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와 글쓰기


 밤 한 시 십일 분에 깨어난다. 아이가 자면서 기저귀에 쉬를 했다. 잠들기 앞서 엄마랑 아빠가 그토록 아이한테 “벼리, 쉬.” 하고 말했으나 끝내 쉬를 안 하고 잤으니. 낮 네 시쯤부터 쉬를 하자고 한 듯한데 아이는 쉬가 안 마렵다 했다. 참말 쉬가 안 마려웠겠지. 어쩌면 낮에 쉬를 한 번 하고 잠들었어도 깊은 밤에 쉬를 했을는지 모른다.

 오줌 기저귀를 갈고 나서 코를 푼다. 며칠 앞서부터 코가 퍽 나쁘다. 서울로 볼일 보러 다녀올 무렵부터 꽤 나빠졌는데, 서울에서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뒤로 훨씬 안 좋다. 몸 또한 몹시 힘들다. 그렇다고 드러누워 집일을 누구한테 떠넘길 수 없으며, 놀자고 신나게 소리치며 노래하는 아이를 못 본 척할 수 없다. 빨래를 널면서 아이랑 마당에서 뜀박질을 하고, 살짝살짝이나마 그림책을 펼치며 아이랑 함께 읽는다.

 보름쯤 앞서였나 잘 떠오르지 않는데, 보일러 기름을 넣으며 받은 좀 두꺼운 휴지를 접어 코를 푼다. 코를 푼 휴지는 잘 말려 놓는다. 다 마르면 이 휴지에 다시 코를 푼다. 하나로는 코를 풀 수 없어 한 장을 더 뜯어 두 장을 갈마들며 쓴다. 조금 두꺼운 휴지를 갈마들며 코풀기는 어릴 적 어머니한테서 배웠다. 어머니는 당신과 두 아들이 ‘코를 풀 때마다 새 휴지를 뜯으’면 집안에 휴지가 남아나지 않을 뿐더러 휴지가 남아나지 않으면 새 휴지를 사느라 살림돈이 많이 든다고 했다. 그래서 당신 두 아들한테 새 휴지를 자꾸 뜯지 말고 당신처럼 이렇게 “코를 한 번 풀 때에 위쪽부터 아래쪽으로 차근차근 내려와서 다섯 번은 풀고, 뒤집어서 다시 풀고, 그런 다음 이 휴지를 구겨 버리지 말고 잘 펴서 말린 다음, 다른 휴지 한 장을 뜯어 이렇게 코를 풀며 차근차근 말리면, 다시 코를 풀어야 할 때에 앞서 코를 푼 휴지가 어느 만큼 마르니까 이 휴지에 다시 풀면 된다.”고 했다. 어머니가 몸소 잘 보여주었기에 국민학교 이삼 학년 무렵부터 코풀기를 이렇게 해 온다. 뒤를 닦을 때에는 두루마리를 한 번에 두 칸씩만 뜯어서 닦으라 했다.

 어머니는 늘 걸레질로 물기를 훔쳤으나 때때로 걸레를 쓸 수 없어 휴지로 물기를 훔쳐야 할 때에는 ‘휴지를 잘 펴서 물기를 빨아들인 다음 곱게 물기를 짜내어 다시 쓰기’를 했다. “걸레 아닌 휴지로 물을 닦아야 할 때에는 휴지를 마구 뜯어서 쓰지 말고 한 장이나 두 장만 뜯어서 이렇게 살살 물기를 빨아들인 다음 물을 짜내어 다시 쓰면 돼.” 하고 일러 주었다.

 어머니는 요즈음 ‘물티슈’라 하는 퍽 두꺼운 휴지를 알뜰히 쓰신다. 이 물티슈로 개수대도 닦고 밥상도 닦으며 부엌 바닥도 닦는다. (4343.10.1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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