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악의


 사악한 악의 무리이다 → 사나운 무리이다 / 나쁜무리이다

 악의 집단을 격퇴하다 → 검은무리를 무찌르다 / 몹쓸무리를 물리치다

 악의 씨가 남았다 → 나쁜씨가 남았다 / 궂은 씨가 남았다


  ‘악(惡)’은 “1. 인간의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는 나쁨 2. 도덕률이나 양심을 어기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악인·악의·악역·악업·악녀·악담·악감정·악명’처럼 앞가지로 쓰이곤 하는데, ‘나쁜-’을 앞가지로 삼아서 ‘나쁜이·나쁜뜻·나쁜자리(나쁜몫)·나쁜일·나쁜여자·나쁜소리·나쁜마음·나쁜이름’으로 쓸 만합니다. 이러구러 ‘악 + -의’ 얼거리라면 ‘-의’부터 털어내고서 ‘각다귀·발톱·부라퀴·송곳니·엄니’나 ‘괄괄하다·개구쟁이·개구지다·개궂다’나 ‘날라리·호로놈·호래놈·후레아이’으로 손봅니다. ‘검은이·검님·검놈·깜이·깜님·깜놈·까망’이나 ‘검다·검은짓·까만짓·깜짓·검은판·검정·검정꽃·깜꽃’이나 ‘겨울·서늘하다·얼다·얼음·차갑다·차다·추위·한겨울’로 손볼 만합니다. ‘서슬·섬찟·소름·시리다·싸늘하다·쌀쌀맞다’나 ‘고리다·구리다·궂다·괘씸하다·얄궂다·짓궂다’나 ‘고린내·구린내·고린짓·고리타분하다·고약하다·고얀놈·고얀짓’으로 손보아도 돼요. ‘놈·놈팡이·이놈·저놈·그놈·그악스럽다·그악이’나 ‘끔찍하다·나쁘다·안 좋다·너무하다·사납다·사달·저지레’로 손볼 수 있고, ‘다랍다·더럼것·더럽다·썩다·지저분하다·추레하다’나 ‘마구·마구마구·마구잡이·막것·막나가다’로 손보면 되어요. ‘막놈·막되다·막돼먹다·막짓놈·막하다·만무방’이나 ‘말썽·망나니·개망나니·망나니짓·망나니질’로 손보고, ‘매섭다·매정하다·매운맛·맵다·맵차다’나 ‘모질다·몹쓸·몹쓸짓·못되다·못돼먹다·우락부락’으로 손볼 수 있어요. ‘무쇠낯·무쇠탈·쇠·쇠낯·쇠탈·야살이·얄개·양아치’나 ‘무섭다·무시무시하다·미치다·삼하다·앙칼지다’로 손보거나 ‘부끄럽다·새침·엉터리·옳지 않다·허튼짓·헛소리’나 ‘뻐근하다·쑤시다’로 손보아도 어울립니다. ㅍㄹㄴ



‘악의 축’ 운운하면서 말하자면 소극적인 안전보장 약속도 철회했습니다

→ ‘나쁜 축’이라 떠들면서 조용히 있겠다는 다짐도 버렸습니다

→ ‘몹쓸 축’이라 읊으면서 가볍게 받치겠다는 말도 물렸습니다

《여럿이 함께》(신영복과 네 사람, 프레시안북, 2007) 194쪽


전쟁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악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죠. 가난이나 기근, 굶주림, 인격 모독, 폭력, 거짓, 파괴

→ 싸움은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모든 나쁜짓이라고 할 수 있죠. 가난, 굶주림, 쓰레말, 주먹질, 거짓, 부숨

→ 싸움은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모든 끔찍덩어리라고 할 수 있죠. 가난, 굶주림, 윽박말, 주먹질, 거짓, 부수기

《저항하는 평화》(전쟁없는세상, 오월의봄, 2015) 354쪽


저 녀석들, 정말로 악의 조직이겠지?

→ 저 녀석들, 참말로 나쁜 무리이겠지?

→ 저 녀석들, 참으로 몹쓸 무리이겠지?

