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과 글쓰기


 인천 골목동네에서 살던 때 늘 전기불빛에 가려진 달빛을 보려고 바둥거렸다. 아마 골목동네 작은 달삯집이 아닌 아파트숲에서 살았더라도 달빛은 얼마든지 볼 수 있었을는지 모른다. 어쩌면 골목동네 낮은 집들은 아파트에 가려 달을 올려다볼 수 없고, 골목동네 낮은 집들을 가로막은 높직한 아파트에서만 달을 살필 수 있을는지 모른다.

 멧기슭에 깃든 시골집에서 살며 언제나 달을 보고 별을 본다. 아마 몽골이라든지 티벳이라든지 아프리카라든지 칠레 멧기슭 같은 데에서 달이나 별을 본다면 한국땅 시골과 견줄 수 없이 아주 많이 보고 느끼며 가슴이 젖어들는지 모른다. 어쩌면 이 나라에서 올려다보는 달은 달답지 않다 할 만하고 별은 별답지 않다 하여도 틀리지 않다. 달처럼 생긴 작은 동그라미 하나에 별처럼 생긴 소금가루 몇몇을 보는 밤하늘일는지 모른다.

 아침부터 집 옆 고구마밭에서 고구마를 함께 캐며 놀던 아이는 낮까지 고구마밭에서 함께 어울려 논다. 아침 먹을 무렵을 보내고 낮잠 무렵이 지나면서도 흙을 맨발로 밟고 마음껏 뛰노는 재미에 푹 빠진다. 저녁에는 음성읍내 장날 마실을 한다. 집으로 돌아와서 하루 내 거의 안 먹은 밥을 억지로 먹인다. 아이가 가까스로 잠들었나 생각하면서, 지친 아빠는 먼저 까무룩 잠이 든다. 그러다가 밤 열 시와 열한 시와 새벽 두 시에 세 번 깬다. 아이가 자지러지듯 울어대기 때문.

 고단한 아기는 제대로 잠들지 못한다. 한참한참 울고 불며 칭얼거린 끝에 겨우 다시 잠들어 코를 곤다. 잠이 깨어 울어댈 때마다 한 시간씩 함께 잠이 깨어 토닥거리며 달랜다. 아이 울음이 가까스로 잦아든 다음에는 잠들기 어렵다. 이불을 무릎에 덮고 한참 가만히 앉아 있는다. 어설프게 쳐 놓은 창문가림천 사이로 달빛이 비쳐 든다. 조각 달빛 한 자락 내 잠자리로 비춰 든다. 달빛 어린 이부자리를 살살 어루만진다. 달빛에 기대어 내 마음을 몇 마디로 갈무리한다.

 고단한 아기 한참한참
 울고불며 칭얼거린 끝에
 겨우 잠들어 코 고는
 깊은 저녁 조각 달빛 한 자락
 내 잠자리로 비춰 든다.


 (4343.10.1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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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이라서 더 예쁘거나 곱다고 말할 마음은 없다. 다만, 시월로 접어들며 온통 누런 빛깔이다. 우리 집에는 금붙이가 반 돈은커녕 하나조차 없지만, 우리 집 둘레로는 온통 금투성이로다. 

- 충북 충주시 신니면 광월리. 2010.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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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층짜리 작은 아파트가 있는 조그마한 골목동네 조그마한 놀이터가 좋다. 이 조그마한 놀이터 모래밭에서 온갖 놀이를 다 즐길 수 있었고, 공차기 또한 즐길 수 있었다. 놀이터는 으리으리하게만 지어야 하지 않다. 놀이터는 놀이터다우면 되고, 어린이와 어버이 누구나 홀가분하게 마실을 나와 신나게 놀 수 있는 느긋한 곳이면 된다. 

