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말(인터넷말) 63] 북스, 신간, 도서, 책

 누리신문에서 ‘책’을 다루는 자리를 보면 ‘책’이라 말하는 곳보다 영어로 ‘북’이나 ‘북스’라 쓰기 일쑤입니다. 그러면, ‘문화’라고도 적지 말고 영어로 ‘컬쳐’라 적고, ‘문화인물’이라 하지 말고 ‘컬쳐피플’이라고 할 노릇입니다. ‘언론’이라 안 하고 ‘미디어’라 적었으니까요. 그런데 ‘북스’라는 자리에 들어가면, ‘북스뉴스’부터 ‘이주의 신간’이나 ‘추천도서’나 ‘집중분석 이책’이라는 이름이 보입니다. 무엇을 하겠다는 차림판일까요. 이렇게도 쓰고 저렇게도 쓰면서 말놀이를 하겠다는 뜻일까요. 책은 책이 아니라는 소리인가요. 뒤죽박죽 얼기설기 얼렁뚱땅입니다. (4344.4.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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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52] 긴치마

 아이 어머니가 뜨개질로 아이 입을 치마를 떠 줍니다. 길다 싶은 치마로 뜨지 않았을 테지만 아직 아이한테는 퍽 깁니다. 아이는 긴치마를 입고는 즐겁게 뜁니다. 할머니·할아버지가 한복을 사 줄 때에 치맛자락이 자꾸 발에 밟히니 손으로 치맛자락을 살짝 잡고 걷거나 뛰라 말했더니, 아이는 이 말을 곧바로 알아듣고는 긴치마를 입고 다닐 때에는 으레 치맛자락을 잡고 움직입니다. 치마라면 다 좋으니까 긴치마이며 짧은치마이며 깡똥치마이며 다 좋아합니다. 아버지가 웃도리를 입으면 웃도리를 보고도 치마라 말하며 두 손으로 꼭 잡고는 밑으로 죽 내리려고 합니다. 아침에 문득 어느 한국어사전 하나를 펼치다가 ‘롱스커트’라는 낱말이 실렸기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생각해 봅니다. 한국어사전이라 하지만 ‘롱스커트’와 ‘미니스커트’ 같은 영어는 실으면서 막상 ‘짧은치마’ 같은 한국말은 안 싣습니다. 아이를 바라보면서 아이가 입은 치마가 길면 ‘긴치마’라 말하고, 아이가 입은 치마가 짧으면 ‘짧은치마’라 말하지만, 이런 치마 하나조차 한국말로 옳게 밝히며 적기가 힘들구나 싶습니다. 바지도 그래요. 아니, 바지는 아예 ‘긴바지’도 ‘짧은바지’도 한국어사전에 못 실립니다. (4344.4.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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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기는 힘들지만


 도시에서 살던 때에는 달삯을 벌어들이느라 그야말로 죽기살기로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스무 살부터 내 삶길을 글쓰기와 사진찍기로 맞추면서 살았다 하더라도 도시에서 글을 써서 돈을 벌기란 몹시 벅차다. 더더구나 나처럼 돈이 되는 글이 아니라 돈이 안 되는 글, 이른바 ‘우리 말 이야기’랑 ‘헌책방 이야기’를 즐겨쓰는 사람이 무슨 글삯을 벌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용하게 굶어죽지 않고 어찌저찌 버티었다. 힘들 때마다 형이 살림돈을 도와주었으니까 버티었다 할 텐데, 날마다 수없이 글을 써대려면 밑천이 있어야 하기에 날마다 이모저모 책읽기에도 여러모로 마음을 많이 썼다.

 시골집으로 옮기고부터는 도시에서처럼 죽기살기로 글을 쓰지 않는다. 다만, 시골집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용솟음치는 글을 쓴다. 그나마, 샘솟는 글을 모두 쓴다거나 어느 만큼 후련하게 쓰지는 못한다. 글을 좀 쓰고 싶어도 아이하고 복닥여야 하고, 집일을 해야 하며, 밥을 차려야 하는데다가, 요사이는 시골집 깃든 둘레에 있는 이오덕학교에서 날마다 한 시간씩 책이야기 공부를 함께해야 하기 때문에 글조각을 붙잡을 겨를이 거의 없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책을 읽지 않는다면 글을 쓰기란 참 힘들다 할 만하다. 글을 쓰는 주제에 책조차 안 읽는다면 무슨 글을 쓴다 하겠는가.

