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4.12. 

피리 부는 돼지 한 마리. 

참...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 2011.4.11. 

무릎이 쉴 날이 없구나... 이궁. 

 그래도 수건으로 치마놀이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上海天空下(シャンハイのそらのした) (大型本)
英 伸三 / 日本カメラ社 / 200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나부사 신조' 사진책은 모두 두 가지가 뜬다. 내가 바라는 이 책은 없을 뿐더러, 하나부사 신조 님한테 대표가 될 만한 다른 사진책 또한 안 뜬다. 그래도, 이 사진책에 살짝 걸어 놓으면서, 이이가 보여주는 사진길이 무엇인가를 밝혀 보고 싶다. 하나부사 신조 님 다른 사진책들을 구경할 수 있는 날이 있을까...

 

어린이 사진책으로 물삶을 보여주는 마음
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3 : 하나부사 신조(英 伸三), 《みず》(福音館書店,1982)



 사람은 밥을 먹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합니다. 한국사람이나 일본사람이나 중국사람, 웬만한 아시아사람은 밥을 먹으며 목숨을 잇습니다. 서양사람은 빵을 먹으며 목숨을 잇는다 할 만하겠지요. 그런데 막상 한국에서는 ‘목숨을 잇는 고마운 밥’ 이야기를 다루는 글책이나 그림책이나 사진책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더 맛나거나 멋지게 차리는 밥’을 ‘요리(料理)’라는 이름으로 붙인 책만 있을 뿐입니다. 한자말 ‘요리’ 말뜻을 살피면 그저 ‘밥하기’일 뿐이지만, ‘요리책’은 만들어도 ‘밥하기책’이나 ‘밥책’은 만들지 못하는 이 나라 어른들입니다.

 날마다 한 끼이든 두 끼이든 세 끼이든 네 끼이든 밥을 먹는 한국사람입니다. 흰쌀로 짓든 누런쌀로 짓든 보리쌀이나 온갖 곡식으로 짓든, 밥을 먹는 한국사람입니다. 밥짓기야 누가 누구한테 따로 어찌저찌 가르치지 않아도 다 할 만하다 여길는지 모릅니다. 요즈음은 전기밥솥에 물 얼추 맞춰 붓기만 하면 알아서 밥이 다 된다 할 만합니다. 찰밥이든 오곡밥이든 감자밥이든 쑥밥이든, 그냥 전기밥솥이 해 준다 할 수 있어요.

 더 많은 기계를 쓰고 새로운 전자제품을 쓰면서 집집마다 다 다르게 꾸리던 살림살이가 사라졌다 할 수 있습니다. 내 손으로 논을 일구고 가을걷이를 해서, 낟알을 털고 방아를 찧은 다음, 키질과 조리질을 거쳐, 불린 쌀을 불세기를 살피면서 짓던 밥이 아니기에, ‘밥을 하는 흐름’을 애써 글로 쓰거나 그림으로 그리거나 사진으로 찍을 까닭이 없을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하나하나 품을 들여 밥을 하든, 전기밥솥을 쓰든, 우리가 오늘 살아가는 밥삶 모습을 고스란히 이야기 한 자락으로 담을 수 있을 때에, 우리 집부터 내 아이한테 ‘밥이란 이렇게 해서 고맙게 한 그릇을 비울 수 있단다’ 하고 사랑을 물려주리라 생각합니다. 밥때가 되었으니 꼭꼭 씹어 얼른 흘리지 말고 먹으라 하는 데에서는 사랑을 물려주지 못하겠지요. 냄비밥으로 밥을 하든 전기밥솥으로 밥을 하든 무쇠솥을 쓰든, 밥솥에 안치기까지 쌀이 어떤 길을 거쳤고, 쌀이 되기 앞서 벼였으며, 벼이기 앞서는 모요, 모로 내기 앞서는 ‘벼 씨앗’인 볍씨인 줄을 헤아리는 흐름을 어른부터 스스로 느끼고 아이와 함께 살피면서, 이야기 한 자락 잃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밥하기와 맞물려 설거지하기로도 얼마든지 깊고 너른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밥하기에서는 온갖 반찬을 하는 매무새라든지, 부엌살림 쓰는 이야기가 더 태어납니다. 집안을 구석구석 쓸고닦는 이야기도 따로 있고, 옷가지를 빨래하는 이야기도 따로 있으며, 옷가지를 손질하거나 마련하는 이야기도 따로 있어요. 살림은 예쁘장한 그림으로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날마다 오랜 겨를을 많은 품을 들여 따사롭게 사랑하면서 어깨동무하는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한국에서는 가장 밑바탕이 될 살림살이부터 글로든 그림으로든 사진으로든 다루지 못하거나 안 다루기 때문에 다른 문화이든 예술이든 교육이든 정치이든 환경이든 제자리를 잃거나 잊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사진책 《みず(물)》(福音館書店,1982)를 넘기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합니다. 일본 복음관서점에서 “かがくのとも傑作集(과학동무 빛나는 책)”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열아홉째 책인 《みず》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사진쟁이 가운데 하나인 ‘하나부사 신조(英 伸三)’ 님이 빚은 작품입니다. 한국에서는 손꼽히는 사진쟁이가 ‘어린이 사진책’을 내는 일이 거의 없거나 아주 드물거나 좀처럼 찾아볼 수 없습니다만, 일본에서는 손꼽히는 사진쟁이들이 곧잘 ‘어린이 사진책’을 내놓습니다. 사진감으로 ‘어린이’를 삼는 이들이 곧잘 ‘어린이부터 함께 즐기는 사진책’을 마련해요.

