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
양희은 / 우석출판사 / 1993년 9월
평점 :
절판



 스무 살 색시 양희은과 마흔 살 아줌마 양희은
 [헌책방에서 만난 책 4] 양희은,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



 1952년에 태어난 양희은 님은 곧 예순에 접어듭니다. 지난 1991년은 양희은 님이 노래꾼이 된 지 스무 돌이 되는 해였고, 다가오는 2011년은 당신 노래 삶이 마흔 돌이 되는 해입니다. 양희은 님은 노래꾼으로나 라디오 사회자로나 널리 사랑받습니다. 이렇게 널리 사랑받는 연예인 가운데에는 이름값을 내세우거나 대필을 해서 책팔이를 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양희은 님한테서는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1993년에 당신 노래살이 스무 해를 돌아보는 산문책 하나를 내놓았는데, 이 책은 그리 사랑받거나 눈길을 모으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생각이란 생각하는 사람 마음이라 했으니, 이 책이 꽤 잘 팔리거나 두루 알려졌다고 생각해 봅니다. 이때에 양희은 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콧대를 세우거나 어깨를 우쭐거렸을는지요. 그러거나 말거나 한결같았을는지요. 어쩌면 당신 글쓰기가 퍽 괜찮다고 여기어 다른 산문책을 몇 권 더 써냈을는지 모릅니다. 쉰을 앞두고 책 하나 더 내놓는다든지 예순을 앞둔 이즈음 다시 새로운 책을 하나 더 내놓을는지 몰라요.

 1993년에 나온 뒤 그예 새책방 책꽂이에서 사라진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을 지난 2009년 12월에 서울 홍제동에 있는 헌책방 〈대양서점〉에서 만났습니다. 12월 11일이었다고 떠오르는데, 이날 이 책을 아주 뜻밖에 만나 집어들며 속으로 놀라워 했습니다. ‘양희은 님이 언제 이런 산문책을 다 냈을까? 참 놀랍구나. 난 참 모르는 책이 아주 많구나.’ 이때 옆에서 제 모습을 지켜보던 헌책방 일꾼이 넌지시 말을 건넵니다. “이 책(양희은 님 책) 꽂아 놓으면 금세 나갈 줄 알았는데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데요. 종규 씨가 처음으로 보는 거예요.” 다시금 놀라며 헌책방 한켠에 서서 책장을 넘깁니다. “이젠 웃을 수 있겠지요? 돈 때문에 그렇게 어두운 얼굴이었다면 돈을 갚은 뒤에는 웃을 수 있는 것 아니에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이다음에 어른이 되어서 지금의 미스 양과 같은 처지의 젊은이를 만나게 되면 스스럼없이 도와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두 가지가 우리가 받으려는 이자예요(38쪽).”

 두 달쯤 뒤 다른 헌책방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을 한 권 더 만나고, 다시 한 달쯤 뒤 또다른 헌책방에서 이 책을 한 권 더 만납니다. 두 권을 더 장만했습니다. 한 권은 고마운 분한테 선물로 드립니다. 한 권은 인문책을 힘써 펴내는 출판사 편집자한테 2011년을 맞이해 양희은 님 새로운 책 하나 길어올리거나 이 책을 다시 펴내시면 어떻겠느냐는 기나긴 이야기와 보탬말(기획안)을 달아서 건넵니다.

 그 뒤로 일곱 달쯤 지나는데, 다른 헌책방에서는 양희은 님 산문책이 잘 안 보입니다. 어쩌면 서너 달 사이 세 군데 헌책방에서 세 권이나 만난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은 바로 이무렵 저한테 찾아온 고운 무지개였을는지 모릅니다. 말없이 말을 건네는 좋은 말동무였을는지 모릅니다. 양희은 님 노래만 들어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는 속내를 살피면서 내가 걸어가는 내 삶길을 나 스스로 어떻게 추스르며 다스려야 좋을까를 북돋아 주는 밥 한 그릇이었다고 느낍니다.

 한 줄을 읽고 두 줄을 읽으면서 늘 되뇌었습니다. 나와 내 둘레 사람들한테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고운 마음밥이 되어 주지 않겠느냐고.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고운 마음밥을 얻었으면 나는 한결 고운 삶을 일굴 기운을 얻는 셈이요, 나 스스로 한결 기운을 내어 곱게 살아가고자 한다면 내 둘레 사람들은 나한테서 고운 기운을 얻을 텐데, 바로 이러한 기운은 헌책방에서 뜻밖에 만난 책 하나에서 비롯합니다.