 요즈음, 나는 책을 참 못 읽는다. 그래도 오늘날 여느 사람들과 견주면 꽤 많이 읽는다 할는지 모르지만, 종이책 몇 쪽 넘기기조차 몹시 버겁다. 요 며칠은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 읽어 주기도 제대로 못한다.

 등허리가 몹시 쑤셔서 자리에 털썩 드러누운 채 두 눈이 감기기 앞서 몇 가지 책을 넘겨 보곤 했다. 이 가운데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안목,2011)는 꽤 잘 읽혔다. 예전에 처음 나올 때(2005년)에 진작 읽은 책이니 다시 읽어도 잘 읽힌다 할 터이나, 다시 읽으면서도 새로 읽는 느낌이었고, 필립 퍼키스 님 글책은 여러 차례 되읽어도 늘 새삼스럽게 기쁘다.

 생각해 보면, 일이 쌓이고 몸이 힘들기 때문에 이 책 저 책 자질구레하다 싶은 책까지 못 들춘달 수 있다. 참으로 읽어야 할 책을 더 깊이 읽는다 할 만하고, 참말로 아름답구나 싶은 책을 아름답구나 하고 느끼면서 읽는다 할 테지.

 저녁나절, 아이는 제 엄마한테 “빨강머리 보고 싶어.” 하면서 만화영화 〈빨간머리 앤〉을 또 보았다. 같은 이야기를 언제나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다시 보는데, 오늘 본 〈빨간머리 앤〉에는 앤이 후두염에 걸린 미니메이를 돌보는 이야기가 흐른다. 빨간머리 앤은 미니메이가 살아난 뒤에 후유 한숨을 돌리면서 마릴라 아주머니한테 ‘세 쌍둥이를 건사하던 일을 겪지 않았다면 미니메이를 보살필 수 없었으리라’ 하고 말하면서, 지난 괴로운 일을 나쁘게만 돌아보지 않겠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래, 앤은 얼마나 학교를 다니고 싶었으며, 공부를 하고 싶었겠나. 그러나 앤은 학교도 못 다니고 공부도 못하며 어머니나 아버지 사랑 또한 받지 못했어. 그런데 이렇게 몸으로 부대끼며 살아낸 나날이 있어서, 좋은 삶동무 다이애나를 사귀고 다이애나 동생인 미니메이를 보살필 슬기를 몸으로 아로새기듯 얻었겠지. 책이란 종이책만 책이라 하겠나. 몸뚱아리 책도 책이고 설거지 책도 책이며 빨래하기 책도 책일 테지. 책을 읽기는 힘들지만, 용케 책하고 함께 살아가는 나날을 그럭저럭 버티며 오늘 하루도 마감하며 이제 슬슬 자리에 누워야겠다. (4344.4.1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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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쑥부침개와 책읽기


 옆지기 귀빠진날을 맞이했다.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어제부터 곰곰이 생각했다. 귀빠진날이 닥치고 나서 생각한대서야 무얼 달리 뾰족히 할 만할 수 없겠구나 싶은데, 요 몇 해 사이 무슨 일을 하든 하나하나 차근차근 내다보면서 헤아린 일이란 거의 없지 않느냐 떠올린다. 미리미리 살피거나 보듬지 못하기 일쑤라고 느낀다. 숱한 집일이 밀려드니까, 이 집일을 껴안기만 하더라도 다른 일은 하나도 할 수 없다. 새벽과 밤에 잠을 쪼개어 글조각을 붙잡는데, 졸립거나 고단한 몸을 버티며 글조각을 붙잡는 일이란 퍽 부질없거나 덧없는지 모른다.

 옆지기 귀빠진날인 오늘은 새벽 여섯 시 이십삼 분에 일어난다. 요즈음 새벽에 꽤 늦게 일어난다. 새벽 서너 시쯤에 일어나서 일손을 붙잡아야 그럭저럭 글조각 보듬기를 할 만한데, 새벽 여섯 시라면 너무 늦다. 이때에 일어나면 거의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아침 일곱 시부터는 아침밥을 차리느라 부산을 떨어야 하니까. 일곱 시 이십 분이나 삼십 분 즈음에 쌀을 씻어 불리고, 아침에 끓일 국을 무엇으로 할는지 생각한다. 미역국이나 다시마를 넣은 국이라면 미역이나 다시마를 미리 손으로 끊어서 불려야 한다. 다른 국 또한 이무렵부터 국거리를 손질한다.

