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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브라이, 점자로 세상을 열다 ㅣ I LOVE 그림책
데이비드 애들러 지음, 존 월너.알렉산드라 월너 그림, 황윤영 옮김 / 보물창고 / 2007년 8월
평점 :
‘한글 점자’ 만든 사람 이름은 몰라도 됩니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4] 데이비드 A.애들러·존 윌너·알렉산드라 윌너, 《루이 브라이, 점자로 세상을 열다》(보물창고,2007)
역사책에 한 줄로 적히는 이야기가 무척 많습니다. 역사책에 한 줄로조차 안 적히는 이야기 또한 무척 많습니다.
제가 학교를 다니던 때에 역사를 배우면서 ‘박두성’이라는 이름을 들은 적이란 없습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이야기하던 교사 가운데 박두성이라는 사람을 알거나 말할 수 있던 분은 없었습니다.
이제는 예전하고 많이 달라졌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나마 인천에 있는 학교에서 교사 노릇을 하는 이들 가운데 몇몇은 박두성이 누구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이름 석 자쯤은 알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박두성이라는 사람은 인천에서 일제강점기에 ‘한글점자 훈맹정음’을 만들었거든요.
.. 루이는 (네 살에 두 눈을 잃고 나서) 혼자 밥 먹는 법과 어디에도 부딪치지 않고 걷는 법을 다시 배워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루이에게 지팡이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루이는 지팡이로 땅을 두드려 길에 아무것도 없는지 확인하며 걸었습니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 몇 발짝인지 기억해 두었다가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완전히 캄캄한 세상 속에서 루이는 소리와 냄새, 물건의 모양과 감촉을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걸을 때 내는 소리가 저마다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루이는 짐마차의 바퀴 소리만 듣고도 누가 오고 있는지 알아맞혔습니다 .. (10∼11쪽)
한국사람으로서 박두성을 알든 모르든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박두성을 안대서 더 나은 사람이지는 않습니다. 박두성을 모르기에 바보이거나 멍청이라 할 수 없습니다. 박두성이라는 사람 이름을 알거나 박두성 위인전을 읽었으니 한결 나은 사람이 되지 않아요. 박두성 이름을 알거나 한글점자를 만든 이야기를 알더라도, 정작 ‘한글점자’를 모르거나 읽지 못한다면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내 아이를 바라보는 어버이가 되건, 학교에서 교사 일을 맡은 어른으로서 바라보는 숱한 아이가 되건, 아이들한테 영어와 한자를 일찍부터 가르치려는 어른은 많아도, 막상 아이한테 점글이나 손말을 가르치려 애쓰거나 마음쓰는 어른은 없습니다.
제도권학교이든 대안학교이든, 어린이집이든 유치원이든, 특성화고등학교이든 외국어고등학교이든, 어느 곳에서도 점글이나 손말을 정규 수업으로 안 넣을 뿐 아니라,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시중에서 쉽게 찾아볼 만한 ‘점글 배우기 책’이나 ‘손말 익히기 책’ 또한 거의 없거나 아예 없어요.
.. 루이는 귀를 쫑긋 세우고 들으며 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책을 읽을 수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루이는 기억력이 좋아서 아주 훌륭한 학생이 되었습니다 .. (16쪽)
두 번째 외국말(제2외국어)로라도 점글이나 손말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중학교에 들어설 무렵인 아이한테는 영어와 함께 점글이나 손말 가운데 하나를 가르쳐서 익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장애인을 생각해서 승강기나 자동계단을 마련하는 일은 고맙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설을 처음부터 마련하지 않다가 나중에 꽤나 큰돈을 들여 새로 붙이기 일쑤입니다. 처음부터 어떠한 건물이건 아파트이건 ‘몸이 아프거나 힘든 사람’을 헤아리는 건축설계로 짓지는 않아요. 학교이든 관공서이든 박물관이든 운동경기장이건 똑같습니다. 다들 나중에야 ‘장애인 화장실’ 칸을 얼렁뚱땅 붙이는데, 이 장애인 화장실에 아무나 들어가서 더럽히기 일쑤이기까지 해요.
생각이 없는 삶입니다. 생각을 잊은 사람입니다. 생각을 버린 사랑이에요.