 야금야금 읽어 2월 7일에 책을 덮습니다. 이때에도 홀로 생각에 잠깁니다. ‘나는 이 책을 곁에 놓고 읽으며 마음밥을 얻었는데, 다른 사람은 마음밥을 얻기가 어려울까. 출판사로서는 양희은 님 책보다는 노무현 옛 대통령이나 김대중 옛 대통령 책을 내놓아야 돈도 들어오고 이름도 알릴 수 있으려나.’ 그러나 모든 사람이 모든 책을 좋아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책 하나를 좋아해 줄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좋아하는 책을 모든 사람이 좋아할 수 없고,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책이랄지라도 한 사람은 안 좋아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헌책방이라는 곳을 ‘추억을 사먹는 곳’으로만 여깁니다만, 아무개는 헌책방이라는 곳에서 ‘고운 책 하나 만나 고운 내 삶을 일굴 힘’을 줄곧 얻습니다. “김민기는 작사·작곡·편곡·연주의 모든 일을 아무 계산 없이 식구에게 하듯 내게 베풀어 주기만 했다. 내가 얼마짜리의 일을 너에게 해 주었다는 식의 계산이 그에게는 도무지 없었다(46쪽).”

 지난밤, 아이가 기저귀에 오줌을 누어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데 “엄마, 기저귀.” 하고 잠결에 읊습니다. 엄마보고 기저귀를 갈라는 뜻입니다. 엄마는 힘들어서 몸을 거의 못 움직이는데 엄마한테 해 달라며 칭얼칭얼입니다. 여느 때에 아빠가 제대로 못하는 터라 아빠가 기저귀를 갈면 싫다는 소리일 테지요. 잠들 때에 언제나 엄마한테 안겨서 자고, 엄마 등짝이 한결 따스하다고 느끼니 아주 마땅한 칭얼칭얼이겠지요. ‘그래, 아빠가 잘 못하는구나. 미안하다. 추운데 얼른 아빠가 기저귀 갈아 줄게. 찬찬히 살며시 갈아 줄 테니 얌전히 있어 주렴.’ “동네 이 집 저 집 형편도 빤하고 구경거리도 많던 시절, 비 온 뒤 언덕에 서면 가회동에서 남산 중턱에 걸친 선명한 일곱 빛깔의 무지개를 볼 수 있었고, 운 좋으면 쌍무지개도 볼 수 있었다(99쪽).”

 동이 트고 아침이 밝습니다. 애 아빠 홀로 일어나 조용히 글을 씁니다. 이른아침 아이가 일어날 때까지 애 아빠가 홀가분하게 글을 씁니다. 아이가 아침잠을 삼십 분 더 즐기면 애 아빠로서는 삼십 분 더 글을 쓰고, 아이가 아침잠을 안 즐기고 새벽같이 일어나면 애 아빠로서는 글을 더는 못 씁니다. 애 아빠는 노상 아이가 아침에 조금 더 자 주기를 바랍니다.

 아침에 먹을 밥을 해야 하니 부엌으로 조용히 가서 쌀을 씻습니다. 물 흐르는 소리를 내지 않도록 살살 천천히 움직입니다. 밥을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이불을 털거나 방을 쓸고닦거나 하다 보면 하루는 참 금세 지나갑니다. 만화책 《꽃과 모모씨》(삼양출판사,2010)를 보면 밥상 하나를 차리느라 하루를 온통 다 쓰는 스물다섯 살 새색시 이야기가 나오는데, 굳이 만화책 이야기를 빌지 않더라도 집살림을 하는 이라면 누구나 밥상 하나 차리느라 온 하루를 다 쏟습니다. 밥하고 반찬만 내놓는다고 밥상 차리기가 끝나지 않을 뿐더러, 날마다 새로 밥을 하고 반찬을 하기까지 품이 퍽 많이 드는 한편, 손수 텃밭을 길러 푸성귀를 얻는다면 그야말로 온 하루를 다 바치고도 일은 끝나지 않습니다.

