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담은 그림책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마주보는 나무하고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바라보는 나무는 다릅니다. 나무이기는 똑같은 나무이지만, 나무가 뿌리내려 지내는 터전은 사뭇 다릅니다.

 도시사람이랑 시골사람은 다릅니다. 둘은 사람이라는 테두리에서는 같으나, 지내는 보금자리가 다릅니다. 그러나, 도시사람하고 시골사람이 다르대서 어느 쪽이 더 낫거나 좋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도시에서 자라야 하는 나무하고 시골에서 자라야 하는 나무도, 어느 쪽이 더 낫거나 좋다고 말할 수 없는지 모릅니다.

 도시에서 자라는 나무치고 제 목숨대로 살아갈 수 있는 나무는 없습니다. 한국땅 도시에서 자라야 하는 나무는 백 해를 살아남기도 힘듭니다. 한국사람 살아가는 도시는 끝없이 다시 파헤치거나 무너뜨려 개발하는 일이 되풀이됩니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자는 집짓기만 하기 때문에, 나무 몇 그루쯤이야 돈으로 사서 심으면 그만이라고 여깁니다. 쉰 해를 살았건 이백 해를 살았건, 고운 목숨 하나로 나무를 살피지 않는 도시입니다.

 시골이라 해서 나무가 잘 살아남기에 만만하지 않습니다. 땔감으로 베기도 하지만, 이보다 지난 한국전쟁 때 온통 죽고 말아 벌거숭이가 된 멧자락에 아무 나무나 함부로 심는 바람에 이 나무들은 제 결대로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스스로 씨앗을 흙에 내어 자라난 나무는 많지 않습니다. 나무가 나무다이 살아가기 힘듭니다. 그래도 시골 멧자락에서는 사람들이 이런 뜻으로 심건 저런 까닭으로 심건, 열 해 스무 해 지나면서 저희끼리 씨앗을 내어 천천히 조용히 자랍니다. 사람들이 솎아내기를 하지 않거나 가지치기를 굳이 하지 않는다면, 시골나무는 시골나무 그대로 마음껏 자랍니다.

 도시나무는 걷는 사람한테 걸리적거리거나 오가는 자동차한테 번거로우니까 가지를 자릅니다. 전깃줄에 걸린다느니 건물 창문을 가린다느니 해서 줄기이든 가지이든 뭉텅뭉텅 자릅니다. 숲에서 살아가는 나무도 키가 클수록 줄기가 위쪽으로 올라가기 마련이지만, 시골나무는 키가 크면서 제 스스로 줄기를 위쪽으로 올립니다. 억지로 가지를 잘라내면서 줄기를 위쪽으로 올리지 않습니다. 잎사귀가 햇볕을 더 많이 받아들이려 하니까 위쪽 가지가 아래쪽 가지보다 잎이 우거집니다.

 도시에서는 어린나무를 보기 힘듭니다. 아니, 도시에는 어린나무를 아예 볼 수 없다고 해야겠지요. 시골땅에서 웬만큼 키운 다음 가지치기를 한 젊은나무를 심으니까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무는, 또 도시사람이 ‘나무숲’이라는 수목원을 찾아가서 마주한다는 나무는, 가지가 으레 위쪽에만 남습니다. 어느 나무이든 잔가지가 얼마나 많은데,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나무 잔가지’를 볼 일이 없습니다. 더욱이, 겨울을 난 나무마다 새로 뻗는 가지가 얼마나 많은가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봄이 되기 앞서 도시 공무원들은 ‘가로 정비’라는 이름을 붙여 잔가지며 몸통 아래쪽 가지는 모조리 잘라내거든요.

 그림책에 담기는 나무란, 으레 도시에서 살아가는 그림쟁이가 그림으로 담고, 도시에서 살아가는 책마을 일꾼이 엮어,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들여다보는 그림책 나무입니다. 흙에 씨앗을 떨구어 천천히 뿌리를 내리며 새 목숨을 영차영차 일구는 시골나무가 그림책에 담기는 일이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나무는 흙이 있는 곳에서 살아가지만, 사람은 흙이 없는 곳에서도 살아가는 나머지, 나무와 흙과 햇볕과 바람과 물과 풀과 짐승이 어떻게 얼크러지는가를 도시사람으로서는 헤아리거나 느끼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고 맙니다.

