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브라이, 점자로 세상을 열다 I LOVE 그림책
데이비드 애들러 지음, 존 월너.알렉산드라 월너 그림, 황윤영 옮김 / 보물창고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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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점자’ 만든 사람 이름은 몰라도 됩니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4] 데이비드 A.애들러·존 윌너·알렉산드라 윌너, 《루이 브라이, 점자로 세상을 열다》(보물창고,2007)


 역사책에 한 줄로 적히는 이야기가 무척 많습니다. 역사책에 한 줄로조차 안 적히는 이야기 또한 무척 많습니다.

 제가 학교를 다니던 때에 역사를 배우면서 ‘박두성’이라는 이름을 들은 적이란 없습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이야기하던 교사 가운데 박두성이라는 사람을 알거나 말할 수 있던 분은 없었습니다.

 이제는 예전하고 많이 달라졌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나마 인천에 있는 학교에서 교사 노릇을 하는 이들 가운데 몇몇은 박두성이 누구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이름 석 자쯤은 알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박두성이라는 사람은 인천에서 일제강점기에 ‘한글점자 훈맹정음’을 만들었거든요.


.. 루이는 (네 살에 두 눈을 잃고 나서) 혼자 밥 먹는 법과 어디에도 부딪치지 않고 걷는 법을 다시 배워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루이에게 지팡이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루이는 지팡이로 땅을 두드려 길에 아무것도 없는지 확인하며 걸었습니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 몇 발짝인지 기억해 두었다가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완전히 캄캄한 세상 속에서 루이는 소리와 냄새, 물건의 모양과 감촉을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걸을 때 내는 소리가 저마다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루이는 짐마차의 바퀴 소리만 듣고도 누가 오고 있는지 알아맞혔습니다 ..  (10∼11쪽)


 한국사람으로서 박두성을 알든 모르든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박두성을 안대서 더 나은 사람이지는 않습니다. 박두성을 모르기에 바보이거나 멍청이라 할 수 없습니다. 박두성이라는 사람 이름을 알거나 박두성 위인전을 읽었으니 한결 나은 사람이 되지 않아요. 박두성 이름을 알거나 한글점자를 만든 이야기를 알더라도, 정작 ‘한글점자’를 모르거나 읽지 못한다면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내 아이를 바라보는 어버이가 되건, 학교에서 교사 일을 맡은 어른으로서 바라보는 숱한 아이가 되건, 아이들한테 영어와 한자를 일찍부터 가르치려는 어른은 많아도, 막상 아이한테 점글이나 손말을 가르치려 애쓰거나 마음쓰는 어른은 없습니다.

 제도권학교이든 대안학교이든, 어린이집이든 유치원이든, 특성화고등학교이든 외국어고등학교이든, 어느 곳에서도 점글이나 손말을 정규 수업으로 안 넣을 뿐 아니라,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시중에서 쉽게 찾아볼 만한 ‘점글 배우기 책’이나 ‘손말 익히기 책’ 또한 거의 없거나 아예 없어요.


.. 루이는 귀를 쫑긋 세우고 들으며 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책을 읽을 수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루이는 기억력이 좋아서 아주 훌륭한 학생이 되었습니다 ..  (16쪽)


 두 번째 외국말(제2외국어)로라도 점글이나 손말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중학교에 들어설 무렵인 아이한테는 영어와 함께 점글이나 손말 가운데 하나를 가르쳐서 익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장애인을 생각해서 승강기나 자동계단을 마련하는 일은 고맙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설을 처음부터 마련하지 않다가 나중에 꽤나 큰돈을 들여 새로 붙이기 일쑤입니다. 처음부터 어떠한 건물이건 아파트이건 ‘몸이 아프거나 힘든 사람’을 헤아리는 건축설계로 짓지는 않아요. 학교이든 관공서이든 박물관이든 운동경기장이건 똑같습니다. 다들 나중에야 ‘장애인 화장실’ 칸을 얼렁뚱땅 붙이는데, 이 장애인 화장실에 아무나 들어가서 더럽히기 일쑤이기까지 해요.

 생각이 없는 삶입니다. 생각을 잊은 사람입니다. 생각을 버린 사랑이에요.


.. 앞을 볼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은 루이의 점자를 쓰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새 점자를 쓰려면 책을 새로 찍어야 해서,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었습니다. 앞을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전의 도드라진 글자가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였습니다. 자신들은 눈으로 보고 쉽게 읽을 수 있었으니까요. 왕립맹아학교에선 여전히 옛날 책을 썼지만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루이의 점자를 썼습니다. 피녜 교장 선생님도 루이의 점자가 눈먼 사람들을 위한 프랑스의 공식 점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학교 이사들은 반대했습니다. 그들은 학교에서 루이의 점자 책을 사용하는 것을 알고는 피녜 교장 선생님을 쫓아냈습니다. 앞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루이의 점자를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눈먼 사람들이 편지를 보내도 읽을 수 없었습니다 ..  (29쪽)