 집식구하고 얘기하면서 어린 날 어머니 삶을 가만히 곱씹곤 합니다. 홀로 볼일 보러 도시를 오갈 때이든 아이 손을 잡고 읍내로 마실을 다녀올 때이든, 내 어린 날 우리 어머니는 무엇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어찌 보냈을까 곰삭이곤 합니다. “당시는 미니스커트가 유행이었지만 내 처지에 비싼 스타킹과 하이힐, 그리고 미니스커트가 무슨 해당 사항이었을까? 물론 나 역시 청바지를 무척이나 좋아했지만 무엇보다도 그 옷이 내 분수에 맞았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우선 옷을 사 입을 형편이 못 되는데다 얻어 입는 옷마다 청바지였기 때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149쪽).”

 우리 어머니는 당신 아이한테 어떤 사랑을 나누어 주면서 당신 고운 삶을 보내었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집식구는 어떤 사랑을 둘레에 나누면서 당신 고운 삶을 셋이 함께 보내는가 헤아립니다. 생각만 한다고 알 수 없고, 헤아린다 해서 조금 더 읽을 수 있지 않습니다. 생각하는 사람이 생각을 않는 사람보다 낫다 여길 수 없습니다. 생각은 있되 몸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한결 덧없으며 슬픈 노릇입니다. “자기 부엌에서 자기 식으로 밥을 해 먹는 일, 제철 야채를 사다가 나물을 무치고, 맑은 국을 끓이고 제철 생선을 두어 마리 굽는 일, 그게 무슨 대수냐고 웃을지는 몰라도 나는 대단히 중요하다는 생각이다(245쪽).”

 스무 살 어머니를 생각하고 마흔 살 어머니를 떠올립니다. 이제 우리 어머니도 예순 살입니다. 어머니가 마흔 살이었을 때에 저는 열여섯이었습니다. 제가 마흔이면 어머니는 일흔에 가까운 나이이고, 우리 딸아이는 일곱 살이 됩니다. 제가 예순이 되면 우리 딸아이는 스물일곱 살이 되겠군요. 이때까지 어머니가 살아 계시면 여든네 살일까요. 어떤 분들은 백 살까지 살면 말벗 할 만한 이웃이 없어 쓸쓸하다 하는데, 백 살까지 살 수 있으면 내 또래는 거의 모두 죽어서 없을 테지만 내 한몸이 씨앗이 되어 힘차게 살아가는 숱한 어리고 젊으며 푸른 넋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함께 말을 섞지 않고 바라보기만 하여도 흐뭇한 곱고 예쁜 나무들이 곳곳에서 무럭무럭 튼튼하게 살아가니까 참말 기쁘며 사랑스러웁지 않으랴 싶어요. 그저 마주보고 있어도 그예 즐겁습니다. “미국에선 어떤 한 가지 물건이라도 회사마다 줄줄이 다른 상표로 만들어 내니, 어느 걸로 고르지? 고민하다가 날이 새는 것 같다(247쪽).”

 양희은 님은 당신 노래 삶자락 마흔 돌이 되는 2011년에 무언가 새로우며 남다른 잔치를 벌일까 궁금합니다. 앞으로 스무 살을 더 살아내어 여든 살이 될 무렵 당신 노래 발자취 예순 해를 곱씹으며 고운 노래잔치나 책잔치 하나 베풀어 줄는지 궁금합니다. 예순잔치까지는 힘들다면 쉰잔치여도 좋습니다. 잔치는 누가 차려 주지 않으며, 남이 차려 주는 잔치가 늘 기쁘지만은 않아요. 반드시 많은 사람을 불러모아야 하거나, 꼭 많은 사람한테 사랑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살림살이라서 떡국 하나 올려놓고 설날 차례상 차릴 수 있습니다. 버거운 살림이기에 밥 한 그릇과 미역국 하나로 생일잔치상을 수수하게 마련할 수 있습니다. 어찌 되든 잔치는 잔치요 명절은 명절이며 삶은 삶입니다. 고운 넋에서 고운 말이 샘솟고, 고운 말이 샘솟는 넋으로 고운 삶을 일구며, 고운 삶을 일구는 가운데 고운 노래를 줄기차게 부릅니다. 양희은 님 마흔 돌 노래잔치를 만나고 싶습니다. (4343.10.17.해.ㅎㄲㅅㄱ)


―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 (양희은 글/우석,1993.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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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지와 글쓰기


 밤 한 시 십일 분에 깨어난다. 아이가 자면서 기저귀에 쉬를 했다. 잠들기 앞서 엄마랑 아빠가 그토록 아이한테 “벼리, 쉬.” 하고 말했으나 끝내 쉬를 안 하고 잤으니. 낮 네 시쯤부터 쉬를 하자고 한 듯한데 아이는 쉬가 안 마렵다 했다. 참말 쉬가 안 마려웠겠지. 어쩌면 낮에 쉬를 한 번 하고 잠들었어도 깊은 밤에 쉬를 했을는지 모른다.

