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일 엄마라면 인성교육시리즈 가족 사랑 이야기 3
마거릿 파크 브릿지 지음 / 베틀북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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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하고 나눌 가장 대수로운 한 가지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7] 마거릿 파크 브릿지·케이디 맥도널드 덴튼, 《내가 만일 엄마라면》(베틀북,2000)



 그림책 《내가 만일 엄마라면》을 읽습니다. 딸아이와 어머니가 마주앉아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는 줄거리를 다룹니다. 딸아이는 제 어머니가 저를 얼마나 알뜰히 사랑하는가를 느끼지만, 이렇게 사랑을 느끼먄서도 저 하고픈 대로 다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아이로서 무엇을 하고픈지를 하나하나 이야기합니다. “내가 만일 엄마라면 나는 내 딸아이한테 이렇게 해 주겠다”는 꼬리말을 달아 조곤조곤 말을 겁니다.


- “엄마, 엄마도 다시 어린애가 되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럼, 얘야. 엄마도 그럴 때가 있지.”


 어머니는 아이가 하는 말에 토를 달지 않습니다. 아이가 마음껏 이야기를 하도록 지켜보고 귀담아들으며 맞장구를 칩니다. 아이는 어머니한테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홀로 마음껏 꿈나래를 펴고 즐거운 놀이나라를 오갑니다. 어머니는 아이가 하는 말에 터무니없다느니 벌써 다 하는 일이잖니 하고 따지지 않습니다. 아이 스스로 말문이 터지도록 바라보고 새겨들으며 북돋웁니다. 아이는 제 어머니랑 둘이서 이야기꽃 피우는 한때를 기쁘게 누립니다.

 딸아이한테 아버지로 살아가는 제 나날을 돌이킵니다. 내가 아버지 아닌 아이라 한다면, 아이 눈높이로 마주할 때에 내가 어떤 아버지인가를 곱씹습니다. 나는 내 아이하고 즐거이 놀아 주는 아버지일까요. 나는 내 아이가 먹고프다는 먹을거리를 제때 알뜰히 마련해 주는 아버지일까요. 나는 내 아이가 노래를 부르고 싶다 할 때에 노래를 불러 주며, 아이가 멧길을 걷고프다 할 때에 손잡고 멧길을 나란히 오르내리는 아버지일까요.

 할아버지가 설빔으로 사 준 색동저고리와 빨간치마를 입은 채 잠자리에 들고파 하는 아이를 보드라이 타이르면서 이듬날 증조외할머니 뵈러 가는 길에 입자면 예쁘게 벗어 놓고 이듬날 예쁘게 입어야 한다고 이야기해 주는 아버지인가 돌아봅니다. 아이로서는 더 입고플 뿐 아니라, 잠자리에서도 입고플는지 모릅니다. 구겨지건 말건 밤새 아이가 오줌을 누어 오줌에 젖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을는지 모릅니다. 막상 오줌을 많이 누어 치마나 저고리까지 젖고 만 다음에 아쉽게 여기겠으나, 이렇게 닥칠 때까지는 저 하고픈 대로 하려는지 모릅니다. 많이 구겨지거나 더러워지거나 말아 못 입는 아쉬움을 아이가 스스로 느끼도록 놓아 두어야 할는지 모릅니다.

 곰곰이 되새기면, 이제껏 더럽히거나 오줌으로 적셔서 못 입고 빨아야 하는 옷이 꽤 많았습니다. 정작 입고 나가야 할 때에 변기에 아무렇게나 앉았다든지 쉬를 다 안 누었는데 벌떡 일어났다든지 하면서 꼬까옷을 벗어야 한 적이 퍽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빨래감이 늘어나니까 애 아빠는 주름살이 더 패는데, 주름살보다 아이 스스로 무척 좋아하는 옷을 살짝 잘못해서 못 입는 일이 훨씬 슬픕니다. 그래도 아이는 대문을 나서며 엄마 아빠 손을 나란히 잡고 마실을 가면 금세 잊고 노래를 부릅니다. 어쩌면 아이한테는 옷은 옷대로 치마 입기를 즐기고 싶으면서, 엄마 아빠 손을 나란히 잡으며 시골길을 달리고 싶은 한편, 버스도 타고 얼음과자도 얻어 먹고 사람 구경도 하고 외할머니 뵈러도 가는 나날이 즐거울는지 모릅니다. 아빠가 아빠 일에만 바쁘거나 엄마가 엄마 일에만 빠져 지내는 나날은 달갑지 않을 테지요.