 그림책 《루이 브라이, 점자로 세상을 열다》(보물창고,2007)는 ‘알파벳 점글’을 제대로 만들어 옳게 쓰도록 온힘을 바친 한 사람 삶자락을 가볍게 다룹니다. 어쩔 수 없이 한두 줄로 ‘알파벳 점글에 반대한 눈멀지 않은 사람들 이야기’를 적바림할밖에 없겠지만, 이때에 루이 브라이 님을 비롯해 피녜 교장 선생님이고 왕립맹아학교 아이들이고 수많은 눈먼 이들은 얼마나 오래도록 아프고 힘들며 괴로웠을까요. 이 아픔과 힘듦과 괴로움을 한두 줄로 다룰 때에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이 그림책과 함께 《루이 브라이》(다산기획,1999)를 함께 읽을 수 있으면 눈먼 이들 삶을 조금 더 널리 헤아릴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위인전으로 다루고 말아 제대로 보여주며 밝힐 이야기하고는 좀 동떨어졌지만, 아쉬우나마 한국에도 ‘한글 점글’을 만든 분 이야기를 다룬 《박두성 이야기》(우리교육,2006)가 있습니다. 한글 점글을 만든 박두성 님 딸아이는 2011년 올해로 여든아홉 나이 할머니인데, 씩씩하고 튼튼하게 살아서 인천 화평동에서 ‘평안 수채화의 집’을 꾸립니다.

 나라에서 박두성 님한테 훈장도 주었고, 인천에서는 꾸준히 ‘박두성 기념사업’을 합니다만, 한글 점글을 만든 이한테 훈장을 주거나 한글 점글을 만든 이를 기리는 일이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짚는 사람(문화예술인이나 공무원이나 교육자 모두)은 아직 없습니다.

 루이 브라이 님 알파벳 점글은 ‘돈이 많이 든다’는 까닭 때문에 처음에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한참 지나서야 겨우 받아들여졌습니다. 한국에서 한글 점글은 그럭저럭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한글 점글을 박아 책으로 내는 일은 몹시 어렵습니다.

 얼마나 어려운가 하면, 눈먼 이들이 읽을 만한 책은 매우 적고, 거의 다 자원봉사자가 만듭니다. 구멍을 내는 책으로 만들거나 목소리를 담아 ‘소리로 듣는 책’을 만드는데, ‘구멍을 내는 책’을 만드는 솜씨는 많이 발돋움해서, 출판사에서 ‘원고 파일’을 보내 주면 이 파일로 적은 품을 들이고도 점글책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눈멀지 않은 사람들이 널리 읽는 책’을 내놓는 출판사치고 눈먼 이들이 읽을 책을 만드는 도서관이나 협회에 ‘책 원고 파일’을 보내는 곳은 아주 드뭅니다. 그렇다고 출판사 스스로 점글책을 만들지도 않아요. 돈이 꽤나 많이 들거든요. 다루기도 힘들어요. 출판사에서는 저작권과 판권만을 말할 뿐, 눈먼 이들이 책을 읽을 권리는 살피지 않아요. 그러니까, 돈만 생각하는 이 나라입니다.

 알파벳 점글을 만든 사람 이야기로 《루이 브라유》(비룡소,2010)와 《세상 밖으로》(큰북작은북,2008)와 《Who? 루이 브라유》(다산어린이,2010)가 더 있습니다. 이 책들도 루이 브라이 님을 ‘위인전 이야기’로 바라볼 뿐입니다. 눈멀지 않은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책을 마음껏 읽고 즐기며 살아가는 이 터전에서, 눈먼 이들을 이웃이나 동무나 한식구로 여기는 삶자락으로까지 스며들지는 못합니다.

 위인전은 이제 됐고, 지식책 또한 이제 됐습니다. 루이 브라이 님 책은 점글책으로 만들어 주든지, 점글책을 함께 만들어 내든지, 아니면 어린이와 푸름이가 점글을 배우는 길잡이책을 만들어 주십시오. (4344.4.20.물.ㅎㄲㅅㄱ)


― 루이 브라이, 점자로 세상을 열다 (데이비드 A.애들러 글,존 윌너·알렉산드라 윌너 그림,황윤영 옮김,보물창고 펴냄,2007.8.30./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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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든 나라 - 누구나 꿈 꾸는 세상
후루타 야스시 지음, 요리후지 분페이 그림, 이종훈 옮김 / 서해문집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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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을러서 무너지는 나라는 없다
 [책읽기 삶읽기 53] 후루타 야스시·요리후지 분페이, 《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든 나라》(서해문집,2006)



 나우루공화국 이야기를 다룬 책으로 《낙원을 팝니다》(여름언덕,2006)와 《나우루공화국의 비극》(에코리브르,2010) 두 가지가 한국말로 옮겨졌습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나우루 이야기를 살피며 책으로 쓰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두 가지 책이 한국말로 옮겨졌으니 고마운 노릇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온누리 모든 이야기를 언제나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사람 눈길에 걸맞게 써내야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러나 언제나처럼 나라밖 사람들이 빚은 이야기만 찾아서 듣다 보면, 나 스스로 온누리를 바라보는 눈썰미가 한쪽으로 길들거나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오늘날 영어를 무엇보다 도드라지게 다루면서 초등학교뿐 아니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까지 영어를 가르치지만, 정작 초등학교뿐 아니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까지 ‘우리 말글’을 옳고 바르게 가르치지 못하거든요.