《드래곤볼 슈퍼 22》(토요타로·토리야마 아키라/유유리 옮김, 서울문화사, 2024) 131쪽


나에게서도 악의 꽃이 피어날까

→ 나한테서도 나쁜꽃이 피어날까

→ 나한테서도 썩은꽃이 피어날까

→ 나한테서도 구린꽃이 피어날까

《미식탐정 5》(히가시무라 아키코/김진희 옮김, 애니북스, 2024) 1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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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어라, 펜 3
시마모토 카즈히코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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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3.4.

책으로 삶읽기 1000


《울어라 펜 3》

 시마모토 카즈히코

 이정운 옮김

 미우

 2024.7.31.



《울어라 펜 3》(시마모토 카즈히코/이정운 옮김, 미우, 2024)을 읽었다. 석걸음은 어쩐지 그림감이 빠듯했는지 엉성하게 슥슥 날린 듯싶다. 그래도 붓끝에 힘을 싣고서 애썼구나 싶지만, 흔들리고 도무지 그림길이 안 떠올라서 헤매는 티는 어렵잖이 알아볼 수 있다. 글이건 그림이건 늘 같다. 온마음을 기울여서 온사랑으로 담기에 빛난다. 티끌이 깃들면 언제나 기우뚱한다. 붓이 울려면 웃을 노릇이고, 붓이 웃으려면 울어야 할 테지. 가시밭길을 달리기에 오히려 그림감이 샘솟는다. 아늑한 꽃길을 노닐기에 도리어 아무 글감이 안 떠오를 수 있다. 붓을 쥔 자리에서는 오직 붓끝을 쥔 이곳 이날 이 삶자리를 바라볼 노릇이다.


ㅍㄹㄴ


이것도 평소에 작업하다 기분전환으로 짬짬이 해치울 수 있는, 산뜻한 업무 중 하나다! (12쪽)


“일만 하다 보면, 놀고 싶어 죽을 것 같아 집중이 안 되고, 능률이 안 올라.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것도 싫어지지. 그런데 그 반대로, 제멋대로 시간을 허비하며 미친 듯이 놀다 보면, 좀 전까지 그렇게 싫던 일도 마구 하고 싶은 심경이 들지!” (31쪽)


‘아니, 아무도 잘못한 건 없다! 죄인이라면 안이하게 일감을 받을 대로 다 받아놓고, 이제까지 미뤄온 나 자신뿐이다!’ (43쪽)


“네가 다른 천체에서 이 지구에 올 때까지 필요로 했던 기술은 만화적으로 응용할 수 있을 거야.” (103쪽)


#吼えろペン #島本和彦


+


이것도 평소에 작업하다 기분전환으로 짬짬이 해치울 수 있는, 산뜻한 업무 중 하나다

→ 이 일도 그냥 가볍게 짬짬이 해치울 수 있고 산뜻하다

→ 이 일도 그럭저럭 놀며 짬짬이 해치울 수 있어 산뜻하다

12쪽


이번엔 내가 직접 가서 밀착 마크 해야겠어

→ 이제 내가 몸소 가서 달라붙어야겠어

→ 오늘은 내가 가서 맞붙어야겠어

39쪽


네가 다른 천체에서 이 지구에 올 때까지 필요로 했던 기술은 만화적으로 응용할 수 있을 거야

→ 네가 다른 별에서 이 푸른별로 올 때까지 쓴 솜씨는 그림으로 살릴 수 있어

→ 네가 다른 누리에서 이 파란별로 올 적에 쓴 재주는 신나게 살려쓸 수 있어

103쪽


나도 지금은 이 헤드기어를 안 벗을 거니까

→ 나도 오늘은 이 싸개를 안 벗을 테니까

→ 나도 아직은 이 머리쓰개를 안 벗을래

139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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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탐정 아케치 고로 5
히가시무라 아키코 지음, 김진희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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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3.4.

책으로 삶읽기 1001


《미식탐정 5》

 히가시무라 아키코

 김진희 옮김

 애니북스

 2024.3.26.