 자주는 아니고 많이도 아니나, 서른두 달을 넘긴 자그마한 딸아이한테 심부름을 시킵니다. 아이한테 시키는 심부름 가운데 아이가 잘 해내는 심부름은 몇 가지 안 됩니다. 그렇지만 하루하루 아이가 해내며 뿌듯해 하는 심부름은 조금씩 늡니다. 아버지가 “잘했어. 고마워요.” 하고 머리를 쓰다듬을 때 아이가 좋아하는 낯빛이란 아주 어여쁩니다. 심부름을 하거나 집일을 거드는 차분한 얼굴빛이란 매우 예쁩니다. 아마 일하는 사람 누구나 이렇게 일하는 매무새가 아름답겠지요. 근심걱정 내려놓고 새근새근 잠든 아이 얼굴도 가없이 예쁘장하고, 일하며 애쓰는 아이 얼굴도 티없이 아리땁습니다.


- “내가 엄마라면, 내 딸이 무슨 말을 하든 언제나 잘 들어 줄 테니까요.” “소곤소곤 속삭여도?” “한 마디도 하지 않아도, 나는 언제나 내 딸의 말을 다 듣고 있을 거예요.”


 그림책 《내가 만일 엄마라면》을 읽습니다. 아이가 엄마가 되어 하고프다는 일이나 놀이란 애 아버지로서 그닥 당기지 않습니다. 내킨다거나 달갑지 않습니다. 아니, 내가 아이일 때를 떠올린다든지 내가 내 아이만 한 자리로 돌아간다든지 하면서 헤아려 보아도 썩 즐거울 만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내 딸한테 멋진 침대 덮개를 사 주고 은쟁반에 아침을 차려다’ 주겠다는 이야기가 썩 가슴으로 와닿지 않습니다. ‘딸이 밥 먹는 동안 옆에 앉아 지켜본다’든지 ‘딸이 학교에 갈 때 빨간 실크 드레스를 입게 해’ 준다는 일도 그리 마음에 와닿지 않습니다. 으레 하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여느 때에 굳이 안 할 까닭이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새삼스레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아이는 학교에 가야 하나? 아이는 학교에 보내야 하나? 오늘 이 나라에서 학교는 어떠한 곳인가? 아이는 학교에서 얌전빼기처럼 굴도록 해야 하나? 아주 살짝 얌전히 있기는커녕 조금이라도 틈이 있으면 뛰고 구르며 노래하거나 춤추며 노는 아이가 펑퍼짐하니 끌리는 치마를 입고 놀 수 있을까?

 ‘내 딸을 회사로 데려가서 내 책상 위에서 춤추게 해’ 준다는 이야기 또한 그리 재미나지 않습니다. 눈 덮인 텃밭이나 얼음 꽝꽝 언 논자락에서 같이 손을 잡고 춤을 춘다든지, 멧꼭대기까지 올라서서 온 마을을 휘 둘러보며 춤을 추는 일이 훨씬 재미나니까요.

 그래도 ‘내 딸이 친구들이랑 놀 수 있게 커다란 나무 위에다 집을 지어’ 주겠다는 꿈은 신날 만합니다. 그렇지만, 더 생각한다면 굳이 커다란 나무 위에 집을 짓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이 커다란 나무를 마음껏 타고 오르면서 놀면 되니까요. 아버지로서 집을 지어 줄 수 있으나, 아이들이 저희끼리 힘을 내고 슬기를 모두어 집을 짓도록 옆에서 말없이 도와주는 일이 훨씬 즐거우리라 느낍니다.

 그림책 《내가 만일 엄마라면》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숱한 사람들이 복닥이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인 나머지, 이 커다란 도시에서는 아이나 어른이나 느긋하게 꿈을 꾼다든지 이야기꽃을 피운다든지 꿈나라를 떠돈다든지 하기란 몹시 힘듭니다. 너무 바쁘며 너무 고단합니다. 매인 일이 지나치게 많고, 돈은 돈대로 많이 벌어야 먹고살 만합니다.