 나우루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나우루라는 섬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잊었습니다. 스스로 잊었다기보다 나우루섬에서 큰돈을 얻어내려는 이웃나라에서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와서 나우루를 차지하고 이곳 사람들을 식민지 노예로 다루었으니 오랜 나날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바보처럼 되고 말았다 할 수 있을 텐데, 나우루섬에서 살아가던 사람은 모자라지도 않았고 넘치지도 않았어요. 나우루섬이 온누리에서 가장 아름다울 섬인지 아닌지 모를 노릇입니다만, 나우루섬은 나우루섬에 깃들어 오래오래 살아온 사람한테는 가장 알맞거나 몹시 아름다울 섬이었습니다.

 돈이 없어도 배를 곯는 사람이 없던 나우루섬입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없어도 전쟁이나 다툼이 일어나지 않던 나우루섬입니다. 경찰이나 학교나 군대가 없어도 도둑이나 미움이나 따돌림이 생기지 않던 나우루섬입니다.

 서양 나라와 일본이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와서 인광석을 캐낼 때부터 나우루섬은 평화가 깨지고 사랑과 믿음이 사라졌으며 아름다운 빛줄기가 스러졌습니다.

 나우루사람을 함부로 탓할 수 없습니다. 오랜 나날 식민지살이를 하면서 제 땅을 잃고 노예가 되어 인광석을 캐는 일만 해야 한 사람들한테 ‘너희는 왜 너희 섬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못 깨달았는가?’ 하고 따질 수 없습니다. 광부로만 일해야 하면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던 일이나 흙을 일구어 푸성귀와 곡식을 얻던 일을 모조리 빼앗기거나 잃은 사람한테 ‘너희는 왜 너희 삶터를 어여삐 지키면서 작고 착하게 사는 길을 걷지 않았느냐?’ 하고 따질 수 없어요. 땅임자라 하는 이는 땅임자대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니까 나우루섬을 망가뜨리고, 땅임자 아닌 여느 사람은 ‘탄광 품팔이꾼(임금노동자)’이 되어야 했기에 고기잡이와 흙일구기를 잃었습니다.


.. 인광석을 탐내는 나라들이 세계 곳곳에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맨 처음 이곳에 도착한 나라는 독일이었습니다. 그 다음엔 영국이 들어와서 인광석을 운송하기 위해 철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섬에 사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바다 저편에서, 본 적도 없는 나라들이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습니다. 그 틈에 오스트레일리아 군대가 들어와 이 섬을 점령했습니다 ..  (14∼15쪽)


 《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든 나라》(서해문집,2006)는 짧은 글에 단출한 그림을 붙여 나우루섬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낙원을 팝니다》하고 《나우루공화국의 비극》은 글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찌 보면, 굳이 글로 길디길게 나우루섬 앞뒤 발자취와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아도 된다 할 수 있어요.

 줄거리를 살핀다면, 세 권 모두 이렇게 엮습니다. (1) 나우루섬은 아름답고 살기 좋았다. (2) 유럽 나라들이 식민지를 넓히는 전쟁을 벌이며 나우루섬 인광석을 알아냈다. (3) 인광석을 ‘거저로’ 빼앗을 수 있는 나우루섬을 식민지로 삼으려고 유럽 나라끼리 다투었다. (4) 일본이 세계대전에 끼어들며 나우루섬에 전쟁과 식민지가 그치지 않았다. (5)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는 오스트레일리아가 식민지 정책을 이었다. (6) 나중에 나우루섬이 독립을 하지만, 서양 나라들은 나우루섬 역사와 문화를 헤아리지 않고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나우루섬에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정치와 행정 조직을 세운다. (7) 정부 공무원을 꾸리면서 경제개발을 외쳐야 했고, 경제개발을 앞세워 나우루공화국도 문화와 교육과 복지를 키우려 하다 보니 돈이 많이 있어야 했다. (8) 인광석을 캐서 팔면 돈이 된다. (9) 조용히 작게 살아가는 길을 잊고, 서양 민주주의 틀을 그대로 받아들인 나우루공화국은 인광석 장사를 이어 나간다. (10) 나우루섬이 공화국으로 독립하기 앞서 유럽과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 제국주의자들이 인광석을 많이 캐 갔다. 그래도 꽤 인광석이 남았기에 나우루공화국 정치꾼은 걱정하지 않았다. (11) 드디어 인광석이 바닥났다. (12) 나우루공화국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13) 이제 나우루섬에는 아름다운 자연도 넘치는 돈도 사라졌다.


