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읽는 책 : 조반니노 과레스키


.. 하지만 진리는 누군가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발견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자기 힘으로 생각하고, 의식해야 하는 것이다. 당신을 위해 생각해 주고, 어떻게 자유로워져야 하는지 가르쳐 줄 사람을 찾아봐야 소용없다 ..  《조반니노 과레스키/윤소영 옮김-비밀일기》(막내집게,2010) 167쪽


 책을 읽으며 지식을 쌓을 수 있습니다. 온갖 일을 하면서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식은 어디에서든 어떻게든 쌓거나 얻습니다. 지식은 누구나 나누어 주며, 지식은 누구나 나누어 받습니다.

 스스로 애쓰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으며 수없이 많은 지식을 받아들입니다. 스스로 애쓰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책을 수없이 많이 읽었으나 지식 한 조각 거두지 못합니다. 온갖 일을 하는 동안 곰곰이 생각하고 마음을 기울이기에 숱한 지식을 알뜰히 받아먹습니다. 온갖 일을 하면서 돈만 바라거나 지겹다 여기니까 아무런 지식 하나 나누어 받지 못합니다.

 스스로 꾸리는 내 삶입니다. 스스로 꾸리는 내 삶인 까닭에 스스로 찾아서 스스로 북돋우고 스스로 가꾸는 지식입니다. 스스로 골라들어 스스로 장만하는데, 스스로 읽을 책을 사면서 치를 책값이란 스스로 땀흘려 일하는 동안 천천히 얻습니다.

 어떠한 일이든 스스로 합니다. 스스로 밥상을 차려 스스로 밥을 먹고, 스스로 설거지를 하며 스스로 벌렁 드러누워 낮잠을 잡니다. 누가 해 주지 않습니다. 누가 차려 주지 않습니다. 차려 준 밥상을 받더라도, 스스로 손을 놀려 퍼먹어야지, 누가 떠먹이지 않습니다. 누가 떠먹여 준달지라도 스스로 삭여야지, 누가 삭여내 주지 않아요.

 모든 책은 나 스스로 읽습니다. 좋은 책 나쁜 책은 따로 없습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면 나쁜 책을 읽으면서도 좋은 깨우침을 맞아들입니다. 내가 나쁜 사람이라면 좋은 책을 읽었어도 나쁜 넋을 떨치지 못합니다. (4344.1.3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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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22. 

핀을 꽂으면 하나나 둘로는 성이 차지 않는구나... -_-;;; 

 

그래, 핀 꽂고 자거라. 

그런데... 자면서도 핀이 없다고 칭얼대면 넘 힘들구나..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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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움직인 책들’은 헌책방에서
― 로버트 B.다운즈, 《역사를 움직인 책들》



- 책이름 : 역사를 움직인 책들
- 글 : 로버트 B.다운즈
- 옮긴이 : 김지운
- 펴낸곳 : 삼성문화재단 (1976.2.20)



 저녁을 차립니다. 밥이 솔솔 익기 앞서 아이는 배가 고프다 합니다. 아이한테 얼른 무언가 먹을거리를 주어야겠다 싶어, 조금 묵은 능금이랑 미리 삶은 달걀을 송송 썰고 땅콩을 넣어 마요네즈하고 케찹과 조청을 섞으며 비빕니다. 푸성귀가 다 떨어져 푸성귀를 넣지 못해 아쉽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비빈 먹을거리를 아이는 맛나게 먹어 줍니다. 잘 차리지 못한 밥상이더라도 맛나게 먹어 주는 아이를 보면 참으로 고맙습니다.

 밥을 먹이고 나서 책을 들추려고 하다가 셈틀을 켭니다. 미처 마무리짓지 못한 글이 있어 마저 쓰려고 했으나, 아이가 아빠 무릎맡에 앉으니, 도무지 글을 쓸 수 없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 놓고 글쓰기를 이으려 하지만 좀처럼 글이 되지 않습니다. 어영부영 하는 동안 글은 아무것도 못 쓰고 무릎은 아프며 아이는 졸립니다. 그렇지만 졸리면서 더 깬 채 놀고자 하고, 아주 곯아떨어지기 앞서까지 이리 뛰고 저리 춤추며 놉니다.