 아이하고 나눌 한 가지라면 사랑입니다. 아이한테 물려줄 한 가지라면 사랑입니다. 아이가 가슴으로 꼬옥 받아안으면서 키울 만한 한 가지라면 사랑입니다.

 이 나라 어른들은 한결같이 아이한테 사랑 아닌 돈과 시험성적과 가방끈과 아파트 따위를 물려주려 합니다. 아니, 이 나라 어른들은 아이들이 이 어린 나이부터 고작 돈과 시험성적과 가방끈과 아파트 따위만 생각하도록 꽁꽁 옭아맵니다. 너른 꿈, 고운 사랑, 빛나는 믿음, 예쁜 손길, 구리빛 얼굴, 튼튼한 몸, 따스한 마음, 착한 몸짓, 싱그러운 매무새를 건사하도록 이끌지 못하는 오늘날 도시 어른들이에요. 아니, 어른들부터 스스로 재미없게 살아갑니다. 어른들부터 참말 따분하게 살아갑니다.

 어른들이 나누는 이야기란 무엇인가요. 어른들은 무슨 이야기를 서로서로 주고받나요. 어른들은 무슨 책을 읽나요. 어른들은 무슨 일을 하느라 그토록 오랜 말미와 많은 품과 깊은 마음을 바치는가요.

 꿈은 없이 돈만 있기 때문에 《내가 만일 엄마라면》 같은 이야기조차 꺼내기 어려운 우리 삶이라고 느낍니다. 사랑은 없이 아파트와 자가용에 얽매인 나날이기 때문에 《내가 만일 엄마라면》 같은 이야기조차 책으로 사서 읽히거나 읽어야 하는 우리 삶이로구나 싶습니다.

 아이는 아이답게 살고, 어른은 어른다이 살아야 합니다. 아이이든 어른이든 누구나 사람다움을 예쁘게 보듬어야 합니다.

 ‘나는 몇 살 어린이예요. 나는 몇 살 어린이로서 오늘 하루 이렇게 즐기거나 누리며 살아요.’ 하는 이야기를 수수하게 들려주면서, ‘나는 몇 살 어른이에요. 나는 몇 살 어른으로서 오늘 하루 이처럼 즐기거나 누리며 살아요.’ 하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4.2.4.쇠.ㅎㄲㅅㄱ)


― 내가 만일 엄마라면 (케이디 맥도널드 덴튼 그림,마거릿 파크 브릿지 글,베틀북 펴냄,이경혜 옮김,2000.4.2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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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우리 말 76] 스트로우

 할머니 댁 할머니 냉장고에서 마실거리 하나를 꺼낸다. 옆에 붙은 작은 빨대를 톡 뗀다. 아이한테 빨대를 쥐라 하고 마실거리 빨래 구멍을 찾는다. 아이보고 제 손으로 빨래를 구멍에 꽂으라 이야기한다. 한 번 엇나가고 두 번째에 소옥 넣는다. 아이는 맛나게 쪽쪽 빨아 마신다. “맛있어?” 고개를 끄덕끄덕. 아이가 한참 빨아 마시니 이윽고 바닥이 난다. 다 마신 마실거리를 납작하게 누르려고 빨대를 빼려는데, 문득 빨대 구멍 밑에 적힌 글월이 보인다. ‘스트로우’. 애 아빠는 아이한테 ‘빨대’라고만 이야기하는데, 정작 아이는 ‘스트로우’라는 녀석을 떼어서 꽂아 마신 셈이다. (4344.2.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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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말(인터넷말) 27] 폴리스타임즈

 경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나누는 신문이기에 ‘경찰신문’일 테지만, 막상 경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나눈다는 인터넷신문에 붙는 이름은 ‘폴리스타임즈’입니다. (4344.2.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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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24. 

손전화를 드는 어머니가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서 찍어 줘 하는 어린이. 