.. 앞을 볼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은 루이의 점자를 쓰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새 점자를 쓰려면 책을 새로 찍어야 해서,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었습니다. 앞을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전의 도드라진 글자가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였습니다. 자신들은 눈으로 보고 쉽게 읽을 수 있었으니까요. 왕립맹아학교에선 여전히 옛날 책을 썼지만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루이의 점자를 썼습니다. 피녜 교장 선생님도 루이의 점자가 눈먼 사람들을 위한 프랑스의 공식 점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학교 이사들은 반대했습니다. 그들은 학교에서 루이의 점자 책을 사용하는 것을 알고는 피녜 교장 선생님을 쫓아냈습니다. 앞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루이의 점자를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눈먼 사람들이 편지를 보내도 읽을 수 없었습니다 .. (29쪽)
그림책 《루이 브라이, 점자로 세상을 열다》(보물창고,2007)는 ‘알파벳 점글’을 제대로 만들어 옳게 쓰도록 온힘을 바친 한 사람 삶자락을 가볍게 다룹니다. 어쩔 수 없이 한두 줄로 ‘알파벳 점글에 반대한 눈멀지 않은 사람들 이야기’를 적바림할밖에 없겠지만, 이때에 루이 브라이 님을 비롯해 피녜 교장 선생님이고 왕립맹아학교 아이들이고 수많은 눈먼 이들은 얼마나 오래도록 아프고 힘들며 괴로웠을까요. 이 아픔과 힘듦과 괴로움을 한두 줄로 다룰 때에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이 그림책과 함께 《루이 브라이》(다산기획,1999)를 함께 읽을 수 있으면 눈먼 이들 삶을 조금 더 널리 헤아릴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위인전으로 다루고 말아 제대로 보여주며 밝힐 이야기하고는 좀 동떨어졌지만, 아쉬우나마 한국에도 ‘한글 점글’을 만든 분 이야기를 다룬 《박두성 이야기》(우리교육,2006)가 있습니다. 한글 점글을 만든 박두성 님 딸아이는 2011년 올해로 여든아홉 나이 할머니인데, 씩씩하고 튼튼하게 살아서 인천 화평동에서 ‘평안 수채화의 집’을 꾸립니다.
나라에서 박두성 님한테 훈장도 주었고, 인천에서는 꾸준히 ‘박두성 기념사업’을 합니다만, 한글 점글을 만든 이한테 훈장을 주거나 한글 점글을 만든 이를 기리는 일이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짚는 사람(문화예술인이나 공무원이나 교육자 모두)은 아직 없습니다.
루이 브라이 님 알파벳 점글은 ‘돈이 많이 든다’는 까닭 때문에 처음에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한참 지나서야 겨우 받아들여졌습니다. 한국에서 한글 점글은 그럭저럭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한글 점글을 박아 책으로 내는 일은 몹시 어렵습니다.
얼마나 어려운가 하면, 눈먼 이들이 읽을 만한 책은 매우 적고, 거의 다 자원봉사자가 만듭니다. 구멍을 내는 책으로 만들거나 목소리를 담아 ‘소리로 듣는 책’을 만드는데, ‘구멍을 내는 책’을 만드는 솜씨는 많이 발돋움해서, 출판사에서 ‘원고 파일’을 보내 주면 이 파일로 적은 품을 들이고도 점글책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눈멀지 않은 사람들이 널리 읽는 책’을 내놓는 출판사치고 눈먼 이들이 읽을 책을 만드는 도서관이나 협회에 ‘책 원고 파일’을 보내는 곳은 아주 드뭅니다. 그렇다고 출판사 스스로 점글책을 만들지도 않아요. 돈이 꽤나 많이 들거든요. 다루기도 힘들어요. 출판사에서는 저작권과 판권만을 말할 뿐, 눈먼 이들이 책을 읽을 권리는 살피지 않아요. 그러니까, 돈만 생각하는 이 나라입니다.
알파벳 점글을 만든 사람 이야기로 《루이 브라유》(비룡소,2010)와 《세상 밖으로》(큰북작은북,2008)와 《Who? 루이 브라유》(다산어린이,2010)가 더 있습니다. 이 책들도 루이 브라이 님을 ‘위인전 이야기’로 바라볼 뿐입니다. 눈멀지 않은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책을 마음껏 읽고 즐기며 살아가는 이 터전에서, 눈먼 이들을 이웃이나 동무나 한식구로 여기는 삶자락으로까지 스며들지는 못합니다.
위인전은 이제 됐고, 지식책 또한 이제 됐습니다. 루이 브라이 님 책은 점글책으로 만들어 주든지, 점글책을 함께 만들어 내든지, 아니면 어린이와 푸름이가 점글을 배우는 길잡이책을 만들어 주십시오. (4344.4.20.물.ㅎㄲㅅㄱ)
― 루이 브라이, 점자로 세상을 열다 (데이비드 A.애들러 글,존 윌너·알렉산드라 윌너 그림,황윤영 옮김,보물창고 펴냄,2007.8.30./9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