 그래도 ‘나무 이야기 다룬 그림책’이라도 읽어야 도시사람 마음에 푸른 싹이 틉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은 이래저래 어수룩하거나 어설픈 자연 그림책이든 나무 그림책이든 가까이해야, 모자라나마 나무사랑 흙사랑 자연사랑 사람사랑을 조금이나마 맛보거나 생각할 만합니다.

 나무다운 나무를 그리지 못하는 도시사람 그림책이지만, 어찌 되든 나무이기는 나무이지, 하고 말할 수 있으니까, 이런 나무를 그린 그림책이라도 만들고 팔며 사서 읽습니다.

 나무는 그림책이 아니라 멧자락에 있습니다. 나무는 사진책이나 도감이 아니라 시골마을이나 우리 집 자그마한 마당에서 살아숨쉽니다. (4344.2.2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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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필요 : “꼭 필요하다”라 말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한자말 ‘필요’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를 뜻하는 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꼭’과 ‘반드시’는 뜻이 같은 우리말입니다. 그러니까 “꼭 필요한 서류”나 “꼭 필요한 물건”이라 말하면 겹말이 돼요. 한자말로 이야기하고 싶으면 “필요한 서류”라 하고, 우리말로 얘기하고프다면 “꼭 있어야 할 서류”나 “꼭 챙길 서류”라 해야 알맞습니다.

[필요(必要) : 반드시 요구되는 바가 있음]
※ 내 도움이 필요하면
→ 내가 도와야 하면
→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42. 인간 : ‘인간’이라는 한자말은 ‘사람’이라는 우리말을 한자로 나타내는 낱말입니다. 그러나 어느새 이러한 말짜임을 잊고 맙니다. ‘인간’이랑 ‘사람’을 사뭇 다른 자리에 써야 할 낱말로 여겨 버릇해요. 가만히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인간’과 ‘사람’을 영어로 옮긴다면, 또 노르웨이말이나 네덜란드말로 옮긴다면 어떻게 적어야 할까요. 덴마크사람이나 버마사람한테 우리말을 가르친다 할 때에 ‘인간’이랑 ‘사람’을 어떻게 가르쳐 주어야 할까요. “저 인간 좀 보라구.” 같은 대목은 “저 사람 좀 보라구.”로 고쳐쓰면 되지만, 느낌을 달리하자면 “저놈 좀 보라구.”나 “저 녀석 좀 보라구.”나 “저 쓸개빠진 녀석 좀 보라구.”나 “저 머저리 좀 보라구.”처럼 다 다른 낱말을 넣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사람’이라는 우리말을 잊으면서, 사람들 모습과 삶을 나타낼 숱한 말투 또한 잊습니다.

[인간(人間) : 사람]
※ 인간적인 생활
→ 사람다운 삶


43. 행복 : ‘복(福)된’ 일이란 “복을 받아 기쁘고 즐거운” 일을 일컫습니다. ‘행복’이란 곧 ‘즐거운 일’, ‘즐거움’입니다.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이란, 말 그대로 “즐거운 삶”이고, 이를 한자말로 옮길 때에는 “행복한 생활”이 돼요. 말 한 마디 즐겁게 나누고, 생각 한 자락 즐거이 펼칩니다. 글 한 줄 즐겁게 쓰고, 이야기 한 자락 즐거이 주고받습니다.

[행복(幸福) : 복된 좋은 운수]
※ 불행과 행복
→ 슬픔과 기쁨
→ 궂은 일과 좋은 일
※ 행복해 보이다
→ 즐거워 보이다
→ 좋아 보이다
→ 흐뭇해 보이다


44. 상상 : 마음속으로 그리는 일이란 ‘생각’입니다. 마음으로 꾸는 삶이니 ‘생각’해 보는 삶입니다. 예부터 생각하는 사람이라야 산다고 했는데, 생각하는 사람이란 내 삶을 곰곰이 돌아보면서 슬기롭고 알차게 일구려는 사람입니다. 터무니없는 꿈이 아니라, 이루기 힘들더라도 차근차근 이루어 가려는 꿈을 품는 사람이 바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상상(想像) :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그려 봄]
※ 상상 밖의 일
→ 생각 밖 일
→ 생각도 못한 일
→ 생각조차 못할 일
→ 생각을 벗어난 일
→ 생각을 뛰어넘는 일
→ 꿈 같은 일