 아이는 아이라서 이토록 놀아야 하는가요. 아무래도 아이는 아이인 만큼 이렇게 놀아야겠지요. 어른은 어른이라서 아이처럼 마냥 신나게 못 노는지 모르나, 어른이기 때문이라기보다 스스로 벌인 온갖 일에 매이거나 얽히면서 조금 더 느긋하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오늘 못 다 쓴 글을 꼭 오늘 마무리지을 까닭이 없고, 이듬날이든 이듬달이 되든 그예 마무리짓지 못해도 돼요. 아이처럼 어른도 어디에든 매인 삶이 되지 않을 때에 즐겁습니다. 아이마냥 어른도 콩콩 뛰면서 사뿐사뿐 달릴 때에 기쁩니다. 신나니 노래를 부르고, 재미나니 춤을 춥니다.

 아이가 책을 펼칠 때에는, 책에 길이 있기 때문에 펼치지 않습니다. 뛰놀 때에는 뛰놀기가 재미있으니 뛰놀고, 책을 펼칠 때에는 책이 재미있으니 책을 펼칩니다.

 책이 아주 훌륭한 마음밥이라서 펼치지 않습니다. 마음밥이 되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기쁘게 펼쳐서 예쁘게 읽어 살가이 받아들이면 좋으니까 책을 펼칩니다.

 책이란 어버이가 잔뜩 사 준다 해서 신나게 읽을 수 없습니다. 책이란 어버이가 한 권도 안 사 준다 하더라도 못 읽을 까닭이 없습니다. 집에 책이 멧더미 같아도 안 읽기 마련이고, 집에 책 하나 보이지 않더라도 책을 사랑하는 아이란 많아요.


.. 그는 그의 생각에 기본적으로 중요한 일들, 즉 콩코드의 들판을 소요하고, 직접 자연을 공부하고, 사색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등의 기본적으로 중요한 일들을 하기 위한 한가한 시간을 벌자는데 정열을 태웠다 … 도로(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필요 이상의 모든 것에서 벗어난 간소한 생활관을 예시하기 위해 콩코드 근방에 있는 월든 폰드에서 2년을 보냈다. 그는 거기에다 오두막집을 짓고, 콩과 감자를 심고, 가장 간소한 식량(주로 쌀·옥수수·감자 그리고 당밀)을 먹고 사회생활에서 벗어나 홀로 생활했다. 그것은 사색과 집필에 집중한 시기였으며 이에서 생겨난 것이 미국문학사상 최대작품 중의 하나인 《월든》 혹은 《숲속의 생활》(1854년)이었다 ..  (108∼109쪽)


 책은 아이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책은 어른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책으로 배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책으로 가르칠 사람도 없습니다.

 책은 그저 책입니다. 책에는 이야기가 깃듭니다. 이 이야기는 그저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겪은 이야기이거나 사람들이 생각한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하나도 안 나오는 자연 이야기라 할지라도 자연이 스스로 적바림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이 바라보거나 생각한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누가 누구한테 가르치는 이야기가 아니라, 저마다 다 다른 곳에서 다 다르게 살아온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책을 놓고 사람을 가르치려 합니다. 아예 처음부터 가르치거나 배우는 책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른바 교재이고 참고서입니다. 이를테면 문제집이고 수험서입니다. 여기에 기술서와 처세책이 있습니다. 모두모두 가르치려 듭니다. 모두모두 길들이려 합니다. 모두모두 얽매이게 이끕니다.

 인권을 다루는 책이라 할지라도 인권을 가르치지는 못합니다. 그저 인권이 무엇인가 하고 보여줄 뿐입니다. 살아가면서 겪고 치르며 받아들일 인권이지, 책을 읽어 알거나 받아들일 인권이 아니에요. 내가 오늘 이곳에서 마주하는 사람하고 어울리며 북돋우는 인권이지, 머리속으로 헤아린다고 이루어지는 인권이 아니에요.


..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 저자에게 남부 지방으로부터 분노와 否認과 욕설이 마구 쏟아졌다. 신문들이 스토우 여사의 노예제도 묘사에 에러와 허위가 있은 것같이 폭로할 목적으로 소상한 비판의 논평들을 게재했다. 전형적인 논평은 ‘서던 리터러리 메신저’의 선언으로서, 이 책이 “창작의 고매한 기능이 범죄적으로 타락”한 것이며 스토우 여사는 저자로서의 죄책 때문에 “그녀 자신을 보호의 울타리 없이 남부 비판의 수중에 맡겨 버렸다”는 것이었다. 스토우 여사에게 직접 수천 수만 통의 성난 욕지거리 편지들이 날아들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이 처음엔 남부에서 마구 나돌았는데, 신랄한 반응이 나타난 후로는 남부에서 이 책 한 부라도 가지고 있는 것은 위험했다 ..  (136∼137쪽)