 오줌 기저귀를 갈고 나서 코를 푼다. 며칠 앞서부터 코가 퍽 나쁘다. 서울로 볼일 보러 다녀올 무렵부터 꽤 나빠졌는데, 서울에서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뒤로 훨씬 안 좋다. 몸 또한 몹시 힘들다. 그렇다고 드러누워 집일을 누구한테 떠넘길 수 없으며, 놀자고 신나게 소리치며 노래하는 아이를 못 본 척할 수 없다. 빨래를 널면서 아이랑 마당에서 뜀박질을 하고, 살짝살짝이나마 그림책을 펼치며 아이랑 함께 읽는다.

 보름쯤 앞서였나 잘 떠오르지 않는데, 보일러 기름을 넣으며 받은 좀 두꺼운 휴지를 접어 코를 푼다. 코를 푼 휴지는 잘 말려 놓는다. 다 마르면 이 휴지에 다시 코를 푼다. 하나로는 코를 풀 수 없어 한 장을 더 뜯어 두 장을 갈마들며 쓴다. 조금 두꺼운 휴지를 갈마들며 코풀기는 어릴 적 어머니한테서 배웠다. 어머니는 당신과 두 아들이 ‘코를 풀 때마다 새 휴지를 뜯으’면 집안에 휴지가 남아나지 않을 뿐더러 휴지가 남아나지 않으면 새 휴지를 사느라 살림돈이 많이 든다고 했다. 그래서 당신 두 아들한테 새 휴지를 자꾸 뜯지 말고 당신처럼 이렇게 “코를 한 번 풀 때에 위쪽부터 아래쪽으로 차근차근 내려와서 다섯 번은 풀고, 뒤집어서 다시 풀고, 그런 다음 이 휴지를 구겨 버리지 말고 잘 펴서 말린 다음, 다른 휴지 한 장을 뜯어 이렇게 코를 풀며 차근차근 말리면, 다시 코를 풀어야 할 때에 앞서 코를 푼 휴지가 어느 만큼 마르니까 이 휴지에 다시 풀면 된다.”고 했다. 어머니가 몸소 잘 보여주었기에 국민학교 이삼 학년 무렵부터 코풀기를 이렇게 해 온다. 뒤를 닦을 때에는 두루마리를 한 번에 두 칸씩만 뜯어서 닦으라 했다.

 어머니는 늘 걸레질로 물기를 훔쳤으나 때때로 걸레를 쓸 수 없어 휴지로 물기를 훔쳐야 할 때에는 ‘휴지를 잘 펴서 물기를 빨아들인 다음 곱게 물기를 짜내어 다시 쓰기’를 했다. “걸레 아닌 휴지로 물을 닦아야 할 때에는 휴지를 마구 뜯어서 쓰지 말고 한 장이나 두 장만 뜯어서 이렇게 살살 물기를 빨아들인 다음 물을 짜내어 다시 쓰면 돼.” 하고 일러 주었다.

 어머니는 요즈음 ‘물티슈’라 하는 퍽 두꺼운 휴지를 알뜰히 쓰신다. 이 물티슈로 개수대도 닦고 밥상도 닦으며 부엌 바닥도 닦는다. (4343.10.1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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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똥통과 글쓰기


 아이가 눈 똥과 오줌을 치웁니다. 요 몇 달을 더듬어 보면, 아이가 옷에 오줌이나 똥을 지리거나 싼 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아이는 늘 제 똥오줌 그릇에 앉아 똥이나 오줌을 누어 줍니다. 이렇게 똥오줌을 가리니 얼마나 고마운 노릇인지요. 그러나 한 가지 걱정을 덜면 새로운 걱정이 생깁니다. 아이는 스스로 앞가림을 하는 가운데 몸이 더 튼튼해지고 마음이 더 자라면서 새롭게 받아들이며 즐기고픈 일이 늘어납니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지 않으며 바깥에서 돈을 버는 일이란 얼마나 홀가분하며 손쉽다 할 만한지.