45. 안녕 : 우리 집 아이를 보는 어른들은 으레 ‘바이바이(bye-bye)’라는 영어를 씁니다. 아이는 이런 인사말이 영어인 줄 모르고 따라합니다. 옆에서 보던 아빠가 못마땅한 나머지 “잘 가셔요.” 하고 말하면 아이는 어느새 “잘 가셔요.”라는 말을 따라합니다. 아이보다 서넛이나 너덧 위 언니 오빠들이 아이를 보며 “안녕.” 하고 인사를 하면 아이도 “안녕.” 하고 따라합니다. 곁에서 지켜보던 아빠가 슬그머니 “또 봐요.” 하고 말하면 아이도 스스럼없이 “또 봐요.” 하며 따라합니다.

[안녕(安寧) : 아무 탈 없이 편안함. 편한 사이에서, 서로 만나거나 헤어질 때 정답게 하는 인사말]
※ 사회의 안녕을 유지하다
→ 사회가 걱정없게끔 지키다
→ 사회에 걱정이 없게끔 지키다
→ 사회가 튼튼하도록 지키다
※ 안녕, 또 만나자
→ 잘 가, 또 만나자
→ 잘 들어가, 또 만나자
→ 살펴 가, 또 만나자


46. 태양 : 하늘에 뜬 해를 놓고는 ‘해’라 하기보다 ‘태양’이라 하면서, 하늘에 걸린 달을 놓고는 딱히 ‘달’ 아닌 다른 이름을 쓰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영어로 ‘썬(sun)’이나 ‘문(moon)’을 말하는 사람이 꽤 늘어납니다. 그나마 ‘썬에너지’라 안 하고 ‘태양에너지’라 하니 고맙다 해야 할는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햇빛과 햇볕조차 제대로 가누어 쓰지 못하기 때문에, ‘햇볕힘’ 같은 말마디를 알뜰히 살피거나 살찌우지 못합니다.

[태양(太陽) : 태양계의 중심이 되는 항성]
※ 태양에너지
→ 햇볕에너지
→ 햇볕힘


47. 최상 : 가장 높으니 “가장 높다”입니다. 가장 낮으니 “가장 낮다”입니다. 가장 나을 때에는 “가장 낫다”에요. 가장 나쁘기에 “가장 나쁘다”입니다.

[최상(最上) : 수준이나 등급 따위의 맨 위]
※ 최상의 선택이다
→ 가장 낫게 고르다
→ 가장 잘 고르다
→ 가장 잘 되다
→ 가장 낫다


48. 완전 : “완전 짱이야.” 같은 말마디를 쉽게 듣습니다. 어린이도 쓰고 푸름이도 쓰며 어른도 씁니다. 누가 먼저 썼는지 모르겠으나, 이러한 말마디를 곰곰이 되짚는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아주 훌륭해.”라든지 “참 좋아.”라든지 “몹시 대단해.”라 말하는 사람은 차츰 사라집니다. “완전히 엄마가 된 기분이네.” 같은 말마디도 쉽게 듣습니다. “아주 엄마가 된 느낌이네.”라든지 “꼭 엄마가 된 듯하네.”라든지 “마치 엄마가 된 듯하네.”라 말하는 사람 또한 나날이 사라집니다. 우리말은 ‘아주’ ‘깡그리’ ‘송두리째’ ‘모조리’ ‘온통’ ‘참말로’ 우리말다움을 잃습니다.

[완전(完全) :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추어져 모자람이나 흠이 없음]
※ 완전히 실망이야
→ 매우 실망했어
→ 아주 미워
→ 너무 안타깝구나
→ 참 안쓰럽구나


49. 가족 : 한자말이라는 테두리에서는 같으나, ‘가족’은 일본사람이 쓰는 낱말이고, ‘식구(食口)’가 한국사람이 쓰는 낱말입니다. 이와 비슷한 얼개로, ‘혼인(婚姻)’과 ‘결혼(結婚)’이 있어요. ‘혼인’이 한국사람 낱말이요, ‘결혼’은 일본사람 낱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삶터를 돌아보면, 한국말인가 일본말인가를 옳게 가르거나 살피지 않습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씁니다. 따지고 보면, 일본말만 아무렇게나 쓰지는 않아요. 영어도 어느 곳에나 거리끼지 않고 써요. 이러면서 우리 스스로 우리말을 옳게 쓰거나 바르게 쓰지는 않습니다. 말을 살리는 넋이나 글을 북돋우는 얼을 생각할 수조차 없이 메마른 우리나라입니다.