 사람은 밥과 함께 물이 없으면 목숨을 잇지 못합니다. 어린이 사진책 《みず》는 바로 물을 다룹니다. 사람한테 없어서는 안 되는 더없이 고마운 님은 물을 다룹니다. 사람한테 반드시 있어야 할 첫째를 꼽자면 바람이 되겠지요. 물을 안 마시고 몇 날을 버틴다고 하더라도 숨을 들이마시지 않고는 몇 분조차 버틸 수 없을 테니까요. 여느 사람은 몇 분이 아닌 일 분조차 못 버틸 테고요.

 그러면, 한국에서는 ‘바람’을 다루는 사진책이나 그림책이나 글책이, 또 ‘물’을 보여주는 사진책이나 그림책이나 글책이, 여기에 ‘밥’이라든지 ‘옷’이라든지 ‘집’을 다루는 사진책이나 그림책이나 글책이 얼마나 될까요. 곁에서 늘 마주하거나 보듬거나 살피거나 돌봐야 할 살림살이를 책으로 얼마나 담아낼까요.

 연필이나 종이나 신발이나 젓가락이나 가방은 얼마나 잘 살피는 한국사람이라 할 만할는지요. 나무나 풀이나 꽃이나 짐승이나 들판이나 논밭이나 멧자락이나 바다나 소금밭은 어느 만큼 알뜰히 돌아보는 한국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요. 저잣거리나 골목길이나 바닷마을이나 동굴이나 숲은 어떻게 바라보는 한국사람이라 할는지요.

 사진책 《みず》는 아이들이 제 둘레에서 마주하거나 느낄 물을 차근차근 보여줍니다. 사진책 《みず》는 ‘과학동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책 가운데 하나이지만, 애써 ‘과학’이라는 틀에 맞추지 않아도 될 사진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과학으로 바라보자면 과학이지만, 삶으로 바라보면 삶입니다. 고마운 님으로 바라보면 고마운 님이요, 아름답거나 즐거운 놀이로 바라보면 아름답거나 즐거운 놀이예요.

 후두두둑 떨어지는 빗물을 느낍니다. 꽁꽁 언 얼음을 느낍니다. 냇물에 고개를 처박고 물속을 들여다봅니다. 도시에서는 따로 헤엄터를 찾아갑니다. 물고기가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바닷가에서 바닷물이랑 신나게 어우러집니다. 돌멩이 하나를 못물에 살짝 던져 물결이 이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목마른 사람과 고양이가 목을 축입니다. 사람뿐 아니라 골목고양이도, 비둘기도, 까치도, 참새도, 골목개도, 들짐승도, 새앙쥐도, 물을 마시지 않고는 목숨을 잇지 못합니다. 과학으로 들여다보기 앞서 아주 살가운 내 삶인 물입니다.