 아이가 눈 똥이 담긴 그릇을 치운다거나 아이가 싼 똥이 묻은 바지를 빠는 일이란 아무것조차 아닙니다. 아이한테 밥을 먹이거나 아이한테 옷을 입히거나 아이를 씻기는 일 또한 아무것이 되지 않습니다. 아이하고 몇 시간 놀아 주는 일이란 기껏 몇 시간 놀아 주었다뿐입니다. 아이는 어른과 마찬가지로 하루 스물네 시간을 함께 살아가는 고운 목숨입니다. 어른 된 사람은 하루를 온통 아이랑 보내면서 아이가 없던 나날 스스로 살림을 꾸리며 하던 집 안팎 일을 슬기롭게 맺고 풀 줄 알아야 합니다. 어른 혼자만 즐겁게 살아갈 수 없고, 집식구 먹여살려야 한다며 바깥일에 더 마음쓸 수 없으며, 내가 읽고픈 좋은 책이라며 나 홀로 책누리에 빠져들 수 없습니다. (4343.10.1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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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비치는 언덕길 : 바닷마을 다이어리 3 바닷마을 다이어리 3
요시다 아키미 지음, 이정원 옮김 / 애니북스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수수하게 살면서 곱고 착한 이야기
 [책읽기 삶읽기 18] 요시다 아키미, 《햇살이 비치는 언덕길》



 《이브의 잠》이나 《바나나 피쉬》나 《러버스 키스》라는 만화책을 그렸다는 요시다 아키미 님이 새롭게 그리는 만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가운데 3권 《햇살이 비치는 언덕길》을 보다. 이분 다른 만화책도 보고 싶은데 만화책방에 갈 때마다 사야지 사야지 하다가는 잊고 만다. 아직 다른 만화책들은 판이 끊어지지 않았으니 내가 더 까먹지 않는다면 즐겁게 장만해서 읽을 수 있겠지.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요시다 아키미 님이 새롭게 그리는 책에 붙인 큰이름인데, 일본글로는 ‘海街diary’로 적는다. 그러면 이 이름을 한글로 옮길 때에는 ‘바닷마을 일기’나 ‘바닷마을 이야기’나 ‘바닷마을 편지’쯤으로 옮겨야 알맞은데, 엉뚱하게 ‘다이어리’라 적고 만다(이 나라 만화책 출판사 편집자 마음씀이 아쉽다). 일본사람은 워낙 영어를 일본말인 듯 여기며 함부로 자주 쓰지 않는가. 그러나 일본뿐 아니라 한국 또한 영어를 참 쉽게 쓴다. “열린 마음”이나 “너른 마음”이라 말할 줄 아는 오늘날 한국사람은 퍽 드물다. 으레 “오픈 마인드”를 주워섬긴다. 몇 해 앞서부터 시월 끝무렵에 한국방송국(KBS 아닌)에서 벌이는 책잔치 이름은 “책잔치”가 아닌 “북쇼”이다.

 만화쟁이 요시다 아키미 님은 ‘바닷마을 일기’를 어느덧 세 권째 그린다. 첫째 권은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2009.5.)이고, 둘째 권은 《한낮에 뜬 달》(2009.12.)이며, 셋째 권은 《햇살이 비치는 언덕길》(2010.10.)이다. 앞으로 몇 권까지 더 그릴는지 모른다만, ‘바닷마을 일기’는 일본에서 ‘카마쿠라’라는 작은 바닷가 마을 사람들이 복닥이는 삶을 담아낸다. 언뜻 보기에 아무 이야기가 없을 듯하다 여길 수 있고, 썩 재미난 일이 없다 생각할 수 있는, 참 작은 시골마을(또는 작디작은 도시이거나 시골 읍내쯤) 사람들 여느 삶을 수수하게 보여준다. 우리로 치면 우리 식구가 살아가는 신니면 산골마을 이야기라 할 만하고, 전라도 고흥군 풍양면 바닷마을 이야기라 할 만하다. 이 작디작은 시골마을 사람들이 하루하루 벌이는 자그마한 이야기를 담은 만화책 ‘바닷마을 일기’이다.