[가족(家族) : 부부와 같이 혼인으로 맺어지거나, 부모·자식과 같이 혈연으로 이루어지는 집단]
※ 가족을 부양하다
→ 식구를 먹여살리다
→ 살붙이를 먹여살리다
※ 가족적 분위기이다
→ 따스한 느낌이다
→ 오순도순 좋다


50. 충분 : 말을 제대로 살피면 생각을 한결 깊이 할 수 있습니다. 생각을 한결 깊이 하는 사람은 내 삶을 더욱 차분히 일굽니다. 말사랑벗들은 둘레 어른들이 “밥은 충분히 먹었니?” 하고 묻는 말을 더러 들은 적 있나 궁금합니다. 예전에는 어느 어른이든 “밥은 배불리 먹었니?” 하고만 물었습니다. 지난날 어른들은 일터에서 “돈은 넉넉히 받나?” 하고 얘기했으나, 이제는 “보수(報酬)는 충분히 지급(支給)되나?” 하고 이야기합니다.

[충분(充分) : 모자람이 없이 넉넉함]
※ 이만 하면 충분하니
→ 이만 하면 넉넉하니
→ 이만 하면 되니
→ 이만 하면 괜찮니
※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다
→ 솜씨를 제대로 뽐내다
→ 솜씨를 마음껏 펼치다
→ 솜씨를 실컷 보여주다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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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사고 : “생각하고 궁리(窮理)함”을 뜻한다는 ‘思考’입니다. ‘궁리’란 “마음속으로 이리저리 따져 깊이 생각함”을 가리키는 한자말입니다. 그러니까, 한자말 ‘사고’란 “생각하고 깊이 생각함”을 뜻한다 하겠습니다. 차분히 살피면서 생각한다면, ‘사고’이든 ‘궁리’이든 우리가 쓸 만한 낱말인가 아닌가를 쉽게 헤아릴 만하다고 느낍니다. 차분히 살피지 않을 뿐더러 제대로 생각하지 않으니까 ‘사고’나 ‘궁리’ 같은 한자말이 자꾸 생겨나거나 불거집니다.

[사고(思考) : 생각하고 궁리함]
※ 사고 능력
→ 생각하는 힘
→ 생각힘
※ 논리적으로 사고하다
→ 논리 있게 생각하다
→ 논리에 맞게 살피다
→ 짜임새 있게 헤아리다
→ 곰곰이 곱씹다
→ 빈틈없이 돌아보다
→ 옳고 바르게 톺아보다


32. 양보 : 어릴 적부터 버스를 탈 때에는 어른한테 자리를 ‘양보’하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버스에서 하는 ‘양보’란, “내가 앉은 자리를 내주는” 일이었습니다. ‘양보’라는 한자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지는 못했으나, 왜 이리 어려운 말을 쓰나 하고 고개를 갸웃갸웃했습니다. 손쉽게 “어른한테 자리를 내줍시다”라 말하면 넉넉할 텐데요.

[양보(讓步) : 길이나 자리, 물건 따위를 사양하여 남에게 미루어 줌. 자기의 주장을 굽혀 남의 의견을 좇음. 남을 위하여 자신의 이익을 희생함]
※ 양보의 미덕
→ 양보하는 아름다움
→ 베푸는 아름다움
※ 한 치의 양보가 없다
→ 조금도 물러서지 않다
→ 흔들리지 않고 맞서다
※ 양보하는 삶
→ 몸바치는 삶
→ 나를 바치는 삶


33. 고민 : 애를 태우는 일이란 속을 태우는 일입니다. 속을 태우는 일이란 ‘걱정’입니다. 우리말은 ‘걱정’이고, 한자말은 ‘苦悶’이에요. 걱정하기 때문에 마음이나 몸이나 괴롭습니다. 마음도 몸도 고단합니다. 고달프거나 고되어요. 힘들거나 힘차거나 벅찹니다. 힘겹거나 버거워요. 걱정하기에 근심스럽고, 근심스러우니까 마음이 아픕니다. 마음앓이까지 합니다.

