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움직인 책들’은 헌책방에서
― 로버트 B.다운즈, 《역사를 움직인 책들》
- 책이름 : 역사를 움직인 책들
- 글 : 로버트 B.다운즈
- 옮긴이 : 김지운
- 펴낸곳 : 삼성문화재단 (1976.2.20)
저녁을 차립니다. 밥이 솔솔 익기 앞서 아이는 배가 고프다 합니다. 아이한테 얼른 무언가 먹을거리를 주어야겠다 싶어, 조금 묵은 능금이랑 미리 삶은 달걀을 송송 썰고 땅콩을 넣어 마요네즈하고 케찹과 조청을 섞으며 비빕니다. 푸성귀가 다 떨어져 푸성귀를 넣지 못해 아쉽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비빈 먹을거리를 아이는 맛나게 먹어 줍니다. 잘 차리지 못한 밥상이더라도 맛나게 먹어 주는 아이를 보면 참으로 고맙습니다.
밥을 먹이고 나서 책을 들추려고 하다가 셈틀을 켭니다. 미처 마무리짓지 못한 글이 있어 마저 쓰려고 했으나, 아이가 아빠 무릎맡에 앉으니, 도무지 글을 쓸 수 없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 놓고 글쓰기를 이으려 하지만 좀처럼 글이 되지 않습니다. 어영부영 하는 동안 글은 아무것도 못 쓰고 무릎은 아프며 아이는 졸립니다. 그렇지만 졸리면서 더 깬 채 놀고자 하고, 아주 곯아떨어지기 앞서까지 이리 뛰고 저리 춤추며 놉니다.
아이는 아이라서 이토록 놀아야 하는가요. 아무래도 아이는 아이인 만큼 이렇게 놀아야겠지요. 어른은 어른이라서 아이처럼 마냥 신나게 못 노는지 모르나, 어른이기 때문이라기보다 스스로 벌인 온갖 일에 매이거나 얽히면서 조금 더 느긋하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오늘 못 다 쓴 글을 꼭 오늘 마무리지을 까닭이 없고, 이듬날이든 이듬달이 되든 그예 마무리짓지 못해도 돼요. 아이처럼 어른도 어디에든 매인 삶이 되지 않을 때에 즐겁습니다. 아이마냥 어른도 콩콩 뛰면서 사뿐사뿐 달릴 때에 기쁩니다. 신나니 노래를 부르고, 재미나니 춤을 춥니다.
아이가 책을 펼칠 때에는, 책에 길이 있기 때문에 펼치지 않습니다. 뛰놀 때에는 뛰놀기가 재미있으니 뛰놀고, 책을 펼칠 때에는 책이 재미있으니 책을 펼칩니다.
책이 아주 훌륭한 마음밥이라서 펼치지 않습니다. 마음밥이 되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기쁘게 펼쳐서 예쁘게 읽어 살가이 받아들이면 좋으니까 책을 펼칩니다.
책이란 어버이가 잔뜩 사 준다 해서 신나게 읽을 수 없습니다. 책이란 어버이가 한 권도 안 사 준다 하더라도 못 읽을 까닭이 없습니다. 집에 책이 멧더미 같아도 안 읽기 마련이고, 집에 책 하나 보이지 않더라도 책을 사랑하는 아이란 많아요.
.. 그는 그의 생각에 기본적으로 중요한 일들, 즉 콩코드의 들판을 소요하고, 직접 자연을 공부하고, 사색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등의 기본적으로 중요한 일들을 하기 위한 한가한 시간을 벌자는데 정열을 태웠다 … 도로(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필요 이상의 모든 것에서 벗어난 간소한 생활관을 예시하기 위해 콩코드 근방에 있는 월든 폰드에서 2년을 보냈다. 그는 거기에다 오두막집을 짓고, 콩과 감자를 심고, 가장 간소한 식량(주로 쌀·옥수수·감자 그리고 당밀)을 먹고 사회생활에서 벗어나 홀로 생활했다. 그것은 사색과 집필에 집중한 시기였으며 이에서 생겨난 것이 미국문학사상 최대작품 중의 하나인 《월든》 혹은 《숲속의 생활》(1854년)이었다 .. (108∼109쪽)
책은 아이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책은 어른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책으로 배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책으로 가르칠 사람도 없습니다.