.. 나우루 사람들은 줄곧 노동자였습니다. 그들이 받은 임금은 생산된 인광석의 5퍼센트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 채소나 과일을 재배하던 경작지는 점차 광석 채굴장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이 섬에서는 어느 곳을 파더라도 인광석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경작지가 없어져도 맛 좋은 통조림을 살 수 있는 돈이 엄청나게 들어왔습니다 ..  (16, 26쪽)


 줄거리를 헤아리자며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나우루섬을 다루는 세 가지 책 또한 줄거리를 곱씹자며 읽을 수 있습니다. 나우루공화국에서 일어난 일을 발판 삼아 우리 터전을 곰곰이 돌아보며 거울로 삼자고 할 수 있겠지요. 경제개발이나 황금만능주의나 자연보호를 곱씹는 좋은 밑거름으로 여길 만합니다. 아니면, 또다른 지식이나 상식 하나로 나우루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이야기를 펼치고, 이와 같이 줄거리를 마무리지어도 좋을는지 궁금합니다. ‘조용히 착하게 살던 사람들’을 식민지로 부리며 괴롭히던 사람들을 찬찬히 꿰뚫는 이야기를 옳게 다루지 못한다면 무슨 보람이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나우루섬 사람들은 돈에 길드는 바람에 제 보금자리를 잃거나 잊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땅 사람들은 얼마나 제 보금자리를 아끼거나 돌보거나 사랑한다 할 수 있으려나요. 한국땅 사람들은 돈에 안 길든 착하거나 참답거나 아름다운 사람이라 할 만한지요.

 이 나라 사람들은 하나같이 도시로 몰려듭니다. 도시로 몰려든 이 나라 사람들은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습니다. 이 나라 사람들이 도시에 몰려들어 얻는 일자리란 ‘돈을 더 많이 벌어 돈으로 집을 사고 옷을 사며 밥을 사는 삶’을 꾸리는 일자리입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허구헌날 ‘아름다운 우리 강산’이라고 외친들 무엇 하겠습니까. 제주 삼다수 물을 마시고 강원 평창 물을 마시며 깊은 동해 물을 마시면 무엇 하려나요. 정작 어느 도시사람이고 물을 맑게 아끼거나 돌보는 삶이 아니잖아요.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 열폐수도 바닷물을 더럽힙니다. 수많은 공장에서 흘리는 폐수도 바닷물을 더럽힙니다. 주한미군 기지도 땅을 더럽히지만, 한국사람이 살아가는 여느 살림집에서 버리는 똥오줌과 생활폐수도 땅을 더럽힙니다. 이제는 유기농(친환경) 먹을거리를 먹어야 하고, 초·중·고등학교에서 친환경무상급식을 해야 한다고 외치기는 하지만, 정작 내가 날마다 누는 똥오줌을 거름으로 삼도록 하는 시설이나 제도란 하나도 없을 뿐더러, 어느 새 아파트도 똥오줌을 거름으로 삼도록 시설을 갖추지 않을 뿐더러,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사람 스스로 내 똥오줌을 거름으로 일구려고 땀흘리지 않습니다. 내 똥오줌은 물에 흘려 버리면서 유기농이나 친환경을 말하는 삶이란 얼마나 엉터리인 줄을 깨닫지 않고, 깨닫지 않으니까 고치거나 바로잡지 않아요.


.. 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들어진 나라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쳐야겠습니다. 약 100년 사이에 이 섬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사람들은 풍요로운 생활을 누린 반면 경작지와 고유한 문화는 많이 잃었습니다 ..  (114쪽)


 나우루섬 사람들은 고작 백 해 사이에 아주 다르게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백 해가 아닌 쉰 해 만에 바뀌었다 해도 틀리지 않고, 서른 해 만에 바뀌었다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한국땅 사람들은 오늘날 어떤 모습 어떤 삶 어떤 나날인가를 돌아볼 노릇입니다. 하루하루 일구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되새길 노릇입니다. 불쌍하거나 딱한 나우루공화국일 수 없습니다. 어리석거나 게으르다 할 나우루공화국일 수 없어요.

 이 나라 대한민국은 식량자급율이 30%가 되지 않습니다. 콩이 몸에 좋다느니 무어라느니 하지만, 콩 자급율은 10%나 될까요. 밀 자급율은 1%가 안 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맥주를 그렇게도 많이 마시지만, 보리 자급율은 몇 %가 될까요. 한국에서 거둔 보리로 맥주를 만드는 술 회사가 한 군데라도 있겠습니까. 제아무리 맑은 물을 땅에서 퍼서 빚는 맥주라 하더라도, 어떤 보리를 어느 나라에서 사들여 쓰는지를 살필 줄 아는 한국사람은 없습니다.

 나우루공화국은 사람들이 게을러터졌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석유로 돈을 버는 나라 또한 사람들이 게을러지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전쟁무기를 어마어마하게 만들 뿐 아니라 군대 또한 어마어마하게 꾸려서 끝없이 전쟁을 일으키면서 먹고사는 몇몇 나라들 또한 사람들이 돈이 넘쳐 게을러지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아요.