- 인천 남구 도화1동. 2010.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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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
양희은 / 우석출판사 / 1993년 9월
평점 :
절판



 스무 살 색시 양희은과 마흔 살 아줌마 양희은
 [헌책방에서 만난 책 4] 양희은,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



 1952년에 태어난 양희은 님은 곧 예순에 접어듭니다. 지난 1991년은 양희은 님이 노래꾼이 된 지 스무 돌이 되는 해였고, 다가오는 2011년은 당신 노래 삶이 마흔 돌이 되는 해입니다. 양희은 님은 노래꾼으로나 라디오 사회자로나 널리 사랑받습니다. 이렇게 널리 사랑받는 연예인 가운데에는 이름값을 내세우거나 대필을 해서 책팔이를 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양희은 님한테서는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1993년에 당신 노래살이 스무 해를 돌아보는 산문책 하나를 내놓았는데, 이 책은 그리 사랑받거나 눈길을 모으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생각이란 생각하는 사람 마음이라 했으니, 이 책이 꽤 잘 팔리거나 두루 알려졌다고 생각해 봅니다. 이때에 양희은 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콧대를 세우거나 어깨를 우쭐거렸을는지요. 그러거나 말거나 한결같았을는지요. 어쩌면 당신 글쓰기가 퍽 괜찮다고 여기어 다른 산문책을 몇 권 더 써냈을는지 모릅니다. 쉰을 앞두고 책 하나 더 내놓는다든지 예순을 앞둔 이즈음 다시 새로운 책을 하나 더 내놓을는지 몰라요.

 1993년에 나온 뒤 그예 새책방 책꽂이에서 사라진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을 지난 2009년 12월에 서울 홍제동에 있는 헌책방 〈대양서점〉에서 만났습니다. 12월 11일이었다고 떠오르는데, 이날 이 책을 아주 뜻밖에 만나 집어들며 속으로 놀라워 했습니다. ‘양희은 님이 언제 이런 산문책을 다 냈을까? 참 놀랍구나. 난 참 모르는 책이 아주 많구나.’ 이때 옆에서 제 모습을 지켜보던 헌책방 일꾼이 넌지시 말을 건넵니다. “이 책(양희은 님 책) 꽂아 놓으면 금세 나갈 줄 알았는데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데요. 종규 씨가 처음으로 보는 거예요.” 다시금 놀라며 헌책방 한켠에 서서 책장을 넘깁니다. “이젠 웃을 수 있겠지요? 돈 때문에 그렇게 어두운 얼굴이었다면 돈을 갚은 뒤에는 웃을 수 있는 것 아니에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이다음에 어른이 되어서 지금의 미스 양과 같은 처지의 젊은이를 만나게 되면 스스럼없이 도와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두 가지가 우리가 받으려는 이자예요(38쪽).”

 두 달쯤 뒤 다른 헌책방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을 한 권 더 만나고, 다시 한 달쯤 뒤 또다른 헌책방에서 이 책을 한 권 더 만납니다. 두 권을 더 장만했습니다. 한 권은 고마운 분한테 선물로 드립니다. 한 권은 인문책을 힘써 펴내는 출판사 편집자한테 2011년을 맞이해 양희은 님 새로운 책 하나 길어올리거나 이 책을 다시 펴내시면 어떻겠느냐는 기나긴 이야기와 보탬말(기획안)을 달아서 건넵니다.

 그 뒤로 일곱 달쯤 지나는데, 다른 헌책방에서는 양희은 님 산문책이 잘 안 보입니다. 어쩌면 서너 달 사이 세 군데 헌책방에서 세 권이나 만난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은 바로 이무렵 저한테 찾아온 고운 무지개였을는지 모릅니다. 말없이 말을 건네는 좋은 말동무였을는지 모릅니다. 양희은 님 노래만 들어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는 속내를 살피면서 내가 걸어가는 내 삶길을 나 스스로 어떻게 추스르며 다스려야 좋을까를 북돋아 주는 밥 한 그릇이었다고 느낍니다.

 한 줄을 읽고 두 줄을 읽으면서 늘 되뇌었습니다. 나와 내 둘레 사람들한테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고운 마음밥이 되어 주지 않겠느냐고.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고운 마음밥을 얻었으면 나는 한결 고운 삶을 일굴 기운을 얻는 셈이요, 나 스스로 한결 기운을 내어 곱게 살아가고자 한다면 내 둘레 사람들은 나한테서 고운 기운을 얻을 텐데, 바로 이러한 기운은 헌책방에서 뜻밖에 만난 책 하나에서 비롯합니다.

