넣기보다는 한결 따스한 사랑과 한껏 푸른 믿음을 고맙고 너그러운 살붙이와 이웃과 동무 품에서 물려받거나 이어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이 많거나 가방끈이 길거나 돈이 많으면 어디에 쓰나요. ‘우리가 하는 말’을 모른다면 무슨 보람이 있나요. 우리가 하는 말에 어떤 빛깔과 내음과 소리와 느낌이 깃들었는가를 깨닫지 못한다면 무슨 뜻이 있으려나요. 염소를 품에 안으며 따스함을 나누는 아프리카 작은 시골마을 아이와 곰인형을 품에 안으며 따뜻함을 함께하는 유럽나라 도시마을 아이가 주고받는 마음처럼 우리 아이 또한 말과 넋과 삶 모두 한결같이 따사로운 길을 뚜벅뚜벅 씩씩하고 튼튼하며 슬기롭게 걸어갈 수 있도록 곁에서 좋은 길동무로 나란히 살아가고 싶습니다. (4343.10.4.달.ㅎㄲㅅㄱ)


― 아프리카에도 곰이 있을까요? (사토미 이치카와 글·그림,사과나무 옮김,크레용하우스 펴냄,2000.7.25./7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집살림


 집살림이란 티가 나지 않는 일. 그런데 티나지 않는 이 일을 하느라 새벽부터 밤까지 어머니들은 다리 쉬며 방바닥에 드러누울 겨를은커녕 살짝 쪼그려앉을 틈이 없네. (4343.10.3.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골프와 글쓰기


 나한테 1억이라는 돈은 꿈조차 꿀 수 없으나, 누군가한테는 1억이라는 돈으로 골프채 한 대를 사거나 자가용 한 대를 쉽게 산다. 나로서는 백만 원 아닌 천 원 한 장 벌기란 몹시 빠듯하지만, 누군가한테는 1억뿐 아니라 10억이나 100억이 어렵지 않게 돌고 돈다. 나 혼자 지내자면 보증금 50에 달삯 5만 원짜리 방 하나 얻어 살겠지. 보증금 50조차 이웃한테 꾸어서. 옆지기와 아이가 있으니 보증금 300에 달삯 20쯤 되는 살림집을 얻어야 도시 골목동네 깊숙한 데에서 몸을 누일 수 있다. 이런 살림에서 백만 원뿐 아니라 천만 원은 더없이 까마득한데, 보금자리가 아닌 운동이나 취미로 쓰는 물건이 꿈조차 꿀 수 없는 돈크기라면 나와 누군가는 어떤 삶이고 사람일까. 골프 또한 좋은 운동이거나 취미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운동이나 취미 이야기를 신문이나 방송에서 얼마든지 다룰 수 있겠지. 진보이든 개혁이든 바라면서 골프 이야기를 다루지 말라는 법이란 없다. 다만 내 살림살이로서는 큰돈 아닌 푼돈을 버는 데부터 마음을 쏟기 어려울 뿐더러 손길이 가 닿지 않는다. 나는 칭얼대고 투정대며 어리광부리는 딸아이에다가 몸과 마음 모두 힘들며 아파하는 옆지기하고 시골집에서 복닥이는 데에 온 품을 들여도 언제나 허덕이거나 허우적거린다. 아, 오늘은 아침부터 맑고 고운 햇살이 내리쬐었다. 이런 날 인천에서 세 식구가 느긋하게 골목마실을 하며 땀을 흘린 다음 저녁나절 보리술 한잔 걸치고 잠들 수 있다면 얼마나 흐뭇할까. 가까운 헌책방 한 곳 가뿐하게 들러 책 한 권 마련한 다음 이 책을 넘기며 저녁밥을 같이 먹으면 얼마나 기쁠까. 그래도 옆지기 어버이와 살붙이 살아가는 일산 바깥쪽 비닐집에서 어머님 밥 얻어먹으며 그저 펑퍼짐히 지내는 하루 또한 홀가분하면서 즐겁다. (4343.10.3.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다섯 시간 골목 걷기 1