《미식탐정 5》(히가시무라 아키코/김진희 옮김, 애니북스, 2024)을 읽는다. 죽이고 죽는 줄거리가 그토록 재미나기에 이렇게 그림으로 담고 싶을까 하고 돌아본다. 아무래도 그린이부터 재미있다고 여기기에 담을 테고, 읽는이도 나란한 마음이리라. 나는 히가시마루 아키코 그림꽃은 되도록 다 읽으려고 하기 때문에 장만하지만, 《미식탐정》하고 《위장불륜》은 그야말로 안 내킨다. 그래도 《미식탐정 5》에서 ‘경찰·정치’를 슬쩍 한 마디로 짚은 대목은 마음에 든다. 우두머리와 벼슬아치뿐 아니라, 나라삯을 받는 이들은 ‘법치국가·안전’이라는 허울을 고스란히 따른다. ‘국민’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받아들일 때부터 우리는 ‘사람’이 아닌 ‘나라종’으로 뒹굴게 마련이다.


ㅍㄹㄴ


“너도 악당 해볼래?” “내가 미쳤어? 나는 요리할 때도 생선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선량한 사람이야!” (10쪽)


“일본은 법치국가이며 안전한 국가라고 국민이 믿기만 하면 돼.” (81쪽)


“이유없는 살인은 끼니를 때우기 위한 맛없는 요리와 같아. 식감도 별로고 맛도 없어서, 먹어도 먹어도 충족되지 않아.” (104쪽)


“매일 마음이 피폐해지는 사건들뿐이라, 아무리 경찰이라지만 저희도 마음이 어두워지거든요.” “이 머저리! 형사는 그러면 안 돼!” “아, 옙! 그야 그렇지만! 그렇긴 하지만! 불현듯 마음이 저들처럼 물들어버린 것 같을 때가 있지 않나요? 그럴 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저는 선을 넘지 않게 돼요.” (158쪽)


#ひがしむらあきこ #HigashimuraAkiko #東村アキコ #美食探偵


+


일본은 법치국가이며 안전한 국가라고 국민이 믿기만 하면 돼

→ 일본은 반듯하며 걱정없다고 사람들이 믿기만 하면 돼

→ 일본은 올바르며 믿음직하다고 믿기만 하면 돼

81쪽


나에게서도 악의 꽃이 피어날까

→ 나한테서도 나쁜꽃이 피어날까

→ 나한테서도 썩은꽃이 피어날까

→ 나한테서도 구린꽃이 피어날까

143쪽


원래도 개점휴업 다름없잖아

→ 워낙 비었잖아

→ 늘 쉬는 셈이었잖아

151쪽


역시 다들 본능적으로 해초를 원하는구나

→ 다들 몸으로 바다풀을 바라는구나

→ 다들 몸이 말을 찾는구나

187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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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3.4. 트럼프·젤렌스키 참사? 우크라이나 전쟁부패?



  ‘트럼프·젤렌스키 평화협상 결렬’이라는 글만 잔뜩 뜬다. 그런데 무엇이 참이고 민낯일까? 일찍부터 우크라이나는 ‘푸른별 으뜸 썩은나라(부정부패 국가)’로 손꼽혔다고 한다. 아직 바이든이 미국 우두머리이던 2024년 9월 26일 저녁에, 다른 곳도 아닌 〈전남일보〉에 ‘전남대 교수’가 쓴 긴글이 실린다. 이러한 글은 왜 ‘주류언론’에 안 실릴까? 또는 안 실을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땅을 놓고서 싸우고 치고받고 죽이는 모습만 ‘주류언론’에서 다루고, 이런 모습만 ‘소비’하라고 부추기는 얼거리이지 않을까?


  ‘트럼프·밴스’는 왜 ‘젤렌스키’하고 말다툼을 벌였을까? ‘주류언론’ 사람들이 여태껏 속이던 ‘젤렌스키 뒷낯’을 드러내는 자리이지는 않았을까? 여태 ‘주류언론’ 그늘로 가려놓은, 우리 스스로 모르거나 안 쳐다보던 썩은짓(부정부패)을 제대로 바라보기를 바라는 자리이지 않았을까?