 야금야금 읽어 2월 7일에 책을 덮습니다. 이때에도 홀로 생각에 잠깁니다. ‘나는 이 책을 곁에 놓고 읽으며 마음밥을 얻었는데, 다른 사람은 마음밥을 얻기가 어려울까. 출판사로서는 양희은 님 책보다는 노무현 옛 대통령이나 김대중 옛 대통령 책을 내놓아야 돈도 들어오고 이름도 알릴 수 있으려나.’ 그러나 모든 사람이 모든 책을 좋아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책 하나를 좋아해 줄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좋아하는 책을 모든 사람이 좋아할 수 없고,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책이랄지라도 한 사람은 안 좋아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헌책방이라는 곳을 ‘추억을 사먹는 곳’으로만 여깁니다만, 아무개는 헌책방이라는 곳에서 ‘고운 책 하나 만나 고운 내 삶을 일굴 힘’을 줄곧 얻습니다. “김민기는 작사·작곡·편곡·연주의 모든 일을 아무 계산 없이 식구에게 하듯 내게 베풀어 주기만 했다. 내가 얼마짜리의 일을 너에게 해 주었다는 식의 계산이 그에게는 도무지 없었다(46쪽).”

 지난밤, 아이가 기저귀에 오줌을 누어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데 “엄마, 기저귀.” 하고 잠결에 읊습니다. 엄마보고 기저귀를 갈라는 뜻입니다. 엄마는 힘들어서 몸을 거의 못 움직이는데 엄마한테 해 달라며 칭얼칭얼입니다. 여느 때에 아빠가 제대로 못하는 터라 아빠가 기저귀를 갈면 싫다는 소리일 테지요. 잠들 때에 언제나 엄마한테 안겨서 자고, 엄마 등짝이 한결 따스하다고 느끼니 아주 마땅한 칭얼칭얼이겠지요. ‘그래, 아빠가 잘 못하는구나. 미안하다. 추운데 얼른 아빠가 기저귀 갈아 줄게. 찬찬히 살며시 갈아 줄 테니 얌전히 있어 주렴.’ “동네 이 집 저 집 형편도 빤하고 구경거리도 많던 시절, 비 온 뒤 언덕에 서면 가회동에서 남산 중턱에 걸친 선명한 일곱 빛깔의 무지개를 볼 수 있었고, 운 좋으면 쌍무지개도 볼 수 있었다(99쪽).”

 동이 트고 아침이 밝습니다. 애 아빠 홀로 일어나 조용히 글을 씁니다. 이른아침 아이가 일어날 때까지 애 아빠가 홀가분하게 글을 씁니다. 아이가 아침잠을 삼십 분 더 즐기면 애 아빠로서는 삼십 분 더 글을 쓰고, 아이가 아침잠을 안 즐기고 새벽같이 일어나면 애 아빠로서는 글을 더는 못 씁니다. 애 아빠는 노상 아이가 아침에 조금 더 자 주기를 바랍니다.

 아침에 먹을 밥을 해야 하니 부엌으로 조용히 가서 쌀을 씻습니다. 물 흐르는 소리를 내지 않도록 살살 천천히 움직입니다. 밥을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이불을 털거나 방을 쓸고닦거나 하다 보면 하루는 참 금세 지나갑니다. 만화책 《꽃과 모모씨》(삼양출판사,2010)를 보면 밥상 하나를 차리느라 하루를 온통 다 쓰는 스물다섯 살 새색시 이야기가 나오는데, 굳이 만화책 이야기를 빌지 않더라도 집살림을 하는 이라면 누구나 밥상 하나 차리느라 온 하루를 다 쏟습니다. 밥하고 반찬만 내놓는다고 밥상 차리기가 끝나지 않을 뿐더러, 날마다 새로 밥을 하고 반찬을 하기까지 품이 퍽 많이 드는 한편, 손수 텃밭을 길러 푸성귀를 얻는다면 그야말로 온 하루를 다 바치고도 일은 끝나지 않습니다.