 스스로 내 삶을 사랑하지 못할 뿐 아니라, 내 삶이 무엇인 줄을 깨닫거나 느끼지 못하니까 무너집니다. 톨스토이 말이 아니더라도, 나와 내 식구한테 땅이 얼마만큼 있으면 스스로 흙을 일구어 먹고살 만한가를 모를 뿐더러, 돈을 벌며 살더라도 내가 갖출 돈이 얼마쯤이면 내 삶과 삶터를 예쁘며 알차게 일굴 수 있는가를 깨닫지 못하고 느끼지 않으니 무너집니다. 나우루섬은 공화국도 식민지도 관광지도 아닌 그저 나우루섬입니다. (4344.4.20.물.ㅎㄲㅅㄱ)


― 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든 나라 (후루타 야스시 글,요리후지 분페이 그림,이종훈 옮김,서해문집 펴냄,2006.5.15./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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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업고 곰취 뜯기


 지난 목요일에 숲에 들어가 뜯은 곰취를 거의 다 먹었기에 오늘 새로 뜯으려고 아이를 데리고 숲으로 들어간다. 아이는 한낮이 될 무렵부터 졸립다 했으나 세 시까지 안 자고 버텼다. 몹시 졸립지만 숲으로 간다니 좋다며 따라나선다. 그러나 조금 걷지 않았어도 힘들다며 안아 달라 한다. 아이를 안고 숲길 오르막을 오른 다음, 내리막과 판판한 길에서는 내린다. 여느 때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아하겠지만, 퍽 졸리니까 조금만 좋아한다. 그래도 잘 뛰고 잘 걷는다.

 아버지가 곰취와 쑥을 뜯느라 바쁘니 자꾸자꾸 안아 달라 한다. 하는 수 없이 볕이 잘 드는 곳에 앉으라 한 다음 쑥이랑 곰취를 뜯는다. 바람소리와 새소리만 들리는 숲속에서 노래를 부른다. 흥얼흥얼 노래를 하면서, 아이가 해바라기를 해 주기를 바란다. 쑥을 뜯든 곰취를 뜯든 온갖 풀내음을 잔뜩 느낀다. 내가 아는 풀내음이 있을 테지만 내가 모를 풀내음이 훨씬 많겠지. 아이도 아버지도 온갖 풀내음과 바람소리를 맞아들이면서 낮나절을 보낸다.

 아직 나물을 얼마 못 뜯었는데 아이는 졸립다며 그예 안아 달라는 말뿐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스럽다. 어차피 나물을 뜯느라 쭈그려앉았으니 아버지 등에 엎어지라고 말한다. 아이는 등판에 찰싹 달라붙는다. 한동안 이러고 나물을 뜯다가 아이를 업는다. 업은 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나물을 더 뜯는다. 쑥은 오늘 저녁 먹을 만큼도 못 뜯었고 곰취도 이틀쯤 먹을까 말까 싶을 만큼밖에 못 뜯었기 때문에.

 그렇지만 등허리가 결린다. 아침부터 아이하고 복닥이는 하루이니까, 낮나절 십 분 남짓 아이를 업고 나물을 뜯어도 등허리가 버겁다. 포대기가 있어 아이를 꽉 업을 수 있으면 좀 오래 나물을 뜯을 수 있겠지. 이제 아이가 많이 크기는 했지만, 포대기이든 깔개이든 챙길 수 있는 어버이 노릇을 해야 하지 않겠나. 이래서야 집살림 맡은 사람이라 말하기 부끄럽기만 하다.

 졸린 아이는 등에 업혔으나 잘 생각은 않는다. 나물 뜯는 모습을 등판에서 내려다보기만 한다. 누런 빛깔, 흙빛 멧개구리가 폴짝 나온다. 아이는 올들어 처음 보는 개구리이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개구리를 보았던가? 모르겠다. “여기 개구리 있네.” “개구리?” “응, 개구리. 자 봐. 여기 있지?” “어, 개구리야.”

 더 나물을 뜯다가는 아이도 힘들고 아버지도 힘들겠다고 느껴 숲에서 나오기로 한다. 멧길을 걸어 집으로 내려온다. 숲에서 빠져나오니 아이는 걷겠다고 한다. 집까지는 내리막이니 콩콩콩 달리고 싶은가 보다.

 아이는 집에 닿으면서 어머니를 부르고, 집으로 들어가서 이내 어머니 곁에 눕는다. 아버지는 아이 낯과 손과 발을 씻기고 새 옷을 입힌다. 새 옷으로 갈아입은 아이는 다시 눕는다. 그러고는 곧바로 곯아떨어진다. 두 시간쯤 낮잠을 자 주면 얼마나 좋을까 꿈을 꾼다. 다음달에 둘째를 낳을 어머니는 힘들어 자리에 눕고, 아버지는 첫째 아이 오줌기저귀를 삶고, 빨래 몇 점을 한다. 첫째 아이 오줌기저귀를 다 삶은 다음 둘째 아이한테 쓸 새 기저귀를 삶는다. 이 사이에 저녁으로 먹을 쌀을 씻어 불린다. 뜯은 나물은 저녁밥을 안칠 때에 흙을 씻기로 한다. 아이가 실컷 자고 일어나면, 마을 어귀 큰길가에 있는 보리밥집(이자 마을 구멍가게)으로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가서 보리술 두 병쯤 사올까 생각한다. 오늘 하루도 어설프지만 이모저모 애쓴 나한테 주는 선물로.