 시월 들어 첫날 인천으로 마실을 와서 골목길을 다섯 시간 남짓 혼자서 걷다. 그야말로 걷고 또 걷고 다시 걸으며 다섯 시간을 쉬지 않고 내리 걸었다. 시월 첫날 빗줄기가 가늘게 흩뿌렸기에 여느 때처럼 사진으로 찍을 만하다 싶은 모습을 더 많이 느끼지는 못한다. 그러나 흐린 날에는 흐린 날 느낌을 담으며 사진으로 옮기면 되고, 비가 흩뿌리거나 때때로 빗방울이 굵을 때에는 이러한 느낌을 고스란히 사진으로 이으면 된다. 종아리가 퉁퉁 붓고 무릎이 시큰거리며 등허리가 저리도록 걸으며 생각한다. ‘에휴, 겨우 틈을 내어 왔는데 오늘은 날씨가 궂구나. 날이 궂으면 사진에도 궂은 느낌이 깃들고 마는데.’ 인천에서 살아가며 언제나 즐거이 마실 다니는 사진을 더는 찍을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고 만다. 이제는 인천사람이 아닌 시골사람으로 살아가니까 나 또한 그동안 인천 골목동네에서 마주했던 ‘골목 아닌 아파트숲에서 살며 아주 가끔 출사 나오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골목마실을 하는 셈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저녁나절, 고단하고 지친 몸을 겨우 이끌어 일산에 있는 옆지기 식구들 살림집으로 온다. 전철을 타고 멀고 먼 길을 가까스로 오다. 다리가 제법 무거워 하룻밤 인천에서 자고 이튿날 새벽이나 아침에 갈까 싶었으나, 아이를 혼자 돌보느라 힘겨울 옆지기하고 식구들을 떠올리며 이를 앙다물고 전철을 타고 간다. 인천에서는 끝역이라 앉아서 가지만, 용산역부터는 내내 서서 간다. 주안역을 지날 무렵부터는 졸음이 쏟아져 모처럼 아이보기를 안 하며 책읽기만 할 수 있으나 그예 책을 덮고 눈을 감는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느긋하게 책을 읽겠느냐 생각하지만, 이런 생각과 달리 내 몸뚱이는 눈을 붙이잔다. 노량진역까지 꾸벅꾸벅 졸며 자며 온다. 용산역에서 내려 종로3가까지 오고, 여기에서 다시 3호선을 갈아타는 동안, 전철을 기다리며 큰 배낭에 책을 받치고 쭈그려앉는다. 쭈그려앉아 책을 읽는다. 어쩌면 자리를 얻지 못하고 서서 가야 하니까 억지로라도 책을 읽을 수 있는 셈.

 마련해 놓기는 거의 반 해가 되었으나 아직 펼치지 않던 《별을 헤아리며》(양철북,2003)를 드디어 읽어 본다. 책을 처음 마련할 때에도 꽤 괜찮은 작품이리라 여겼는데, 막상 읽고 보니 참 괜찮다. 우리 나라에는 이만 하게 작품을 빚을 글쟁이가 몇이나 될까 하고 곱씹는다. 아직은 멀었다고, 아직은 힘들다고, 아직은 슬프다고, 아직은 기다려야 한다고 느낀다. 가볍게 읽거나 가르침을 베푸는 작품은 많다. 그러나 곰곰이 되새기면서 우리 터전과 사람과 목숨과 꿈과 발자국 모두를 아우르며 사랑하고 믿는 작품은 드물다. 이원수 권정생 임길택으로 살포시 이어지던 끈을 씩씩하며 즐겁고 당차게 이은 글쟁이로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꼽을 수 있으려나. 아름답다 느낄 글을 쓰려면 스스로 아름답다 느낄 삶을 일구어야 하는데, 오늘날 이 나라 글쟁이 가운데 아름답다 느낄 삶을 즐거우며 곱고 신나게 보듬는 분으로 누가 있다 할 만할까. 가난하고 아프지만 가난을 좋은 벗으로 삼고 아픔을 고마운 스승으로 여기는 분으로 어느 분을 꼽을 만한가. 자가용을 타지 않을 뿐더러 자가용을 가질 만한 살림살이가 아닌 분이 누구인가. 아파트에 살지 않는데다가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이웃을 슬프며 따사로이 어루만질 만한 가슴으로 지내는 분이 누구일까.