 《역사를 움직인 책들》이라는 자그마한 책을 읽습니다. 여러 차례 읽습니다. 참말 이 작은 책에서 다루는 책들은 온누리 역사를 바꾸거나 움직였다 할 만큼 대단한 책으로 손꼽을 만합니다. 책 하나가 역사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만, 언뜻 보기에 이 책들 때문에 역사가 움직였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러면, 이 책들 때문에 움직였다는 역사는 오늘날 어떤 모습인가요. 앞으로 쉰 해쯤 뒤를 살아갈 뒷사람들이 보기에 2000년대 첫무렵이나 1900년대 끝무렵을 움직였다 싶은 책이란 무엇을 손꼽을 수 있으려나요.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좋겠다고 생각하나요. 우리들은 우리가 살아갈 나날을 우리 스스로 생각하거나 살피거나 찾는가요, 아니면 책을 읽으면서 배우려고 하나요. 우리들은 우리가 사랑할 나날을 우리 스스로 헤아리거나 돌보거나 보듬는가요, 아니면 책을 읽으면서 가르쳐 주려고 하나요.

 1976년에 처음 나온 《역사를 움직인 책들》은 헌책방 책시렁에 묻힙니다. 2011년이 되었으나 되살아날 낌새는 없고, 2076년쯤에 누군가 되살려 펴낼는지 퍽 궁금합니다. 역사를 움직인 책들로 손꼽히는 책들은 2011년이나, 또는 2076년쯤에는 어느 만큼 읽히려나 궁금합니다. (4344.1.3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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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베개로 책읽기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쓴다. 어느새 아침이 밝고 바깥은 환하다. 어제 늦게까지 안 자던 아이는 열한 시가 넘어도 일어나지 않는다. 오늘은 일찌감치 아침 차리느라 부산을 떨지 않아도 좋구나 생각하면서 차츰 몸이 처진다. 아이가 일찍 일어나면 아빠도 글쓰기를 일찍 마치며 아침을 차리느라, 이무렵은 아이가 밥을 거의 다 먹고 설거지를 할 때. 모처럼 이때까지 집일을 뒤로 젖히니 느긋하기는 하지만, 늘 이무렵 설거지를 하고 살짝 기지개를 켜며 방바닥에 드러눕다 보니 눈이 무섭게 감긴다. 눈을 뜨나 떴다 하기 힘들고, 애써 자판을 두들겨 보려 하지만 자꾸 손가락이 엇나간다.

 히유 한숨을 몰아쉰다. 집식구가 조금 늦게까지 꿈나라에 빠졌어도 아빠는 느긋하게 글쓰기를 못 하는구나. 셈틀을 끈다. 바닥에 그대로 눕는다. 머리가 허전해서 옆에 쌓은 책 몇 권을 옮겨 베개로 삼는다. 몇 분쯤 지긋이 눈을 감고 쉰다. 조금 뒤 눈을 살짝 뜨고는 왼편에 놓은 책 하나를 펼친다. 책을 베개로 삼아 누운 채 책을 읽는다.

 책을 읽은 지 5분쯤 지나자 아이가 잠에서 깬 소리가 난다. 아이는 일어나자마자 언제나처럼 노래를 부른다. 어쩜, 이렇게 잠에서 깰 때마다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우리 집 아이라지만 참으로 놀라우며 예쁘다. 아이한테 지난달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어머니 잘 잤어요? 아버지 잘 잤어요?” 하고 말하라고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바로 오늘부터 “어머니, 잘 잤어요?” 하고 물으며 흔드는 소리가 난다. 이 녀석아, 일어난 사람한테 하는 인사이지, 어머니는 둘째를 배어 몸이 힘드니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잖니. 어머니를 깨우며 그런 인사를 하면 어떡하니.

 아이는 겉바지와 웃겉옷을 하나씩 들고 아버지한테 온다. “치마 입혀 주셔요. 바지 입혀 주셔요.” 하고 말한다. 변기에 오줌을 누면 “쉬 했어요.” 하고 똥을 함께 누었으면 “쉬 했어요. 똥 눴어요.” 하고 말한다. 치마 같은 웃겉옷이랑 겉바지를 입혀 달라는 소리를 하나하나 한다. 이리하여, 아빠는 책을 베개 삼아 책을 읽는 아침 말미는 고작 5분 만에 끝낸다. (4344.1.3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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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우리말 착하게 가꾸기 ㉥ 살려쓰면 좋은 우리말 : 숲말


 도시에는 빌딩숲이 있습니다. 빌딩으로 숲을 이루어 빌딩숲입니다. 시골 멧자락은 나무숲이 있습니다. 들판이 있고 나무가 자라기에 시골이에요. 파랗디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우거진 풀숲에 흐드러진 꽃누리가 펼쳐졌기에 시골입니다.