[고민(苦悶) :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고 애를 태움]
※ 생활비 때문에 고민이다
→ 살림돈 때문에 괴롭다
→ 먹고살 돈 때문에 걱정스럽다


34. 대화 : 요즈음도 학교에 ‘상담실(相談室)’이 있나 모르겠습니다. ‘상담실’이란 상담을 하는 방이고, 상담이란 “문제를 풀려고 의논(議論)을 하는” 일입니다. ‘의논’이란 “의견(意見)을 주고받는” 일이며, ‘의견’이란 “생각”을 뜻해요. 그러니까, ‘상담실’은 “생각을 나누는 방”이에요. 생각을 나누는 일이란 바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 곧 ‘이야기 나눔’입니다.

[대화(對話) :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
※ 대통령과의 대화
→ 대통령과 이야기하기
→ 대통령하고 얘기하기
→ 대통령과 얘기 나누기
→ 대통령하고 이야기꽃
→ 대통령과 도란도란 얘기꽃


35. 질문 : 예부터 궁금하거나 모르는 이야기를 ‘물’었습니다. 또래나 동생이나 손아래인 사람한테는 ‘물’었고, 손위인 사람이나 어른한테는 ‘여쭈’었어요. 학교에서 학생이 교사한테 무엇이 궁금하다고 말할 때에는 ‘여쭌다’고 해야 올바릅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묻’는 사람도 ‘여쭈’는 사람도 없습니다. ‘質問’을 하거나 ‘質疑’를 합니다. 말하거나 이야기해 주는 사람 또한 없이 ‘對答’과 ‘應答’만 합니다.

[질문(質問) : 모르거나 의심나는 점을 물음]
※ 질문을 던지다
→ 묻다
→ 여쭈다


37. 부유 : 돈이 많다고 해서 꼭 잘사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돈이 많아야 잘사는 사람으로 여겨요. 더욱이, 돈이 없으면 하나도 넉넉하지 않은 살림으로 여기고요. 그렇지만, 돈이 있을 때에는 말 그대로 ‘돈있는’ 삶입니다. 돈이 없으면 ‘돈없는’ 삶이에요. 그리고, 돈이 퍽 많을 때에는 ‘가멸다’라 가리키고, 돈이 무척 많을 때에는 ‘가멸차다’라 가리킵니다. 돈이 없을 때에는 ‘가난하다’고 합니다.

[부유(富裕) : 재물이 넉넉함]
※ 부유한 가정
→ 넉넉한 집안
→ 가멸찬 집
→ 잘사는 집


38. 항상 : 누구나 ‘항상’과 같은 한자말을 얼마든지 쓸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한자말을 쓸 때에는 “내가 한자말을 쓴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영어를 쓰고 싶다면, 쓰고픈 사람 마음대로 쓰되, “난 영어를 쓴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어떠한 말을 쓰는가 살피지 않고 이 말 저 말 섞을 때에는 나 스스로 내 넋을 옳게 다스리지 못하기도 하고, 내 둘레에서 내 말을 듣는 사람 넋을 어지럽히는 일이 됩니다. “언제나 변함없이”를 뜻한다는 ‘항상’인데, ‘변(變)함없다’는 “달라지지 않고 항상 같다”를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말풀이는 “언제나 항상 같다” 꼴이 되어요. 얄궂게 겹말이 된 말풀이입니다.

[항상(恒常) : 언제나 변함없이]
※ 항상 독서를 한다
→ 늘 책을 읽는다
→ 언제나 책을 읽는다
→ 노상 책을 읽는다


39. 미소 : ‘미소’는 그냥 한자말이 아닌 ‘일본 한자말’인 줄 아는 사람이 많고, 우리가 안 써야 좋은 낱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낱말 쓰임새는 수그러들지 않아요. 우리는 왜 알맞고 살가우며 곱게 말을 하거나 글을 쓰지 못할까요. 말사랑벗은 어떠한 낱말로 웃음과 기쁨과 아름다움을 나타내야 좋을까요.