 

아톰은 그림이 예뻐서 밥먹는 자리에서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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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일본사진가 - 사진시대총서 12
와따나베 쯔도무 / 해뜸 / 199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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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란 얼마나 즐거운 놀이인가
 [찾아 읽는 사진책 17] 와따나베 쯔도무, 《현대일본사진가》(해뜸,1988)



 일본 사진쟁이가 일본 사진밭을 돌아보면서 쓴 《현대일본사진가》라는 책을 읽을 수 있는 일은 몹시 고마우며 반갑습니다. 저는 한국말만 할 줄 알기에, 일본책이나 미국책이나 독일책이나 네덜란드책이나 베트남책이 있달지라도 그림이나 사진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이렇게 한국말로 옮겨서 내놓은 책이 있으면,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꾸벅 절을 합니다. 비록, 이 번역책들 번역 말투가 엉터리라 할는지라도 처음으로 글을 쓴 일본사람이나 미국사람이나 독일사람이나 네덜란드사람이나 베트남사람이 그네 나라 말투로 어떻게 이야기를 펼쳤는가를 마음속으로 그려 봅니다. 비록, 이 번역책들을 처음 쓴 그네 나라 사람하고 마주하면서 한 마디도 나누지 못하더라도 눈빛과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듯이 책을 읽습니다.


- “과연 사진기를 메고 나서면 걷게 마련입니다. 나이가 먹으면 건강에 좋다는 그분의 표현이 내 가슴을 흐뭇하게 해 주었답니다. 여하튼 사진기란 별 게 아닙니다. 내가 생각한 것, 내가 본 것을 찍는 기계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때문에 사진은 즐거운 것입니다.” (아끼야마 료오지/68∼69쪽)


 그러나 이 나라 한국사람 가운데 《현대일본사진가》 같은 책을 즐거이 곁에 두면서 가슴으로 새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현대일본사진가”가 아니라 “현대세계사진가”라든지 “현대유럽사진가”라든지 “현대미국사진가”라 하면 꽤나 사랑받으면서 읽힐 책이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참말, 한국 사진쟁이는 일본 사진쟁이와 사진밭을 너무 모를 뿐 아니라, 처음부터 살피지도 않고, 아예 들여다보지도 못합니다.

 수많은 ‘현대 한국 사진’은 ‘꽤 예전 일본 사진’에서 보던 모습들이곤 합니다. 만드는 사진이든 상업사진이든 예술사진이든 순수사진이든 다큐사진이든, 일본에서는 일찌감치 ‘다 해 본 사진’을 이제 와서 새로운 사진이라도 되는 듯이 하는 분이 꽤나 많습니다.

 일본에서 지난날 우리보다 먼저 했다 해서 오늘날 우리가 하는 사진이 어설프거나 어수룩하거나 어리석을 수 없습니다. 더 따지면, 일본에 앞서 유럽사람과 미국사람이 일찍부터 사진을 해 왔고, 일본은 이러한 나라밖 사진을 보면서 바지런히 배웠을 테니까요.

 그러나, 일본과 한국은 다르며, 한국은 일본하고 대면 퍽 슬픕니다. 따르거나 배우거나 흉내내거나 고개숙이거나 어떻게 하거나 하든, 우리는 우리 길을 걸어야 합니다. 일본사람은 일본사람 길을 걷고 한국사람은 한국사람 길을 걸으면 돼요. 니콘 사진기를 쓰든 캐논 사진기를 쓰든 한국사람은 한국 사진길을 걸으면 됩니다. 콘탁스를 쓰든 라이카를 쓰든, 미국사람은 미국 사진길을 걸으면 됩니다.

 생각해 보면,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쟁이로서 사진길을 걷고, 사진기를 만드는 사람은 만듦쟁이로서 사진길을 걸으면 돼요. 고작 얇고 작은 유리 한 장이라지만, 한국에서는 유브이 필터 하나 만들지 못합니다. 기껏 얇고 작은 플라스틱 쪼가리 하나라지만, 한국에서는 후드 하나 만들지 못해요. 그렇다면, 일본 사진밭 만듦쟁이들은 처음부터 ‘잘 할 줄 알아’서 이렇게 사진기도 만들고 필터도 만들며 후드도 만들었을까요. 《현대일본사진가》에서 다루는 숱한 ‘1975년 무렵 현대 일본 사진쟁이’는 처음부터 ‘사진을 잘 찍을 줄 알아’서 이렇게 손꼽히는 사진쟁이로 떠받들리면서 사진말을 쏟아낼 수 있을까요.


