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걷는사람 시인선 56
김명기 지음 / 걷는사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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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10.10.

노래책시렁 512


《돌아올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김명기

 걷는사람

 2022.1.1.



  살림밥도 들숲밥도 마음밥도 이야기밥도 누리면서 글밥도 누리면 아름다울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고 싶은 이웃님이 있으면 언제나 ‘글쓰기’를 맨뒤로 놓으시라고 여쭙니다. ‘살림짓기’를 늘 꼭두에 놓고서, ‘들숲메바다’하고 ‘풀꽃나무’하고 ‘해바람비’를 나란히 아우르는 하루를 복판에 놓으라고 여쭈지요. 살림을 푸른빛으로 여미는 보금자리를 일구는 나날을 살면, 글이란 늘 저절로 샘솟거든요. 《돌아올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를 읽으면서 곱씹습니다. 우리는 ‘시인’이라는 일본스런 이름을 내려놓고서 ‘노래꽃’이라는 살림말을 품을 때라고 느낍니다. 살림을 지으면 늘 살림말을 펴고, 살림살이를 바탕으로 살림이야기를 하고, 스스로 살림순이에 살림돌이로 섭니다. 살림하는 사람이 나누는 말은 “씨앗을 틔우는 말꽃”일 테니, “시시한 시(詩)”가 아니라 “노을처럼 너울거리는 노래”를 누구나 반짝반짝 빚을 수 있습니다. 글감을 억지로 뽑으려고 하니 엉성합니다. 글감을 집밖에서 찾아나서려고 하니 짓궂어요. 밥하고 옷짓고 집살림을 돌보는 하루를 살면, 저절로 밥노래에 옷노래에 집노래가 흐릅니다. 먼발치 심심한 구경거리가 아닌, 손수 일으키는 꿈씨앗을 펼 적에 다같이 노래님입니다.


ㅍㄹㄴ


앞집 할매가 차에서 내리는 나를 잡고 묻는다 / 사람들이 니보고 시인 시인 카던데 / 그게 뭐라 // 그게…… / 그냥 실없는 짓 하는 사람이래요 / 그래? / 니가 그래 실없나 (시인/11쪽)


종일 비가 내린다는데 / 바깥 견사의 개들은 / 온기 없는 고요를 끌어 덮은 채 / 마냥 웅크리고 있다 / 온기 없다는 말은 어떤 / 간절함이 고인 것 같아서 ;/ 빗물 차오르는 물그릇에 / 자꾸만 눈이 간다 (호우주의보/46쪽)


기차를 기다리며 / 흡연실 구석에서 담배 피우는데 / 말쑥한 이가 다가와 담배를 빌린다 / 이렇게 빌려주고 / 돌려받지 못한 담배는 얼마나 될까 (서울역/112쪽)


+


《돌아올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김명기, 걷는사람, 2022)


곡비처럼 자꾸만 우는지도 몰라

→ 눈물종처럼 자꾸 우는지도 몰라

→ 계집종처럼 자꾸만 우는지 몰라

12


묵은 봉분이 있다

→ 묵은 묏등이 있다

→ 묵은 무덤이 있다

15


지금은 흐린 하늘 아래 바람 부는 일요일 하오 네 시경

→ 이제 흐린 하늘 바람 부는 해날 낮 네 시 무렵

→ 오늘은 흐린 하늘 바람 부는 해날 낮 네 시쯤

29


바깥 견사의 개들은 온기 없는 고요를 끌어 덮은 채

→ 바깥 개집에 개는 차갑게 고요를 끌어 덮은 채

→ 바깥 개우리에는 싸늘히 고요를 끌어 덮은 채

46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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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구멍만 바쁘다 - 이정록 동시집
이정록 지음, 권문희 그림 / 창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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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10.10.

노래책시렁 510


《콧구멍만 바쁘다》

 이정록

 창비

 2009.10.5.



  어린이는 “학교나 학원에 가야 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스스로 하루를 그리면서 신나게 놀며 배우는 길을 누리려고 어버이 곁으로 찾아왔습니다. 예부터 모든 어버이는 아이곁에서 일하고 살림했습니다. 어버이라면 아이를 집에 놓고서 밖으로 돈벌러 안 다녔어요. 어버이는 늘 집이 살림터이면서 일터인 얼거리였고, 아이는 어른곁에서 어깨너머로 지켜보면서 소꿉을 하며 삶을 배우고 살림을 느끼며 생각을 키우는 하루였습니다. 이제 웬만한 집마다 아침부터 아이어른이 갈라섭니다. 아이는 ‘학교’란 이름인 곳으로 가고, 어른인 ‘직장’이란 이름인 데로 가요. 아이어른은 저녁이나 밤이 되어서야 다시 만나는데, 이미 하루 내내 밖에서 뛰거나 움직이느라 지칩니다. 배울거리도 얘깃거리도 살림거리도 그냥그냥 혼자 속으로 품은 채 자리에 누워요. 《콧구멍만 바쁘다》는 못 쓴 글은 아니라고 느끼되, 이 글로 다루는 아이랑 어른은 느긋이 만나고 어울리면서 이야기할 짬이 하나도 없습니다. 깊고 넓게 하루를 들여다볼 틈이 아예 없다시피 합니다. 자꾸 뭘(사건·사고) 벌이려 하고, 뭘 안 벌이면 재미없는 나날인 듯 여깁니다. 이러다 보니 얼굴만 보며 이쁜지 좋아하는지 같은 데에 얽매입니다. 나무를 나무로 못 봅니다. 얼음새(펭귄)를 겉모습만으로 놀리고 비아냥거리는 말장난에 갇힙니다. 개구리 같은 이웃숨결 한살림을 아주 모를 뿐 아니라, 알려 하지 않아요. 이미 아이어른 스스로 학교·직장에서 괴롭거든요. 괴로워 죽겠는 굴레를 그냥 나오면 되는데, 아무래도 “귀찮아서 죽겠다(18쪽)”는 마음 탓에 겉만 훑고 끝나는구나 싶어요.