[미소(微笑) : 소리 없이 빙긋이 웃음]
※ 미소를 짓다
→ 웃음을 짓다
→ 웃음짓다
→ 빙긋 웃다


40. 간단 : 저도 말사랑벗 나이일 때에는 ‘간단’ 같은 한자말은 한자말로 여기지 않고 손쉽게 썼습니다. 나중에 국어사전을 뒤적이고서야 이런 낱말을 굳이 쓸 까닭이 없다고 깨달았어요. ‘간단’을 “단순하고 간략함”으로 풀이하는데, ‘단순(單純)’은 “복잡하지 않고 간단함”이라 합니다. ‘간략(簡略)’은 “간단하고 짤막함”이라 해요. 그러니까, “간단 = 간단하고 간단함”이란 셈이에요. 우리나라 국어사전이 참 엉망진창이지요? ‘간단’이라는 한자말을 넣은 글월을 손보기란 어려울 수 있으나, 가만히 생각하면 퍽 수월합니다. “간단한 문제”란 “쉬운 문제”입니다. “간단한 옷차림”이란 “가벼운 옷차림”이에요. “간단한 구조”는 “수수한 얼개”나 “성긴 짜임새”예요.

[간단(簡單) : 단순하고 간략함
※ 간단한 조사를 하다
→ 가볍게 살피다
→ 몇 가지를 살펴보다
→ 얼추 알아보다
→ 조금 헤아리다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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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전설
라이너 침닉 지음, 장혜경 옮김 / 큰나무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나무를 심어 함께 살아가는 사람은
 [책읽기 삶읽기 44] 라이너 침닉, 《나무의 전설》


 《나무의 전설》을 쓴 독일사람 라이너 침닉 님은 “나무는 비밀도 털어놓는다. 우리가 나무와 하나라고 느끼고 있다고 가르쳐만 준다면 말이다(9쪽)” 하고 말하면서 책머리를 엽니다. 더없이 마땅한 이야기인데, 독일사람이고 한국사람이고 언제나 이 말마디를 잊습니다. 예전에는 잊었고, 이제는 아예 모르며, 앞으로는 아무도 떠올리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독일사람 라이너 침닉 님은 《나무의 전설》 책머리에서 “독일인의 정서는 예부터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보다는 숲 전체를 더 좋아하였고, 그마저 그것의 이용가치가 먼저였다. 최근에 와서야 그런 태도들이 변하였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미 국법이 정한 경제정리와 무리할 정도로 심해진 이윤적 사고로 인해 농촌의 풍경은 모조리 망가져 버렸고, 마지막 남은 얼마 안 되는 풍경마저 환경공해로 인해 갉아먹힌 지 오래다(6쪽).” 하고도 이야기합니다. 따지고 보면, 한국사람도 독일사람하고 크게 안 다르구나 싶으며, 이 나라 사회도 독일 사회하고 엇비슷하구나 싶습니다. 나무를 아끼거나 숲을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보기란 몹시 어렵습니다. 나무 한 그루가 얼마나 훌륭한가를 말하면서 환경사랑을 외치던 ㅊ이라는 ‘숲탐방 이야기꾼’은 ‘4대강 사업 홍보본부장’으로 탈바꿈하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환경정책은 ‘사람한테 돈이 될 만하느냐 안 될 만하느냐’에서 오락가락합니다.


.. 세월은 흐르고 또 흘렀다. 그 일을 겪었던 목동은 오래 전에 이 세상을 떠났고, 비바람에 썩은 안내판은 폭풍에 날려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그래서 산 아래 계곡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날의 기적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였다 … 남편은 아내에게 온갖 선물을 퍼부었고 아내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였지만 재물 못지않게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마음의 평화를 아내에게 선사해 줄 수는 없었다 ..  (26, 55쪽)


 우리한테 돈이 없다면 아이들한테 과자 한 봉지 사 줄 수 없습니다. 우리한테 돈이 있기에 식구들하고 맛나다는 바깥밥을 사서 먹습니다. 우리한테 돈이 없을 때에는 따스한 집 한 채 달삯으로든 전세로든 얻지 못합니다. 우리한테 돈이 있으니까 책을 사서 읽거나 영화관에 가서 느긋하게 한두 시간 즐깁니다.