- “부친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슬퍼서 운다든가 연인에게 배신당하여 운다든가 바로 그런 때에 나타나는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수단이야말로 사진이 가장 유효하지 않을까요.” (아라끼 노브요시/105쪽)


 ‘아키야마 료지’ 같은 사진쟁이를 알 한국사람은 거의 없겠지요. ‘아라키 노부요시’ 같은 사진쟁이는 꽤나 잘 알 터이나, ‘기무라 이헤이’나 ‘토몬 켄’ 같은 사진쟁이를 아는 한국사람은 얼마나 되려나요. “과연 사진기를 메고 나서면 걷게 마련입니다”라 말하다가는 “사진은 즐거운 것입니다”라 말할 수 있는 한국 사진쟁이는 있기나 있으려나요.

 무거운 사진장비를 짊어지고 걷기만 하여도 ‘돋보이는 사진 작품 하나 건지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사진은 즐겁게 즐기는 셈이다’ 하고 말할 줄 아는 한국땅 사진쟁이나 사진비평가는 몇 사람쯤 있다 할 만한가요. 사진을 사진으로서 바라보고, 사진을 사진답게 다루며, 사진을 사진으로서 껴안다가는, 사진을 사진다이 사랑하는 사진쟁이나 사진비평가라고 스스로 밝힐 만한 사람은 누가 있다 할 만한지요.

 강운구도 있고 배병우도 있고 주명덕도 있겠지요. 임응식도 있고 이해선도 있고 이명동도 있겠지요. 김중만도 있고 조세현도 있고 조선희도 있겠지요. 그런데 사진이란 무엇인가요. 그러면 사진이란 어떤 삶인가요. 그래 사진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 “만일 내가 이데올로기상으로 그분의 영향을 받았다면 사진기를 무기로 좌익운동에 참가했었는지 모르지, 하지만 나의 경우는 그렇지가 않고 그저 서민과 더불어 생활한다는 것뿐이었어 … 피사체가 잘 들어와 주었다는 것은 아주 좋은 조건이었어. 대상이 잘 들어와 주지 않으면, 잘못되면, 찍는 사람의 악만 남게 하니까. 내게는 그것이 잘 들어와 주었다는 말이지. 지금은 사진기의 성능이 너무 좋아져서 오히려 상대적으로 잘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지금 사람들은 피사체를 사진기에 넣는 노력이 좀 부족한 것 같아.” (기무라 이헤이/205, 210쪽)


 아이를 돌보며 집살림을 도맡는 애 아빠 삶은 아주 고단합니다. 아이한테 밥을 먹이고 집안 치우며 아이랑 놀아 주며 설거지랑 빨래로 하루가 저물다 보면, 내가 도무지 뭘 하는 사람인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나라 수많은 애 엄마는 제 이름을 잊거나 잃으면서 스스로 살림꾼인지 애보개인지 밥어미인지조차 모르면서 살아갑니다. 밥이 콧구멍으로 들어가는지 똥구멍으로 들어가는지조차 모르면서 지냅니다. 나이가 먹는지 주는지 잊으면서 복닥입니다. 손바닥에 꾸덕살이 박였는지 하얀손이 까만손이 되었는지 살피지 못하면서 뒹굽니다.

 사진이란 누가 하는 일입니까. 사진이란 뭘 하는 예술입니까. 사진은 어디에서 부리는 멋입니까. 사진은 어떤 눈썰미로 펼치는 사랑입니까.

 일흔을 앞둔 아버지는 설날 제사상에서 잔씻이를 하다가 불쑥 일어나서 절을 하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절을 안 하고 멀뚱멀뚱 하니까 왜 절을 않느냐고 외려 묻습니다. 살짝 말이 없다가 작은아버지가 젓가락을 고르지 않았다고 말하니, 아버지는 살며시 생각하다가, 어 하면서 깜빡 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스무 해쯤 앞서 차례상을 떠올리고 서른 해쯤 앞서 제사상을 되새깁니다. 그무렵 이런 잘잘못이 생기면 어떤 불벼락이 여기저기서 떨어졌는지 곱씹습니다. 하나둘 나이를 먹는 어른들과 아이들을 헤아립니다. 어른들은 자꾸자꾸 잘못을 저지르고, 아이들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어른이기 앞서 젊은이였던 사람들은 차츰 늙은이로 바뀌고, 아이이기 앞서 갓난쟁이였던 사람들은 차츰 젊은이로 달라집니다.