 아이는 저녁나절에 자전거에 붙인 수레에 태워 준다고 하면 신나서 함박웃음을 짓겠지. 첫째 아이도 둘째 아이도 자전거수레를 오래오래 즐길 수 있도록 나 스스로 더 몸을 다스리며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아버지가 몸이 오래오래 튼튼해야 아픈 옆지기 몸을 틈틈이 주무를 수 있다. (4344.4.1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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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4-19 19:37   좋아요 0 | URL
ㅎㅎ 시골에 사시니 이런 정취도 있네요.그나저나 개구리는 참 오랫만에 보는것 같군요^^

파란놀 2011-04-20 07:06   좋아요 0 | URL
요사이는 시골에서도 개구리가 많이 사라지거든요... 약을 많이 치니까요...
 
석기 시대 천재 소년 우가
레이먼드 브릭스 글 그림, 미루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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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 석 장 느낌글 009] 석기 시대 천재 소년 우가


 《석기 시대 천재 소년 우가》라는 이름으로 옮겨진 ‘레이먼드 브릭스’ 님 그림책은 그냥 《UG》라는 이름으로 2001년에 처음 나왔습니다. 한국판으로 옮기며 ‘UG’를 ‘우가’로 적는데, 이 아이는 ‘천재 소년’이 아닙니다. 그냥 사내아이입니다. “난 동굴에 사는 게 싫은데(10쪽)” 하고 생각하며, “강을 조금 구부려서 이쪽으로 흘러오게 하면 안 될까요(18쪽)” 하고 생각하는 여느 아이입니다. 어찌 보면 이런 생각을 하는 아이는 여느 아이가 아니라 ‘천재’ 아이라 여길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이는 아이대로 즐거우면 즐겁다 말하고 힘들면 힘들다 말합니다. 재미있으면 재미있게 즐기고 따분하면 따분하다는 느낌이 얼굴에 묻어납니다. 더 잘 살고 싶고, 더 맛있게 먹고 싶으며, 더 재미나게 놀고 싶습니다. 어느 목숨이든 예쁘게 느끼는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저절로 품는 마음입니다. 석기 시대를 살아가는 우가라는 아이는 석기 시대이고 아니고를 떠나 즐거우면서 아름다이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동무나 어른들은 즐거움이나 아름다움을 찾지 않습니다. 오늘날 어른들도 마찬가지예요. 다들 돈벌이에 바빠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내칩니다. (4344.4.19.불.ㅎㄲㅅㄱ)

― 레이먼드 브릭스 그림·글, 미루 옮김, 문학동네 펴냄, 2003.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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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빠빠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4
아네트 티종 지음, 이용분 옮김 / 시공주니어 / 199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예쁜 놀이동무 바바빠빠는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1] 아네트 티종·탈루스 테일러, 《바바빠빠》(시공주니어,1994)



 네 살 아이가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면 어버이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여느 집에서는 이런 일이 드물까요. 첫째는 어느덧 네 살로 자랐고, 한 달 뒤에 둘째가 태어납니다. 첫째가 걸어간 길을 둘째 또한 걸을는지, 둘째는 첫째하고 좀 다른 길을 걸을는지 잘 모릅니다. 다만, 시골자락에서 태어날 둘째는 첫째와 똑같지는 않으리라 생각하면서도, 첫째한테 했듯이 사랑으로 보살펴야 할 뿐 아니라, 첫째한테 제대로 못한 사랑나눔을 더 따사로이 나누어야 하리라 느낍니다.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면서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요모조모 가르칩니다. 말로 가르치기도 하지만, 퍽 어린 아이한테는 ‘말보다는 몸으로 더 자주 더 많이’ 가르칩니다. 제 어버이가 살아가는 나날이 아이한테는 책이고 교과서이며 스승입니다. 어버이 스스로 옳고 바르며 착하게 살아가면, 아이는 저절로 옳고 바르며 착하게 살아갑니다. 좋다는 어린이책 백만 권이든 천만 권이든 부질없어요. 책 한 권 쥐어 주지 않더라도 옳고 바르게 살아가는 어버이는 ‘책에 깃드는 모든 좋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려줍니다.