 일본 만화라서 자잘한 대목을 잘 들여다보며 알뜰살뜰 만화 하나로 엮는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한국 만화라서 자잘한 대목은 들여다볼 생각 없이 더 잘 팔리거나 더 눈길을 끌거나 더 남다르다 싶은 이야기에 휩쓸린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삶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내 집에 텔레비전을 안 들여놓고 내 살붙이와 동무랑 오순도순 지내는 맛을 안다면, 살붙이와 동무랑 복닥이며 하루를 빠르게 보내는 삶으로도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눈물과 웃음이 있는가를 깨닫는다.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재미있거나 아름답거나 거룩하거나 놀랍거나 새로운 이야기가 샘솟는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저마다 마음속에 품는 짝사랑 하나로도 끝없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 가슴에 차츰차츰 커 가는 또다른 사랑과 믿음 또한 그지없이 깊은 이야기로 여미기 마련이다. 어른들이 나누는 사랑은 어떠할까. 어른들이 하루하루 꾸리는 삶은 어떠한가. 아이들이 학교 안팎에서 배우거나 놀거나 일하거나 어울리는 삶은 어떠하겠는가.

 날마다 일기를 꼬박꼬박 적어 보는 사람은 알 테지. 한 해 삼백예순닷새 일기 가운데 똑같이 적바림하는 일기란 나오지 않는다. 날마다 똑같은 하루를 보낸다고 생각할지라도 날마다 똑같은 낱말과 말투로 똑같은 이야기를 똑같은 글자수로 적바림하는 일이란 없다. 나 스스로 똑같다 잘못 생각할 뿐, 어느 하루조차 똑같을 수 없다. 날마다 똑같은 일을 한달지라도 날마다 날씨가 다르며, 날마다 마주하는 사람이 다를 뿐 아니라, 날마다 마주하는 사람과 나누는 이야기라든지 보내는 겨를은 다르다. 햇살이 드리울 때하고 비가 쏟아부을 때가 다르다. 옷장에서 꺼내어 입는 옷이 다르다. 빨래를 할 때에 드는 품이 다르다. 라디오에서 흐르는 이야기가 다르며, 텔레비전 구경을 좋아한다면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이야기 또한 다르다.

 바닷마을 일기 셋째 권 《햇살이 비치는 언덕길》을 가득 채우며 잔잔하게 흐르는 물결 같은 말마디를 하나하나 되씹어 본다.


- “어쩔 수 없지. 그런 부분까지 다 좋아했던 걸 테니까.” (19쪽)
- ‘길지 않았지만 친구들도 생겼었고, 산도 강도 깨끗하고, 마을도 사람들도 다정했다. 하지만 나는, 여기 오고 싶지 않았다. 새로운 가족 따윈 바라지 않았다.’ (24∼25쪽)
- ‘유아, 눈치 채고 있었구나. 병으로 오른쪽 다리를 잃게 된 유야. 나서서 허드렛일도 챙기고, 혼자서 잠자코 재활 연습을 하고. 강하구나. 게다가 자상하기까지 하다. 뭐니, 나.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50∼51쪽)
- “그저 행복해지고 싶다는 건데 그럼 안 되니?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을 상대하는 게 보통 일인 줄 알아? 병 때문이라고 머리로는 이해해도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일도 있는 거야.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아는 것처럼 말하지 마!” (75쪽)
- “응. 곱게 유카타도 차려입었어.” “유카타라.” “그에 비하면 우린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고.” “어쩔 수 없잖아. 우리 집 배는 고기잡이 배니까 차려입으면 불편하다고. 슈퍼 비닐봉지나 들고 있고. 딱 아줌마네.” “하지만 과자가 없으면 아쉬우니까.” “피부도 까맣고.” “어쩔 수 없잖아. 밖에서 뛰는 축구부니까.” (86쪽)
- ‘지금쯤 유아도 어딘가에서 이 불꽃을 보고 있을까? 그 아이와 함께. 유아의 다리에 대해 알면서도 사귀는 걸 테니 분명 좋은 아이겠지. 유야의 다정함과 배려는 다른 모두에게도 평등하게 향해 있던 거구나. 나한테만 그런 게 아니었더. 유아는 잘못한 게 없어. 내가 멋대로 착각했을 뿐. 하지만 그 아이를 향한 유아의 마음은 역시 조금은 특별한 거겠지?’ (94∼95쪽)