 사진이란 왜 즐기는 놀이인가요. 사진이란 어떻게 나누는 삶인가요. 사진은 누구랑 어깨동무하는 손잡기인가요. 사진은 어떤 손길로 뻗어서 마주하는 믿음인가요.


- 최근의 젊은 세대의 우수한 사진가들은 사진가라기보다는 표현자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 필자를 본 그는 나를 붙잡고 이처럼 중대한 역사적 사건을 사진기로 기록하지 못하고 있는 자기가 과연 사진가냐고 한탄하는 것이었다. 그때 그는 하도 분해서 눈물까지 흘리던 것을 필자는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당시 겨우 주목을 끌게 되던 시절이라곤 하지만, 나또리 요오노스께의 ‘일본공방’을 그만두었던 가난한 도몬 껜은 한 대의 사진기조차 갖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 그는 일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다. 일본인의 마음의 원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그의 언동으로부터 스며나온다 ..  (도몬 껜/252, 253, 155쪽)


 한때, 한국땅 글쟁이들은 너나없이 ‘쉼표 마침표’를 글월 아무 데에나 불쑥불쑥 집어넣곤 했습니다. 갑자기 이런 바람이 불어 너도 나도 이렇게 해야만 글이 되거나 문학이 되는 줄 여기곤 했습니다. 이제, 이 바람은 간곳없이 사라졌고, 이제는 온갖 치레하는 군말을 붙여야 글이 되거나 문학이 되는 줄 여깁니다. 갖은 영어와 온갖 고사성어를 끼워야 글이 되는듯 문학이 되는듯 잘못 압니다. 글쓰기를 다루는 책이 수없이 쏟아지는데, 막상 글재주 부리는 이야기만 넘칠 뿐, 사람들마다 다 다른 삶을 글로 여미는 즐거움을 나누려 하는 글쓰기 책은 좀처럼 안 보입니다.

 사진하는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겠다며 적바림하는 ‘사진 길잡이책’이 하나둘 태어납니다. 그렇지만, 막상 쉰 예순 일흔 여든 늙은이가 함께 즐길 만한 ‘사진 길잡이책’은 눈에 안 뜨입니다. 어린이와 푸름이가 즐기며 맞아들일 ‘사진 길잡이책’ 또한 보이지 않습니다. 쉰 예순 일흔 여든 늙은이한테 ‘어르신들 이제부터 즐기면 되걸랑요?’ 하면서 사진을 즐기는 매무새와 넋을 보여주는 ‘사진 이야기책’은 여태껏 한 권조차 안 나옵니다.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이봐 이봐 너희야말로 이 멋진 삶을 즐기면서 사진도 함께 즐기자고?’ 하면서 사진을 나누는 몸가짐과 얼을 선보이는 ‘사진 이야기책’ 또한 이제껏 한 권이 안 나옵니다.

 그래도, 사진은 사진입니다. 사진쟁이가 사진을 사진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사진 ‘작품’으로 껴안든, 사진비평가가 사진을 사진으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사진 ‘논문’만 쓰든,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사진을 찍고 보여주며 즐기는 나날을 누립니다.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진이고, 이야기열매를 먹는 사진이며, 이야기뿌리를 내리는 사진입니다. 이야기나무와 같이 우람하며 푸른 사진입니다. 이야기씨앗과 같이 꿈을 꾸며 반가운 사진입니다. 추운 겨울날에도 나무마다 새눈이 소담스레 자라나듯, 아직까지도 썰렁하며 메마른 한국땅 사진밭이라 할 터이나, 이 땅 한국에서도 틀림없이 골골샅샅 구석구석 온갖 자리에서 조용히 사진밭을 일구며 사진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4344.2.3.물.ㅎㄲㅅㄱ)


― 현대일본사진가 (와따나베 쯔도무渡邊 勉 씀,홍순태 옮김,해뜸 펴냄,198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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