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 부는 딸


 어버이 되는 사람은 제 아이가 무언가 더 배울 수 있기를 바라면서 학교에 넣는다. 그러나 오늘날 이 나라 학교는 무언가 더 배울 수 없도록 짜맞추어지고 만다. 왜냐하면, 오늘날 한국땅 학교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온통 ‘대학입시 싸움터’로 바뀌었으니까. 이런 학교에 아이를 보낸대서 아이가 무언가 더 배울 수 있지 않다.

 어버이 되는 사람은 예나 이제나 슬기롭지 않으면 안 된다. 어버이 되는 사람부터 슬기로와야 아이가 슬기로움을 물려받는다. 어버이 되는 사람이 일에 바쁘면 아이는 사랑을 받지 못한다. 아이 또한 제 어버이와 마찬가지로 일에 바쁜 어른으로 자라겠지.

 어버이 되는 사람은 제 아이뿐 아니라 제 동무나 제 어버이, 곧 아이한테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되는 사람한테까지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 어버이가 아이 할머니나 할아버지한테 옳게 하지 못한다면, 아이가 커서 제 아이(나한테는 손주)를 낳는다면, 나는 내 아이나 내 아이가 낳은 아이한테도 사랑받을 수 없다.

 어버이 되는 사람은 아이하고 하루 내내 복닥이다 보면 할 일조차 못한다 여길 만하고 몸이 따르지 못하니까 힘에 부치곤 한다. 어버이 되는 사람이기 앞서 ‘어엿하게 홀로선 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아이키우기는 훌훌 털듯 잊으며 내 꿈을 펼친다고 외치’며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학원이나 학교나 시설에 넣곤 한다. 이렇게 해야 ‘어버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제 겨를을 즐기거나 누릴 수 있을 테니까.

 어버이 되는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아이랑 스물네 시간을 붙어 지내는 나날이 얼마나 고된지 모른다. 참으로 고되다. 그러나 이렇게 고된 나날이기 때문에 아이한테 아무것이나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함부로 할 수 없는데다가 아무 말이나 할 수 없으며 아무 짓이나 할 수 없다. 아이는 내 고운 사랑이면서 내 착한 지킴이가 되고 내 살가운 돌봄이이자 길동무가 된다.

 돈이 있다면 돈으로 집일을 누군가한테 맡길 수 있다. 돈이 있으면서도 집일과 집살림을 거뜬히 치를 수 있다. 돈이 없으면 집일을 누군가한테 맡길 수 없을 뿐더러 집살림을 함께 알뜰히 치르도록 더욱 마음을 쏟아야 한다.

 아침부터 내내 아이하고 복닥이듯 지내다가 저녁밥을 차려 먹이고 나서 아이를 씻긴다. 아이를 씻기고 나서 아버지 등허리 좀 펴자며 살짝 쉬자니, 아이는 아버지 뒤에서 피리를 불며 논다. 고맙구나. 네가 이렇게 살짝이나마 혼자서 놀아 주니, 이동안 아버지는 자리에 드러누워 등허리를 펴든 셈틀을 켜고 글조각을 조금 끄적이든 할 수 있구나.

 4월 13일을 맞이한다. 오늘은 옆지기 태어난 날이다. 생일 잔치밥으로 무엇을 차리면 좋을까를 곰곰이 생각한다. (4344.4.13.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