 이어 《좋은 사람이 더 많은 세상》(내일을여는책,1997)을 들춘다. 어린이문학을 쓰는 송언 님이 서울살이를 접고 시골살이를 하면서 쓴 글을 모은 산문책. 이 책은 올 2월에 헌책방에서 만났으나 여태까지 펼칠 엄두를 못 냈다. 책을 사 놓고 여덟 달 만에 읽는 셈이네. 마흔 가까이 되어 비로소 서울을 벗어나 시골집에 전세를 얻어 시골 터전을 살갗으로 느끼는 이야기를 담는다. 송언 님 스스로 이무렵에 느끼셨는지 모를 노릇인데, 이와 같이 쓰는 글이야말로 문학이고 어린이문학이 된다. 따로 어떻게 꾸미고 자시고 해야 문학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한테 동시하고 동화만 들려주어야 어린이문학이지 않다.

 김밥 두 줄을 가끔 꺼내어 조금씩 먹으며 다섯 시간을 걷는다. 마실을 마치고 배다리 헌책방거리로 갈 무렵, 도화2동 142번지 둘레 ‘한창 집이 비며 철거를 할랑 말랑 하는 골목동네’에서 퍽 오래 머문다. 두어 달 앞서 이곳을 지날 때만 하더라도 사람이 살던 동네였는데, 그사이 텅텅 비다시피 한다. 텅텅 비다시피 하면서 더없이 쓸쓸하다. 그런데 쓸쓸하기만 하지는 않다. 일찌감치 비어 버린 골목집을 치워 텃밭으로 일군 자리에서는 노랗고 큰 호박꽃이 소담스레 피어 있다. 가꾸어 주는 사람이 없는 비어 버린 텃밭에는 갖가지 들꽃이 앙증맞게 피어난다. 설마 싶어 크고 굵직하게 달린 열매가 있나 살피는데 아직 열매는 보이지 않는다. 꽃만 시원하게 많이 피어 있다. 이 호박꽃들이 열매를 맺을 때까지 이 빈집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비어 있는 골목집은 모두 흙으로 지은 집이다. 요새 도시사람들은 시골로 살림집을 옮긴다고 할 때에 흙집을 짓는다며 집짓기를 배운다지. 그런데 그 흙집이 바로 도시 한복판 가난하고 조그마한 골목동네마다 있거든요. 아니, 쉰 해 예순 해를 이어온 도시 골목동네 살림집들은 으레 흙집이거든요. 흙집 겉에 시멘트만 살짝 발랐을 뿐이거든요. 기둥과 지붕은 나무예요. 골목동네 살림집을 요모조모 뜯어 보고 살피면 얼마든지 나무집과 흙집 짓는 솜씨를 익힐 수 있거든요.

 흙집에 나무지붕에다가 나무창문인 집 앞에 우뚝 선다. 창호지를 댄 나무문살 작은 창문 한쪽은 어디로 떨어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이 집이 비고 나서 틀림없이 동네 푸름이들이 담배 피고 술 마시러 와서는 망가뜨렸으리라. 집들이 비니까 동네 푸름이들은 이 빈집에 몰려들어 담배 피고 아무 데나 버릴 뿐 아니라 술 마시고 병을 깨뜨리기까지 한다. 한쪽만 남은 나무문살 창문은 그냥 후두둑 떨어진다. 이 창문을 어찌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내 가방에 넣기로 한다. 다시 붙일 수 없는 노릇이니까. 어제 새로 장만한 70리터들이 큰 가방에 넣어 본다. 꼭 맞게 들어간다. 얼마 뒤면 무시무시한 쇠삽날로 밀어버릴 이 골목집 자취 가운데 하나인 ‘창호지를 댄 나무문살 작은 창문’ 하나를 건사해 놓고 이곳에 어떠한 골목이웃이 어떠한 살림을 꾸리며 어떠한 꿈과 삶을 이었는가를 마음으로 품고 싶다.