 아이랑 같이 살아오는 동안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이것저것 배웁니다. 아이 앞에서 말을 어떻게 하고, 아이 앞에서 어떻게 살아내며, 어버이이기 앞서 오롯한 한 사람으로서 얼마나 참답거나 아름다이 살아가는가를 되짚습니다. 아이한테 먹이는 밥이란 어른이 함께 먹는 밥입니다. 아이한테만 아이 몸을 생각하는 밥을 먹일 수 없습니다. 어른 또한 나란히 같은 밥상에서 먹는 밥을 아이한테 먹입니다. 자가용을 모는 어버이는 자가용을 좋아하는 아이를 낳고, 자전거를 달리는 어버이는 자전거를 좋아하는 아이를 낳습니다. 자가용 없이 걸어다니는 어버이는 두 다리로 걷기를 좋아하는 아이를 낳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이 겪어야 하는 아토피는 어버이 되는 사람 몸에 쌓인 나쁜 것들이 유전자에 아로새겨져서 아이한테 이어지는 아토피입니다. 아이는 하나도 잘못하지 않았으나, 모두 어버이가 잘못한 나머지 아이가 괴롭습니다. 어버이 되는 사람 스스로 당신 몸에 나쁜 것들이 쌓이도록 막 살아온 나날을 돌이키지 않으며, 아이한테 화학연고를 발라 주거나 약을 먹인대서 아토피가 사라지거나 가라앉을 수 없습니다. 한동안 ‘어른 눈에 안 보일’ 뿐, 화학약을 써서 살짝 안 보이도록 한 아토피는 아이 몸에 그대로 잠든 채 다시 깨어날 때를 기다립니다.

 예부터 몸이 아픈 사람은 ‘더 맑은 바람과 물과 햇볕과 흙을 느끼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 시골로 보냈습니다. 도시에서 아픈 사람을 다스리는 일이란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아픈 사람을 낫게 하지 못합니다. 도시에는 일거리가 많아 돈을 조금 더 쉽게 한결 많이 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몸이 튼튼한 사람들이 도시에서 버티며 돈을 많이 벌 수 있지, 몸이 여린 사람은 도시에서 버티기 힘듭니다. 아이들 가운데 꽤 튼튼한 녀석들이라면 도시에서도 잘 놀 테지만, 여느 아이들한테 도시는 참 끔찍한 보금자리입니다. 정수기를 쓴들 물이 맑을 수 없고, 먹는샘물을 사다 마신들 페트병에 담긴 물이며, 자동차가 끝없이 가득한 데에 맑은 바람이 없습니다. 공기청정기를 쓰는 집은 시멘트로 발라 세운 높직한 건물인데, 이 높직한 시멘트 건물은 고작 서른 해를 못 버티기 때문에 허물어 새로 올려야 합니다. 도시에서 집이란 집이 아닌 돈(부동산)입니다. 집 아닌 돈(부동산)에서 지내야 하는 아이가 아이다움을 건사하기란 매우 힘듭니다.


.. 바바빠빠는 프랑수아네 집 꽃밭에서 태어났습니다 ..  (2쪽)


 그림책 《바바빠빠》를 읽습니다. 나라밖에서는 꽤 일찍부터 나온 그림책이지만, 한국에서는 1994년에 드디어 선을 보입니다. 그나마 1994년에 선을 보인 한국 그림책 《바바빠빠》는 빛느낌이 참 얄딱구리합니다. 《바바빠빠》를 소개하며 출판사에서 쓴 글을 읽어도 ‘분홍 괴물’인 바바빠빠라 하지만, 한국 그림책을 읽으면서 바바빠빠가 참말 ‘분홍이’가 맞는지 알쏭달쏭합니다. 분홍이 바바빠빠라면, 말 그대로 분홍 빛깔을 곱게 느낄 수 있는 그림책으로 만들어서 팔아야 할 텐데요.

 네 살 아이한테 한국판 《바바빠빠》를 차마 보여주지 못합니다. 헌책방에서 만난 일본판 《おぱけのバ-バパパ》를 보여줍니다. 네 살 아이는 두 살 적부터 일본판 《おぱけのバ-バパパ》를 갖고 놀며 좋아했습니다. 일본판 《おぱけのバ-バパパ》는 1972년 6월 1일에 첫 쇄를 찍고, 우리 집 일본판 책은 2003년 3월에 203쇄를 찍었답니다. 우리 집 한국판 《바바빠빠》는 2007년 12월 5일에 29쇄를 찍었군요. 그나저나, 한국판 《바바빠빠》는 프랑스판 저작권이 1981년으로 적히는데, 일본판에는 프랑스판 저작권이 1971년으로 적힙니다. 뭔가 알쏭달쏭합니다. 일본은 ‘바바빠빠’ 그림책이 처음 태어난 1971년 이듬해인 1972년부터 일본 아이들한테 이 그림책을 읽히도록 했고, 한국은 자그마치 스물세 해가 지난 1994년에야 비로소 한국 아이들한테 이 그림책을 읽힐 수 있습니다.

 내 어린 날, 에이에프케이엔을 틀 때에 가끔 볼 수 있던 바바빠빠를 떠올립니다. 그무렵 바바빠빠 그림책이 나왔다 하더라도 이 그림책을 사 줄 만큼 넉넉한 집은 드물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난날 그림책을 사 줄 만한 집이 드물든 많든 적든 어떻든, 아이들이 즐겁게 볼 그림책을 마련하는 데에 마음을 쓰지 못한 대목이 적잖이 슬픕니다. 그래도, 이제는 나라밖 좋다 하는 그림책을 퍽 쉽게 한국책으로 만날 수 있으니 고맙다고 생각합니다.