  〈전남일보〉는 꽤 오래도록 “〈우크라이나 전쟁과 고려인〉”이라는 이름으로 두 나라 사이에서 일어나는 다툼이 어떤 얼거리인지 알리는 글을 실었다. 전라남도 작은새뜸이 다루는 글이기에 ‘포털 검색’에서 잡기도 어렵다만, 이미 ‘우크라이나 부정부패 이야기’는 차고 넘쳤는데, 우리 스스로 눈감고서 안 들여다본 나날이지 싶다.


https://www.jnilbo.com/section.php?sid=458


  “우크라이나 전쟁과 고려인 : 대형 부패, 젤렌스키 측근·군 지도부가 대부분”이라는 글은 모두가 꼭 찬찬히 짚고 읽고 생각해야지 싶다. 그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 쳐들어간 싸움판을 넘어서, 매우 커다란 더럼늪이 우크라이나에 깊넓게 있을 만하다. 우크라이나는 ‘체르노빌’이 터진 그 나라이다. 체르노빌이 왜 우크라이나에 있었을까?


https://www.jnilbo.com/74956793542

  누리바다(인터넷세상)는 오히려 끝없이 넘치는 글물결(정보홍수) 탓에 민낯과 속낯을 감추고 속이는 구실을 일삼기도 한다고 느낀다. 휩쓸리지 않는 눈을 떠야지 싶다. 참모습과 속낯을 바라보고서 다스리는 매무새를 일으켜야지 싶다.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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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어느 날부터

서울 숭실대 옆에 있는

〈라이브러리 두란노〉에서

새롭게 책빛잔치(책방 사진 전시회)를 연다.

이 책빛잔치에서 쓸 밑글을 적어 본다.


책빛잔치 날짜를 잡으면

그때 새로 알리기로 하고,

밑글부터 걸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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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잖고 쉬면서 배우는 책숲마실

― ‘해날’에도 책집에 갑니다



  지난날에는 흙날(토요일)이나 해날(일요일)에 쉬는 가게가 드물었습니다. 설이나 한가위라 하더라도 여는 가게가 수두룩했습니다. 이 가운데 마을책집은 한 해 내내 열었습니다. 온나라 작은책집은 “한 해 삼백예순닷새 모두 여는날”로 꾸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 해 삼백예순닷새 내내 책숲마실”을 했습니다. 더구나 날마다 적어도 두세 군데 작은책집을 걷거나 두바퀴(자전거)를 달려서 찾아갔습니다. 때로는 하루에 서너 군데 작은책집을 찾아갔습니다.


  나고자란 인천을 떠나서 서울에서 스무 살을 보내던 1994년부터 이런 책숲마실을 했고, 1995년 11월 6일에 싸움터(군대)에 들어가야 했기에 1995년 11월 5일까지 이런 발걸음이었고, 1997년 12월 31일에 드디어 싸움터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에, 바로 이날 1997년 12월 31일에는 서울 용산 〈뿌리서점〉하고 인천 배다리 〈아벨서점〉을 들러서 “이제 밖으로 돌아옵니다! 이제부터 자주 뵙겠습니다!” 하고 활짝 웃음지었습니다. 어버이한테 절을 하러 가기 앞서 책집부터 들러서 책집지기한테 절을 했어요.


  이날부터 2003년 9월 30일까지 그야말로 날마다 두서너 군데 책집을 늘 찾아갔습니다. 2003년 9월 30일부터는 서울과 충주를 오가면서 ‘떠난 이오덕 어른이 남긴 글과 책’을 추스르는 일을 맡았어요. 이러느라 이때부터는 “날마다 두서너 군데 책숲마실”을 멈추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충주 멧골집을 벗어나면 언제나 책숲마실을 했고, 떠난 이오덕 어른이 남긴 글과 책을 갈무리하는 동안에는 “이오덕 어른이 남긴 글과 책을 하루 내내 읽고 되읽고 곱읽고 새겨읽으며 살았”습니다.


  무슨 젊은이가 책집만 다니느냐고, 짝꿍도 안 사귀느냐고, 어디 놀러가지도 않느냐고 핀잔하는 소리를 늘 들었지만, 우리나라 어느 고장이나 고을로 볼일을 보러 다녀올 적에도 늘 책집부터 찾았고, 곧잘 목돈을 모아서 여러 고장과 고을에 깃든 오랜 작은책집을 찾아다녔습니다.