 고드름에 볼을 댑니다. 물이 얼어 얼음이 됩니다. 얼음이 녹아 봄이 되면 따사로운 날씨에 따라 숱한 푸나무가 봄비를 맞으며 새싹과 새잎을 틔웁니다. 물을 머금으면서 햇볕을 쬐고, 물을 맞아들이면서 바람을 쐬며, 물과 함께 밥을 먹습니다.

 아무래도 오늘날에는 물을 맑고 시원하게 얻는 삶보다는 돈을 더 많이 오래 벌 수 있는 삶을 찾아 보금자리를 마련하거나 일자리를 얻을밖에 없겠지요. 수도물이 못미더우면 먹는샘물 사다 마시거나 정수기를 달면 된다고 여기겠지요. 돈이 있으면 프랑스에서 날아온 물을 사다 마실 수 있고, 평창에서든 제주에서든 마음껏 사다가 쓸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내 몸을 이루는 2/3가 물이건 말건, 내 몸 어느 한구석도 돈으로 이루어지지 않건 말건, 물을 물 그대로 바라보거나 맞아들이지 못하는 요즈음 삶터입니다.

 생각해 보면, 한국땅에서는 물을 물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어른투성이입니다. 삽질을 막자는 목소리가 드높습니다. 그러나 커다란 삽질을 막는다 한들, 커다란 도시에 깃든 아파트나 살림집마다 내놓는 생활폐수는 어떻게 할까요. 한국에 가득 있는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에서 내놓는 열폐수는 어떻게 하나요. 공장마다 수없이 쏟아내는 공장폐수는 어쩌지요. 2013년쯤이면 한국땅 자동차 보유대수는 2000만 대가 넘어선답니다. 이 어마어마한 자동차마다 내뿜는 배기가스는 이 나라 물을 얼마나 맑거나 시원하게 지켜 줄까요. 삽질을 막는다고 물길을 살리지 못합니다. 원자력발전소를 줄이거나 없앤들 내 살림집 전기 씀씀이를 줄이지 않거나 내 물건 씀씀이를 가누지 않고는 열폐수와 공장폐수로 더럽혀지는 물길은 똑같이 더러워지고 맙니다. 돈을 들여서 한강·금강·낙동강·영산강을 살리지 못하듯, 돈을 들여서 더 맑거나 시원한 물을 마실 수는 없어요. 돈을 더 들인다 해서 아이가 더 똑똑하게 자라며 똑똑한 어른으로 홀로서기를 하지 않습니다.

 아이한테는 사랑보다 고마운 손길이 없습니다. 들과 멧자락과 바다와 하늘과 흙에는 돈이 아닌 사랑어린 손길로 살포시 보듬는 마음결이 없다면 맑은 넋이 깃들 수 없습니다. 사진책 《みず》는 아이들한테 과학 지식을 들려줄 생각이 없습니다. 사진책 《みず》는 아이들한테(또 이 사진책을 아이들한테 읽힐 어른들한테) 물이란 참말 무엇이고 물이란 우리 곁에 어떻게 있으며 물이란 내 삶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사랑과 믿음으로 살펴보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여줍니다. (4344.4.21.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발바닥 붙임딱지와 책읽기


 언제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와 내내 복닥이면서 집일을 하다 보면 한낮에 겨우 숨을 돌리는 즈음 쓰러지기 마련. 이무렵에 아이가 함께 낮잠을 자 준다면 더없이 고맙지만, 아이는 졸리면서도 낮잠을 꾸욱 참으며 뗑깡 부리며 놀기 마련.

 큰방 바닥에 털푸덕 쓰러지면서 “이제 이렇게 쓰러질 테니까, 벼리는 더 놀고 싶으면 혼자서 더 놀아.” 하고 말한다. 아이는 살며시 다가와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내 발 뒤꿈치를 쓰다듬으며 “아파? 아야 해?” 하고 묻는다. 발 뒤꿈치를 다친 적 없는데 뭔가 하고 고개를 빼꼼 들고 바라본다. 아, 내 발 뒤꿈치에 굳은살이 잔뜩 배겨 딱딱하니까 아픈 줄 아는가 보다. 하기는, 맨발에 고무신만 신으며 살아가니까 내 발은 온통 굳은살투성이일 테지.