.. 바바빠빠는 동물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물원에서 바바빠빠는 우리에 갇혀 불행하게 지냈지요 ..  (6∼7쪽)


 일본판 《おぱけのバ-バパパ》만 보다가 한국판 《바바빠빠》를 보면서 한두 줄 짤막하게 적힌 글을 함께 읽습니다. 그림으로 보아도 알 수 있기는 했는데, 바바빠빠는 꽃밭에서 태어났네요. 어린이 프랑수아가 꽃밭에 물을 줄 때에 물을 맛나게 받아먹으며 몽글몽글 몸이 커지며 태어났어요.

 꽃밭에서 태어난 바바빠빠는 꽃과 같은 목숨입니다. 꽃처럼 예쁘고 꽃잎처럼 푸릅니다. 들꽃처럼 작고 가녀리며, 들꽃처럼 씩씩하고 사랑스럽습니다.

 바바빠빠는 착합니다. 바바빠빠는 슬기롭습니다. 바바빠빠는 포근합니다. 바바빠빠는 꾀를 부리거나 남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바바빠빠는 커다란 집이나 빠른 자가용을 바라지 않습니다. 바바빠빠는 더 맛난 밥이나 더 거룩한 이름값을 꿈꾸지 않습니다. 바바빠빠는 마음을 나눌 좋은 동무를 그리워합니다. 바바빠빠는 사랑스레 어울릴 예쁜 벗을 아낍니다.


.. 사람들은 바바빠빠를 영웅처럼 환영했습니다. 바바빠빠가 많은 사람들을 구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바바빠빠는 친구 프랑수아에게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  (25∼26쪽)


 새벽 다섯 시 반에 깨어 한 시간쯤 옹알거리던 아이는 다시금 새근새근 잠들었습니다. 어머니가 뜨개한 긴치마를 혼자서 단추 꿰어 입고 한들한들 놀다가는, 아버지 무릎에 머리를 베고 누웠다가는, 조용히 잠들었습니다. 잠자리에 누워 눈을 말똥말똥 뜬 아이 곁에 다가가 볼을 부비며 이따가 더 신나게 놀고 조금 더 코 자자고 소곤소곤 말을 거니, 아버지가 저한테 해 주듯 아이도 제 아버지 머리를 살살 토닥이고 쓰다듬다가 조용히 눈을 감고 잠들어 줍니다.

 잠든 아이는 두 시간쯤 코 하고 꿈누리를 거닐다가는 번쩍 눈을 뜨고는 쉬 한 번 하고 나서 콩콩걸음으로 다가올 테지요. 그러면, 빈 그릇 하나 들고 서로 손을 맞잡으며 요 앞 비탈논 둘레로 나갑니다. 싱그러이 자라는 쑥을 그릇 가득 뜯어 쑥버무리도 하고, 쑥을 잔뜩 넣은 된장국도 합니다. 식구들은 아침을 맛나게 먹고는 오늘도 새 하루를 새삼스레 맞이하면서 부산스레 복닥이겠지요.


.. 바바빠빠는 어린이들과 함께 노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  (29쪽)


 바바빠빠는 어린이와 함께 놀기를 좋아합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어버이라 해서 모두 아이들과 놀기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어버이라 하든 갓난쟁이였고 어린이였으며 푸름이였습니다. 어느 어버이라 하든 마냥 신나게 뛰노는 어린 나날을 보냈습니다. 가난하거나 괴로운 집에서 태어나 ‘놀이하는 어린 나날’을 못 보낸 어른이 있기도 할 텐데, 어린이는 누구나 놀이하는 나날을 보내면서 커야 아름답습니다. 어른 또한 어린이와 함께 놀이하는 사람이어야 아름답고, 놀이를 실컷 즐겼으면, 고픈 배를 채울 수 있도록 다시금 신나게 일하는 사람이 될 수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지겹도록 하거나 억지로 하는 돈벌이 일거리가 아니라, 어른 스스로도 즐겁고 아이와 함께하면서 기쁜 일거리를 찾아 내 살림살이에 알맞게 돈을 벌거나 밥을 벌면 됩니다. 돈을 더 많이 번대서 엄마 아빠가 서로 더 알콩달콩 놀 수 있지는 않거든요. 돈을 더 많이 벌었기에 아이 놀잇감을 잔뜩 장만해 주며 재미나게 놀도록 해 줄 수 있지 않거든요. 놀이에는 놀이동무가 있어야 하고, 일에는 일동무가 있어야 합니다. 어버이는 둘이 서로 좋은 놀이동무이자 일동무입니다. 아이는 어버이 둘 사이에 새길을 열어 주는 놀이동무가 되면서 천천히 심부름을 익혀 집일을 거드는 고마운 일동무가 됩니다.

 아이들하고 신나게 놀 줄 아는 바바빠빠는 어떠한 심부름이든 즐겁게 거뜬히 해낼 줄 압니다. 놀 때에는 잘 놀고, 일할 때에는 잘 일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아름다운 한몫을 하는 사랑스러운 목숨을 선물받아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4344.4.19.불.ㅎㄲㅅㄱ)


― 바바빠빠 (아네트 티종 그림,탈루스 테일러 글,이용분 옮김,시공주니어 펴냄,1994.6.30./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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