 우리는 돈을 벌어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 삶’을 다룬 책 하나 사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우리는 돈을 안 벌어도 ‘나무 한 그루에서 내놓은 씨앗 하나를 땅에 알뜰히 심은 뒤 나무씨앗이 천천히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 줄기를 올리는 기나긴 해를 곁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나무를 사랑하는 내 삶을 일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바지런히 회사일을 하든 무슨 일을 해서 은행계좌에 차곡차곡 돈을 쌓은 다음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습니다. 힘껏 돈을 번 만큼 늘그막에 나라밖 여행을 다니든 전원주택을 장만하든 하면서 한갓지게 삶마무리를 지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라도 돈벌이보다 내 오늘 하루를 알차게 가꾸면서 즐기는 데에 온삶을 바칠 수 있습니다. 아이한테 물려줄 돈은 한 푼조차 없지만, 아이 마음밭에 ‘내 어머니랑 아버지랑 즐겁게 손 잡고 논 생각과 느낌’을 아로새길 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부르는 노래와 아버지가 그림책을 읽는 목소리를 아이 마음에 곱게 깃들일 수 있습니다.

 돈을 꽤 벌어들인다면 멋지고 빠른 자동차를 장만해서 이 나라 구석구석 골골샅샅 누비면서 ‘아이야, 애써 나라밖으로 나가지 않더라도 이 나라에서 아름다운 사람과 터전과 자연을 두루 만날 수 있단다’ 하고 알려줄 수 있습니다. 돈이 없는 가난한 살림이니까, 자전거 뒷자리에 아이를 태우고 다닌다든지, 또는 함께 손을 맞잡고 길을 거닐면서, 도시에서는 골목길을 느끼고 시골에서는 숲길이나 논둑길을 맞아들이면서 ‘아이야, 천천히 길을 걸으니까 우리는 오붓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마을사람하고 사귀며 다리가 아플 때에는 햇볕 좋은 데에서 나란히 드러누워 파란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단다’ 하고 속삭일 수 있습니다.


.. 대장장이의 바람도 헛되이 전쟁이 터지고 말았다.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은 대장장이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다. 아무도 대장장이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겐 이제 그와 같은 수만 명의 사람들과 함께 거대한 살육의 현장으로 끌려가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  (69쪽)


 이야기책 《나무의 전설》은 열두 달에 걸쳐 열두 가지 나무하고 부대낀 사람들 이야기를 수수하게 들려줍니다. 잘나지 않으나 못나지 않은, 대단하지 않으나 대수롭지 않다 할 수 없는, 그럴싸하지 않지만 하잘것없지 않은, 이냥저냥 오순도순 옹기종기 도란도란 어울리는 이야기를 가만히 보여줍니다.

 책이름은 “나무의 전설”이라지만, 한 꼭지 두 꼭지 찬찬히 읽다 보면, “나무에 얽힌 옛이야기”이거나 “나무하고 얽힌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멀디먼 옛날 옛적 이야기라기보다 오래도록 우뚝 서서 우리 곁에서 오백 해이고 즈믄 해이고 살아가는 키큰나무들마다 가슴에 살뜰히 담았던 “나무가 살아온 이야기”입니다.

 우리 보금자리 곁에 은행나무가 있으면 은행나무하고 얽힌 이야기가 있을 테고, 우리 살림집 둘레에 살구나무가 있으면 살구나무하고 맺은 이야기가 있을 테지요.

 저는 고향마을 인천 골목동네에서 살던 때, 날마다 골목마실을 아이와 함께 즐기면서 포도나무 감나무 배나무 능금나무 오얏나무 복숭아나무 매화나무 벚나무 석류나무 앵두나무 모과나무 호두나무 밤나무 대추나무 탱자나무 들을 만났습니다. 어쩌면 집집마다 이토록 갖가지 다른 열매나무를 심었는가 싶어 놀라고, 아이한테 이런 나무 저런 나무를 보여주고 잎사귀를 만지라고 번쩍 들며 놀았습니다.

 나무전봇대보다 높이 자란 오동나무 오동꽃 흩날리는 밑에서 아이하고 춤을 추고, 감나무 밑에서 까치밥을 쪼아먹는 직박구리를 올려다보았습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이 숱한 나무들을 심은 골목이웃은 저마다 다 다른 꿈과 뜻과 넋을 나무 한 그루에 심었겠지요. 골목이웃이 조그마한 골목집에 처음 깃들던 때 가난한 살림이면서도 나무 한 그루를 심어 스무 해 서른 해를 돌보았고, 마흔 해를 웃도는 나무들은 어느새 골목집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새 아이를 낳는 모습까지 바라보겠지요. 이 나무들은 ‘아파트로 재개발’하는 공무원과 건설업자 돈벌이에 따라 하루아침에 싹둑싹둑 베어지겠지만, 이 나무를 심었고 이 나무와 함께 살았던 사람들 마음자리 한켠에는 해마다 마주하던 나무꽃과 나무열매 맛·내음·빛깔·무늬가 살며시 스몄으리라 생각합니다. (4344.2.26.흙.ㅎㄲㅅㄱ)