 도시는 사람들로 숲을 이루기도 합니다. 숱한 사람들이 온통 도시로 몰려들기에 도시는 사람숲입니다. 사람물결이요 사람바다이며 사람판입니다. 여기에, 어디를 가든 자동차가 가득하기에 자동차숲이라 할 만합니다. 이제 도시는 새로 솟는 아파트가 나무보다 키가 높은 만큼 아파트숲이기까지 합니다. 빌딩숲에 사람숲에 아파트숲에 자동차숲입니다. 더구나, 도시는 이쪽 길로든 저쪽 길로든 가게가 끊이지 않습니다. 옷가게이든 술가게이든 전화가게이든 가게들이 가득가득합니다. 도시는 가게숲까지 이룹니다.

 길바닥은 아스팔트이거나 시멘트인 도시에서는 흙으로 된 맨땅을 밟기 아주 어렵습니다. 맨땅은 아예 없다 할 만합니다. 그나마 초·중·고등학교 운동장은 흙땅에서 인조잔디땅으로 바뀝니다. 가까스로 흙을 밟을까 싶던 학교 운동장마저 싹 사라집니다.

 숲다운 숲이란 없는 도시이고, 숲에 깃드는 나무나 풀이나 꽃이 없는 도시입니다. 이런 도시에서는 숲과 얽힌 말, 이를테면 풀숲이나 나무숲이나 꽃숲 같은 말은 쓰기 어렵습니다. 아니, 이런 말을 할 일이란 없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며 맨드라미 진달래 찔레꽃을 이야기할 까닭이란 없습니다. 어쩌면, 이 나라 도시에서 할 말이란 돈과 얽힌 말, 이를테면 돈숲·돈바다·돈하늘·돈땅·돈사람·돈일 따위일는지 모릅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는 볍씨나 풀씨나 꽃씨 같은 말을 쓸 일이 없습니다. 도시에서 일하는 기자로서는 풀베기나 나무베기나 벼베기 같은 말을 쓸 자리가 없습니다. 도시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으로서는 종달새나 골짜기나 산들바람 같은 말을 쓸 데가 없습니다.

 밥을 먹어야 살고 물을 마셔야 목숨을 잇는 사람입니다. 숲이 있어 나무가 자라고, 숲에서 온갖 짐승이 함께 어우러져야 사람 또한 살가운 숨결을 사랑할 만합니다. 작은 도시는 큰 도시가 되려 하고, 시골은 작은 도시로 거듭나려 하는 마당이지만, 밥을 아끼고 물을 사랑하며 목숨을 어깨동무하고 싶은 마음으로 숲말을 하나하나 되뇌어 봅니다.


1. 숲길 :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싱그러우면서 푸른 숨을 쉬지 못하기 때문에 따로 숲길을 걸으려고 합니다. 숲이란 나무가 우거져 이루어진 곳입니다. 그런데, 숲길을 걷는 사람들은 숲길을 걸으면서 숲길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수목원(樹木園)’에서 ‘삼림욕(森林浴)’을 한다고 여깁니다. 


2. 산타기 : 숲에서 사는 사람은 숲길을 따로 걸을 까닭이 없고, 논밭에서 구슬땀 흘리는 사람은 논밭에서 싱그러우면서 푸른 숨을 받아먹습니다. 멧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멧자락 기운을 곱게 받아안아요. 따로 ‘등산(登山)’이라는 이름으로 ‘산타기’를 하지 않아도 즐겁습니다. 


3. 멧짐승 : 멧골에는 멧쥐가 멧굴을 파고, 멧토끼가 멧집에 살며, 멧새가 멧노래를 우짖습니다. 다 함께 멧짐승이고 멧삶입니다. 멧사람은 멧골집을 마련하고 멧마을을 이룹니다. 


4. 멧나물 : 들에서 얻어 들나물이고, 멧골에서 얻어 멧나물입니다. 바다에서는 바다나물이 되겠지요. 밭에서는 밭나물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은 일본말 ‘야채(野菜)’에다가, 중국말 ‘채소(菜蔬)’만을 쓰는구나 싶습니다. 우리말 ‘나물’과 ‘남새’와 ‘푸성귀’를 가눌 줄 모릅니다. 사람이 키우면 남새이고, 절로 자랐으면 나물이요, 남새와 나물을 통틀어 푸성귀입니다. 