 아이는 어디론가 쪼르르 갔다가 다시 쪼르르 와서는 제 놀잇감 넣은 다용도장 벽에 붙인 붙임딱지를 몇 떼어 내 발 뒤꿈치에 붙인다. “가만 있어 봐. 붙여 줄게.” 응, 아이야, 고거 붙인다고 안 아야거든?

 날이면 날마다 신나게 뛰놀다가 자빠져서 무릎이 깨지는 아이. 웬만하면 깨진 그대로 두지만, 깨진 데가 자꾸 또 깨지면 하는 수 없이 약을 바른 다음 밴드를 붙인다. 아이는 밴드 붙이기를 하면 ‘안 아야’라고 여기며, 제 놀잇감인 붙임딱지를 내 발에다 붙여 주려는 뜻이다. 옆지기가 “벼리야, 그렇게 붙이면 어떻게 걷니?” 하고 말하지만, 들은 척 만 척. 나는 발 뒤꿈치에 붙은 붙임딱지 때문에 그냥 더 드러눕고 쉬기로 한다. 아이는 혼자서 재잘재잘 종알종알 하면서 논다. 모처럼 이십 분쯤 느긋하게 드러누워 책을 읽었다. (4344.4.21.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피아노와 사진기와 책읽기


 시골집에 피아노가 들어왔다. 옆지기와 2007년 6월 5일부터 함께 살아온 지 네 해 만에 큰 살림이 하나 들어왔다. 새 피아노를 장만할 만큼 살림돈이 넉넉하지 않아 헌 피아노를 장만한다. 피아노를 장만한 돈은 아버지 어머니가 우리 식구한테 ‘딸아이를 생각해서 앞으로 잘 두라고 한 돈’을 깼다.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 된다거나 노래를 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장만하는 피아노가 아니라, 아이한테 퍽 좋은 놀잇감이 되는 피아노이기 때문에 우리 살림에 마지막 남은 목돈을 깼다.

 옆지기는 우리한테 무언가 목돈이 들어올 때에 ‘내가 바라는 파노라마사진기’를 장만하라고 으레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나 한 번, 두 번, 세 번 목돈을 벌었던 때에 이 목돈은 고스란히 살림살이를 장만하거나 아픈 집식구한테 들이는 돈으로 썼다. 내가 바라는 파노라마사진기는 몇 해 사이에 값이 껑충 올라, 이제는 삼백만 원쯤을 들여야 장만할 수 있는데, 이마저 물건이 없어서 살 수 없단다. 줄서서 기다리든 웃돈을 얹든 만지기 힘들단다.

 짐차에서 피아노를 내린다. 큰방 아이 놀잇감을 놓던 다용도장을 옆으로 밀고 피아노를 놓는다. 아직 피아노 자리를 잡지 않았으나, 아이는 걸상에 척 올라앉아 얼른 눌러 보고 싶다. 아이는 다른 곳에 마실을 갈 때에 피아노가 보이면 어김없이 피아노에 달라붙곤 한다. 우리가 아이한테 피아노를 딱히 가르치거나 보여준 적이 없는데, 용하게 피아노를 좋은 놀잇감으로 삼는다. 다른 어느 악기보다 피아노를 좋아한다. 다른 아이들도 피아노를 좋아할까. 다른 아이들은 피아노를 왜 좋아할까. 건반을 통통 누르면서 나는 다 다른 소리와 느낌을 얼마나 좋아할까.

 시골집으로 옮긴 지 한 해가 거의 다 된 오늘 들어온 피아노 앞에 앉아 본다. 건반을 몇 눌러 본다. 나도 일고여덟 살 때에 피아노학원에 다녔던 일을 아주 어렴풋하게 떠올린다. 아주 못 치지는 않았으나 또 잘 치지도 않았다. 집에서는 종이 건반을 바닥에 놓고 신나게 연습해서 눈을 감고도 얼마든지 칠 수 있게끔 애쓰곤 했다. 학원에 가서 건반을 눌러 볼 차례가 되던 때를 얼마나 기다렸으며, 내가 내 손가락을 놀려 건반을 퉁길 때에 나는 소리가 얼마나 좋고 부드러웠는지 모른다. 잘 쳐서가 아니라, 이런 피아노를 퉁길 수 있는 일이 기뻤다.