 텅텅 비어 버린 동네를 걷는데, 집집마다 ‘새 주소 사업’을 한다며 새로 붙인 주소패가 반짝거린다. 쓰겁게 웃다. 이렇게 곧바로 허물 집이면서 저 새 주소패는 뭣하러 붙였을까. 새 주소패를 붙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허물 생각이면서 이런 짓을 왜 했을까. 새 주소패를 둘 떼어낸다. 붙인 지 얼마 안 되었기에 본드 냄새가 물씬 난다. 반들거리는 새 주소패 겉에 이 주소패를 붙였던 살림집 주소와 오늘 날짜를 네임펜으로 적는다. 문이 열린 빈집으로 들어가 본다. 빈집이니 자물쇠가 걸려 있지 않다. 살림살이 하나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치웠다. 집 옮길 돈은 받고 옮기셨을까. 바깥 골목에서 보면 알 수 없던 골목집 누리가 펼쳐진다. 바깥 골목에서는 골목집 안쪽 마당에 이렇게 예쁜 꽃밭과 텃밭이 앙증맞게 있는지 알 수 없다. 쇠붙이 문짝 잠금쇠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이 잠금쇠 또한 우리네 가난하고 수수한 여느 살림꾼들 발자국인데, 이 잠금쇠 하나를 ‘서민 역사’로 여기며 건사해 놓는 박물관이 한 군데라도 있는지 궁금하다. 이렇게 골목집을 허물어 아파트로 바꾼다고 할 때에 골목집 살림붙이를 찬찬히 보듬으며 모셔 놓을 박물학자라든지 전문가라든지 역사학자는 있는지 궁금하다. 지난해에 갑자기 돌아가신 재능대 사진학과 박재건 교수님은 송림4동과 5동 골목동네를 쓸어버릴 때에 동네를 다니면서 문패이니 주소패이니 몇 가지를 건사해 놓으며 “이 동네가 여기 있었음을 생각하고 싶었다.”고 말씀했다.

 새로 장만한 큰 배낭은 비를 맞아도 끄떡없다. 빗물이 스며들지 않는다. 목돈을 쏟아 장만한 배낭이라 그런지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쓰던 가방은 십만 원 넘는 돈을 들였는데 그 가방은 쟈크가 망가지고 빗물이 스몄고, 이 가방은 이십만 원 넘는 돈을 들여서 그런가, 쟈크는 한결 튼튼해 보이고 빗물이 스밀 틈이 없다. 빗물막이 천을 두르면 훨씬 야무지다. 돈이란 좋은가 무서운가 고마운가 대단한가 놀라운가.

 거의 다 비어 버린 골목동네를 거닐며 대문 안쪽으로 살짝살짝 들여다보이는 살림살이를 살핀다. 마루에 드러누워 낮잠을 자는 아저씨 한 분 보인다. 그래, 거의 다 비어 버렸으나 이렇게 살아가는 골목이웃이 있어. 사람이 살아가는 동네라고. 사람이 있는 터전이라고. 사람이 뿌리내리고 자리잡는 쉼터라고. 막걸리이든 보리술이든 한 잔이 그립다. (4343.10.3.해.ㅎㄲㅅㄱ)
 

= 사진은 보름 앞서 마실 할 때 찍은 녀석들. 엊그제 찍은 사진은 며칠 뒤에나 갈무리할 수 있어서 못 올립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