  날마다 끝없이 책집에 찾아가서 읽고 사고 새기느라 책값만으로도 주머니가 텅텅 비지만, 1998년 여름부터 찰칵이(사진기)를 장만해서 찰칵찰칵 남겼습니다. 사진기자나 사진작가라는 이름을 내거는 이들은 도무지 “책을 사읽는 길손”으로 책숲마실을 하는 일이 없다시피 하더군요. 책을 사읽으려고 책숲마실을 안 하는 매무새라면, 그분들은 아무리 값비싸거나 훌륭한 찰칵이를 어깨에 걸쳤어도 ‘책빛’을 ‘그림(사진)’으로 못 담거나 눈망울이 일그러집니다. 보다 못해서 제가 스스로 책집을 그림으로 남기자고 생각했습니다.


  책값으로 쓸 돈을 찰칵이를 장만하려고 헐자니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끼니를 굶으면서 책을 사읽고 찰칵찰칵 찍었습니다. 필름을 장만하는 날은 낮밥과 저녁을 굶고, 이튿날에도 두끼를 굶습니다. 찍은 필름을 찾으려고 맡길 적에도 서너끼를 내리 굶습니다. 책집을 찍고 나면 언제나 책집으로 다시 찾아가서 ‘그동안 찍은 그림’을 건넸습니다. 찍고 또 찍고, 종이로 뽑아서 건네고 또 건네기를 끝없이 되풀이했습니다. 책집을 찍어서 그림으로 남기는 뜻은 오직 하나예요. 저한테 책빛을 베푼 이 아름다운 작은책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책집지기님부터 스스로 알아보기를 바랐어요, 이 아름다운 작은책집 살림자락을 두고두고 이웃님한테 보여주고 싶었어요.


  2000년부터 ‘책빛잔치(책집 이야기 사진전시)’를 열었습니다. 책빛잔치를 열고 난 뒤에는 모든 ‘책집그림(책방 사진)’을 책집지기나 책집손님한테 그냥 주었습니다. 2025년 2월까지 예순 자리 넘게 책빛잔치를 조촐히 열었는데, 그동안 뽑은 거의 모든 그림은 ‘책빛잔치’를 연 책집에 고스란히 놓았습니다. 굳이 그림마당(갤러리·전시장)을 따로 빌려서 책빛잔치를 열지 않았어요. 언제나 작은책집이나 책골목에 그림을 걸었습니다.


  사람들이 책빛그림을 보려고 책집으로 마실을 와서 책을 장만하기를 바랐습니다. 책빛그림을 바라보면서 작은책집이 우리 곁에서 얼마나 사랑스럽게 작은자리를 일구는 작은씨앗 노릇을 했는지 알아보기를 바랐어요.


  2014년 즈음 이르러 더는 필름으로 못 찍습니다. 제가 쓰는 ‘일포트 델타 프로페셔널 400 필름’을 우리나라에서 더는 사기 어려웠습니다. 값도 껑충 뛰었으나, 단골로 드나들던 사진집에 마지막으로 남은 필름을 장만해서 찰칵이에 마지막으로 건 뒤로는 눈물을 삼키고서 디지털찰칵이로만 찍기로 했습니다. 디지털찰칵이로 담은 그림을 드문드문 몇 자락 끼워서 내걸기는 했지만, 아직은 그냥 모셔 놓습니다. 그냥 모셔 놓은 숱한 그림을 2020년 겨울에 크게 날리기도 했습니다. 오래 쓰던 셈틀이 숨을 거두었거든요. 이를 어쩌나 싶었지만, 셈틀에 있던 그림이 날아갔어도 그동안 다리품을 팔면서 오간 책집에서 마주한 책과 빛살은 늘 마음에 흐릅니다.


  그리고, 잃은 그림은 새로 찍고 다시 찍으면 됩니다. 비록 이제 닫고서 사라진 책집이라면 다시 찍을 수 없지만, 오늘 찾아갈 수 있는 작은책집을 바라보면서 작은걸음으로 틈틈이 찾아가서 처음부터 찍으면 즐겁다고 봅니다.