ㅍㄹㄴ


애들이 자꾸만 간지럼 태운다. / 갑자기 인기 짱이다. / 귀찮아서 죽겠다. / 입 다물고 도망만 다닌다. / 콧물 들이마시랴 숨 쉬랴 / 콧구멍만 바쁘다. (바쁜 내 콧구멍/18쪽)


교실 청소할 땐 / 플라타너스 이파리도 / 예쁘게 보였는데, // 운동장 청소 당번 되니 / 단풍나무 이파리도 / 얄밉게 보인다. (운동장 청소/23쪽)


똥이 자꾸 마려워 / 되똥되똥 // 목부터 꽁지까지 / 하얀 기저귀 // 끌러지지도 않아 / 어기작어기작 (펭귄/55쪽)


손발톱 / 안 깎아도 / 혼나지 않으니까. // 겨울방학 / 내내 잠만 자도 / 칭찬 받으니까. // 사내 녀석이 / 툭하면 운다고 / 꾸중 듣지 않으니까. (개구리는 좋겠다/58쪽)


+


《콧구멍만 바쁘다》(이정록, 창비, 2009)


큰아버지 댁이 외국으로 이사 갔습니다

→ 큰아버지네가 먼나라로 갔습니다

→ 큰아버지는 이웃나라로 갔습니다

40쪽


멀미 걱정이 태산입니다

→ 멀미를 크게 걱정합니다

→ 멀미를 몹시 걱정합니다

40쪽


꼬추를 조준해서 아빠의 오줌 폭포를 맞혔다

→ 꼬추를 겨냥해서 아빠 오줌발을 맞힌다

→ 꼬추를 잡고서 아빠 오줌줄기를 맞힌다

46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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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2158 : 시체 거점 만들어지기


시체를 거점으로 삼아 마을이 만들어지기 쉽거든요

→ 주검을 밑자리로 마을을 세우기 쉽거든요

→ 송장을 바탕으로 마을을 일구기 쉽거든요

《독·독·숲·숲 1》(세가와 노보루/박연지 옮김, 소미미디어, 2025) 129쪽


버섯마을은 주검을 밑자리로 삼습니다. 죽은 몸인 주검이 있어야 기운을 얻어서 퍼지는 버섯입니다. 버섯은 송장을 바탕으로 마을을 이룬다고 여길 만합니다. 숲에 몸을 내려놓은 짐승일 텐데, 새롭게 흙으로 돌아가서 풀꽃나무를 북돋우려면 버섯을 비롯한 여러 이웃이 힘씁니다. ㅍㄹㄴ


시체(屍體) : = 송장

송장 : 죽은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 사시(死屍)·시구(屍軀)·시수(屍首)·시체(屍體)·연시(沿屍)·주검

거점(據點) : 어떤 활동의 근거가 되는 중요한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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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2159 : 게 전제 거


미움받는 게 전제인 거야?

→ 꼭 미움받아야 해?

→ 미움부터 받아야 해?

→ 꼭 내가 미워야 해?

《루리 드래곤 3》(신도 마사오키/유유리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5) 17쪽


‘것’을 잇달아 쓰면서 한자말 ‘전제’를 사이에 놓으니 얄궂습니다. 다 털어냅니다. “미움부터 받아야 해?”로 손봅니다. “꼭 미움받아야 해?”로 손볼 만하고, “꼭 내가 미워야 해?”로 손보아도 어울려요.


전제(前提) : 1. 어떠한 사물이나 현상을 이루기 위하여 먼저 내세우는 것 2. [논리] 추리를 할 때, 결론의 기초가 되는 판단. 삼단 논법에서는 대전제, 소전제를 구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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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2160 : 이유는 왜일 것 같아


그런 말을 듣는 이유는 왜일 것 같아?

→ 그런 말을 왜 들을까?

→ 그런 말을 듣는 까닭을 알아?

→ 그런 말을 왜 듣는지 헤아려 봤어?

《루리 드래곤 3》(신도 마사오키/유유리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5) 97쪽


“이유는 왜일 것 같아?”라 하니 얄궂어요. 한자말 ‘이유’나 우리말 ‘왜’ 가운데 하나만 쓸 노릇입니다. “왜 들을까?”처럼 단출히 손질할 수 있습니다. “듣는 까닭을 알아?”나 “왜 듣는지 알아?”로 손질해도 되어요. “왜 듣는지 헤아려 봤어?”나 “왜 듣는지 짚어 봤어?”나 “왜 듣는지 살펴봤어?”처럼 살을 붙여도 어울려요.


이유(理由) : 1. 어떠한 결론이나 결과에 이른 까닭이나 근거 2. 구실이나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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