 지지난달부터 한 달 벌이가 겨우 백만 원이 되었다. 지지난달까지는 한 달 오십만 원 안팎 벌이로 어찌저찌 살림을 꾸렸다. 시골집에서는 달삯을 내지 않고, 얻은 집에서 살아가니까 밥값하고 보일러 기름값을 댈 수 있으면 살 만하다. 여기에 책을 사느라 들이는 값이 있다. 다달이 오십만 원으로는 퍽 빠듯하지만, 아주 못 살지는 않는다. 책을 내어 받는 글삯은 아직 없지만 올해에는 처음으로 글삯 벌이를 할 수 있을까 하고 꿈을 꾼다. 이런 살림살이였기에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우리한테 목돈을 얼마쯤 쥐어 주셨겠지. 그럭저럭 살 만하거나 이냥저냥 버틸 만한 살림이라면 따로 우리한테 도움돈을 줄 사람이 없으리라.

 한낮이 되어 옆지기가 피아노를 친다. 아이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마당에서 춤을 추며 논다. 볕바라기를 하면서 맞은편 우리 도서관 유리문에 제 모습을 비추면서 논다. 옆지기가 피아노를 쉬면 피아노 쳐 달라고 마당에서 소리를 빽 지른다. 나는 고단한 몸을 쉬려고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사진기를 쥐고는 두 사람 모습을 이쪽에서 찍고 저쪽에서 찍는다.

 이제 옆지기는 마당으로 나가서 볕바라기를 함께 한다. 아이는 자전거를 탄다. 오늘은 제법 발판을 구른다. 한두 번 앞으로 구르고, 한두 번 뒤로 구른다. 다리도 조금 길어졌고 다리힘도 조금 더 붙었는가 보다. 앞으로 하루하루 더 많이 구를 테고 더 많이 굴릴 수 있겠지. 볕바라기를 하는 옆지기하고 자전거를 타는 아이 모습을 말끄러미 바라보며 사진으로 담는다.

 나는 파노라마사진기를 써서 내가 좋아하는 헌책방이랑 인천골목길을 사진으로 담는 꿈을 꾸며 살았다. 이러한 꿈은 살림집을 시골로 옮기며 더는 못 품는다. 그저 내 손에 쥔 작고 가벼운 사진기로 내가 찍을 수 있는 모든 솜씨를 부려서 내 사랑을 담아서 찍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내 사진기가 훨씬 빼어나다 해서 우리 살붙이들 살아가는 모습을 더 사랑스럽게 찍을 수 있거나 더 즐겁게 찍을 수 있지는 않다. 시야율(화각 비율)이 떨어진들 어떠하고, 화소수가 낮으면 어떠한가. 대형사진기를 쓴대서 더 아름답다 싶은 사진을 얻지는 않는다.

 집식구들이 온누리에서 가장 아름답거나 가장 좋은 사람이라고는 여기지 않는다. 다만, 내가 살아가는 이 보금자리에서 누구보다 사랑하며 아낄 사람이라고 느낀다. 서로서로 아끼면서 좋아하고 보듬으며 살아야 즐겁다고 느낀다.

 나는 피아노를 칠 줄 모르고, 피아노를 배울 겨를이 없다. 밥을 하고 빨래를 하며 이모저모 서툴게 살림을 꾸리면서 피아노까지 할 틈이 없다. 옆지기는 사진을 몇 장 찍을 수는 있으나 사진기를 옳게 다룰 줄은 모르며, 사진기를 배울 겨를이 없겠지. 아이는 어머니하고 아버지하고 함께 살아가면서 무엇을 차근차근 배울까. 아이는 어머니랑 아버지랑 함께 지내면서 무엇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어떤 생각과 이야기를 쌓을까.

 아이는 어린 나날부터 사진기를 놀잇감으로 삼으며 놀았는데, 이제부터는 피아노를 놀잇감으로 삼으며 놀겠지. (4344.4.20.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