― 나무의 전설 (라이너 침닉 글·그림,장혜경 옮김,큰나무 펴냄,2007.4.5./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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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52 : 사람이 쓰는 책


 《일본 만화 현대사》(요시히로 코스케 씀,융성출판사 펴냄,1998)라는 자그마한 책이 있습니다. 만화를 좋아할 뿐 아니라 일본만화를 꽤 읽는다 하더라도 쉽게 읽기 힘든 책이니까 이런 책이 있는 줄 아는 분은 드뭅니다. ‘한국 현대사’조차 잘 모르거나 잘 안 살피는 흐름을 생각한다면, 한국 현대사조차 아닌 일본 만화 현대사 같은 책을 애써 찾아 읽으려는 사람이란 드물 수밖에 없겠지요. ‘한국 만화 현대사’ 같은 책조차 한국사람은 안 읽을 테지만, 이런 책은 아직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일본 만화 현대사》를 내놓은 출판사는 안 팔릴 줄 뻔히 알면서도 이런 책을 기꺼이 옮긴 셈입니다. 틀림없이 이 작은 책 하나를 읽으며 우리들이 배우거나 살피거나 느낄 대목이 있으니 냈겠지요.

 이 책을 읽는다 해서 일본만화가 걸어온 발자취를 짚을 수 있지는 않습니다. 일본은 만화밭이 어마어마하게 크거나 넓기 때문에 조그마한 책 하나로 일본만화를 밝힐 수 없습니다. 만화쟁이 한 사람이 걸은 길만 살펴도 두툼한 책 하나가 될 만하거나 넘치거든요. 얇은 책 하나로 일본만화를 다루려 한다면 아주 깊게 파헤쳐 두루 살피는 눈썰미여야 합니다.

 얇은 만큼 금세 책을 읽고 덮습니다. 그리 잘 쓴 책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글쓴이가 남자이다 보니 ‘남자 어린이’가 ‘남자 어른’이 되는 동안 좋아한 만화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신문사 기자입니다. 기자라서 글을 못 쓰란 법이 없으나, 기자는 여느 사람들처럼 글을 홀가분하게 쓰지 못합니다. 기자 또한 스스로 사랑하는 사람과 삶과 만화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만, ‘신문 독자한테 많이 읽힐 글’에 매이기 일쑤입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가 책방에서 만나는 책은 으레 교수·기자·학자·전문가·비평가·작가·교사·유명인사·정치꾼·연예인 들이기 일쑤입니다. 지식과 정보를 쌓아 돈을 벌거나 일자리를 얻는 사람들이 쓴 책이 책방을 뒤덮습니다. 집에서 살림하는 여자 손에서 태어난 책·농사짓거나 기계를 만지는 일꾼 손에서 태어난 책·어린이나 할머니 손에서 태어난 책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습니다. 수수한 사람들이 쓰는 수수한 책은 싹틀 땅이 없습니다. 작은 사람이 쓰는 작은 책은 뿌리내릴 터전이 없습니다. 지식 있는 사람들이 지식을 다루는 책이 넘칩니다. 정보를 쌓은 사람들이 정보를 가득 담은 책이 쏟아집니다. 삶을 아끼는 책이나 사람을 사랑하는 책이나 살림을 어여삐 꾸리는 사람이나 흙을 알뜰히 일구는 사람이나 아이를 애틋이 돌보는 할머니 같은 사람이 쓰는 책을 마주하기 매우 힘듭니다.

 글쓴이 이름을 돋보이려는 책은 많습니다. 글쓴이 지식과 정보를 선보이려는 책 또한 많습니다. ‘일본 만화 현대사’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자 기대(30쪽)”를 나누려 하던 데즈카 오사무 님 넋이 튼튼한 뿌리가 되어 이루어졌다는데, 한국땅 책마을과 사람마을이란, 책터와 살림터란, 얼마나 사랑어린 꿈이나 아름다운 빛줄기가 감도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4344.2.2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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