 만화책을 보면서 잘 그린 그림이라서 집어드는 일은 거의 없다. 더없이 멋진 그림이구나 싶어 집어드는 만화책이란 아예 없다 해도 틀리지 않는다. 그림책을 볼 때에는 참 잘 그렸구나 싶은 책을 사들 때가 있기도 하다만, 그림만 잘 되어 있을 때에는 몇 번 넘기기 힘들다. 솜씨만 빼어난 그림이라면 벽에 걸어 놓고 오래오래 두고두고 바라보기 어려우니까. 내 마음을 건드리는 만화나 그림이어야 즐겁게 넘기고 다시 넘기며 우리 딸아이한테까지 물려줄 만하니까. 내 삶을 밝히거나 빛내는 고운 이야기를 담은 만화책이거나 그림책일 때에 비로소 기쁘게 장만하여 우리 집 책꽂이에 예쁘게 꽂아 놓으니까.

 요시다 아키미 님 만화를 보면서 이분 만화결이 빈틈이 없다거나 예쁘장하다거나 맛깔스럽다거나 하고 생각해 보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결인지 아닌지조차 느끼지 않는다.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이든 《한낮에 뜬 달》이든 《햇살이 비치는 언덕길》이든 수수하게 붙인 책이름부터 마음을 사로잡는다. 도시사람 뻔한 이야기에서 벗어나 시골사람 자잘한 이야기로 스며들어 엮은 줄거리가 내 마음을 얼싸안는다. 작은 사람들 작은 이야기를 살가이 보듬는 만화쟁이 마음씨를 느끼며 고맙다고 느낀다.

 따지고 보면, 만화결이 훌륭하다고 이 만화책을 사지 않듯이 글솜씨가 빼어난 작품이라 해서 이 글책(문학책이든 인문책이든 예술을 다루는 책이든)을 사지는 않는다. 토박이말을 잘 살린 작품이라 해서 뛰어나거나 즐겁거나 아름다운 문학이 될까? 현대문학에서 손꼽힌다 하는 작품이라 하여 멋지거나 재미나거나 고운 문학이 될까? 노벨문학상을 탄다 한들, 이상문학상을 탄다 한들, 아쿠타가와상을 탄다 한들 무엇이 다르려나. 훌륭하기에 상을 받는 작품이 되기도 하지만, 상을 받은 작품이 내가 읽어서까지 빛깔 곱거나 아리따운 삶으로 녹아드는 이야기이지는 않다. 나는 내 마음을 따스하고 넉넉하게 일구는 데에 길동무가 될 좋은 이야기 담은 책 하나를 만날 수 있으면 흐뭇하다.

 조용하거나 한갓지다 느낄 수 있고, 들뜨거나 두근거린다 느낄 수 있는, 차분하면서 따사로운 말마디를 거듭거듭 되뇌어 본다.


- ‘산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지도 몰라.’ (104쪽)
- “유야한테 여자친구가 있다는 걸 안 순간, 실은 나 조금 안심했어. 혹시 유야랑 스즈가 사귀게 되어서 그런 두 사람을 계속 곁에서 봐야 한다면, 나 분명 속상해서, 속상해서 …….” (107쪽)
- ‘어쩐지 이상하다. 1년 전에 만약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언니와 ‘자매’가 되는 일은 없었겠지. 마찬가지로 요시노 언니나 치카 언니와도 ‘자매’가 될 수 없었을 거다. 옥토퍼스(축구단)의 친구들도 감독님도 만날 수 없었다. 만약 아빠가 암으로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그 야마가타의 작은 온천 마을에서 또다른 ‘가족’과 지금도 살고 있었겠지. 진학에 대해 고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같이 달콤한 간식도 먹거나 …….’ (128∼129쪽)
- ‘그때 언니는 잠자코 나를 물끄러미 바라봈다. 딱히 슬퍼하거나 하지 않은 채, 그렇지만 무언가 알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133쪽)
- “그리고 그 ‘정말 소중한 것’은 누가 봐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74쪽)
- “사과하시더라구. 지금껏 못난 딸이 붙들고 있어서 미안했다고. 솔직히 마음이 편치 않았어. 날 원망할 때가 훨씬 편했어. 부부는 헤어지면 그만이지만, 그분들은 나처럼 도망칠 수도 없을 테니까.” (179쪽)
- ‘마음의 병을 앓는 아내와 끝까지 함께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앙금처럼 쌓여 앞으로도 절대 지워지지 않겠지. 나는 그걸 계속 지켜볼 용기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 사람에게도 그의 아내에게도 불만을 쌓아 가는 나 스스로에게도 짜증이 났다. 그래도 행복했던 그 시간들. 그건 대체 뭐였던 걸까?’ (183∼184쪽)