 아이는 오늘 따라 아홉 시 반 즈음에 일어난다. 요 몇 달 사이, 다른 날에는 아침 일곱 시 반이나 여덟 시에 어김없이 일어났는데, 하도 신나게 뛰놀다 보니 오늘만큼은 꽤 많이 고단했나 보다. 열 시가 가까워 일어났는데에도 아침밥이자 낮밥을 먹을 무렵부터 눈가에 졸음이 꽤 쌓인 모습이다.

 느즈막하게 일어난 아이를 데리고 비탈논으로 간다. 우리가 짓는 비탈논은 아니고, 웃마을 이오덕학교에서 짓는 비탈논이다. 이 비탈논 둑자리를 따라 송송 돋는 쑥을 뜯는다. 아이는 처음에 몇 차례 아버지 흉내를 내어 쑥을 뜯어 보더니, 이내 논둑이며 논바닥이며 뛰어다니며 노래를 부른다. 신나게 잘 논다.

 저녁밥을 차리려고 또 한 번 아이를 데리고 논둑으로 나온다. 아이는 아이대로 마음대로 노래하면서 뛰놀고, 아버지는 바지런히 쑥을 뜯는다.

 내가 옆지기한테 해 줄 만한 선물이란 무엇일까. 없는 돈으로 무엇을 해 줄 수는 없다. 무언가 먹고프다 한다면 자전거를 몰고 읍내로 달려가서 장만한 다음 낑낑대며 돌아올 수 있겠지. 지난 한 해 동안 튀김닭 한 번 피자 세 번 자전거배달을 했다. 이 멧골자락까지 날라다 주는 곳은 없으니까.

 오늘은 아침과 저녁으로 쑥부침개를 해 본다. 아침에 마련한 쑥부침개에는 밀가루가 좀 많이 들어간 듯해서 저녁에 하는 쑥부침개에는 밀가루보다 쑥을 훨씬 많이 넣는다. 아침보다 곱절을 더 뜯은 쑥으로 부침개를 해 보았다.

 따지고 보면, 저녁에는 쑥부침개라기보다 쑥버무리튀김에 가깝다. 조금 더 바삭하게 되도록 해야 할 텐데, 아직 잘 안 된다. 불을 꽤 작게 해서 스텐팬으로 했는데, 불을 이보다 훨씬 작게 하고 기름을 더 적게 둘러서 해야 할까. 불크기는 알맞은데 기름을 살짝 더 둘러 볼까.

 인천 골목동네에서 살다가 멧골자락 작은 집으로 옮긴 우리들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라면 봄에는 봄내음이 물씬 나는 밥상을 차리는 데에 있지 않을까 살짝 생각해 보았다. 나는 아직 나물을 잘 모른다. 하나씩 배워야 할 텐데, 책으로는 배울 수 없을 듯하다. 이 풀 저 풀 뜯어서 먹으며 몸으로 배워야 하겠지. 망초도 어찌저찌 먹어 보려 하다가, 텃밭을 고르며 하도 많이 나와서 망초를 데치거나 볶거나 어찌저찌 해서 먹어 보려던 마음이 싹 가셨다. 사람들이 왜 망초를 잘 안 먹는지 알 만하다고 느꼈다. 이렇게 질리게 금세 돋아나며 텃밭을 뒤덮으니까, 이 망초를 솎아내자고 얼마나 고달프겠나. 따지고 보면 쑥도 금세 퍼져서 돋곤 하는데, 쑥은 사람한테 향긋한 냄새이면서 봄맛을 돋우기 때문에 그닥 안 싫어할까. 그러나 텃밭 풀을 뽑고 흙을 갈아엎을 때에는 나 또한 쑥이고 뭐고 가리기 힘들더라. 꽃다지이건 뭐건 하나하나 따로 갈무리하기 벅차더라. 참말 손바닥만 한 텃밭을 갈면서.