  그리 멀잖은 지난날에는, 모든 작은책집이 한 해 내내 쉬잖고 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책집지기님하고 나란히 쉬잖고 책숲마실을 했습니다. 그리고 책집에 깃들 적에는 마음을 쉬고 몸을 쉬면서 배우는 나날이었습니다. 책숲마실을 한 해 내내 하면서 노상 기운이 샘솟았습니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 책을 사고 필름을 사느라, 하루 한끼를 잇기도 빠듯했습니다. 그래서 이틀 한끼나 사흘 한끼도 곧잘 했습니다. 제가 굶으면서 책을 사읽고 찰칵찰칵 찍는 줄 알아챈 여러 책집지기님은 “이보게, 밥은 먹으면서 책을 사읽어야지?” 하면서 팔을 붙들었어요. “나하고 같이 밥 좀 먹게.” 하면서 책집지기님하고 자주 저녁 한끼를 누렸어요. 책집지기님한테 한끼를 얻어먹으면 이 한끼로 하루를 살았고, 이튿날을 버티었어요.


  그야말로 바보스럽고 어리석은 책벌레 발걸음입니다. ‘해날’에도 설날에도 여는 작은책집이기에, 해날이건 설날이건 책집에 갔습니다. 그리고 읽었지요. 그리고 담았어요. 읽고 담는 책숲마실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갈 길삯이 하나도 없으니까, 책더미를 등에 이고 두 팔에 묵직하게 들고서 집까지 걸어갑니다. 책집부터 집까지 두어 시간쯤 가볍게 걸었습니다. 걷다가 팔이 저리고 등이 결리면 책짐을 내려놓고서 길불(가로등)에 기대어 책을 읽었습니다. 다시 팔심과 다릿심이 오르면, 주섬주섬 챙겨서 걸었어요.


  이제는 서울이나 인천이 아닌 전남 고흥이란 두멧시골에서 보금자리를 꾸립니다. 먼먼 시골에는 큰책집도 작은책집도 없습니다. 서울 인천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순천 청주 강릉 춘천 수원 부천 전주 구미 진주 포항 안산 정읍 목포 군산 진안 구례 제주 어느 곳이건, 책집이 있는 곳을 스치면 꼭 그곳 책집부터 발걸음을 하는 나날입니다. 이러면서 장만한 책보따리는 밤에 길손집(숙소)에 묵을 적에 하나하나 헤아리면서 되읽습니다. 고흥까지 돌아가는 기나긴 버스길에 더 읽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읽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책숲(도서관)에 책을 옮기면서 더 살핍니다.


  작은책벌레가 작은책마실을 작은걸음으로 누리면서 작은손길로 담은 그림입니다. 아직 책을 곁에 두지 않는 이웃님이 책을 곁에 두기를 바라면서 담은 그림입니다. 오래오래 책을 곁에 둔 이웃님이 한결같이 책꽃빛을 누리기를 바라며 담은 그림입니다. 그저 사랑해 주시기를 바라요.


  “책을 읽는 나”를 사랑합니다. “책을 짓는 너”를 사랑합니다. “책 곁에서 만나는 우리”를 사랑합니다. “책이 되어 준 나무와 숲”을 사랑합니다. “책이 되기 앞서 우거진 나뭇가지에 내려앉아 노래하던 새”를 사랑합니다. 책이라고 하는 알뜰살뜰한 빛살이 태어난 이 파란별을 사랑합니다.


  종이꾸러미만 책이지 않습니다. 해와 바람과 비도 책입니다. 돌과 흙과 나무도 책입니다. 풀과 꽃과 벌레도 책입니다. 나비와 짐승과 헤엄이도 책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이야기란 다 다른 책입니다. 한 해 내내 종이책을 읽을 수 있고, 언제나 한꽃처럼 바람책과 바다책과 하늘책과 마음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ㅍㄹㄴ·ㅅㄴㄹ·ㅎㄲㅅㄱ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에서.

 책벌레 최종규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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