 좋은 문학이란 무엇일까. 고운 문학이란 무엇인가. 맑은 문학이나 밝은 문학, 또는 기쁜 문학이나 예쁜 문학이란 어떤 모습이려나. 참된 문학이나 착한 문학을 생각해 볼 수 없나. 내 좋은 삶을 꿈꾸며 좋은 문학을 찾거나 즐기면 어떠하려나. 내 고운 삶을 일구려는 매무새로 고운 작품 하나 어깨동무한다면 내 삶은 어떻게 거듭날까. 착한 넋 착한 이 착한 말 착한 꿈 착한 삶으로 이어지는 착한 만화를 생각하며 하루하루 보낸다면 내 몸은 어떻게 달라질까.

 제법 사랑받으며 읽히는 만화 ‘바닷마을 일기’일 테지만 아주 널리 알려지지는 못하리라 본다. 꽤 두루 팔리기도 만만하지는 않으리라. 어쩌면 ‘바닷마을 일기’를 그린 요시다 아키미 님은 당신이 그리는 이 만화를 100만 사람이나 1000만 사람이 읽고 가슴 뭉클히 받아들여 주리라 바라지 않겠지. 10만이 아닌 1만 사람일 뿐이더라도, 1만조차 아닌 1천 사람이나 1백 사람일지라도, 가슴으로 따뜻하게 껴안아 줄 고운 벗을 기다리지 않을까 싶다. 그린이가 먼저 스스로 착한 사람으로 살면서, 읽는이 또한 스스로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곱고 맑은 온누리에서 즐거이 어깨동무할 보금자리를 바라 마지 않겠느냐 싶다. (4343.10.16.흙.ㅎㄲㅅㄱ)


― 햇살이 비치는 언덕길 (요시다 아키미 글·그림,이정원 옮김,애니북스,2010.10.20./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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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책을 사는 곳


 나한테 여느 책을 사는 곳은 헌책방. 온갖 책을 사는 곳 또한 헌책방. 새로 나오는 책을 사는 데는 명륜동 인문사회과학책방 〈풀무질〉. 문화책과 예술책을 살 때에는 혜화동 인문책방 〈이음책방〉. 만화책을 살 때에는 홍대 앞 〈한양문고〉. 예전에는 사진책을 늘 〈이음책방〉에서 샀는데, 이제 〈이음책방〉에서는 사진책을 예전처럼 많이 다루지는 않으니 어디에서 사야 할까. 사진책을 알뜰히 다루는 책방이 없으니 시골집에서 받아보도록 누리책방에서 사야 하나. 어쩌면 몇 갈래 책, 이들 인문사회과학이나 환경이나 문화나 만화를 다루는 책을 빼놓고 앞으로 누리책방 아니고서는 책을 살 길이 꽉 막혀 버릴는지 모른다. 더구나 인문사회과학이나 환경을 다루는 책이라 할지라도 자그마한 책방에서는 모두 갖추지 못한다(그래서 전화로 미리 주문을 해서 사야 하지). 사람들 스스로 즐거이 다리품 팔며 책방마실을 하는 맛과 멋이란 거의 모두 사라질는지 모른다. 따지고 보면 책방마실 맛과 멋은 벌써 많이 사라지거나 없어졌을 뿐 아니라, 진작부터 꽤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다리품 팔아 책을 살피고 손으로 책장을 넘기며 내가 사서 읽을 책을 찾는 즐거움을 잊거나 잃었다. 지난날 사람들은 으레 단골 책방을 몇 군데씩 두었는데, 오늘날 사람들은 단골 책방을 몇 군데쯤 꼽을 수 있을까. 단골 새책방 몇 군데뿐 아니라 단골 헌책방 여러 군데를 으레 사귀며 살던 ‘책 사랑이’란 그예 자취를 감출 사람들일 뿐인가.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아닌, 동네에서 가볍게 걸어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찾아가는 가까운 단골 책방을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까. 책은 책방에서 사야 하는데, 이제 사람들은 겉보기는 책방이지만 이마트나 롯데마트와 마찬가지인 커다란 ‘할인매장’ 같은 ‘독점 대형 창고’에서 더 값싼 물건을 골라 버리고 만다. (4343.10.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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