5. 콩팥 : 우리 식구는 생협(생활협동조합)에서 먹을거리를 즐겨 장만합니다. 그런데 이곳 생협에서도 ‘콩’과 ‘팥’이라는 낱말을 잘 안 써요. 으레 ‘대두(大豆)’랑 ‘적두(赤豆)’라 합니다. 멸치를 말렸으면 마른멸치일 테지만 ‘건(乾)멸치’라 쓰기까지 해요. 하기는, 여느 자리에서도 ‘말린포도’ 아닌 ‘건포도’라고만 하니까요. 


6. 누런쌀 : 모든 쌀은 맨 처음에는 ‘누런쌀’입니다. 씨눈까지 깎아내듯 하얗게 더 깎은 쌀이 되면 ‘흰쌀’입니다. 누르스름하기에 누런쌀이요, 하얗디하얗기에 흰쌀이에요. 


7. 가을걷이 : 가을날 곡식을 거두기에 가을걷이라 일컫습니다. 가을에 잔치를 한다면 가을잔치가 될 테지요. 프로야구판에서 으레 ‘가을잔치’라는 말을 써요. 경기장에서 벌이는 배구나 농구나 핸드볼은 흔히 겨울잔치라 일컫습니다. 겨울날 따스한 실내에서 놀이마당을 마련하니까요. 가을날 가을볕을 받으며 구슬땀을 흘리면 가을바람이 살랑살랑 씻어 주며 가을열매 넉넉히 나눕니다. 


8. 고샅길 : 도시에서는 골목이고, 시골에서는 고샅입니다. 도시에서는 골목이 차츰 자취를 감추고, 시골에서는 고샅이 자꾸 스러집니다. 자동차가 너무 많이 는 탓이며, 아파트를 새로 올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9. 가랑잎 : 팔랑팔랑 하늘하늘 토옥 툭 살살 한들한들 떨어지는 잎이란 가랑잎입니다. 대롱대롱 건들건들 달린 잎이란 나뭇잎입니다. 


10. 큰나무 : 숱한 싸움판을 겪은 우리나라에는 큰나무가 드뭅니다. 아름드리 나무를 좀처럼 만나기 힘듭니다. 시골이라 해서 아름드리 나무가 우거지지 않습니다. 도시에서는 더더욱 아름드리 나무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하더라도 쉰 해나 백 해를 한 자리에서 튼튼히 서도록 하지 않는 우리들입니다. 사람들 삶터 또한 한 곳에서 쉰 해나 백 해 즈음 즐거이 뿌리내리도록 놓아 주지 않는 우리 사회입니다. 큰나무 없는 터에 큰사람이란 없고, 작은나무조차 흔들거리는 두려운 곳에 작은사람 또한 힘을 잃거나 기운을 빼앗깁니다. 


11. 오얏꽃 : 능금나무에는 능금꽃이, 대추나무에는 대추꽃이, 배나무에는 배꽃이 핍니다. 오얏나무에는 오얏꽃이 피겠지요. 이화여자대학교를 굳이 ‘배꽃대학교’로 이름 바꿀 까닭은 없습니다만, ‘배꽃’처럼 어여쁜 이름을 사랑하지 못하는 모습은 슬픕니다. 우리는 ‘오얏꽃’ 예쁜 봉우리 또한 잊거나 잃었습니다. 오얏은 사람 성씨 ‘이(李)’에만 남습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자두 이’ 씨로 써야지 싶습니다. 


12. 물놀이 : 겨울날 얼음판에서 얼음을 지치며 얼음놀이를 합니다. 여름날 물가에서 물을 가르며 물놀이를 합니다. 들에서 들판을 박차며 들놀이를 합니다. 멧자락에서 멧길을 오르내리며 멧놀이를 합니다. 


13. 맹꽁이 : 맹 꽁 맹 꽁 운대서 맹꽁이입니다. 사람은 왜 사람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려나요. 요새는 사람이라는 낱말은 뒤로 밀리고 ‘인간(人間)’이라는 낱말만 흔히 들립니다. 우리는 왜 사람이라 말하지 못하고 인간이라 말하려나요. 까매서 까마귀요 하얘서 해오라기인데, 짐승한테 붙이는 이름과 사람한테 붙이는 이름에는 어떠한 느낌과 빛깔과 마음과 삶과 사랑과 믿음을 담았으려나요. 


14. 함박꽃 : 함박꽃을 보면 말 그대로 함박꽃답구나 하고 느낍니다. 함박눈을 보면 그야말로 함박눈이네 하고 절로 입이 벌어집니다. 입이 함박만 해지며 웃음이 터져나옵니다.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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