 쑥부침개를 아침과 저녁으로 내리 하면서, 국에도 쑥을 꽤 넣어 본다. 국을 마시며 가만히 코를 킁킁거리면 쑥내가 난다. 이 쑥을 앞으로 며칠 더 즐길 수 있을는지, 또는 4월 내내 쑥을 즐길 만한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밥에도 쑥을 넣어 쑥밥을 해 볼 수 있을까. 옆지기한테 한 번 물어 보고 나서 쑥밥을 해 보고 싶다. 뜯을 사람도 적고 먹을 사람도 적으니, 온 논둑과 밭둑 쑥은 도맡아서 뜯고 도맡아서 밥거리로 마련한다. 쑥떡까지는 못할 듯싶지만, 쑥밥은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쑥부침개는 옆지기한테 어줍잖게 내민 선물이라면, 쑥밥은 나한테 남우세스레 내미는 선물이 될까. 그러면 아이한테는 어떤 쑥을 내밀어 주면 좋으려나. (4344.4.13.물.ㅎㄲㅅㄱ)
 

 

아침이자 낮밥...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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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리 부는 딸


 어버이 되는 사람은 제 아이가 무언가 더 배울 수 있기를 바라면서 학교에 넣는다. 그러나 오늘날 이 나라 학교는 무언가 더 배울 수 없도록 짜맞추어지고 만다. 왜냐하면, 오늘날 한국땅 학교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온통 ‘대학입시 싸움터’로 바뀌었으니까. 이런 학교에 아이를 보낸대서 아이가 무언가 더 배울 수 있지 않다.

 어버이 되는 사람은 예나 이제나 슬기롭지 않으면 안 된다. 어버이 되는 사람부터 슬기로와야 아이가 슬기로움을 물려받는다. 어버이 되는 사람이 일에 바쁘면 아이는 사랑을 받지 못한다. 아이 또한 제 어버이와 마찬가지로 일에 바쁜 어른으로 자라겠지.

 어버이 되는 사람은 제 아이뿐 아니라 제 동무나 제 어버이, 곧 아이한테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되는 사람한테까지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 어버이가 아이 할머니나 할아버지한테 옳게 하지 못한다면, 아이가 커서 제 아이(나한테는 손주)를 낳는다면, 나는 내 아이나 내 아이가 낳은 아이한테도 사랑받을 수 없다.

 어버이 되는 사람은 아이하고 하루 내내 복닥이다 보면 할 일조차 못한다 여길 만하고 몸이 따르지 못하니까 힘에 부치곤 한다. 어버이 되는 사람이기 앞서 ‘어엿하게 홀로선 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아이키우기는 훌훌 털듯 잊으며 내 꿈을 펼친다고 외치’며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학원이나 학교나 시설에 넣곤 한다. 이렇게 해야 ‘어버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제 겨를을 즐기거나 누릴 수 있을 테니까.

 어버이 되는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아이랑 스물네 시간을 붙어 지내는 나날이 얼마나 고된지 모른다. 참으로 고되다. 그러나 이렇게 고된 나날이기 때문에 아이한테 아무것이나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함부로 할 수 없는데다가 아무 말이나 할 수 없으며 아무 짓이나 할 수 없다. 아이는 내 고운 사랑이면서 내 착한 지킴이가 되고 내 살가운 돌봄이이자 길동무가 된다.

 돈이 있다면 돈으로 집일을 누군가한테 맡길 수 있다. 돈이 있으면서도 집일과 집살림을 거뜬히 치를 수 있다. 돈이 없으면 집일을 누군가한테 맡길 수 없을 뿐더러 집살림을 함께 알뜰히 치르도록 더욱 마음을 쏟아야 한다.

 아침부터 내내 아이하고 복닥이듯 지내다가 저녁밥을 차려 먹이고 나서 아이를 씻긴다. 아이를 씻기고 나서 아버지 등허리 좀 펴자며 살짝 쉬자니, 아이는 아버지 뒤에서 피리를 불며 논다. 고맙구나. 네가 이렇게 살짝이나마 혼자서 놀아 주니, 이동안 아버지는 자리에 드러누워 등허리를 펴든 셈틀을 켜고 글조각을 조금 끄적이든 할 수 있구나.

 4월 13일을 맞이한다. 오늘은 옆지기 태어난 날이다. 생일 잔치밥으로 무엇을 차리면 좋을까를 곰곰이 생각한다. (4344.4.1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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