 집식구하고 얘기하면서 어린 날 어머니 삶을 가만히 곱씹곤 합니다. 홀로 볼일 보러 도시를 오갈 때이든 아이 손을 잡고 읍내로 마실을 다녀올 때이든, 내 어린 날 우리 어머니는 무엇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어찌 보냈을까 곰삭이곤 합니다. “당시는 미니스커트가 유행이었지만 내 처지에 비싼 스타킹과 하이힐, 그리고 미니스커트가 무슨 해당 사항이었을까? 물론 나 역시 청바지를 무척이나 좋아했지만 무엇보다도 그 옷이 내 분수에 맞았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우선 옷을 사 입을 형편이 못 되는데다 얻어 입는 옷마다 청바지였기 때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149쪽).”

 우리 어머니는 당신 아이한테 어떤 사랑을 나누어 주면서 당신 고운 삶을 보내었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집식구는 어떤 사랑을 둘레에 나누면서 당신 고운 삶을 셋이 함께 보내는가 헤아립니다. 생각만 한다고 알 수 없고, 헤아린다 해서 조금 더 읽을 수 있지 않습니다. 생각하는 사람이 생각을 않는 사람보다 낫다 여길 수 없습니다. 생각은 있되 몸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한결 덧없으며 슬픈 노릇입니다. “자기 부엌에서 자기 식으로 밥을 해 먹는 일, 제철 야채를 사다가 나물을 무치고, 맑은 국을 끓이고 제철 생선을 두어 마리 굽는 일, 그게 무슨 대수냐고 웃을지는 몰라도 나는 대단히 중요하다는 생각이다(245쪽).”

 스무 살 어머니를 생각하고 마흔 살 어머니를 떠올립니다. 이제 우리 어머니도 예순 살입니다. 어머니가 마흔 살이었을 때에 저는 열여섯이었습니다. 제가 마흔이면 어머니는 일흔에 가까운 나이이고, 우리 딸아이는 일곱 살이 됩니다. 제가 예순이 되면 우리 딸아이는 스물일곱 살이 되겠군요. 이때까지 어머니가 살아 계시면 여든네 살일까요. 어떤 분들은 백 살까지 살면 말벗 할 만한 이웃이 없어 쓸쓸하다 하는데, 백 살까지 살 수 있으면 내 또래는 거의 모두 죽어서 없을 테지만 내 한몸이 씨앗이 되어 힘차게 살아가는 숱한 어리고 젊으며 푸른 넋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함께 말을 섞지 않고 바라보기만 하여도 흐뭇한 곱고 예쁜 나무들이 곳곳에서 무럭무럭 튼튼하게 살아가니까 참말 기쁘며 사랑스러웁지 않으랴 싶어요. 그저 마주보고 있어도 그예 즐겁습니다. “미국에선 어떤 한 가지 물건이라도 회사마다 줄줄이 다른 상표로 만들어 내니, 어느 걸로 고르지? 고민하다가 날이 새는 것 같다(247쪽).”

 양희은 님은 당신 노래 삶자락 마흔 돌이 되는 2011년에 무언가 새로우며 남다른 잔치를 벌일까 궁금합니다. 앞으로 스무 살을 더 살아내어 여든 살이 될 무렵 당신 노래 발자취 예순 해를 곱씹으며 고운 노래잔치나 책잔치 하나 베풀어 줄는지 궁금합니다. 예순잔치까지는 힘들다면 쉰잔치여도 좋습니다. 잔치는 누가 차려 주지 않으며, 남이 차려 주는 잔치가 늘 기쁘지만은 않아요. 반드시 많은 사람을 불러모아야 하거나, 꼭 많은 사람한테 사랑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살림살이라서 떡국 하나 올려놓고 설날 차례상 차릴 수 있습니다. 버거운 살림이기에 밥 한 그릇과 미역국 하나로 생일잔치상을 수수하게 마련할 수 있습니다. 어찌 되든 잔치는 잔치요 명절은 명절이며 삶은 삶입니다. 고운 넋에서 고운 말이 샘솟고, 고운 말이 샘솟는 넋으로 고운 삶을 일구며, 고운 삶을 일구는 가운데 고운 노래를 줄기차게 부릅니다. 양희은 님 마흔 돌 노래잔치를 만나고 싶습니다. (4343.10.17.해.ㅎㄲㅅㄱ)