책은 그저 책입니다. 책에는 이야기가 깃듭니다. 이 이야기는 그저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겪은 이야기이거나 사람들이 생각한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하나도 안 나오는 자연 이야기라 할지라도 자연이 스스로 적바림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이 바라보거나 생각한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누가 누구한테 가르치는 이야기가 아니라, 저마다 다 다른 곳에서 다 다르게 살아온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책을 놓고 사람을 가르치려 합니다. 아예 처음부터 가르치거나 배우는 책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른바 교재이고 참고서입니다. 이를테면 문제집이고 수험서입니다. 여기에 기술서와 처세책이 있습니다. 모두모두 가르치려 듭니다. 모두모두 길들이려 합니다. 모두모두 얽매이게 이끕니다.
인권을 다루는 책이라 할지라도 인권을 가르치지는 못합니다. 그저 인권이 무엇인가 하고 보여줄 뿐입니다. 살아가면서 겪고 치르며 받아들일 인권이지, 책을 읽어 알거나 받아들일 인권이 아니에요. 내가 오늘 이곳에서 마주하는 사람하고 어울리며 북돋우는 인권이지, 머리속으로 헤아린다고 이루어지는 인권이 아니에요.
..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 저자에게 남부 지방으로부터 분노와 否認과 욕설이 마구 쏟아졌다. 신문들이 스토우 여사의 노예제도 묘사에 에러와 허위가 있은 것같이 폭로할 목적으로 소상한 비판의 논평들을 게재했다. 전형적인 논평은 ‘서던 리터러리 메신저’의 선언으로서, 이 책이 “창작의 고매한 기능이 범죄적으로 타락”한 것이며 스토우 여사는 저자로서의 죄책 때문에 “그녀 자신을 보호의 울타리 없이 남부 비판의 수중에 맡겨 버렸다”는 것이었다. 스토우 여사에게 직접 수천 수만 통의 성난 욕지거리 편지들이 날아들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이 처음엔 남부에서 마구 나돌았는데, 신랄한 반응이 나타난 후로는 남부에서 이 책 한 부라도 가지고 있는 것은 위험했다 .. (136∼137쪽)
《역사를 움직인 책들》이라는 자그마한 책을 읽습니다. 여러 차례 읽습니다. 참말 이 작은 책에서 다루는 책들은 온누리 역사를 바꾸거나 움직였다 할 만큼 대단한 책으로 손꼽을 만합니다. 책 하나가 역사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만, 언뜻 보기에 이 책들 때문에 역사가 움직였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러면, 이 책들 때문에 움직였다는 역사는 오늘날 어떤 모습인가요. 앞으로 쉰 해쯤 뒤를 살아갈 뒷사람들이 보기에 2000년대 첫무렵이나 1900년대 끝무렵을 움직였다 싶은 책이란 무엇을 손꼽을 수 있으려나요.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좋겠다고 생각하나요. 우리들은 우리가 살아갈 나날을 우리 스스로 생각하거나 살피거나 찾는가요, 아니면 책을 읽으면서 배우려고 하나요. 우리들은 우리가 사랑할 나날을 우리 스스로 헤아리거나 돌보거나 보듬는가요, 아니면 책을 읽으면서 가르쳐 주려고 하나요.
1976년에 처음 나온 《역사를 움직인 책들》은 헌책방 책시렁에 묻힙니다. 2011년이 되었으나 되살아날 낌새는 없고, 2076년쯤에 누군가 되살려 펴낼는지 퍽 궁금합니다. 역사를 움직인 책들로 손꼽히는 책들은 2011년이나, 또는 2076년쯤에는 어느 만큼 읽히려나 궁금합니다. (4344.1.31.달.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