―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 (양희은 글/우석,1993.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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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지와 글쓰기


 밤 한 시 십일 분에 깨어난다. 아이가 자면서 기저귀에 쉬를 했다. 잠들기 앞서 엄마랑 아빠가 그토록 아이한테 “벼리, 쉬.” 하고 말했으나 끝내 쉬를 안 하고 잤으니. 낮 네 시쯤부터 쉬를 하자고 한 듯한데 아이는 쉬가 안 마렵다 했다. 참말 쉬가 안 마려웠겠지. 어쩌면 낮에 쉬를 한 번 하고 잠들었어도 깊은 밤에 쉬를 했을는지 모른다.

 오줌 기저귀를 갈고 나서 코를 푼다. 며칠 앞서부터 코가 퍽 나쁘다. 서울로 볼일 보러 다녀올 무렵부터 꽤 나빠졌는데, 서울에서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뒤로 훨씬 안 좋다. 몸 또한 몹시 힘들다. 그렇다고 드러누워 집일을 누구한테 떠넘길 수 없으며, 놀자고 신나게 소리치며 노래하는 아이를 못 본 척할 수 없다. 빨래를 널면서 아이랑 마당에서 뜀박질을 하고, 살짝살짝이나마 그림책을 펼치며 아이랑 함께 읽는다.

 보름쯤 앞서였나 잘 떠오르지 않는데, 보일러 기름을 넣으며 받은 좀 두꺼운 휴지를 접어 코를 푼다. 코를 푼 휴지는 잘 말려 놓는다. 다 마르면 이 휴지에 다시 코를 푼다. 하나로는 코를 풀 수 없어 한 장을 더 뜯어 두 장을 갈마들며 쓴다. 조금 두꺼운 휴지를 갈마들며 코풀기는 어릴 적 어머니한테서 배웠다. 어머니는 당신과 두 아들이 ‘코를 풀 때마다 새 휴지를 뜯으’면 집안에 휴지가 남아나지 않을 뿐더러 휴지가 남아나지 않으면 새 휴지를 사느라 살림돈이 많이 든다고 했다. 그래서 당신 두 아들한테 새 휴지를 자꾸 뜯지 말고 당신처럼 이렇게 “코를 한 번 풀 때에 위쪽부터 아래쪽으로 차근차근 내려와서 다섯 번은 풀고, 뒤집어서 다시 풀고, 그런 다음 이 휴지를 구겨 버리지 말고 잘 펴서 말린 다음, 다른 휴지 한 장을 뜯어 이렇게 코를 풀며 차근차근 말리면, 다시 코를 풀어야 할 때에 앞서 코를 푼 휴지가 어느 만큼 마르니까 이 휴지에 다시 풀면 된다.”고 했다. 어머니가 몸소 잘 보여주었기에 국민학교 이삼 학년 무렵부터 코풀기를 이렇게 해 온다. 뒤를 닦을 때에는 두루마리를 한 번에 두 칸씩만 뜯어서 닦으라 했다.

 어머니는 늘 걸레질로 물기를 훔쳤으나 때때로 걸레를 쓸 수 없어 휴지로 물기를 훔쳐야 할 때에는 ‘휴지를 잘 펴서 물기를 빨아들인 다음 곱게 물기를 짜내어 다시 쓰기’를 했다. “걸레 아닌 휴지로 물을 닦아야 할 때에는 휴지를 마구 뜯어서 쓰지 말고 한 장이나 두 장만 뜯어서 이렇게 살살 물기를 빨아들인 다음 물을 짜내어 다시 쓰면 돼.” 하고 일러 주었다.

 어머니는 요즈음 ‘물티슈’라 하는 퍽 두꺼운 휴지를 알뜰히 쓰신다. 이 물티슈로 개수대도 닦고 밥상도 닦으며 부엌 바닥도 닦는다. (4343.10.1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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